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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스로 조심하라 (눅 21: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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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정필도 목사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1:34-36)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살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만나서 유익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함부로 만나는 것이 두렵고 조심스럽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사람과 계속해서 함께 지내려고 할 때는 그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알기 위해서 그 사람의 과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났는지, 어떻게 성장을 했는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왔는지, 예수님을 언제 만났는지 못 만났는지, 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인지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 못한 사람인지, 중생의 체험을 한 사람인지 아직도 중생의 체험을 못한 사람인지 등등 그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왜 사람의 과거를 알아보려고 할까요? 사람은 누구나 과거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재와 과거는 모두 다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줍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또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것이 미래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고 또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미래를 대강 예측할 수가 있습니다. 때때로 돌연변이가 있기는 합니다.

김익두 목사님같이 깡패 중에도 아주 고약한 깡패였다가 어느 날 선교사를 통해서 예수 믿게 되고 성령을 받아 가지고 새사람 되어서 부흥목사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리 고약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예수님만 만나면 돌연변이가 되고 아주 상상하지 못할 사람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김일성도 어떻게 보면 돌연변이입니다. 어머니가 권사이고 외삼촌 강양욱은 목사입니다. 그런데 김일성은 공산주의자가 되어서 세계적으로 가장 악질적인 공산주의 독재정치를 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가 있습니까? 교회는 다녔어도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녔으니까 교회나 기독교가 뭔지 지식적으로 대강 알 뿐, 정말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난 체험이 없어서 성령에게 사로잡힌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잘못된 길에 빠지다 보니까 공산주의자가 되고 우리 민족 역사에 가장 악독한 인간이 된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김일성 같은 사람은 돌연변이가 아닙니다.

아무리 교회를 다니고 있다고 해도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사람은 그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아니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일성처럼 나쁜 사람이 되지는 아니했지만 어려서 예수 믿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 중에 세상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방탕함과 술 취함 세상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진다고 했습니다. 현재 교회에 나오지만 아직도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과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주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언제 어디서 마귀의 공격을 받을지 모릅니다. 절벽 위에 서있는 사람과 똑같이 언제 떨어져 죽을지 모릅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보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언제 주님이 재림하실지 모르는 마지막 때에 살고 있습니다.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고 하셨는데 주님이 오시는 그날은 성도들에게 영광의 날입니다. 모든 고생이 끝나고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고 주님을 만나는 날입니다. 얼마나 기쁜 축복의 날인지 모릅니다. 그날은 너무 감격해서 다 눈물을 흘릴 것이고, 춤을 추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를 것입니다. 상상만 해도 너무 좋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 믿는 사람들과 예수 믿는 척 하지만 실제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날은 심판의 날입니다. 그날에 당할 고통과 슬픔과 비참함은 형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면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이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 21:35-36) 주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 거듭나지 못한 사람, 회개하지 아니한 사람, 방탕함과 술취함에 빠져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주님이 갑자기 오실 때에 울며 가슴 치며 통곡하며 이를 갈 것입니다. 자기네들이 아차 생각을 잘못함으로써 잘못된 삶을 살다가 주님이 오셨으니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그 동안 교회에 다닌 것도 헛수고이고 헌금한 것이나 교회에서 봉사한 것도 헛수고이니 억울해서 이를 악물고 거품을 물고 몸부림칠 것입니다.

  사람들을 보면 네 종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많지는 않지만 참 훌륭한 사람입니다. 둘째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사람입니다. 셋째로 처음에는 좋았는데 나중에는 나빠지는 사람입니다. 넷째로 처음에는 안 좋았는데 김익두 목사처럼 나중에 좋아진 사람입니다. 이 네 종류의 사람 가운데 제일 안타까운 사람은 세 번째 형태의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중간에 타락해서 예수도 안 믿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사람은 참 안타깝습니다. 솔로몬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솔로몬은 처음에는 신앙이 좋았지만 점점 더 타락하다가 나중에는 우상숭배하고 죄를 많이 범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처음에는 좋았으나 나중에는 좋지 않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도생활을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중간에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솔로몬과 같이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 같이 되지 아니하려면 오늘 본문 36절 말씀대로 항상 기도하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다니엘같이 늘 기도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출세해도 세상에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니엘은 어떤 일이 벌어져도 하루에 세 번씩은 고국을 향하여 늘 정한 시간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솔로몬도 다니엘처럼 기도생활을 했더라면 절대로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 유익한 점이 참으로 많습니다. 엎드려 기도하다 보면 상한 마음을 하나님이 회복시켜 줍니다. 마음의 근심과 고민이 있을 때는 저는 철야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시나 두시쯤이 되면 졸리기도 하고 피곤한데 어떤 때는 갑자기 그 시간에 성령이 임하셔서 회개하러 왔다가 은혜 받고 돌아갑니다.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한다고 해서 밤낮 은혜 충만하고 밤낮 응답 받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죄를 지었든지 안 지었든지 신앙생활을 잘 하든지 못 하든지 변함 없이 항상 하나님 앞에 규칙적으로 기도하다 보면, 넘어졌다가도 일어나고 죄를 지었다가도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하는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철저한 기도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특별한 경우에, 예를 들면 부흥회 때나 특별새벽 기도회 때나 신앙 수련회 때에만 열심히 기도합니다. 또 특별한 위기가 와서 어려움이 생겼을 때만 기도하지 보통 때는 기도 안 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참 문제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이 항상 깨어 기도하게 하려면 항상 어려움이나 위기가 계속 와야 하니 얼마나 문제가 큽니까. 이런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앞으로는 계속해서 위기가 몰려올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졌으므로 항상 기도하면서 깨어 있어야 됩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기쁨으로 맞이할 사람이 되려면 <평소에는 다니엘처럼 기도생활을 하고 또 위기가 왔을 때는 에스더처럼 아예 죽으면 죽으리라 각오를 하고 금식하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줄 압니다. 우리가 평소에 습관적으로 기도의 시간만 채우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항상 은혜 받도록 기도해야 되고 항상 은혜 가운데 기도해야 승리할 수 있고 신앙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은혜가 없는 기도생활은 형식적인 기도가 되기 쉽습니다. 하루에 몇 번씩 기도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기도생활을 통해서 얼마나 은혜를 받고 있느냐 또 내가 은혜 가운데 기도생활을 하느냐> 이게 중요합니다. 은혜가 넘치는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기도하는 가운데 많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죄를 깨닫기도 하고 자신의 교만을 깨닫기도 합니다. 한순간에 깨닫는 그것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완전히 딴 사람을 만들기도 합니다. 기도하다가 그런 체험을 얼마나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또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는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지 모릅니다. 기도하다가 주님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고 주님을 위해서 할 일이 떠오르고 깨달아지고 기도하다가 영감을 받고 감동을 받아서 주님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은혜 가운데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은혜 가운데 기도생활 하는 사람은 사람이 점점 변화되어서 얼마나 은혜로운 사람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기도하다가 믿음의 능력이 더해지고 기도의 능력, 경건의 능력이 더해지고 세상에 나가서 적당히 사는 게 아니고 목숨걸고 신앙을 지키고 거룩하게 살게 됩니다. 주님을 위해서 살고 은혜가 넘치는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에 기쁨이 있고 좋은 열매가 많고 간증거리가 참 많습니다. 은혜 가운데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응답 받은 간증이 너무 많습니다. 간증거리가 없는 사람은 기도생활을 은혜 가운데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생활에 성공해야 신앙생활에 성공합니다.

  솔로몬이 처음에는 성공했지만 나중에는 타락했는데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기도생활을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고 기도생활을 안 하면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저도 너무 피곤하거나 일이 생기면 어쩌다가 기도를 못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를 제대로 안 하면 얼마나 약해지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믿음도 영력도 영감도 얼마나 약해지는지 나 자신이 너무너무 허약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처럼 저같이 주의 일만 하고 항상 주의 전에서 사는 사람도 하루라도 기도생활 안 하면 약해지는 것이 느껴지는데 하루하루 세상에 나가 사업도 해야 되고 직장생활도 해야 되고 학교도 가야 되는 여러분들이 기도생활을 등한히 하면 오죽하겠습니까.

여러분, 기도생활은 영적으로 보면 호흡과 같습니다. 숨을 잘 쉬어야 살 수 있는 것처럼 기도생활을 잘 해야 영적으로 잘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주신 말씀 기억하시고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힘들어도 철저하게 기도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을 상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처음에는 좋았지만 나중에는 안 좋게 된 두 번째 이유는 성경을 상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는 모세오경밖에 없었는데 솔로몬이 모세오경을 읽고 묵상했더라면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의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은 타락하지 않고 은혜 가운데 살게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은혜 가운데 살고 영적으로 건강하기만 하면 다른 복은 그냥 따라옵니다. 육안으로 보면 걱정거리가 많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깨어 기도하면 모든 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죄 가운데 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들은 다 심판 받을 대상이니까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문제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절대로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 바라보고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었느냐> 그것만 살피면 됩니다. 여러분 각자가 그런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솔로몬이 성경을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의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을 인하여 행하신 바를 너희가 목도하였거니와 바알브올을 좇은 모든 사람을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에서 진멸하셨으되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로 들어가서 기업으로 얻을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두렵건대 네가 그 목도한 일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두렵건대 네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날까 하노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네가 호렙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시매』(신 4:1-10)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신 5:1-10)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신 7:3-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4-9)

솔로몬이 날마다 이 성경을 읽었다면 밤낮 죄만 짓고 우상숭배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애굽왕의 딸을 비롯하여 이방여자를 천 명이나 데리고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말씀을 읽지 않으면 말씀을 잊어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성경을 열심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깊이 읽으면서 은혜 받으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예배를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처음에는 좋았는데 나중에는 좋지 않게 된 세 번째 이유는 예배를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고 얼마나 큰 축복을 주셨습니까. 계속 이렇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일천번제는 드리지 않더라도 날마다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고 그렇게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예배를 등한히 하면서 은혜생활을 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오히려 신앙이 타락하기 쉽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믿음을 아예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교회 열심히 나오고 열심히 예배드리면 그래도 믿음을 살리게 되지만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완전히 불신자가 되어 버립니다. 교회 나와서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열심히 모이고 찬양하고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것이 타락하지 않고 승리하는 비결인 줄 믿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성도는 교회생활에 성공해야 신앙생활에 성공합니다. 천국에 갈 사람들이 천국에 갈 때까지 교회에 모여서 천국생활을 훈련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 모인 교회는 꼭 천국에 온 것 같지만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교회는 지옥 같습니다. 모이기만 하면 싸우고 서로 미워하고 이간질하고 상처를 줍니다. 그러니까 교회생활 하는 재미가 뭔지 모릅니다. 오늘날 그런 교회가 너무 많습니다. 교회 나오면 하나님 앞에 정성껏 예배드리고 은혜 받고 마음의 천국이 이뤄지고 기쁨이 넘치는 가운데 돌아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위한 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처음에 좋았으나 나중에 타락한 마지막 네 번째 이유는 하나님을 위한 비전, 꿈, 하나님을 위한 계획, 소원이 없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삶의 목표는 다 이뤄졌기 때문에 더 이상 자기가 이룰 목표가 없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은 먹고 마시고 노는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요 목표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8)

  여러분은 왜 삽니까? 먹고살기 위해서 사는 것이 여러분 인생의 목적입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인간의 꿈은 두 가지로 나눠집니다. 하나는 하나님 모르는 사람이 가지는 세속적인 꿈으로 부자 되고 출세하고 건강하게 장수하고 세상에서 명예를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신령한 꿈, 신령한 계획, 신령한 소원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소원들이 신령한 꿈, 신령한 소원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지어 바치기를 소원했습니다. 이런 꿈과 소원은 내 믿음에 유익합니다. 이런 소원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소원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 믿음이 좋아집니다. 이런 신령한 소원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삶의 자세가 달라집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이런 꿈과 목표는 우리의 삶을 기쁘게 해주고 즐겁게 해줍니다.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는 증거가 보이고 내 마음속에 기쁨이 넘치면 삶이 행복해집니다. 자기만 축복 받는 것이 아니라 축복을 물려주고 축복을 나눠주면서 살게 됩니다. 솔로몬이 신령한 꿈과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면 밤낮 술이나 먹고 그 많은 여자들이랑 쾌락을 누리면서 세월을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평생의 소원이 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는 넘치게 축복해 주시니까 바랄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신령한 꿈과 소원을 내가 이뤄 드리면서 살까’ 그것밖에는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불행한 인생이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위한 구체적인 소원, 목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 21:34-36) 주님이 언제 오시더라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항상 깨어 있으라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과거에 기도 많이 했어도 지금 기도하지 아니하면 쓸데가 없습니다. 과거에 성경을 많이 읽었어도 지금 성경을 읽지 않으면 아무 쓸데가 없습니다. 과거에 충성 봉사했어도 지금 자신만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한 꿈과 소원이 없다면 아무 쓸데가 없습니다. 지금 내가 얼마나 깨어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충성 봉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현재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밤에라도 주님이 오신다면 내가 주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설 수 있을까 생각해 보시고 현재의 내 모습을 위해 스스로 조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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