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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좋은 군사되기 (딤후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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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임경택 목사

오늘은 은급주일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기독교 대한감리회에서 일생을 믿음으로 복음전파를 위해 사시며 목회를 명예롭게 마치시고 은퇴하신 원로 목사님들을 위하여 예배드리며 감사한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는 은급주일입니다.
한국에 복음이 전파된 지 120년 만에 한국감리교회는 그 교세가 미국감리교 다음으로 5.500교회 7천교역자들과 150만 성도의 큰 교단이 되었습니다.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배후에는 은퇴하신 목사님들의 땀과 눈물과 피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훌륭한 목사님들의 희생적 봉사를 생각하며 존경하며 은급 주일 에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헌신하신 그 분들에게 머리 숙여 존경하며 찬사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한 목사님이 기도원에 가시다가 한 고목나무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속이 썩어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너도 목회를 했니? 왜 그래서 속이 그렇게 썩었니?” 하셨다고 합니다.
목회는 사람에게 소망을 두지만 그러나 사람에게 소망을 둘 수 없는 것이 목회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실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목회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평생에 하늘의 소망으로 인내로써 선한 싸움을 싸우며 평생 헌신하여 오늘의 한국 교회의 부흥을 가져왔다고 믿습니다.
바울은 딤후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이제는 의의 면류관 . . . ’ 놀라운 최고의 포상입니다. 이것은 모든 전도자들이 받을 최고의 대접일 것입니다.

세상은 한 마디로 전쟁터입니다. 인생은 전쟁터에서 전쟁하는 군인입니다. 사람은 누구와 더불어 싸워야 할까요? 바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이 싸움이 가장 중요한 싸움입니다. 자신과 싸워 이긴자는 승리자이고 자신과 싸워 진자는 실패자입니다.

러시아 제국을 통치하던 피터 제독은 “내가 러시아 제국은 능히 다스릴 수 있으나 내 마음은 내가 능히 다스릴 수가 없다” 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은 롬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4절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속에 있는 자신과의 싸움 때문에 고민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시면서 자신의 뜻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것을 봅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은 결국 온 인류를 구원하는 대 승리자가 되신 것입니다.
그 믿음의 선배들은 참으로 강한 용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승리한 분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참 부러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강해지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사명은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강한 하나님의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1. 왜! 강해져야 하는가?

본문은 1절 “내 아들아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라고 말합니다.
군인의 특징은 강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고대그리스는 여러 개의 도시국가 중에 스파르타라는 도시국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10-15%의 적은 시민이 대다수의 노예를 다스려야하는 구조였기에 항상 '힘'을 추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검진을 하여 병약하다고 판단되면 그 아이는 곧바로 죽어야만 할 정도로 '강함'을 추구하는 나라였습니다. 모든 남성은 의무적으로 군인이 되어야 했으며 우리의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보다 조금 많을 때 들어가 거의 30세가 넘어서야 나올 수 있을 정도로 길었습니다. 여자 역시 비전투분야에서 군대에 복무해야 했던 것입니다.

세상에는 강한 것은 살아남고 약한 것은 사라지는 원리가 적용되는 세상입니다. 세계역사는 전쟁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강한 민족은 살아남고 약한 민족은 멸망했습니다.
오늘의 우리 시대도 무한경쟁시대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고 약한 자는 도태되는 시대입니다.
영적인 세계에도 그 원리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강한자만 살아남는 것입니다.
그러나 21세기의 특징은 거칠고 무뚝뚝하고 다혈질적인 남성적 강함이 이 시대의 승자가 아니라 매우 지혜롭고 감성적인 강함이 승자가 되는 시대입니다.

성경을 보면 디모데는 여러모로 약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디모데는 아직 젊은 청년의 나이의 목회자였고 위장병이 자주 생겼습니다. 부끄러움과 겁이 많은 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딤전5:23에 보면 자주나는 병을 위해 포도주를 마시라고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이런 이런 약점을 가지고는 제대로 목회사역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먼저 강해질 것을 권면 합니다.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은혜 속에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의 일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프로그램이 좋아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재가 좋아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지도자라야 합니다. 프로그램, 교재가 아니라 사람이 좋아야 합니다. 어머니가 먹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하면 아이에게 젖을 줄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해져야 합니다.

2. 은혜 속에 강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해야 참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은혜 속에서 강한 것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말미암아 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삶을 가리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모든 일을 감당하고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은혜 안에 강한자입니다.

우리의 강함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까? 핍박을 이길 수 있습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까? 주를 위해 순교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성령이시며 성령이 이 일을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강하라고 권면합니다. 어떻게 강해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강해 질 수 있습니다. 아기를 낳지 않은 처녀는 약합니다. 그러나 아기를 출산해 본 경험이 있는 엄마는 강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경험한 사람들은 강해집니다. 창26장에 보면 이삭은 천성적으로 약한 사람입니다. 블레셋 그랄 땅에서 가 땅 사람들이 두려워 아내를 누이라 속입니다. 그러다가 위기를 당합니다. 아내를 뺏길 뻔한 때를 하나님의 은혜로 고비를 넘깁니다. 하나님의 해결해 주심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경험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이삭이 강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창26:12)하나님을 만난 이삭은 그 이전의 외동아들 이삭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게 하심을 알고 난 부터 블레셋 땅 아비멕렉왕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평화의 조약을 맺자”고 정식으로 요청해 오는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사람은 강해집니다. 여러분 강해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강해집니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심으로 강하여 지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엡6:10)

어떤 사람들을 보면 술을 먹어야만 큰 소리 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술 안먹으면 샛님입니다. 그러나 술을 먹으면 용기가 대단합니다. 눈에 뵈는 게 없습니다. 그와같이 성령의 새 술에 취하면 이런 능력과 담대함이 생깁니다. 그분과 연합되어지면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능력을, 강함을 담대함을 주십니다.
((복음성가)) 나는 비록 약하나 주예수는 강하다.
나를 도와 주시는 주님곁에 가까이 가리라
주님곁에 가까이 더가까이 가리라
나를 도와 주시는 주님곁에 가까이 가리라
주님 은혜 가운데 살면 강한 크리스챤, 파워 크리스챤이 될 수 있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한복음15:4)
은혜안에서 강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와, 바울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도 역사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3. 좋은 군사는 훌륭한 전달자가 되는데 있습니다.

2절에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칠 수 있으리라” 여기에서 “부탁하라”라는 명령을 합니다. 받은 은혜를 잘 전달하는 것이 훌륭한 일군입니다. 자기는 분명히 은혜를 받았는데 그것을 전달하지 않는다면 훌륭한 일군이 아닙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이런 저런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 . . 자동차에 ‘트렌스미션’( transmissio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동력전달 장치이죠. 변속기를 말합니다. 미션이라는 말은 ‘사명’이라는 뜻입니다. 변속기는 사명전달기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명전달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바울에게, 바울은 디모데에게, 디모데는 또 충성된 사람들에게,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복음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창조적 소수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의 구원 사역을 위해 아브라함 한 사람을 택하시고 그 일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따르는 구름같이 많은 사람들 중에 열둘을 택하셔서 복음사역을 맡기셨습니다. 열두 사도는 다시 70인의 제자를 양성했고, 70인은 120명의 제자를 낳았으며, 또 그들을 통하여 500여 형제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충성된 자들을 제자로 삼으라고 권합니다.

충성된 사람이란 신실한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한 가지 일을 시작하면 끝장을 내는 사람을 말합니다. 주님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복을 을 맡기지 않습니다. 충성된 사람들에게 맡깁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난 사람들을 쓰시지 않습니다. 갑자기 뜨거워 졌다가 갑자기 식어지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신실한 삶에게 맡기십니다. 지금도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참으로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맡기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힘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 충성된 사람은 존 웨슬리 같은 사람입니다. 한 사람으로 영국을 면화시킨 사람 . . .

네비게이토의 창시자인 도순 트롯트 맨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죽었고 생산능력이 없고 성장하지 못한 수 백명의 사람보다는 단 하나의 살아있는 ‘이삭’ 즉 재생산할 수 있는 이삭을 갖겠다.”라고 . . .
그러므로 먼저 우리가 진정한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인내를 겸비한 충성스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원하여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긍정적, 적극적으로 헌신하는 충성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충성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자원함으로 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타올라서 해야 합니다.
왜, 충성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부탁해야 합니까?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양적인 정서에서 계보가 끊어진다는 것은 부끄러움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 나에게까지 전해진 복음이 내 대에서 끊어진다면 그것은 수치입니다. 하나님앞에 설 때 . . . . 하나님 앞에 설 때 부끄러움을 당치 않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복음의 계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같은 믿음의 후손을 둔 사람은 훗날 주님 앞에 섰을 때에 부끄러움을 당치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의 계보가 대대로 계속적으로, 끊어지지 않고 전해지기 위해서는 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가 끊어지는 수치가 여러분들의 삶에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4. 좋은 군사가 되기 위하여

어떤 군사가 좋은 군사입니까?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4절)”
군사는 사적인 생활이 없습니다. 국가에 바친 몸입니다. 군대를 위해 바친 몸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몸이라도 바쳐야 합니다. 보초를 서는 병사는 졸면 안됩니다. 남들이 잘 때 자기 임무를 다 해야 합니다.

그러나 힘들다고 이리 저리 핑계나 대고 훈련에 빠지고 . . .매일 고향 생각이나 하고, 애인 생각이나 하고, . .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부대 내에 사고가 많이 일어납니다. 밥값도 못하는 군사인 것입니다.
이런 군사는 자기도 죽고, 나라도 망하게 합니다. ‘훈련에서 땀을 많이 흘린 병사는 전쟁에서 피를 흘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군사가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힘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0-17절)
훈련이 힘입니다. 준비가 바로 힘입니다. 예수 믿은 지 오래 되었다고 마귀가 피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이 많다고 영적 권세가 많은 것도 아닙니다. 훈련된 군사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 입어야 합니다.

군인은 전쟁을 대비하여 존재합니다. 잘 훈련된 군인은 비상시 좋은 군사로서 제 몫을 해냅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영적 정신 무장에 조금도 흐트러짐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군인의 삶은 결코 낭만이 아닙니다. 전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돈 벌기 위해서, 봉급 받아서 집사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군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3절)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여기에는 자기와의 싸움이 따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참아야 합니다. 인내는 잘 훈련된 그리스도인의 멋입니다. 어떤 고난도 잘 인내하는 그리스도인을 보면 ‘얼마나 훈련을 받았을까?’하며 부러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군사는 사사로운 일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4절) 군복은 그의 삶의 방향과 목표를 보여줍니다. 변화된 삶에 빨리 적응해야 좋은 군인이 됩니다. 군복을 입고도 집안 일 생각하고, 민간인 생활을 생각하고 사는 군인이 있다면 군인으로서의 정신이 안된 사람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부름받고 하나님의 삶이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군사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세상에 얽매여 살던 삶의 법칙들을 과감히 끊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군사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군인의 특징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것입니다.

병사의 하루 일과는 지휘관의 명령에 의해 시작되어 끝이 납니다.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나를 군사로 부르신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은 명령에 순종하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복종에도 차원이 있습니다. 무서워서 하는 복종이 제일 유치한 복종입니다. 억지로 하는 복종입니다. 강요당한 복종입니다. 그 다음은 의무감 때문에, 또는 어떤 복을 받기 위해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복종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복종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하고 복종하고 굴복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는 복종입니까? 여러분들이게 이런 복종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열매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은급주일로 지켰습니다.
앞에 달려가신 믿음의 선배들을 보면서 우리도 그런 하나님의 군사들이 되고자
결단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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