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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경적 헌금생활(창 1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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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재명 목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기에 지극히 마땅한 일이지만 많은 목회자들이 용기를 내지 못하고 강단에서 재물이나 헌금에 대하여 강조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유인즉슨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성도들의 마음에 상할까봐 입니다.
오늘은 헌금에 대한 성경적 원리를 말씀 드릴 때 말씀 앞에서 많은 깨달음과 함께 자유 할 수 있는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성경에는 돈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마6:19절에 예수님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삶의 목적이 하늘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살면서 가장 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땅에 보물을 쌓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인생을 걸었다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을 만큼 사람들은 땅에 보물을 쌓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것에 따라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나뉘었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처럼 이 땅에서 환란과 궁핍가운데 있지만 부요한 자일 수 있고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부족한 것이 없다 해도 실상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한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너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돈은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돈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할 수는 있지만 평안을 줄 수는 없습니다.

마6:24절에는 “ 한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였습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땅에 보물을 쌓아두는 사람은 돈이 그의 하나님이 됩니다. 물질에는 나름대로 하나님이 정해 주신 몫이 있다 합니다. 그것을 셋으로 나뉠 수 있는데 하나님의 몫, 다른 사람의 몫, 내 몫이 있다 합니다. 내가 벌었다고 내게 들어온 돈이라 해도 다 내 몫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몫과 다른 사람의 몫까지 제 몫으로 하려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이런 마음은 하늘에 보물을 쌓고 사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첫째: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주의 것을 잘 구별 할 줄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브라함이 나옵니다. 또한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마중 나온 멜기세덱을 봅니다. 17,18절에 보니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고 말씀합니다. 살렘왕인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나 주신 것입니다. 구원의 백성들의 양식인 떡과 포도주을 가지고 만나주신 것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준 것은 십분의 일을 주었습니다. 먼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구원의 상징인 떡과 포도주을 주고 그 다음에 아브라함에 의해 십분의 일이 드려졌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이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이 구별되게 살겠다는 결단이요 구원 받은 백성으로서 이제 계산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겠다는 선언입니다. 십일조는 율법이 아닙니다. 율법이전에 제정된 것이니 율법적 개념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의무적인 조항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편의대로 생각하고 드리니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자신을 시험해 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3:7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오라 말씀합니다. 어떻게 돌아갑니까? 8절에서 12절까지 보니 온전하지 않는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하므로 하나님은 저주를 내렸고 그러면서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면 복을 넘치도록 주시겠다 이를 시험에 보라 하시며 이들의 인생을 책임지시겠다 말씀합니다. 또한 12절에서는 열방의 자랑거리로 만들겠다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의 날 주의 몫이 구별되어지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헌금의 종류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의무헌금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장 기본적인 십일조를 말씀합니다. 다른 헌금에 대하여는 예물이나 헌물이라 하지만 십일조는 특별히 구분합니다. 레27:30절에 “땅의 십분의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증거 합니다. 주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는 것 이것을 ‘성물’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헌금하고는 구별 된 것입니다. 성물에 있어 주의 사항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인심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구제헌금이나 선교헌금의 용도로 드리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반드시 자신이 머물고 있는 영적 양식을 제공받고 있는 본 교회에 드리는 것이 온당한 행위가 됩니다. 또한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을 정확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면 안 됩니다. 부분적으로 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것이 됩니다. 크고 작은 것이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의무헌금으로 또 하나는 절기 헌금입니다. 추수감사, 맥추감사, 성탄, 부활절 헌금들이 있습니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순종의 문제입니다. 의무헌금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헌금이요 이런 드려짐을 통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성도된 삶의 원리입니다. 의무헌금에 참예하지 않거나 인색한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다음은 예배헌금입니다. 구약의 의미로 보면 제사 때 드려질 제물로 보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속죄를 위해 자신을 대신해 죽어 줄 제물을 가져와 드렸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 마다 드리는 제물이 교회시대에 와서는 예배 때마다 드리는 예배헌금이 됩니다. 진정한 예배에는 찬송, 기도 말씀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예물이 있어야 온전한 예배가 됩니다.

또 하나는 감사헌금입니다. 감사헌금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삶속에서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드리는 일반적 감사와 믿고 감사하는 서원예물이 있습니다. 서원예물은 어려운 중에 하는 미리 드리는 신앙적 표현입니다.
또한 목적헌금이 있습니다. 달이 말해 특별 헌금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교회에서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드려지는 예물을 말합니다. 건축, 선교, 구제, 장학헌금들이 이에 포함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며 드려지는 예물입니다. 시126:5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하였습니다.

셋째: 헌금에 대한 (제사 제물)의 정도(程度)

구약 때 드려진 제물들은 제사자의 빈부정도에 따라 소나 비둘기 같은 것으로 드렸습니다. 또한 정해진대로 드려진 제물도 있으니 문둥병환자들입니다. 송아지 없는 사람은 죄도 짓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죄 질에 의하여 큰 재물이 정해지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직분에 의해 책임감을 가지고 직분에 상응한 제물을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헌금에 대한 헌신이 없다면 항존직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드리는 예물에 믿음과 마음이 있느냐는 그 어떤 것보다 비교할 수 없는 정도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모든 것을 드리려는 아브라함의 헌신에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적을 맛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만큼 드려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광야를 행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들을 하나님은 잘 아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들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이것이 관계입니다. 헌금하는 일만큼이나 절약하고 규모 있게 사는 것도 성도의 삶입니다. 펑펑 써대면서 매일 돈에 쪼들리며 살고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다고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됩니다.

결론: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일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원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있음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로 돌려 드리는 자녀 된 삶의 모습이 일속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일 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언젠가 돈이 목적인 삶은 반드시 슬픈 날이 올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재물은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합니다. 세상이냐 하늘이냐는 저울에 한번 우리의 관심을 달아 보았으면 합니다. 적극적으로 재물을 벌어 하나님의 필요를 위해 사용할 때 하늘에 쌓아두는 믿음의 모습들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재물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이 재산이요 목적이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데 사용되어지는 것이 재물이 되어야지 재물을 위해 내가 허비되거나 사용되는 것은 목적이 땅에 있는 것이 됩니다. 우리들의 물질이 어디에 쓰여지고 있습니까? 하늘에 처소는 우리들이 땅에서 보내는 재료로 지어진다 합니다. 성경은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합니다. 요한 웨슬리는 “나는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은 사람의 회개를 믿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죠지 스위팅은 “내 인생에 마지막 날 내 생이 끝나는 최후의 여정에서 내가 얼마나 벌었노라, 내가 얼마나 이루었노라, 쌓아 놓았노라 는 하나도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없다.” 하였습니다. 나는 나 위해 말고 어디에 얼마나 사용했는가? 나는 얼마나 드려졌는가? 하나님의 거룩한 복음의 선교와 주의 사역을 위해서 드리는 이 경건한 삶이 당신의 습관이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허락하신 물질은 과연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위해서 사용되고 있습니까?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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