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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을 자랑하라 (롬 1: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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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기홍 목사

신문마다 경기가 나쁘다고 합니다. 매일 무슨 지수 무슨 지수가 낮다고 나옵니다. 신용불량자가 450만 청년실업자가 93만 명이라고 합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힘들다고 합니다. 띠 두르고 떼쓰는 사람들만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더 무서운 것은 사회 전체가 분열되어 싸우고 있습니다. 아무도 존경 않으니 사회를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통령은 해결하고 국력을 한 방향으로 모으려 하지 않습니다. 과거 잘 먹고 잘 살았던 사람들을 친일파로 놓고 청산하자고 합니다. 대다수 국민은 관심이 없어요. 보통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큽니다. 오히려 경제를 잘하면 친일청산도 좋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 경제는 뒤로 한참 밀렸어요. 안보도 반미로 인해 불안해졌어요.

모두 각자 알아서 살 길을 찾고 있어요. 이민 간다는 사람부터 해외로 돈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다고 미래가 보장 됩니까? 미래는 절대로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미래가 확실히 보장되는 길이 있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한 마디로 복음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일까요?

1. 구원의 복음

오늘의 말씀이 주어진 시대도 불안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식민지였고 가난했습니다. 사람들은 메시아를 못 박고 모욕해 죽였습니다. 그러면서 지배하던 로마에 대항합니다. 66년 과격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교외 로마군 주둔지를 급습 점령하고 로마군을 죽입니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게릴라들이 일어나 점령군에 대한 무력항전을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네로 황제는 로마의 가장 유능한 베스파시안 장군과 최정예부대를 보내 이스라엘을 평정합니다. 그의 아들 티투스 장군에 의해서 계속된 전투는 몇 년을 끌다가 결국 70년에 예루살렘 성이 함락됩니다. 성안의 유대인 남자는 모두 죽었습니다. 남은 여자와 어린이들은 모두 노예로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성벽은 다 무너지고 집들은 모두 태워졌습니다.

성전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돌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종말이 온 것 같았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갈 때 따라오는 여인들을 향해 예언했습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자녀들을 위해 울라. 돌 하나도 돌 위에 얹혀 있지 않고 파괴되리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보다 더 무서운 일도 절망스런 일도 없었습니다.

어째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이렇게 처참하게 망하도록 내버려 두셨나요? 예수에게 사형을 언도한 로마 총독이 손을 씻으며 말합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해 너희들이 대가를 받으라.” 그러자 모든 백성들이 외칩니다.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릴지어다!” 이보다 더 무서운 맹세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말대로 그들에게 임합니다.

그 무서운 범죄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스라엘인이라면 그 맹세에 해당이 됩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 속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유대인들은 역사를 통해 가는 곳마다 미움과 멸시와 박해를 받았습니다. 2차 대전에는 6백만 명이 가스실에서 죽어 비누가 되었습니다. 역사에 유대인들처럼 박해를 받은 민족이 없어요.

그 무서운 맹세가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나요? 예수께서는 모든 인류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대표일 뿐이지요. 넓게 보면 누구든지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그 저주에 해당됩니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롬2:9) 삶은 무서운 일을 기다리는 과정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말씀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도 유대인들이었고 예수를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 맹세가 다른 의미로 임합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릴지어다!” 죄를 회개하고 그 피의 공로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 피는 저주가 아니라 생명이 됩니다.

영혼만 구원 받나요? 아니요. 실제로 그 당시의 신자들은 아무도 그 무서운 일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로 예루살렘을 벗어납니다. 요단강을 건너 펠라라는 곳으로 이주했어요. 그리고는 다시 로마 제국의 여러 지역으로 옮아갔습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교회를 세워 로마가 복음화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더욱 복 받았지요.

2. 생명의 복음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여기서 헬라인은 이방인 모두 즉 우리를 가르킵니다. 누구든 복음을 믿으면 구원의 능력이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천국 가는 능력뿐입니까? 현재의 고통에서는 구원 받지 않나요? 전쟁 일어나고 경제가 파국 올 때는 해당 안 되나요?

유대인 신자들은 처참한 멸망에서 구원 받았습니다. 죽거나 노예가 되면서 영혼만 구원받은 게 아닙니다. 모두가 멸망을 당해도 그들은 살았고 잘 되었습니다. 그들 중의 몇은 순교의 영광까지 누렸습니다. 복음은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능력을 주었습니다. 생명도 건지고 복된 삶도 살고 다른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계속되는 복입니다.

유대인들뿐이 아닙니다. 복음을 받은 개인은 개인으로 잘되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사회는 사회로 국가는 국가로 복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로마는 복음을 받아서 복된 제국이 되었습니다. 복음대로 살지 않게 되자 로마도 476년 멸망하고 유럽은 여러 나라로 쪼개집니다. 거기서 복음을 먼저 받아들이는 나라부터 잘됩니다.

그렇게 중세 천년을 보내고 다시 복음은 버려집니다. 미신과 인간적인 고행이 판을 칩니다. 사람들은 타락하고 무서운 전염병과 전쟁이 끊이질 않습니다. 이때 독일과 영국이 복음으로 돌아가 종교개혁을 일으킵니다. 그들이 강한 나라로 일어나고 선교사를 가장 많이 보냅니다. 복음이 높이 인정받는 사회나 국가는 생명과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19세기 그들에게서 복음이 소홀히 될 때 미국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로 일어난 것은 순전히 복음 때문입니다. 부흥운동이 나라를 휩쓸 때마다 사회는 질서를 잡고 정의롭게 됩니다. 미국이 영토나 인구가 가장 크지 않습니다.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가 훨씬 큽니다. 그런데도 전 세계 힘을 합친 것보다 더 미국이 큽니다.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인간은 모두 죄에 빠졌습니다. 그러니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이 죄에서 나옵니다. 생명이 없어요. 그래서 죄부터 해결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힘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꿈을 꾸며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의 열매를 맺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처럼 살다가 천국을 물려받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들려준 내용입니다. 그냥 말로만 한 게 아니고 스스로 우리의 죄를 지고 죽을 수 없는 분이 죽습니다. 그리고 부활해 변화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 믿기만 하면 그 복된 소식의 내용대로 삶이 펼쳐집니다. 너무 쉽고 간단합니다. 그러기에 다른 종교에서는 우리 신앙을 비웃습니다. 뻔뻔하다는 말이지요. 복음을 우습게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지 모르고 까부는 겁니다. 인간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어요. 병과 실패 앞에 두려워합니다. 전쟁 앞에서 사고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도 늘 새롭게 그 방법을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구원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3, 복음을 부끄러워하는가?

복음이 주는 첫째 축복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의를 내세웁니다. 신앙생활 하면서도 그럽니다. 사람의 의는 죄에서 출발합니다. 욕심이고 이기심입니다. 아무리 높이 쌓아도 인간 수준입니다. 루터는 금식을 밥 먹듯이 했어요. 하루 일곱 번씩 예배드렸어요.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더러웠어요. 미워하고 음란하고 짜증내고 게을렀어요.

그는 결국 자기 의를 포기했어요. 하나님이 주신다는 의를 믿었어요. 복음이 이렇게 들려집니다. “네게 의가 있느냐?” “교회 다니고 착한 일 했습니다.” “다 네 욕심으로 그랬는데 너의 그 의로 천국 들어가느냐?” “안 됩니다.” “그러면 나의 의를 줄테니 받겠느냐? 그냥 주겠다.” 그리하여 당시 전 세계 카톨릭 교회와 끝까지 싸울 능력을 받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예수를 믿는 너 아무개에게 하나님의 의를 입혀주노라. 너는 의인이다. 그것을 믿으면 의인의 능력이 경험된다.” 조금씩 의인 되는 게 아닙니다. 단번에 의인을 만들어주고 그 사실을 믿게 합니다. 그래서 믿으면 의의 능력이 나옵니다. 어디 의뿐인가요? 다른 모든 삶의 능력도 여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영적인 사실입니다. 단지 우리 눈에 안 보이고 안 느껴질 뿐입니다. 영적 눈을 열린다면 인간의 더러움과 죄의 악함에 몸서리를 칠 것입니다. 그러다 예수를 믿는 순간 주어지는 의가 눈부시게 덮이는 것을 봅니다. 영원한 생명이 뿜어져 나옵니다. 그러나 보통 눈으로는 안 보입니다. 그래서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효과가 나옵니다.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합니다. 성경을 통해 예수께서 하신 일과 하신 말을 믿음으로 의인되고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면 더욱 믿음이 일어나서 더 큰 능력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기 전에 경험되기 전에 믿고 적용해 보세요.

믿음이 없는 사람은 복음을 소홀히 합니다. 그냥 성경에 있는 말씀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맙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 말하기를 부끄러워합니다. 자신이 광신자나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바울은 그렇게 해서 항상 복음을 자랑했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실제로는 모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복음만 의지했습니다. 그 내용대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힘을 얻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은 날로 험악해갑니다. 내 혼자의 힘으로 살기에는 너무 불안합니다. 복음을 확인하세요. 자랑하세요. 예수의 피를 자신과 후손들에게 돌려야 합니다. 예수께서 새롭게 만드신 의와 생명과 능력의 나를 믿고 매사에 임하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구원과 승리를 얻습니다.

QT를 위한 질문 (괄호안은 참조할 내용의 장과 문단위치로 하루 한 문제씩)

1.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는" 주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나요?(1/2,3)
2.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라는 맹세에서 피의 값이 어떻게 다르게 임하나요?(1/4-7)
3. 구원은 영혼에만 해당되어 죽은 뒤에만 경험되나요? (2/1-3)
4. 복음의 내용과 사용을 말해보세요.(2/6-8)
5. 어떻게 의인이 되고 의를 발휘하나요?(3/2,3)
6.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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