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령을 받는 지라 (행 8:17-25)

  • 잡초 잡초
  • 451
  • 0

첨부 1


- 설교 : 이억희 목사

사도행전 8장이 시작되면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핍박과 고난을 받으면서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되는 내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사울일 때 얼마나 잔인했는지, 얼마나 세상 야망에 불타고 있었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가 큰 핍박을 받아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되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8:1)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사도행전 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쌔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스데반 집사의 죽음과 성도들의 애통은 지금 오늘의 우리에게도 큰 아픔이고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사울이 스데반 집사의 죽음을 마땅히 여기며 핍박을 즐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8:1) 사울이 그의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런데 이와 같은 핍박과 고난은 오늘 우리 시대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일을 당하거나 목격하게 되면 어떤 반응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러나 핍박과 고난과 환난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거나 아픈 상처만 남기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었고 더욱 담대하게 외치며 하나님 나라를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1. 핍박으로 인하여 기쁨도 있습니다.

우리가 핍박을 받는 것이 결코 불행한 미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도리어 우리를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며 기적과 이적과 표적을 보게 합니다.
오늘의 아픔과 상처는 나를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도리어 자립하게 하고 잠재적인 힘을 활용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는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감추어진 힘이 가득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개발하고 활용하면 더 나은 미래 더 큰 역사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8: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사도행전 8: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사도행전 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우리가 사는 동안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과 순종이 확실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은사를 주시고 축복하십니다.

(사도행전 8: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능력을 의심하기도 하고 오해하기도 하고 신기하게 여기면서 마술하는 것처럼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시고 가는 곳마다, 머무는 곳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전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명을 감당하며 우리 자신들을 드릴 때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사도행전 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이렇게 핍박이나 고난이나 환난은 불행한 것 만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의 능력과 은사를 세워 기쁨과 감사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위기는 곧 기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 핍박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진 사람들 곧 ‘디아스포라’들은 가는 곳이나 머무는 곳에서 도피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가끔 어려운 일이나 급한 일이나 불리한 조건을 만나면 실망하고 잠적하거나 도피하거나 침채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의 결과가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은 내가 가는 곳이나 머무는 곳이 복음의 현장입니다.

(사도행전 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그리고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진 사람들에게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신앙교육을 위하여 지도자를 파송하기도 했습니다.
이때에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파송되었습니다.

(사도행전 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러나 사도들이 가는 곳, 머무는 곳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형통한 것 만은 아닙니다. 세속적인 사람이나 이기적인 사람 교만한 사람 때로는 돈으로 직분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의 연륜이 있는데도 자기중심적 권위주의적 명분이나 물질 만능주의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복음은 여전히 전파되고 하나님 나라는 계속 확장되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1:18)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사도행전 8: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사도행전 8: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핍박이 하나님 나라 확장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환난이 교회 부흥을 멈추게 할 수도 없습니다.
고난이 성도의 삶의 미래를 어둡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성령의 충만으로 역사하시고 표적과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사도행전 8: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3. 어려울 때일수록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가 평안하고 우리 삶의 현장이 안정적일 때는 모두가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우리 삶의 자리가 어려움을 만나거나 교회가 핍박을 만나거나 고난을 만나면 쉽게 신앙이 변질되어 버릴 수가 있습니다.
기초신앙이 없거나 세상 중심으로, 자기중심으로 신앙생활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기 지식으로 교회를 판단하기도 하고 자기 경험으로 신앙습관을 만들어 가기도 합니다.
이것은 바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결국 교회와 신앙과 직분을 자기 판단으로 묶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사도행전 8장에는 그 대표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돈으로 성경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성령을 받는 모습을 시몬이라는 사람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시몬은 그 모습을 보고 돈을 드려 그 권능을 자신에게도 달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8: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사도행전 8:19)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하여 주소서 하니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것을 살 수 있다거나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교만한 생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으로 감사하며 순종하고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우리가 바른 신앙을 가지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환난과 고난을 만나게 됩니다.

(사도행전 8: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

(사도행전 8: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우리 신앙생활은 오직 하나님 중심이어야 하고 말씀 안에서 순종하고 겸손한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좋은 것을 채우십니다.
존귀하게 가진 신앙생활을 축복으로 열매 맺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핍박이 있어도 기쁨을 만들어야 합니다.
핍박이 있어도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야 합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도 기쁨과 감사와 능력과 축복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바른 신앙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