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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삼상 7:3-4, 롬 12:1-2, 마 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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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오동 목사

1. 우리가 TV를 시청하다 보면 소위 “뉴스특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일상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그것을 일시 중단하고 특종 뉴스를 보도하는 일입니다. 좀 덜 한 것은 일상적인 프로그램이 진행 중인데 급하게 전해야할 뉴스가 있을 때 자막으로 내어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내려오면서 사무엘서의 전개를 보면 그간에 특종을 다루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처음에 사무엘서는 한나가 아들 달라고 기도한 것, 응답받아 사무엘이 태어나서 성소에 바친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엘리가(家)의 운명에 대하여 예언한 것 등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3장 마지막 부분에 보면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셨다”,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 알았더라”, 그리고 4:1에는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기 시작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야흐로 사무엘의 시대가 열리는 듯 할 만큼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4:2부터 갑자기 특종 뉴스가 끼어들게 됩니다. 그것이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쟁이요, 여호와의 언약궤를 빼앗기게 된 사건, 엘리 일가족이 망하게 된 이야기, 그리고 결국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되는 이야기 등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무엘의 이야기를 순조롭게 진행하다보니 그보다 더 급하게 전할 사건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국가적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였는가를 증거 해주는 하나의 예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회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무엘은 꾸준히 선지자로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오히려 시대가 혼란할수록 선지자의 활동은 더 절실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삼상7:3에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세례 요한이 등장했습니다.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 주위에 몰려들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상황이 그만큼 어려웠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이렇게 물었던 것을 보면 얼마나 선지자를 기다려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 그 부흥의 자취를 보면 마치 요원의 불길 같았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생수를 발견했듯이 사람들은 교회로 몰려왔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본국에 보고하기를 “우리는 씨뿌리기 위해서 왔으나 오히려 추수하기에 바쁘다”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를 보면 정치는 부패하고 무력하였으며, 경제는 피폐하기 이루 말 할 수가 없었고, 종교마저도 더 이상 국민들에게 소망을 주지 못했습니다. 이럴 즈음에 기독교가 전래 되어졌을 때 그야말로 우리 민족에게는 복음이었습니다. 마치 스폰지처럼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역사의 무대 전면에 등장할 때 사정이 이러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말씀(2절)을 보면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방 문화에 매혹을 느끼고 하나님을 떠나 이방풍속에 빠져보았으나 그들의 영적인 갈증은 갈수록 더 심하기만 했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꿈에 아무리 물을 마셔도 해갈되지 않는 것과 같았습니다. 아니 홍수 때 그렇게 물이 세상을 휩쓸어 가는데도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오히려 그 물을 마시면 생명의 위험이 오게 되는 것과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2절에 “여호와를 사모하니라”고 하는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곡하면서 여호와를 찾았다”고 하는 뜻입니다. 왜 통곡했습니까? 그동안 하나님을 떠나고 겪은 시련이 너무도 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텅 빈 그들의 영혼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을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저지른 일들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어리석은 죄였던가를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우리들의 육적인 욕구를 엄청나게 자극하고 있습니다. 소위 “웰빙”이라고 하면서 그것만 소유하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고 우리를 향하여 손짓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어느 사이엔가 정말 행복이, 구원이 거기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이 우리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신앙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궤를 마음대로 소지하고 다녔듯이 우리 하나님도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분으로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주님을 섬기는 종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섬겨주는 종이 되어주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우상숭배적인신앙, 기복신앙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은 야위고 병들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도 통곡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결국 다 버리고 여호와를 찾게 된 것처럼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운동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야 합니다.

2. 오늘은 사순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지난 성회 수요일부터 시작하여 부활절까지 주일을 제외한 사십일을 말합니다. 사십일 절기라는 뜻입니다. 이 기간에 세상에 오신 우리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그 고난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고난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모양으로든지 그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활의 감격과 기쁨 그리고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사순절을 어떻게 보내야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전심으로.....여호와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멀리 떠났던 자리에서 탕자처럼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여기 “돌아오라”는 말씀이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무엘은 우리 주님 오시기 천년 전에 이스라엘을 향하여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그후 사무엘의 뒤를 이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한결같이 외친 메시지의 주제가 바로 “돌아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결정적인 것이 세례요한이었고, 또 예수님이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리고 이 회개의 메시지는 오늘 우리에게 적중되어져야 합니다. 우리 각 사람, 우리 한국 교회에 정말 회개하는 운동이 강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회개한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1) 삼상7:3절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라”고 했습니다.

당시 가나안 원주민들은 남성 신인 바알과 여성 신인 아스다롯을 섬겼습니다. 바알은 풍요의 신입니다. 풍년을 준다 그 말입니다. 아스다롯은 다산의 신입니다. 많은 자녀를 낳게 해 준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신들이 백성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그런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주변에 다른 종교들이나 기독교 내에 있는 사이비 이단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소원성취입니다. “내 뜻대로” 되어지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내 소원을 이루어준다는데 못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온갖 비 신앙적인 일들, 비인간적인 일들, 비인격적인 일들, 비윤리적인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버리는 일이 우선적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속적인 가치관, 우상숭배적인 신앙,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돌아서는 것이 우리 가운데 우상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는데 오늘 우리는 그 주님을 내 이익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잘못된 탕자의 자리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돌이켜야 합니다. 도마처럼 주님 앞에 무릎 꿇고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2) 역시 삼상7:3에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고 그만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a. 여기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라”는 말씀은 롬12:1 말씀처럼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하나님 앞에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짐승을 잡아서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제사의식을 행하고서도 여전히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도 주님 뜻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이런 제사나 제물을 매우 역겹게 여기셨습니다. 나중에는 그런 따위 예물을 집어치우고, 차라리 성전 문도 철폐하라고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몸으로  제사를 드리라”는 것은 우리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믿고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주께 전적으로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아멘”의 신앙을 말합니다.

b. 다음으로 “그만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에게만 예배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하나님 아닌 것들을 마치 하나님이라도 되는 듯이 섬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우상인 것처럼 그렇게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흐려졌고, 하나님이 부르시고 세워주신 사명을 다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하나님 예배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른 모든 일보다 우선적으로 예배드리는 일에 헌신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예배보다 더 바쁜 일이 너무 많습니다. 예배보다 더 소중한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우리 삶의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도 역시 예배와 함께 다른 더 중요하고 바쁜 일에 그 자리를 넘겨주어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살기 위해서는, 정말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고 하면 예배의 소중함을 알고,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려야한다고 경고합니다.

(3) 이렇게 할 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3절 마지막에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고 했습니다.

블레셋은 지중해 연안 지역에 살면서 기회만 있으면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이스라엘의 옆구리를 찌르는 가시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 믿음에 굳게 섰을 때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골리앗 장군을 선두로 한 블레셋이 그렇게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고통을 주었지만 다윗이 그 믿음으로 등장했을 때 그들은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이 여호와 절대 신앙입니다.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는 신앙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는 블레셋보다 거대한 세속물결에 견디어 낼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무엘의 이 말씀 후에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는가를 살펴야 하겠습니다. 4절에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이제 사순절에 접어들면서 우리 신앙상태를 점검하고 영적인 대청소작업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 신앙”을 가지고 우리 앞서 고난의 길을 가신 주님의 그 발자취를 따라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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