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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 부흥을 일으키자 (느 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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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성홍모 목사

  "너만의 명작을 그려라"를 쓰신 [마이클 린버그]는 역사상에서 위대한 인생을 살았던 위인들이 저술한 책이나 그들에 관한 책을 수백 권 읽으면서 그 때마다 감동 받은 것을 메모하고 정리하면서 "너만의 명작을 그려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자기가 받은 감동을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그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한 주간 받은 은혜와 하나님의 계시를 우리 성도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설교 시간을 기다리게 됩니다.  저자는 50가지의 주옥같은 성공의 비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400가지가 넘는 속담과 격언, 그리고 위인들의 명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놀라운 신비의 세계요, 깊이 있고, 넓이가 있고, 감격이 있는 세계입니다.  말씀을 읽지 않고, 듣지 않고, 그대로 살지 않는다면 말씀의 깊이를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목사로서 일년 동안 가장 힘써 강조하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사는지, 이것이 나의 할 일이라는 확고한 이해가 없다면 좌표를 잃고 방황하게 될 뿐입니다. 

  오늘은 "영적 부흥을 일으키자"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모두의 신앙의 상태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느헤미야의 말씀은 구약에서 가장 늦은 시대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역사서로 인정하여 중간에 들어가 있지만, 히브리 성경에는 뒤에서 두 번째 성경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히브리 성경은 크게 세 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성경이 토라 즉 모세오경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의 성경을 네비움이라고 하는데 예언서라는 말입니다.  예언서는 전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가 있습니다.  전기 예언서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후기 예언서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그리고 12권의 소선지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케투빔이라는 성문서집입니다.  여기 성문서집에는 시편, 잠언, 전도서, 욥기, 에스더, 룻기, 아가, 예례미야 애가, 다니엘, 에스라-느헤미야, 역대기의 24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분류는 기록된 시대별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정경으로 인정받은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유대교에서 모세 오경이 정경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주 오래 되었습니다.  주전 400년경에 모세오경은 완전한 성경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언서들은 그로부터 2세기가 지난 때에 정경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히브리성경의 마지막 부분은 성문서집이라고 하는데, 거룩한 문서란 말은 듣기 좋은 말이고, 잡다한 책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책들은 한 권 한 권이 개별적으로 정경으로 인정받은 책들이었습니다. 

  오늘의 성경 느헤미야서는 본래 히브리 성경에서는 에스드라로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70인역 성경에서 제1에스드라, 제2에스드라로 나누어 번역하였습니다. 제롬이 천주교회의 공인 성경인 벌게이트 성경을 번역하면서 두 권으로 나누어 놓아서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두 권의 책으로 나누어 번역하였습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도 근 100년이 지났을 때로 구약의 가장 마지막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에스라에와 느헤미야라는 분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먼저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한 학자로 제사장 출신이었습니다. 

  에스라는 유대인으로 바벨론 포로 시대에 바벨론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제사장 아론의 16대 손의 제사장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스7:6)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라는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는 결심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에스라7:10에 "에스라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유대교는 에스라가 새로 세운 종교라고 할 정도로 에스라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성경의 배경이 되는 역사를 잘 이해하여야 오늘의 본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의 초대 황제인 고레스에 의하여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1차 귀환은 주전538년 고레스의 칙령이 있었고, 주전 537년에 귀환이 이루어졌는데, 유대의 총독으로 스룹바벨이 임명되었고, 그의 인솔로 49,897명이 돌아왔습니다. 

  다시 제2차 귀환은 에스라를 중심으로 하여 돌아오는데, 주전458년에 1,754명이 돌아왔습니다.  마지막 3차에는 느헤미야를 총독으로 하여 돌아오는데, 주전444년에 42, 360명이 돌아오게 됩니다. 

  바벨론에 1차로 포로가 되어 잡혀간 것이 주전606년이었는데,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70년이 지나서 주전537년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총독 스룹바벨의 인도로 주전 537년에 1차에 돌아온 이들은 정말 힘들게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성전 건축이 방해를 받아 15년 정도 중단되었으나 다시 허락 받아 실제 공사에 걸린 것은 5년 정도로 주전516년 3월 12일에 완공되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데, 무려 20년이 걸렸습니다.  1차로 귀환한지 80년이 지나서 2차로 에스라가 돌아오고, 그 후 13년이 지난 후에 마지막으로 느헤미야가 귀국하게 됩니다. 

  에스라는 대단한 학자였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백성들을 이끌고 돌아와서는 영적인 부흥을 일으키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인 사람입니다.  그는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이들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였고, 안식일 제도를 확립하고 율법으로 돌아가도록 유대교를 재건한 사람입니다.  그 때부터 바리새인들이 나왔고, 경건한 유대주의가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바르게 살지 못하여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잡혀갔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야만 다시는 그런 수모를 당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제2의 모세라고 그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에서 술 맡은 관원으로 있었습니다.  그의 부친은 하가랴이고, 그에게는 믿음이 좋은 동생이 있었는데,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이들 형제는 영력이 있었고, 민족을 위하여 어떠한 희생이라고 감수하려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왕의 술관원으로 왕이 마실 술을 제조하면서 왕이 마시기 전에 미리 맛보아 독살 당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게 하는 사람으로, 왕이 신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맡기지 않는 관직이었습니다.  왕과 함께 술자리를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왕의 측근 인사로 정치와 행정의 여러 분야에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동생으로부터 자기의 조국 예루살렘은 황폐한 도시이며, 성벽조차 없는 황량한 도시로 방치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자기만 페르시아의 왕궁에서 편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슬픔에 가득 차 있던 중에 황제 앞에 나아가게 되었고, 자기의 조국 때문에 수심에 차 있다고 말씀드리면서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받아 조국을 위하여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황제 아닥사스다로부터 유대 총독으로 임명받아 세 번째로 백성들을 인솔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데, 그는 돌아온 날부터 오로지 성벽을 재건하는데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는데 역사상 최 단시일에 완성한 사례라고 보여지는데, 52일만에 중건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고 있으니 주변의 여러 부족들이 생트집을 잡는데, 다른 나라 총독들이 별 소리를 다하면서 달려들었습니다.  모압과 암몬 사람들이 시기하고 달려들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모함합니다. 이방인들이 모여 느헤미야가 중건하는 성을 무너뜨리겠다고 나섰습니다.  다른 부족의 총독들이 느헤미야를 제거하기 위하여 어느 한 마을에서 정상회담을 갖자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욕을 하는데, 예루살렘 성은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질 성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느헤미야의 명령대로 절반의 사람은 성을 방어하기 위하여 무기를 잡았고,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이 수고하면서 52일 만에 완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상 기록에 오를 일이었습니다.  1차에 귀환한 사람들은 성벽을 재건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고, 성이 무너지고 근 150년이 지났어도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느헤미야가 귀국하면서 성벽을 다시 쌓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을 재건하고 성을 중건하는 일도 중요하였지만, 영적인 부흥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였습니다.  성전을 건축하였고, 이제는 성벽을 중건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성안에 안주할 수 있었고, 이제부터 여유 있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거기에 머물고 싶지 않았습니다.  육신적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다 잘된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이제는 영혼의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살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사는 성읍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였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전체 인구의 1/10만 거주하였고, 제비를 뽑아서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돌아온 백성들은 아직 많지 않았지만, 전국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아야 되었습니다.  이들이 일곱째 달에 초하루에 일제히 수문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들이 일제히 모였습니다.  "일제히"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케이쉬 에하드"라고 하여 "한 사람처럼"이란 말입니다.  이들에게 무슨 동원령이 내려져 모인 것이 아니요, 성벽을 쌓고 보니 이제야 말로 영적인 갈급함을 채울 때라고 생각하여 이심전심으로 모여든 것입니다.  성벽을 재건하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52일만에 아무런 사고 없이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모인 날은 유대인의 종교력으로 일곱째 달 티쉬리월 초하루였는데, 민간력으로는 정월 초하루였습니다.  초하루는 '로쉬하샤나'라고 하여 나팔절이었으며, 유대인들의 설날이었습니다.  우리의 달력으로는 9-10월에 걸쳐 있는 달이었습니다.  이 칠월의 초하루는 나팔절이 있고, 10일에는 '욤키프르'라고 하여 백성의 대속죄일이 있어, 금식하는 날이며, "수코드"라는 초막절이 있었습니다.  이 초막절은 장막절, 수장절이라고도 하는데, 모든 곡식을 추수하고 감사절로 지키며, 출애굽한 이후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신 것을 기념하여, 집 주변이나 옥상, 베란다에 초막을 짓고 한 주간 15일부터 21일까지 지냈습니다.

  1.  영적 부흥은 말씀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심각한 비극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려는 이들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민족이 불행은 어디에 있습니까?  남북관계가 해결되지 않아 불행이 아니라, 미군이 한강이남으로 내려간다고 하여 불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없다는 것이 가장 비극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불신자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에게서 무시당하고 말씀이란 별 것이 아닌 것처럼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간절하게 말씀을 듣고, 사모하는 열정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높이 들려야 합니다.  말씀이 회복되어야, 나라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에스라가 강단에 서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6시간 정도 말씀을 읽고 해석하였습니다.  이 자리에는 남자나 여자라고 구별하지 않고 말씀을 알아들을 사람은 다 모여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들은 앉을 자리도 없었고, 말씀이 들려질 때에 일어서서 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한 해를 시작하였고, 성벽을 재건한 후에 영적인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하는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습니다.  본래 유대인들은 기도드릴 때는 일어서고, 찬송할 때는 일어서지만, 말씀을 들을 때는 앉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결단하고 말씀을 들을 때에 일어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경외하는 마음과 철저하게 헌신하겠다는 심정으로 일어섰습니다.  정말 오늘 주시는 말씀은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일어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때, 그 곳, 그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롬10:17에 "그러나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히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 레위인들이 에스라 좌우로 13명이 둘러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깨닫게 하려고 돌아다니면서 평신도 지도자들인 레위인 13명이 해석하여 주었습니다.  이러한 민족의 대각성 운동에 에스라 한 사람만이 나서고 역사한 것이 아니라, 에스라는 앞장서고, 여러 레위인들이 나서서 백성들을 이끌고 갔습니다.  목회자를 협력하며, 비전을 함께 하는 평신도 지도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2.  영적 부흥은 아멘의 응답입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면 백성들은 "아멘, 아멘"으로 응답하며,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바르게 살지 못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임하였다고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울었습니다. 

  아멘이란 뜻은 "진실로", "확실히", "과연 그렇습니다"라는 뜻입니다.  백성들은 아멘이라고 외치면서 축복을 받아들이고, 저주를 확증하고 송영에 찬동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멘'이라고 하였으면 그것은 확실한 것이요, 구속력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아멘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혹 언약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 저주가 임한다고 하여도 그들은 아멘이라고 하였는데 그런 저주가 임하여도 좋다고 확증하였습니다. 진실하신 하나님 앞에서 아멘으로 응답했습니다.
아멘으로 응답할 때는 생각없이, 입에 붙어다니는 말로 아멘이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별반 진리의 말씀도 아닌데, 아멘이라고 습관적으로 말하지 말고,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올 때 아멘이라고 해야 합니다. 

  3.  영적 부흥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그 날이 나팔절이요, 여호와의 성일이었습니다.  사실 그 날은 즐거운 날이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기는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성일을 성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것은 힘든다고 하여도 주일을 성수하는 것으로 우리의 믿음으로 지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성일이 되었는데도 울기만 하고, 울어야 좋은 신앙인줄 아는 이들이 있다면 전체를 보지 못하는 신앙이 됩니다.  울어야 할 때에 울지 못하는 신앙도 잘못되었지만, 울지 말고 즐거워하라고 하면 하나님에게 다 맡기고 이제는 어린 아이들과 같이 아버지의 품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만 신뢰하는 신앙이요, 겸손한 신앙입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는 말씀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독생성자를 우리에게 내어주신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인정하고, 기뻐하는 것이 곧 신앙입니다.  그런 사람은 영력이 있어, 어떠한 어려운 역경도 뚫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람의 제일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의 사업을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이 요청하시고, 부르시고 세우시는 일에 즐거워합니다.  사명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성경을 읽어가던 중에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는 말씀 때문에 감격한 적이 있습니다.  억지나 마지못한 헌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기뻐해야 합니다. 

  이제 조금 잘 살고 못 사는 것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것이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중에 임재하시고 충만하셔서 날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모시고,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남은 고난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실 때에 그들의 마음이 뜨거웠다고 했습니다.  말씀의 부흥운동, 아멘의 부흥운동, 여호와 하나님을 진정 기뻐하는 능력 있는 신앙을 소유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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