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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소서 ! (신 9: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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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너희가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도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느니라 23 여호와께서 너희를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게 하실 때에 이르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얻으라 하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믿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나니 24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옴으로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느니라 25 그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멸하겠다 하셨으므로 내가 여전히 사십 주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리고 26 여호와께 간구하여 가로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위엄으로 속하시고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을 멸하지 마옵소서 27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 이 백성의 강퍅과 악과 죄를 보지 마옵소서 28 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내신 그 땅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일 능력도 없고 그들을 미워도 하사 광야에서 죽이려고 인도하여 내셨다 할까 두려워하나이다 29 그들은 주의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이로소이다 하였었노라 ”

우리가 전 주에 살핀 본문에서는 모세가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에 이스라엘은 아론을 압박하여 금송아지를 만들고 금송아지를 자기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낸 신이라고 그 앞에서 좋아라 하고 춤추며 뛰놀았습니다.

하나님은 급기야 진노하셨고,
모세로 대신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진멸하시겠다고 하셨을 때에 모세가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간구하여 진노의 심판은 거두어졌고 모세가 산을 내려와 보니 하나님께서 왜 진노를 하셨는지를 자기의 두 눈으로 보자 그만 하나님께서 친수히 써주신 언약의 두 돌판을 내던져 깨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두 돌판이 깨짐에서 두가지가 계시되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 첫째는 누구든지 행위로는 율법을 지켜 천국에 들어갈 자 없음이요 둘째는 두 돌판이 깨짐처럼 우리 구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증거의 장막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둘로 갈라져, 누구든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의 계시가 계시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심 중에서도 이스라엘의 구원을 말씀하셨고,
모세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한 사건이 바로 증거의 두 돌판의 깨어짐의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금송아지를 만들 때에 일반 백성인 이스라엘은 그렇다치더라도 대제사장인 아론이 동조하고 오히려 금송아지를 만들었다는 사건 속에서 무엇을 느꼈습니까 !
주의 종이 바로 서지 못하면 나라가 풍비박산 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사회는 분명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성령 안에서 질서를 두셨는데 주의 종을 통하여 교회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대세라는 것이 있고 다수의 결론이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으나 우리가 출애굽기에서 살피는 것은 출애굽은 민주주의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라는 주의 종을 통하여 역사하신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즉, 주 하나님의 뜻에 언제든지 순종할 수 있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바를 성취케 하시려고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 동역자가 아론이었는데,
아론은 민주주의 꽃이랄 수 있는 이스라엘의 대중의 주장에 밀려 하나님 앞에 범죄함을 동의하고 또 함께 동참하였습니다.

어제 KBS에서 한국사회를 말한다 라는 프로그램에서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방송하였는데 한국교회가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에 동의하고 동참한 사실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조찬기도회를 통하여 신군부에 굴종하는 모습을 방영하는 것을 보고 느낀 것은 교회가 옳은 것을 옳다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지 못하고 세상의 영화에 편승하다가 몇십년도 못가서 그렇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유감스럽게 한국교회는 신사참배의 문제와 신군부에게 굴종하였던 역사 등등을 회개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한국의 주류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그렇게 교회를 밀어내려는 자들의 음모 또한 있겠지만,
저들에게 그러한 빌미를 준 교회 자신에게 먼저 문제가 있음을 자복하여야할 것입니다.

아담이 하와에게 그 죄를 밀고 또 하나님께서 주신 여자가 그랬다고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였던 인생의 시조와 같은 자세로는 교회는 우리 한국사회를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본론 :

1. 너희가 행한 것이 무엇이냐(v22-24) !

“ 22 너희가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도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느니라 23 여호와께서 너희를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게 하실 때에 이르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얻으라 하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믿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나니 24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옴으로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느니라 ”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 명하신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전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 하나님의 종이 이스라엘에게 이스라엘의 범죄하였던 옛기억들을 가나안 땅에 이제 들어가려는 이스라엘에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믿음 때문) !
이스라엘이 긍송아지를 만든 사건 다음에 모세는 오늘 본문에서 가데스 바네아 사건을 상기시킵니다( 이스라엘이 과연 언약의 땅의 주인될 자격이 있는 자들인가를 묻는 것임)

다베라에서 이스라엘은 이렇게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습니다.

“ 민 11:1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2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3 그 곳 이름을 다베라라 칭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연고였더라 4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 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

맛사에서는 이스라엘은 이렇게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습니다.

“ 출 17: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 하겠나이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

이스라엘이 기브롯 핫다아와에서는 이렇게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습니다.

“ 민 11:31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 이편 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 쯤에 내리게 한지라 32 백성이 일어나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십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를 위하여 진 사면에 펴 두었더라 33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34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칭하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35 백성이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진행하여 하세롯에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 ”

이러한 이스라엘의 죄악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셔도 할 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랗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

“ 신 9:5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 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에게 언약의 땅을 기업으로 주시리라 언약하신 언약을 이루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인내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바를 성취케 하시려고 그 후손들을 출애굽시키셨고 또 이스라엘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하여 그들을 용서하시고 인내하신 후 가데스 바네아에서 언약의 땅을 향하여 이렇게 명하셨다고 모세는 말합니다.

“ 23 여호와께서 너희를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게 하실 때에 이르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얻으라 ”

가서 취하면 되는 것입니다.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정탐을 하고 돌아와 그 명령에 순종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믿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나니 ”

그 날에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부정적인 보고를 한 열 명의 정탐꾼을 멸하시고 이스라엘에게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을 통하여 믿음의 연단을 시키셨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모세가 “ 24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옴으로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느니라 ”라고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기를 숨쉬기와 같이 하였습니다.

즉, 행위로 말하면 언약의 땅의 주인될 자격이 없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 앞에 죄인인 자들이 어떻게 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
그 구원의 비밀이 바로 다음 대지에 모세의 중보의 기도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2. 주여 저희를 사하여 주시옵소서(v25-29) !

“ 25 그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멸하겠다 하셨으므로 내가 여전히 사십 주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리고 26 여호와께 간구하여 가로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위엄으로 속하시고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을 멸하지 마옵소서 27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 이 백성의 강퍅과 악과 죄를 보지 마옵소서 28 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내신 그 땅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일 능력도 없고 그들을 미워도 하사 광야에서 죽이려고 인도하여 내셨다 할까 두려워하나이다 29 그들은 주의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이로소이다 하였었노라 ”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에게 “ 신9:1 이스라엘아 들으라 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니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았으며 2 그 백성은 네가 아는바 장대한 아낙 자손이라 그에게 대한 말을 네가 들었나니 이르기를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 하거니와 3 오늘날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 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나의 의로움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얻게 하셨다 하지 말라 실상은 이 민족들이 악함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5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 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6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의로움을 인함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의로움으로도 언약의 땅의 주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끊임없는 불평과 불만 그리고 불신앙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 진멸을 당할 죄인들이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그 죄인인 이스라에게 모세라는 중보자가 있었습니다.
그 중보의 기도는 이러하였습니다.

“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위엄으로 속하시고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을 멸하지 마옵소서 27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 이 백성의 강퍅과 악과 죄를 보지 마옵소서 28 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내신 그 땅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일 능력도 없고 그들을 미워도 하사 광야에서 죽이려고 인도하여 내셨다 할까 두려워하나이다 ”

하나님은 그러한 이스라엘을 모르시고 그들을 인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모세와 같이 우리 구주를 가장 많이 닮은 중보자를 출현시키셔서,
인생이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면 그 많은 죄를 어떻게 할 것인가 !
를 생각게 하시려 하신 것입니다.

율법의 두 번째 기능인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기능이,
율법의 첫째 기능인 죄를 지적하는 기능으로 인하여 말미암듯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인류의 구원을 이루실 중보자를 계시하심인 것입니다.

모세는 비록 “ 민 11:9 백성의 온 가족들이 각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10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11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12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가로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14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라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하셨습니다.

“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

“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

“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
     
모세는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따라서 그는 중보자로서 훌륭하게 일하여지만 간혼 인간이기에 실수하는 면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실 구원자를 어렴풋이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모세가 너무 힘들어 내가 이들을 낳았습니까 !라고 하였었지만, 모세는 훌륭하게 이스라엘을 언약의 땅까지 인도하였습니다.

비록 율법을 대표하는 인물이기에 언약의 땅으로 함께 들어갈 수는 없었으나,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회중이 가나안 땅 ! 안식과 평안의 땅으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즉, 모세를 알면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율법의 첫째 기능인 죄를 지적하는 기능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두 번째 기능 ! 즉,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실 해결하실 그리스도를 소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세 !
그는 이스라엘을 영원한 중보자요 우리의 구원자로서 우리에게 평안과 안식을 주는 그리스도이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게 소개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
이스라엘이 세계만방에게 제사장 나라라면,
우리는 세계만방에 주의 복음을 나누어줄 자 아니겠습니까 !

우리 구주께서 우리의 모든 허물을 대신지셨고,
또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찾으라 하십니다.
그 은혜를 입을 자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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