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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렇게 기도하라(2) : 기도의 모범 주기도문 (마 6: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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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하준 목사

기도의 모델

지난 시간 우리는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가끔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보곤 합니다. 어떤 기도가 올바른 기도인가? 아니, 좀 더 쉽게 말하면 어떤 기도가 잘 하는 기도인가? 우리가 기도를 잘 하기 위해 누군가를 모델로 삼고 그를 흉내 내고 닮아가려고 하는 데서부터 출발할 때가 많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보면 학교 안에 작은 곽선희 목사, 작은 조용기 목사, 작은 하용조 목사가 많았습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제각기 나름대로 나는 곽선희 목사님 설교가 제일 좋다, 나는 조용기 목사님 설교가 제일 좋다 하면서 열심히 흉내를 낸다는 것입니다. 설교 내용이나 스타일, 제스처뿐만 아니라 심지어 목소리와 톤조차 똑같이 흉내 내려고 해서 그런 분들의 설교를 듣고 있노라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물론 자기가 다니는 교회 담임목사님과 비슷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 포항에 있는 큰 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고 있는 후배의 설교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후배 목사님이지만 참 설교 잘 한다고 생각하면서 설교를 듣는 중에 중간 중간 나오는 말투가 그 교회 담임목사님과 똑같아서 웃음을 지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처음에는 어떤 목사님을 모델로 삼아 흉내를 내고 말투까지 따라 하다가 어느 순간 그 수준을 벗어나서 나만의 설교 스타일을 개발하고 나만의 특징을 가진 설교가로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다 그러다가 설교도 느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기도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처음 교회 나왔을 때는 다 기도하기 두려워하고 시키면 도망가고, 자꾸 기도 시키면 교회 안 나온다고 구역예배 안 나온다고 협박도 해보고, 막상 기도할 때는 더듬거리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당황해서 기도 마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기도 하고 심지어 이 말을 아예 빼먹고 기도를 마쳐서 다른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마음속에는 “나도 기도 잘 하고 싶은데... 기도 잘 하는 누구 좀 닮고 싶은데...”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그 분의 기도를 따라하고 목소리와 톤까지 흉내 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기도도 차차 늘고 기도에 자신감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기도의 모범이 꼭 필요합니다. 도대체 어떤 기도가 잘 하는 기도인가?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좋은가? 만약 기도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는 기도의 모범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는 바로 이 기도의 모범입니다. 기도는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고 예수님이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주기도를 예배마다 혹은 기도회마다 모번 기도문으로 암송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바로 이 주기도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6장 9~15절뿐 아니라 신약에는 또 한 군데 주기도문이 나옵니다. 바로 누가복음 11장 1~4절입니다. 한번 찾아서 읽어봅니다. 읽어보시니까 마태복음과 어떻게 다릅니까? 거의 비슷하지만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이 조금 더 짧다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또 맨 뒷부분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는 부분이 아예 생략되어 있음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다른 것은 바로 예수님이 이 주기도를 가르쳐주긴 동기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산상수훈 중에 예수님이 기도에 대해 말씀하시다가 자연스럽게 주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으로 되어 있지만 누가복음에서는 제자 중에 하나가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한 데서 시작됩니다. 1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고 돌아오시자 제자 중에 하나가 이렇게 요청을 합니다. “주여,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준 것처럼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그래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기도의 모범으로 가르쳐 주신 것이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제자들도 오늘날 우리들처럼 어떤 기도가 좋은 기도고,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잘 하는 기도인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기도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 바로 주기도문이라는 것이지요.

오늘 이렇게 주기도문을 살펴보지만 이 주기도문은 워낙 뜻이 깊고 넓어서 도저히 오늘 하루에 다 살펴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주기도문 전체를 간략하게 살펴볼 수밖에 없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몇 차례에 걸쳐 한 절 한 절 상세히 주기도문 강해를 하겠습니다만 오늘은 주기도문을 간단하게 살펴보면서 예수님이 이 주기도문 내용 가운데서 어디에 제일 관심을 두셨는지 살펴보는 것으로만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제일 먼저 9절 상반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여기까지)”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말은 이 주기도문이 앞서 나온 예수님의 말씀과 연결됨을 뜻하는 낱말입니다. 즉 지난주 설교 본문인 6장 5~8절 내용을 전제로 한다는 것입니다. 앞의 본문에서 주님은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바로 대표적인 잘못된 기도를 지적하셨습니다. 외식하는 기도,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를 했던 유대인들과 중언부언을 했던 이방인의 기도를 지적하신 후 오늘 9절에서는 ‘그러므로(생략된 말 : 이렇게 잘못된 기도를 하지 말고) 너희는 이렇게 기도해라’는 뜻으로 너희, 즉 제자들이 해야 할 올바른 기도,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산상수훈 뿐 아니라 모든 성경말씀은 앞뒤의 관계를 잘 살펴보며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바로 이런 상황에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모범이 바로 우리가 ‘주기도문’이라고 부르는 기도문인 것입니다. ‘주기도문’이라는 말은 ‘주님의 기도문,’ 즉 주님이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의 모범이라는 뜻입니다.




주기도문의 내용

그래서 곧바로 9절 뒷부분부터 주기도문이 시작됩니다. 주기도문 다 외우시지요? 다같이 성경 보지 말고 주기도문을 한 번 암송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빠뜨리는 경우 많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이루어진’으로 외우는 경우 많음)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를 넣는 경우가 많음)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들지 말게’로 외우는 경우가 ‘참’ 많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이 말은 성경에는 안 나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외워보니까 제법 많이들 틀리십니다. 날마다 외우면서도 틀리게 외우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말을 바꾸거나 순서를 바꾸는 경우가 많아서 몇 가지 지적해 보았습니다. 날마다 외워서 잘 아는 것 같지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부터라도 주기도문을 정확하게 암송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한 절 한 절 상세히 살펴보기는 어렵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주기도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기도문을 살펴보면 대략 서너 가지로 그 의미를 종합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도의 순서와 요소에 대한 교훈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도의 순서와 요소

주기도문은 기도의 모범라고 했는데 특별히 ‘기도의 순서’에 대한 가르침이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한 번 살펴보십시오. 가능하다면 우리의 기도를 녹음해서 한 번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있어 처음에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고 맨 끝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는 것은 똑같지만 나머지 내용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제 각기 다 다릅니다. 하지만 대개 우리의 기도를 들어보면 처음에 ‘하나님 아버지’를 부른 후 대뜸 무엇을 해달라는 기도부터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것을 ‘간구’라고 하는데 물론 기도에 있어 ‘간구’는 꼭 들어가야 합니다만 문제는 이렇게 대뜸 간구부터 하는 것은 순서에 맞지 않을뿐더러 더 큰 문제는 아예 기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무엇을 해달라는 간구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제 아이들이 가끔 저나 엄마에게 다짜고짜 돈 달라고 하거나 무엇을 사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때는 아무리 제 아들이지만 좀 너무하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너 엄마 아빠한테 뭐 맡겨놓은 것 있냐?”고 물어봅니다. 맡겨놓은 것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맡겨놓은 것 찾기라도 하듯 다짜고짜 달라고 하면 아버지도 기분 나쁩니다. 부모에게 무엇을 달라고 할 때 자녀의 마음속에는 그동안 주신 부모님 은혜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손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하고 불러 놓고는 대뜸 당당하게 달라고 요구한다면 하나님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 나한테 뭐 맡겨놓은 것 있냐?” 그렇습니다. 간구도 필요하지만 간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드려야 할 기도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이 기도의 순서, 기도에 꼭 들어가야 할 요소를 가르쳐주신 것이 바로 주기도문인 것입니다.

그러면 주기도문에 나타난 기도의 순서와 요소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 제일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응답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그분은 나와 상관없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임을 뜻합니다. 이것은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는 마태복음 7장 11절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2) 하나님을 위한 기원(1)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됨 :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나 자신을 위한 간구를 하기 이전에, 먼저 기도할 내용은 먼저 하나님을 위한 기원입니다. 기도의 순서 중 가장 중요한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 자신보다 먼저 하나님을 위한 기도를 먼저 하라! 그런데 그 하나님을 위한 기원 중 첫 번째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길 바란다는 기도입니다. 부모에게 무엇을 달라고 할 때도 먼저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도 우리의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의 영광과 그 분의 이름이 거룩해지기를 기원하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위한 기원(2)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이루어짐 :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그 다음에 기도할 내용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처럼 우리 성도들은 내 뜻을 먼저 아뢰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4) 우리(사람)를 위한 간구(1) 일용할 양식(생계, 물질 등 필요한 것들)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위해 먼저 기도한 후 그 다음에 우리의 필요한 것을 아뢰고 구해야 합니다.

5) 우리(사람)를 위한 간구(2) 타인과 나 자신의 죄 용서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 다음으로 죄 용서의 기도가 나와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6) 우리(사람)를 위한 간구(3) 시험에 들지 않도록 악에서 구하옵소서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 내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악에서 구해주시고 늘 보호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7) 송영(Doxology) :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 이 부분은 일종의 찬양입니다. 기도의 첫 부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시작했듯 맨 마지막에 한 번 더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송영’(Doxology)이라고 하는데 마치 예배가 다 끝날 때 축도를 하고 나서 찬양대가 ‘송영’을 하듯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늘 암송하는 ‘대개’라는 말이 빠져있고 찬송가 앞면에 나온 주기도문에만 이 말이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대개’라는 말을 ‘대체적으로’ 혹은 ‘대강’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대개’라는 말은 중국어 성경번역에서 온 것으로 대개(大槪)라고 쓰는데 말 그대로 해석한다면 ‘아마, 대개, 대략, 대체적으로’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번역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어성경에 보면 대부분 ‘For’로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대개’라는 말이 ‘대략’ ‘대체로’가 아니라 ‘왜냐하면’이나 ‘이는’으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 빼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꼭 빼지 않더라도 그 의미를 바로 알고 암기하면 될 것입니다.

8) 아멘 : ‘아멘’ ➛ ‘아멘’이란 히브리말로 ‘진실로’라는 뜻입니다. “진실로 그렇게 되기 바랍니다”라는 뜻이므로 다른 사람이 기도할 때 내가 ‘아멘’ 하는 것은 “저 분의 기도에 동의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이고 자신이 기도한 후 ‘아멘’ 하는 것은 “제가 기도한 대로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라는 뜻입니다. 꼭 아멘이 들어가야 기도가 됩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우리가 보통 기도할 때 늘 끝부분에 들어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내용이 이 주기도문에는 안 나온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이 주기도문이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이기 때문에 굳이 이 말을 안 넣어도 되기에 빠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꼭 넣어야겠지요.

결론적으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이유는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빠지지 말아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 가르치신 후 우리가 이 순서와 요소에 따라 충실하게 기도하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우리의 기도 중에서 나 자신을 위한 간구를 먼저 하고, 또 기도의 대부분을 이것으로만 채우는 잘못된 습관을 버리고 반드시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의 기도를 한 후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기도문의 핵심 : 죄 용서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후 14~15절에 계속해서 죄 용서 문제를 다루십니다. 이 죄 용서의 문제는 주기도문 내용 중에 12절에 나온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기도에 연결됩니다. 그런데 주기도문에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정말 다양하고 많은 주제가 들어있는데 왜 주님은 유독 이 죄 용서의 문제만 더 강조해서 말씀하셨을까 궁금합니다. 그것은 주님 자신이 주기도문의 그 많은 간구 중에도 특별히 죄 용서를 가장 중요한 주제로 이해하셨다는 증거입니다.

먼저 14절과 15절을 읽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여기서 ‘과실’이란 죄, 실수를 의미합니다. 즉 남들이 나에게 죄를 짓거나 실수를 했을 때 우리가 먼저 그들을 용서하면 하나님도 우리의 과실을 용서하시지만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 말은 자신이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달은 사람, 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반드시 남을 용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도저히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없지만,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용서가 안 되지만 죄 용서의 경험을 한 사람은 용서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에서 일만 달란트 빚진 자와 백 데나리온 빚진 자의 비유를 들려주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죄 용서의 문제입니다.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그리고 나서 들려주신 비유가 바로 이 비유입니다. 어떤 임금님이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을 불쌍히 여겨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는데 그 종이 나가면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나 목을 붙잡고 빚을 갚으라고 재촉하고 옥에 가두었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사 감옥에 갇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결론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40) 마태는 이 비유뿐 아니라 앞서 5장 38~48절에서도 보복과 원수사랑에 대해 언급하면서 용서의 문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마태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특별히 죄 용서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왜 주님이 이 죄 용서를 주기도문의 핵심으로 보고 그토록 강조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용서가 ‘은혜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원수사랑에 대해 설교할 때도 말씀드렸지만 나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지 못하면 제일 손해 보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왜냐하면 은혜의 통로가 막히기 때문입니다. 용서가 안 되면 마음에 분노가 생기고 미움의 앙금이 쌓이게 됩니다. 그러면 피 속에 있는 찌꺼기가 쌓여 혈관을 막고 결국 터뜨려 죽게 만드는 것처럼 그 분노와 미움의 앙금이 쌓여 내가 하나님께 은혜 받는 것을 꽉 막아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은혜의 통로가 막히면 또한 기도의 통로도 막히게 됩니다. 기도하려고 눈만 감으면 그 사람 얼굴이 떠오르고 분노가 치밀어 기도를 못 하게 됩니다. 분노가 은혜를 막고 기도를 막고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도 막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용서를 하고 분노를 풀게 되면 막혔던 은혜의 통로가 뚫리고 닫혔던 기도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시원하게 뚫리게 됩니다. 결국 주님은 인간관계의 용서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좌우하고 기도생활을 좌우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주기도문 뒤에 이 말씀을 덧붙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친히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통해 기도의 모범을 배우고 기도의 올바른 순서와 내용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바른 기도생활을 하기 위해 먼저 인간관계의 벽을 허물고 앙금을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도 배웠습니다. 그러면 가서 실천하십시오. 이렇게 산상수훈을 강해하면서 기도에 대해 세 차례나 말씀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순서에 따라 설교하다보니 자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그리고 우리 교회에 기도하라고, 지금이 바로 ‘기도의 때’라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이 사순절 첫째 주일인데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부터 기도생활을 더 충실히 하셔야 합니다. 또한 기도하되 바르게, 올바른 순서와 내용을 따라 기도하셔야 합니다. 또한 기도를 실천하며 무엇보다 은혜의 통로, 기도의 통로를 열기 위해 이웃의 죄를 용서하는 체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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