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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 (단 3: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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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한규 목사

< 한 분의 장문의 신앙 간증 >

얼마 전, 찬양 사역을 하는 한 분의 장문의 간증을 읽게 되었습니다. 약 25년 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직후 사회가 불안해졌습니다. 그 와중에 남편이 부도를 맞아 집은 경매에 붙여졌고, 모두 가구에 붉은 딱지가 붙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아홉 살부터 세 살까지의 아들 넷은 친정에 맡긴 채 젖먹이 딸만 데리고 부도 난 공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공장 여직원과 함께 120여명의 직원 식사를 하루에 7차례씩 지으며 부도난 공장을 세워보려고 발버둥쳤습니다. 김치 담그고 반찬 만들다가 밤이 새면 야근한 직원들 새벽밥 먹이고, 직원들 깨워 아침먹이고, 아이 학교 보내고, 돌아서서 새참 먹이고, 점심, 또 새참, 저녁, 그리고 야식까지 해 먹이면서 하루 2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었습니다.

젊음과 오기로 처음에는 견딜 만 했지만 나중에는 점차 불평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 제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결국 그분은 다시 도망치듯 서울로 왔습니다.

그때까지 집은 처분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당시 그분의 집은 사당동 예술인 마을에 지은 이층 양옥집으로 거실에는 벽난로가 있고 마루바닥은 대리석으로 치장한 고급 주택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금식하며 집이 빨리 팔려 조금이라도 돈을 손에 쥐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집이 팔려서 등기상 은행 빚을 정리하고 나머지 1200만원을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궁리했습니다. 빚잔치를 해야 할지, 아니면 아이들과 살 작은 집을 얻을지 궁리하다가 다음날 동네의 작은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돈은 저의 마지막 돈입니다. 10원도 헛되지 않게 잘 쓸 수 있도록 지혜를 주세요.”

그렇게 시작된 기도가 어느새 고백으로 바뀌어갔습니다. “하나님! 제가 많이 가졌을 때 주님께 드리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수입이 많아지니 액수가 커서 십일조도 할 수 없었고 계속 사업이 확장되니 더욱 헌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밑바닥 인생이 되었을 때 이렇게 드릴 수 있는 마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1200만원의 십일조 100만원을 주님께 드립니다. 어린아이가 드린 오병이어를 받으신 주님! 이 예물을 귀하게 받으소서!”

그날 울면서 헌금을 작정하고 날이 밝으면 그 마음이 변할까 두려워 10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봉투에 넣어 강대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개척교회에서 목사님이 1자 뒤에 쓰여 있는 0 여섯 개를 보고 얼마나 가슴 졸이며 기뻐하셨을까?” 그런 마음을 가지니까 드리기 전에는 가슴이 조마조마하더니 드린 후에는 마음이 어찌나 가볍던지, 콧노래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새벽기도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눈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바닥이 다 해진 아이들의 운동화. 아이들 육성회비 고지서, 그리고 빨리 내지 않으면 끊겠다고 날라 온 전기와 수도 독촉고지서였습니다. 그 비참한 현실에 곧 콧노래가 사라졌고 먹을 것이 없어서 고구마 가지고 서로 다투던 아이들 모습이 떠오르며 생각했습니다. “날이 밝으면 수표를 바꿔서 애들 먹을 것부터 좀 사야겠다.”

그리고 날이 밝아 수표를 바꾸러 나가려는데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집을 산 사람의 전화인데, 자기가 준 잔금 1200만원을 쓰면 사기죄로 붙잡혀간다고 말과 함께 빨리 만나자는 다급한 전화였습니다. 알고 보니 등기 1번 채권인 은행 빚만 갚고 2번 채권인 신용보증기금 빚은 갚을 것을 모르고 그 돈을 준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녀는 백만 원짜리 수표를 몇 번이나 만지작거리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돈을 빚 갚는데 다 썼다고 할까? 이 돈을 돌려주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사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어느새 바깥에서 차 소리가 나더니 집을 산 사람이 돈을 가지러 왔습니다. 머리로는 “어떻게 하지?”하면서 생각하는데 손으로는 순순히 수표뭉치를 건네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받은 돈 중 100만원은 하나님께 헌금했습니다. 다음에 잘 살게 되면 그 돈을 꼭 갚겠습니다.”

갑자기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아줌마! 돈을 돌려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아줌마가 돈을 다 썼다고 잡아뗄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뜨면서 말했습니다. “헌금한 돈은 안 갚아도 됩니다. 아줌마도 우리 마누라처럼 진짜 예수꾼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집을 산 주인은 빨리 집을 비워달라며 했지만 단칸방 얻을 돈은커녕 이사 비용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산 주인에게 백색 전화기와 박스를 뜯지 않은 외제 냉장고 등 여러 가재도구를 남기는 대가로 300만원만 달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집주인은 그럴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그러자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나왔습니다. “하나님! 100만원 돌려주세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100만원 잡수시고 입을 딱 씻습니까? 그 돈이 어떤 돈인지 주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떼를 쓰다가 마침내 헌금했던 개척교회를 새벽에 직접 찾아갔습니다. 목사님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헌금했던 돈의 일부만이라도 받아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새벽기도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기도를 끝내면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 까마귀를 통해 귀한 양식을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먹을 것이 없어 영양실조에 걸린 산모(목사님 사모님)와 아기에게 이렇게 귀한 만나를 허락하셔서 생명을 건져주심을 정말 감사드립니다. 무명으로 헌금하신 성도님께 큰 축복으로 함께 하소서!”

그 기도를 듣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그냥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목사님이 돈 받으러 온 낌새를 아시고 그렇게 기도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바닥에 뒹굴며 크게 울었고,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엄마를 둘러싸고 같이 울었습니다.

집주인은 그해 12월1일까지 꼭 집을 비워달라고 했습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방법이 없어서 집주인을 찾아 사정했습니다. 300만원만 해주면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갚고 평생 은혜는 잊지 않겠노라고 수없이 빌었습니다. 결국 주인은 집에 빗자루 하나 없이 싹 비워주는 조건으로 300만원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날 그분은 단돈 만원을 가지고 월세방을 찾았습니다. 마침 연탄보일러 창고를 개조한 지하방이 있어서 보증금을 300만원 주기로 약속하고 12월 1일에 이사 오겠다고 했습니다. 12월 1일 아침, 바람은 쌩쌩 불고 진눈개비가 내릴 때, 그녀는 학교 가는 아이들에게 약속장소를 정해주고 그곳에서 만나자고 한 후에 이사 갈 집으로 가서 이불보따리를 담 너머로 훌쩍 던졌습니다. 그때 주인이 와서 계약금 만원 걸고 이사 오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300만원 완납하고 이사 오라고 했습니다.

너무 서러워서 그냥 죽어버리고 싶었지만 다섯 명의 어린 자녀들이 불쌍했습니다. 그때 그분은 울면서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하나님! 이제까지 친구들이 점치는 곳에 놀러가자고 유혹해도 점치는 것을 싫어하시는 하나님이 두렵고 제 1계명을 어길까봐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말리지 마세요. 돈 2000원만 주면 용한 점쟁이가 성공 비결을 점쳐준다는데, 이제는 저도 점을 쳐서 답답한 마음을 풀겠으니 알아서 하세요. 저도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바로 그때 공중에서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그 음성을 들으니까 풀렸던 다리에 다시 힘이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분은 다시 일어서서 집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얼마 후, 부동산에서 10평 남짓한 아파트를 소개받고 보증금 300만원에 월 5만원을 내기로 하고, 집 주인을 찾아가 구걸하듯 300만원을 빌려 계약을 마쳤습니다. 꿈만 같았습니다. 지내고 보니 하나님께서 더 좋은 집을 주시기 위해 지하 보일러 방으로 이사 가지 못하게 하신 것을 알고 회개가 나왔습니다. “하나님! 얼마나 섭섭하셨어요? 잠시나마 점치겠다고 했던 것 용서해주세요.”

그 후 1년이 지났습니다. 집주인이 보증금100만원을 더 올려달라고 통보해왔습니다. 걱정스러운 말로 남편에게 그 얘기를 한 후, 새해 첫날, 남편과 함께 기도원을 찾았습니다. 그때 기도했습니다. “주님! 새해에는 저도 성도답게 살기를 원합니다. 교회에 구석구석 맨 돈 쓸 일 천지던데, 저도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선교도 많이 할 수 있도록 물질 좀 넉넉히 주세요.”

그 기도를 하면서 얼마 전에 사업이 좀 풀리면 맨 먼저 주님께 100만원을 헌금하겠다고 약속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쉬는 시간에 그 얘기를 남편에게 했습니다. 그 얘기를 가만히 듣던 남편이 양복주머니에서 작게 접힌 네모난 종이를 내어주며 빨리 가서 헌금 통에 넣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그 종이가 전세금 올려줄 100만 원짜리 수표라는 걸 알았지만 한마디도 말하지 않고 그 종이를 헌금 통에 넣었습니다. 만약 무슨 말이 나오기라도 하면 남편과 자신이 어렵게 내린 결심이 변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헌금하는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천부께서 너희 쓸 것을 미리 아시느니라.”

그때 전세금 올려줄 돈을 헌금했기 때문에 이사할 수밖에 없어서 다시 반 지하로 이사했습니다. 그리고 곧 사업의 축복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는데, 누군가 하나님께 자신의 소중한 것을 먼저 바쳐보라고 해서 새벽마다 2천 원씩 번제 예물을 100일 동안 드리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렇게 드리던 46번째 날, 남편이 발행한 당좌수표를 막지 못해 구속될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날 밤, 남편은 잠든 아이들의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얘들아! 오늘이 너희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밤이 될 것 같다! 이제 아빠가 없어도 엄마와 함께 용기 잃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야 돼!” 그러면서 애들 얼굴에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꼭 잡고 너무 많은 빚과 짐을 지워서 미안하다며 끝내는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때까지 한번도 남편의 눈물을 본적이 없던 그분은 곧 교회로 달려가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까지 남편의 사업을 위해 새벽마다 가진 돈을 거의 털어서 드리며 간절히 울며 기도했는데 응답은커녕 이제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집세 보증금 300만원으로 당좌수표를 막으면 이 추운 겨울에 집도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1장 8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그 말씀을 받자 하나님께서 당좌수표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이고, 만약 해결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다른 섭리로 자신의 가정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하나님! 이 문제를 해결해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믿음 흔들리지 않고 감사하겠습니다.”

그분은 집으로 뛰어와 남편 손을 꼭 잡고 그 말씀을 읽어 주며 남편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남편을 보내고 간절히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기도 중에 가끔 의심이 밀려왔습니다. “남편이 붙잡혀 갔을까? 오늘 저녁 가족들이 단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그 의심을 물리치기 위해 더 눈물과 땀으로 기도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문밖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잠결에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정말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경찰서에서 면회할 때나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남편이 앞에 서 있었고, 게다가 큰 기적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전에 거래하다가 부도난 회사 사장이 받을 것을 포기한 돈 120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를 들고 기적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꿈만 같았습니다. 몇 번이나 다리를 꼬집어보고 머리카락도 뽑아보았는데, 진짜 현실이었습니다. 그녀는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작정한 100일 중 반도 기도하지 못했고, 겨우 2000원씩밖에 드리지 못했는데 12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록 2천 원이었지만 그 돈은 가정의 생명줄이었고, 먹지 않고 버스도 타지 않고 모아서 드린 돈이었는데, 그 돈을 하나님께서는 과부의 전 재산처럼 생각하시고 그 헌신을 받아주신 것이었습니다. “주님! 제가 힘써 드릴 때 하나님은 이미 1200만 원을 예비해 두셨군요. 이제 이 1200만 원이 더욱 큰 역사를 이룰 씨앗이 될 줄 믿습니다.”

결국 그 돈으로 재기해서 7년 만에 지하에서 1층으로 이사하고, 그 후 다시 13년이 지나 7층짜리 빌딩을 지을 수 있게 되고, 지금 열심히 하나님께 헌신하며 선교에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그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고 우리의 믿음과 헌신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헌신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때가 되면 가장 큰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 믿음 안에서 단호한 신앙을 가지십시오 >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어느 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두라 평지에 높이가 60규빗(27미터)되는 큰 금 신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신상 낙성식을 할 때, 악기 소리가 들리면 모든 사람들은 엎드려 절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악기 소리가 들려도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꼿꼿이 서서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 느부갓네살은 그들을 불러 회유했습니다. “이제라도 절하라! 그렇지 않으면 풀무 불에 던져 넣을 것이다.”

그때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그 회유를 거절하며 말했습니다. 본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그 말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어떤 논쟁이나 토론이나 타협이나 핑계를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말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단호함이 있어야 합니다.

진리는 절대적 가치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진짜 축복은 절대적인 삶에 주어집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 두 가지를 놓고 논쟁하면 유익이 없습니다. 가치 있는 일과 가치 없는 일, 두 가지를 놓고 논쟁해도 유익이 없습니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더 귀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단호하게 헌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인생이 맑아지고 밝아질 것입니다.

얼마 전, 둘째 딸 한나가 말했습니다. “아빠! 앞으로 저는 교회 이름을 지으면 ‘맑은 교회’라고 짓든지 ‘밝은 교회’라고 지을 거예요.” 장난으로 한 말인데 잘 생각해보니까 “아주 좋은 이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자꾸만 좋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 핑계하고 논쟁하지 말아야 합니다. 깨끗하게 헌신해서 ‘맑고 밝은 교회’를 이루고, ‘맑고 밝은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가끔 십일조를 논쟁거리로 만드는 분들을 봅니다. “십일조의 계명은 구약 시대의 유물이다. 신약은 은혜 시대인데 은혜 시대에 무슨 십일조의 율법을 지키는가?”하고 주장합니다.

은혜 시대에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은 언뜻 보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말대로 율법 시대가 지나고 은혜 시대가 되어 더 큰 은혜를 받았다면 사실 헌신도 더 커져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 성도는 십일조는 최소한의 헌신이고, 오히려 십일조의 계명과 상관없이 십일조 이상을 해야 정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구약 시대의 율법으로 몰고 논쟁거리로 삼는 사람들은 십일조 이상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사람은 없고, 대부분 십일조를 외면하고, 무디어진 신앙 양심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렇게 문제 제기를 합니다.

사실 오늘날의 십일조는 ‘계명의 문제’라기보다는 ‘본인의 신앙과 헌신과 책임의 문제’입니다. 본인이 구원의 은혜가 정말 감사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면 십일조는 아마 최소한의 헌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헌신을 방해하는 논리에 자꾸 귀를 기울이지 말고 더 귀하고 더 소중한 것을 택해서 단호하게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맑고 밝은 성도가 될 것이고, 하나님은 그런 절대 신앙에 절대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주일성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주일성수를 하겠다!”고 생각하고 단호하게 주일을 지켜보십시오. 그렇게 결심해도 주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환경이 생길 수 있습니다. 때로는 믿지 않는 남편이 같이 있고 싶어 하니까 가정의 평안을 위해 주저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에서도 주일을 지키기 위해 평소에 남편을 왕처럼 대접해주고 주일예배 시간을 양해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처럼 기뻐하실 것입니다.

때로는 시험 때문에 주일을 빠지는 환경도 생길 수 있고, 때로는 사업 때문에 주일을 빠지는 환경도 생길 수 있고, 때로는 경조사 때문에 주일을 빠지는 환경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때에도 최선을 다해서 주일 예배를 드리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 속에서 깨끗한 절대 신앙을 보시고, 가장 복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절대 신앙 >

또한 우리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절대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 17-18절에서 사드락과 메살과 아벳느고가 “저희들을 불에 넣어도 하나님이 살려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절하지 않겠습니다.”고 고백했을 때, 그 고백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얼마나 감격하셨겠습니까? 결국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불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고 더욱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 보자!”는 믿음도 필요하지만 더 소중한 믿음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고 하는 믿음입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을 풀어주지 않으실 때에도 더욱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믿음입니다.

우리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믿어야 하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말에 탁월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이 기도를 들어주세요.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하겠습니다. 하나님! 축복해주세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헌신하겠습니다.” 그런 성도에게 항상 하나님은 최상의 길을 예비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만사형통을 바라고,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원하고, 성공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의 관심이 그것보다 더 큰 데 있습니다. 즉 우리는 신비한 외적인 능력을 더 원하는데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영혼과 인격과 언어와 삶이 변화되기를 더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권능을 행하고, 기적을 행하고, 성공을 하고, 기도를 천사처럼 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영적인 언어와 천국 방언을 가지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이 정말 진짜 축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이 언어를 많이 써야 합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합니다.” 저도 축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항상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합니다!”의 고백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 고백을 가지고 있으니까 목회가 얼마나 행복하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범사에 감사하면 더 확실히 복이 옵니다. 기도할 때도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더 기도 응답이 빠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주세요!”라는 기도만큼 “하나님! 감사해요!”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고,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가끔 물질이 없고, 일이 잘 안 되면 낙심이 됩니다. 그러나 실패해도 그 실패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처럼 어떤 일에 실패해도 하나님 믿는 일에 실패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는 목적을 잃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감사할 때,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최대의 성공이고, 하나님은 그 신앙을 받으시고 가장 복된 길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미우라 아야꼬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었습니다. 77년 일생의 대부분을 병과 싸웠습니다. 24세부터 결혼하기 전 37세까지 13년 동안은 꼼짝 못하고 침대 위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알면서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주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그 감격을 전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사람의 비극은 자신은 억울하게 고통당한다는 생각의 오해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마음속의 빙점을 극복하면 어느 누구도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글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일평생 결핵성 척추염, 대상포진, 직장암, ,파킨슨씨병 등의 난치병과 싸우면서도 고백했습니다. “병으로 잃은 것은 오직 건강뿐이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신앙을 갖게 돼 감사합니다.”

여러분! 성공을 구하고, 축복을 구하고, 문제 해결을 구하고, 건강을 구하십시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십시오. 삶의 위기가 있을 때에도 감사하면 위기는 곧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망했을 때도 삶의 좋은 교훈을 주셨다고 감사하고, 차가 부딪쳐도 몸이 다치지 않았다고 감사하고, 병에 걸려도 더 큰 병에 걸리지 않아서 감사하고, 문제가 생겨도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아서 감사하고, 사업이 안 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하고, 자녀가 다쳐도 더 크게 다치지 않아서 감사하고, 극심한 고난이 있어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합니다”라고 할 때 마귀와 질병과 저주는 순식간에 결박당하고 그의 앞길에는 축복의 대로가 활짝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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