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함께 지어져 가자 (엡 2:20-22)

  • 잡초 잡초
  • 848
  • 0

첨부 1


- 설교 : 이성철 목사 

하나님의 자녀는 자기 자신이 세상 사람과는 다른 존재임을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외적인 모습과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과는 분명하게 다른 존재임을 잠시라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거듭난 사람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었다는 것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사건이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습을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 담겨진 귀한 영적 교훈과 진리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교회가 누릴 최고의 복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입니다. 교회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은 교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감격스러운 예배가 있어야 하고, 잘 준비된 성경공부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잘 훈련된 섬김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함께 하셔야 합니다. 이 진리가 진실로 믿어지고 이 진리가 실현되기를 진실로 소망해야 교회는 참으로 강건하게 자라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 하심보다도 자신의 이름이나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꿈꾸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으면 교회는 건강하게 자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인 생명체이기 때문에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교회의 주인의 자리에 온전히 거하지 않으시면 교회가 건강하게 자라가기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떠나시고 나면 교회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거처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입니다. 이 진리가 진실하게 믿어지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참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자녀들에게 이미 참 평화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최고의 복으로 인식되지 않으면 이미 주어진 참 평화를 참 평화로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면, 하나님만이 참 평화를 주시는 분이시오, 하나님과 함께 할 때만이 참 평화를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인생들이 누릴 인생최고의 행복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라는 마음에 변함이 없는 사람들이 진정한 신앙인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거하심이 영광이 되어야 하고 기쁨이 되어야 하고 감사의 가장 큰 제목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볼 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죽어 있는 세상사람들은 권력과 재물과 지식이 차고 넘침을 제일로 자랑합니다. 건강과 미모와 같은 자신의 능력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 모두가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그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죽음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요 새로운 두 갈래 길로 나누어지는 문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 그들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거하시지 않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엄청난 비극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될 것입니다.

2.예수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각자 개인 안에, 그리고 각 교회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건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교회를 이루고 있는 각 개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안에 온전히 거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짧은 본문 안에서 <그의 안에서> <주 안에서> <예수 안에서>라고 세 번씩이나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있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한 사람의 인격과 성품이 성숙하고 아름답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가까이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인격이나 성품을 보시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보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 안에 거하십니다. 좋은 시설과 좋은 물건과 친절함이 있는 백화점에 사람들이 모여들듯이, 좋은 시설과 좋은 프로그램과 그리고 잘 훈련된 교회에 사람들은 모여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좋은 시설이나 프로그램을 보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들이 예수 안에 있는가를 보십니다. 우리들이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는가를 하나님께서는 가장 중요하게 보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당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까? 진실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십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분명한 확신과 증거들이 있습니까? 저는 목사이지만 어쩌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목사님들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집사요 권사요 장로임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새 성전 건축의 완공을 앞두고 우리들이 다시 물어야 할 가장 심각한 질문은 건축이 계획대로 잘 되었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새 성전에 들어갈 우리들 각자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참으로 계신가라는 질문이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내 안에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계셔야 합니다.

3.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성령님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은 교회의 설립은 하나님에 의해서 계획되었고 예수님께서 모퉁이 돌이 되셨고 그리고 성령님께서 지어 가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걸작품인 교회가 강건하게 자라가기 위해서는 성령님께서 활동하시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을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며 일하실 때에 비로소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게 됩니다. 교회에는 좋은 목회자와 좋은 성도들과 좋은 시설과 좋은 프로그램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의 필요보다도 성령님의 거하심과 활동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행2:42에 기록된 예루살렘 교회의 복된 모습도 성령님의 작품입니다. "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7)" 비록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성령 충만하지 못하다면 우리의 교회는 강건하게 자라 가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될 것입니다. "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 오더라" 고 보고된 행11장의 안디옥 교회의 부흥도 성령님의 활동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우리의 무지와 연약함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행하여서는 안 되는 일을 행함으로써 성령님을 근심케 하는 성도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님께서 행하도록 명령하시는 일을 거부함으로써 성령님을 소멸시키는 성도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께 붙잡힌바 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힘으로 내 판단으로 그리고 내 의지력으로 일해서는 안 됩니다. 나의 모든 것은 다 내려놓고 성령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과 지혜로 일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힘이 아니고서는 일할 수도 없고, 성령님이 주시는 힘이 아닌 다른 힘으로 일하면 불법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교회의 모든 일들을 결정하시도록 성령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리 대단해도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요 아무 소용도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도 성경을 말하고 장막교회의 교주로서 자신을 예수라 칭하는 구인회도 성경에 능통하다도 스스로 말하고 양도천도 성경을 자신하고 40일 70일 금식까지 하였지만 성령에 의한 것이 아니기에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행한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의 중심에 성령님께서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면 교회는 성령님의 일터이기 때문입니다.

4.서로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21절에서 "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건물 마다에서의 건물이란 서로 떨어져 있는 건물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물은 한 건물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건물 마다란 한 건물 안에 있는 여러 개의 방들을 말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바울은 이 땅위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우주적인 한 교회의 크고 작은 방들이요 기둥들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각 개인들은 개체 교회의 방들이요 기둥들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교회들이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함께 지어져 간다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 안에 있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 모두가 서로를 위해서 필요한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교회와 모든 성도들을 다 함께 사용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개인만을 사용해서 교회를 자라나게 하시지 않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에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시지 못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을 통해서 주님의 몸인 교회를 이루게 하시고, 그들 모두를 사용해서 교회를 자라가게 하십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믿음의 정도가 다르고 받은 바 은사와 능력이 달라도 모두 다 서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이 진리를 진실로 믿는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날로 강건히 자라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먼저 교회는 내 교회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물론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교회의 소유권이 성도에게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내 교회라는 말은 교회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말이 아니라 교회의 한 지체인 자신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교회의 모든 일을 나의 일처럼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나의 일이기에 내가 먼저 관심을 두고, 내가 더 열심히 일하고 기도하고 헌금도 하고 전도도 하리라는 자세가 교회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남의 일처럼 구경 만하고 평가만 하는 성도가 많으면 교회는 병들게 됩니다.

다음으로, 교회는 우리 교회다라는 성도들의 자세가 교회를 강건하게 자라가게 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은 함께 지어져 가기 때문에 교회는 우리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내 교회라는 생각에서만 머물고 만다면 교회는 반드시 생각지 않았던 다툼과 분열의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내 교회라는 생각이 지나치면, 다른 이웃의 동참이 허용되지 않게 되고, 내 교회이기 때문에 내 생각대로 되어져야 한다는 고집만이 남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교회의 하나됨은 쉽게 부서지거나 약화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내 교회다라는 자세에서 우리 교회다라는 수준에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우리 교회이기 때문에 서로 하나됨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이기 때문에 서로의 관심과 뜻과 힘이 함께 모아지게 됩니다.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동역자가 필요한 곳이 교회입니다. 하물며 큰 일에는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서로 귀하게 여기며, 서로의 약점을 감추어주고 보충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함께 지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를 위해서 서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서로 귀하게 여기며 존중해주고 사랑해 주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하나가 더 필요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다라는 성도들의 자세가 교회를 건강하게 자라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거하시는 이유는 교회가 하나님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이유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우리 교회다라는 생각에만 머물고 만다면, 때로 교회는 주님의 몸으로서의 교회이기보다는 신앙인들의 단순한 모임이나 조직이 되고 말 때가 있습니다. 교회는 신앙인들의 모임을 넘어 주님의 몸임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주님의 몸이라는 생각은 교회는 생명체요, 교회의 성도들은 주님의 몸을 이루는 지체임을 믿는 것이요,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주님의 것이기에 주님께서 친히 일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신다(고전3:6)"고 고백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 것임을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는 생명체인 교회를 자라게 하십니다. 교회는 내 교회이면서 우리 교회입니다. 그렇기에 내 뜻보다 우리의 뜻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우리 교회이면서 주님의 교회이기에 우리의 뜻보다도 주님의 뜻이 훨씬 중요합니다. 이러한 진리를 진실로 믿는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거하십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그 교회를 자라가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필요로 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존재입니다.

5. 자라가고 있는 교회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단어는 22절의 '지어져 가느니라"는 단어입니다. 이는 교회건축이 미완성이라는 의미보다는 교회가 생명체인 주님의 몸이기에 교회는 마땅히 성장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쉼이 없이 자라나는 주님의 몸입니다. 성령님께서 이 일을 친히 담당하십니다. 따라서 교회는 성령님의 인도 따라 날마다 성장하여야 합니다. 교회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합니다. 교회가 날마다 성장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값을 기쁨으로 지불해야 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성도들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성령님께서 바울과 같은 귀한 마음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지금 교회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십시오. 성령님께서 공사중 이시기에 지금은 불편하고 힘든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그리고 우리들이 보기에도 합당한 교회로 성령님께서 날마다 조금씩 교회를 성장시키실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비록 지금은 철이 없는 개구쟁이 일지라도 부모 된 우리들은 그들의 성숙한 모습을 꿈꾸어 보듯이 성도들은 교회의 성숙한 모습을 꿈꾸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의 어설픈 모습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인내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공사 중인 아닌 교회는 이 땅에 없고, 공사중인 아닌 성도들도 이 땅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공사 중인 나로 인해서 이웃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공사중인 나로 인해서 힘들어하고 상처 입을 이웃들에게 진실로 미안한 마음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확신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공사 중이기에 부족하지만 우리 안에서 일을 시작하신 성령님께서 우리들을 날마다 새롭게 하실 것을 확신하여야 합니다. "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는 바울의 확신이 우리의 확신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아름다운 성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새롭게 지어진 건물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성도들을 섬기며 우리들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우리들이 잘 지어져 가야 합니다. 우리들이 함께 지어져 가야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