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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왕이 없으므로 (삿 21: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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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손상률 목사 

24.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곳을 떠나 각각 그 지파,그 가족에게로 돌아가되 곧 각각 그곳에서 나와서 자기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암흑시기가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 사무엘이 등장하기까지 약 삼백 년(B.C 1400-1100)에 걸친 시기인데 이때를 사사시대(士師時代)라고 부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전국(戰國)시대 또는 무정부시대, 종교적 암흑시대 등으로 표현하는데 한 마디로 말해서 매우 불행한 시기였습니다.
본문 말씀 25절에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는 것은 왕정(王政)으로서의 지도체제(system)가 갖추어져 있지 않았고, 또 왕통(王統)을 이어갈 인물이 선정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왕통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예언하신 것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世系)”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사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성경저자는 그 시대의 특징을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다고 말했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왕이 없다는 것은 정치적인 공백을 의미하는데 이는 비정상적인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왕이 없으므로 빚어지는 사건들을 보고 여기서 주는 신령한 교훈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Ⅰ. 왕이 없는 백성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출애굽 사건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고(수 24:16-18), 이방신을 숭배하면서 배도의 길을 걸었으나 이런 것을 통제할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그 땅에 있는 부족들에게 수십 년 간 억압을 당하게 되고 급기야 하나님께 부르짖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사사를 세워서 그들을 구출해주셨는데 그것도 잠시뿐 또 다시 그와 같은 악순환이 계속되었습니다. 옷니엘부터 삼손까지 모두 열 네 명의 사사가 활동하였고 그나마 삼손 이후에는 엘리 제사장 때까지 무정부 시대의 상황에 적응하고 살았습니다.

(1) 자기 소견대로 생활하였습니다.

사사기 17:6에는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남에게 지배당하거나 간섭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천부의 권리요 자유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역사는 이와 같은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려는 세력과 거기에 맞서서 이를 지키려는 세력간에 갈등이 이어져 왔습니다. 특히 백성을 통치하는 왕이나 권력자들은 이를 억압하면서 사람들을 자기의 의지대로 끌고 가려합니다. 여기 왕이 없는 시대에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자기의 의지대로 끌고 가려합니다. 여기 왕이 없는 시대에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좋을대로 살았다는 것은 마음껏 자유와 권리를 누렸다는 뜻이 됩니다.

(2) 방종으로 혼란하였습니다.

아무리 개인의 생활이라도 절제되지 않는 자유는 방종으로 이어지는 것이며 사람마다 자기 권리만 내세우고 통제할 기능이 없다면 결국 질서를 잃고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백성들은 자기 좋을대로 살았습니다. 법적인 제도나 규범이 없었습니다. 이를 집행하거나 관리할 기구가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이방풍속을 좇았고 제 마음대로 우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삿 17:3). 아무나 제사장으로 세우고 복을 빌게 하였습니다(삿 17:5). 숫자가 많거나 힘이 센 사람이 완력으로 목적을 이루는 풍토가 되었습니다(삿 18:25). 성적타락과 음행이 일반화되었습니다(삿 19:24-26).

(3) 공동체가 무너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습니다.

백성이 모두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동하는 자유가 최선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질서 없는 방종으로 이어져서 급기야 통제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모두가 다 공멸해 버리는 불행을 가져오고 맙니다. 사사기 20장에는 이스라엘 가운데 골육상쟁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기록하였습니다. 기브온에서 있었던 집단음행 사건으로 인하여(삿 19:25), 이스라엘의 열 한 지파 사람들이 베냐민 지파를 도륙하고 장정들을 모두 죽여 버렸습니다. 그 후 모든 백성이 벧엘에 모여 저희 형제 가운데 한 지파가 이즈러졌다고 탄식하며 울부짖었습니다(삿 21:2-3).

Ⅱ. 왕을 찾는 백성

왕이 없는 무정부 상태가 오래 되자 백성들은 왕을 세우자고 하며 왕을 찾아 나섰습니다. 사무엘상 8:4-5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 중심에서 이탈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올라온 후 지금까지 겉으로 보면 왕이 없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가나안에 입국한 뒤 여호수아 사후에도 하나님께서 그때마다 사사들을 세우셨고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며 백성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사사가 죽고 얼마간 공백이 생겼을 때는 그들이 이방신을 좇으며 하나님께 배도의 길을 걸었습니다. 백성들은 틈만 있으면 하나님의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며 또 자기 마음에 좋을대로 이방신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여기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왕을 세우게 해달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과 멀어지려는 인간적인 욕구 때문이었습니다. 사무엘상 8:7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2) 세상 풍속을 좇는 행위입니다.

사무엘상 8:5에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사무엘이 이 사실을 하나님께 아뢰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왕을 구하는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을 버리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8절에 보면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찾는 것은 세상 열방들처럼 왕이 통치하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그들이 열방이 섬기는 이방신들을 섬기며 사상적으로 열방의 풍속에 젖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그들이 천하만민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었다는 특수성을 망각해 버렸습니다(신 6:4-9). 사무엘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열방의 길을 가게 되면 그로 말미암아 저들이 치러야 될 엄청난 피해가 있다는 것을 경고하였습니다(삼상 8:10-18). 그러나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고 열방과 같이 왕이 다스리게 해 달라고 소리쳤습니다(삼상 8:19-20).

(3) 사울 왕의 등장

사무엘상 8:21-22에 “사무엘이 백성의 모든 말을 듣고 여호와께 고하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등장하게 됩니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로서 처음에는 매우 겸손하고 착한 사람이었습니다(삼상 10:20-27). 그러나 그도 결국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삼상 15:22-23), 말년에는 악신에 시달리다가 블레셋 전쟁에서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삼상 18:10, 31:1-6).

Ⅲ. 왕을 맞은 백성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예루살렘으로 찾아온 동방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고 하였습니다(마 2:2). 멀리 메소보다미야 지방에서 찾아온 이방인 박사들은 하늘에 나타난 별의 징조를 보고 유대 땅에 왕이 탄생했다고 믿었지만 막상 그 땅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서기관들은 구약의 예언을 통하여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찾아내었습니다(미 5:2). 이는 사람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보내 주신 왕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1) 언약의 왕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즉위 한지 사십 년 만에 전쟁터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원해서 세움 받은 왕이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의 아들 다윗을 세워 왕을 삼았습니다. 다윗은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왕의 조상입니다. 사도행전 13:22-23에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을 이스라엘 열왕의 뿌리로 하고 그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예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왕의 구도는 오래 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열왕의 족보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로 표현되었습니다. 이는 왕으로 오신 예수가 하나님의 언약의 증거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2) 은혜의 왕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왕이 없는 시대의 불행을 겪었던 사람들이 스스로의 의견에 따라서 사울 왕을 세웠으나 불행한 결과를 빚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저희 의지에 따라 하려 했던 일이 실패하고 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보내시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게 하실 때 이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예수를 왕으로 영접한 사람에게 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예수를 자기의 왕으로 믿거나 영접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11-12에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를 보고도 왕으로 영접할 수 없었지만 그 중에도 그를 믿고 영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과 이들에게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부여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두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13에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3) 이상적인 왕입니다.

일찌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한 이사야는 예수님을 “평강의 왕”으로 묘사하였습니다(사 9:6). 이사야 9:7에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군왕들은 권력을 남용하며 사람들을 억압하거나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부정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은 공의와 정직으로 수행하게 되며 무엇보다도 모든 백성에게 평강을 주십니다(눅 2;14).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평화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왕권은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우주적 통치권자로서(마 28:18),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가 되십니다(계 19:16).
이 예수님은 세상의 군왕들과 달리 영원하신 왕권으로 세세토록 자기 백성에게 사랑과 평화로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시편 144:15에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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