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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 문 열기 (신 2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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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재신 목사

  축복받는 신앙생활은 하늘 문이 열린 신앙생활입니다. 어느 집이든 어떤 건물이든 들어가는 문 또는 나가는 문이 있듯이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문이 있습니다. 하늘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창 28:17절에서 야곱은 벧엘 광야에서 돌 베게를 베고 잠자다가 꿈에 하나님을 뵙고 그 자리에 엎드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계시록 4:1절에서도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사도요한이 환상 중에 하늘의 열린 문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행 7:56절을 보면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스데반 집사가 순교할 때 하늘 문이 열리는 장면을 목격한 것입니다. 마 3:16절에 보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 라고 했습니다.
 
  문은 열리기 위해서 필요하고 존재합니다. 열리지 않는 문은 애당초 문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늘 문이 언급 될 때는 대개 하나님이 주시는 영, 육간의 복과 관련이 있습니다. 기도가 안 될 때 기도문이 안 열렸다고 합니다. 잘 되면 기도문이 활짝 열렸다고 합니다.
  물질의 복도 하늘 문이 열려야 합니다. 건강의복도 하늘 문이 열려야 받을 수 있습니다. 신령한 은사도 하늘 문이 열려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늘이 열리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임합니다. 그래서 하늘 문이 열려야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키를 가져야 합니다. 마 16:19절에 보면 신앙을 고백한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천국의 열쇠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천국 열쇠는 베드로는 개인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하늘 문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구원의 하늘문과 축복의 하늘 문입니다.

  1. 구원의 하늘 문

  구원의 하늘 문은 천국 문을 의미합니다. 이 천국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열립니다. 사람에게 이 문이 열려야 전도도 받고 예수도 믿습니다. 천국 문이 닫힌 사람은 결코 복음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국문은 복읍의 문입니다.  마 16:19절에 보면 베드로에게 주셨던 열쇠를 우리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믿는 신앙입니다.

  요 3: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요 14: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또한 행 2:21절에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라고 했고 행 16:31절에서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어야 구원의 하늘 문이 열립니다.
 
  2. 축복의 하늘 문

  두 번째로 하늘 문에는 축복의 하늘 문이 있습니다. 축복의 하늘 문이 열려야 복을 받습니다. 물질의 복이든 신령한 복이든 축복의 하늘 문이 열리지 않으면 누구도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천국에는 보물 창고가 있습니다. 신28: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도 복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대개 하늘 문이 닫혀있기 때문입니다. 하늘문이 열려야 은혜가 넘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늘 문을 열려고 하면 내게 하늘 문이 닫히게 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면 됩니다.

  오늘 날 대다수의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자신에 대하여 하늘 문이 닫힌 줄도 모릅니다. 그리고 하늘이 닫힌 이유가 대부분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하늘이 닫힌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국 보물 창고를 여는 열쇠는 무엇일까요? 축복의 하늘문을 여는 열쇠에 대하여 성경에서 몇 가지 말씀을 주셨습니다. ,

  1,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하늘 문을 여는 첫 번째 열쇠는 말씀에 대한 실천 즉 순종입니다.
  신명기 28장은 68절까지 있는 비교적 긴장입니다. 축복장이라고 이름이 붙은 장입니다. 그런데 1-14절까지가 축복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15절부터는 68절까지 무려 네 배가 넘는 54절이 저주에 관한 내용입니다.
  축복 장에서 저주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많습니다.
  그것은 저주받을 일에 대하여 조심하게 하기 위해 더 자세히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잘못하여 저주받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8장을 자세히 보면 축복과 저주가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복종하면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주시고 불순종하면 그 문을 닫아서 저주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순종하면 하늘 문이 열립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말씀에 대한 순종을 전제로 주신 말씀입니다. 순종해야 하늘의 보고가 열립니다.
 
  2, 십일조 생활

  축복의 하늘 문을 여는 두 번째 열쇠는 말라기 3:10-12절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십일조와 하늘 문이 직접 연결되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주신 다는 것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 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늘 문을 여는 키입니다. 그러니까 십일조를 안하면 하늘 문이 닫히여서 우리의 수고가 헛수고와 물거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에게 하늘 문이 열려서 복이 임하는데 다음과 같은 복이 임합니다.

  ① 믿음이 성장하는 복이 임합니다.
  물질을 드리면 자동적으로 몸과 마음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6:21) 라고 하셨습니다. 억지로 드리는 헌금은 시험이 되지만 자원하는 헌금과 신앙의 성장은 언제나 비례합니다. 잘 드리는 사람이 믿음이 성장하고 복을 받습니다. 왜냐면 물질 드릴 때 물질만이 아니라 마음과 몸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② 헛수고 하지 않게 됩니다.
  말 3:11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황충이란 갈가먹는 메뚜기라는 뜻입니다.
  이 황충 떼가 한번 지나가면 일년내내 수고한 농사가 완전히 헛것이 되고 맙니다. 포도나무의 소산이 익기 전에 떨어지는 것도 헛수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 헛수고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일년 내내 번 돈을 순간적으로 날려버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십일조, 감사헌금, 드릴 때 아까워서 벌벌 떨더니 1년 번 돈을 순간적으로 날리고 깨닫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헌금이나 할걸...」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만큼 황충이 와서 갈가 먹어 버립니다. 헛수고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황충을 막아주신다고 했습니다. 헛수고 하지 않게 하십니다.
 
  한 불행한 영국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가정은 항상 중환자실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중풍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어머니는 폐결핵으로 심한 기침을 해댔습니다. 그의 부모는 물려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아들에게 철저하게 십일조 신앙을 가르쳤습니다.
  소년은 가난이 지긋지긋하여 세계적인 부자가 되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미국 행 선박에  숨어 들어 밀항을 하다가 선장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저를 미국으로 데려가 주십시오.세계적인 부호가 되어 조국에 보답하겠습니다”
  선장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선장은 그 소년을 자신의 양자로 삼았습니다. 선장이 늙어 병들어죽자 그 소년은  배를 팔아 치약회사를 차렸습니다.  이 소년의  이름은 콜게이트사의 설립자인 콜게이트입니다.
  그의 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치약회사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성공적인 경영철학은 “철저한 십일조” 였습니다. 비록 가난한 부모님이 물질을 물려주지 않았지만 십일조 신앙은 물려주었던 것입니다. 그는 성공의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십일조에 대해서 말하였습니다.
  “나는 오른쪽 주머니에는 십일조,왼쪽  주머니에는 이익금을 담는다󰡓 콜게이트사에는 현재도 십일조를 관리해주는 직원만 3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십일조를 드리기 않는 것을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해놓고 하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릴 수 없습니다. 순복음 교회의 조용기 목사는 믿음의 씨앗이 십일조인데 종자 씨앗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가? 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는 하늘 문을 여는 첫 번째 열쇠입니다. 십일조 때문에 닫혔던 하늘 문이 십일조로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3, 긍정적 언어

  하늘 문을 여는 세 번째 키는 긍정적인 언어입니다. 그래서 벧전 3:10절에 보면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고 궤휼(詭譎)을 말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혀에 하늘 문을 열고 닫는 요소가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감정을 표현합니다. 지식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신뢰와 사랑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간 사회를 가리켜 언어 사회 또는 언어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 누구든 이 언어 공동체에 속하지 않고서는 이 세상에서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언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에 의해 하늘 문이 열고 닫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약3:6절에서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혀는 불이기 때문에 생의 바퀴를 불사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의 바퀴를 불사른다는 말을 풀어서 설명하면 “옛 사람의 본성에 다시 불을 붙여서...”입니다.
  옛사람의 본성은 죄입니다.
  결국 옛사람의 본성인 죄에 불을 붙여서 망하게 하는 것이 잘 못 사용된 혀 즉 언어입니다. 
  그러기에 무심코 쓰는 말(혀)에 하늘 문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편 45:2절에 “왕은 인생보다 아름다와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영히 복을 주시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잠 12:13절에서는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라고 했고 잠 18:7절에서는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하늘문을 단는 언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정적이고 저돌적이며 공격적이며 책임 전가적 언어들은 하늘 문을 닫는 언어입니다. 그리고 세속적고 저속한 욕설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욕설은 저주받은 인간의 타락한 인간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저쪽에 있을 때 사용하던 저속하고 더러운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며 험담하는 언어도 하늘 문을 닫는 언어들입니다.

  하늘 문을 여는 언어란 무엇일까요

  1) 믿음의 언어입니다.
  믿음의 언어는 긍정적인 언어입니다. 막11:23절에 예수님은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심지어 산을 향해 “바다로 옮겨가라” 라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치 않으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믿음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믿고 말하는 것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언어가 바로 하늘 문을 여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후 1:20절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기 때문에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언어는 긍정적이여야 합니다.
  부정적인 언어는 사탄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은 아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긍정적인 믿음의 언어를 사용합시다.

  2) 사랑의 언어
  허물을 덮어 주고 용서하는 언어, 상처받은 사람에게 따듯한 위로의 말 한 마디가 천금보다 더 귀중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잘했다. 괜찮다. 미안해 등등...
  바울 사도는 빌2:3절에서 아무 일에든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권면 합니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 대한 칭찬의 말로 나타납니다. 비방하고 험담하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칭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칭찬할 것이 없고 허물이나 약점이 보인다면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3) 축복의 언어
  벧전 3:9절에서 하나님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입은 것은 복을 빌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축복이 담긴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마 10:12-13절에 보면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느 집에 가든지 그 집을 위해서 축복하라고 했습니다. 만일 그가 복을 받기에 합당하면 복이 그에게 임하고 합당치 않으면 그 빈 복이 축복한 사람에게 임한다고 했습니다. 즉 축복의 언어를 사용한 사람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축복의 언어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5, 베푸는 삶

  하늘 창고 문을 여는 다섯 번째 키가 바로 나눔과 베풂의 삶입니다.
  잠 11:24-25절을 보면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기 것을 흩어 나주어 주는데 더욱 부하게 된다는 말입니까? 일반적인 경제원리로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일반 은총적 영역에서는 부하게 되려면 쓰지 말고 저축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 은총적 영역에서는 나누어주고 베풀어줄 때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오히려 과도히 아끼고 인색하게 절약하여도 더욱 가난하게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인색 병에 들면 하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색한 것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이 생깁니다. 야고보는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약 5:1-5절을 읽어봅시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나누고 베풀 때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눅 6:38절에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에게 축복의 문을 여는 다섯 종류의 열쇠를 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순종 (신28:1, 신29:9 신8:1)
  십일조와 헌물 (말3:10)
  말씀사역자와의 관계 (히13:17, 대하 20:20)
  올바른 언어생활 (벧전 3:10)
  베품과 나누는 삶 (눅6:38 잠11:24-25)
  이중에 한 가지 만이라도 확실하게 사용하십시오. 하늘의 보물 창고가 열려지는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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