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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에게서 본 받을 점 (히 1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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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봉수 목사
 
아브라함에게서 본 받을 점

  저도 어려서 위인전을 많이 읽은 편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대개 방학숙제로 독후감을 제출하기 위해서 읽었습니다.

  위인전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체로 다 비슷합니다. 우선 태어날 때 범상치 않게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벌써 남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때가 되면 정말 흠 잡을 데 없는 방법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깁니다. 그리고 늙어서도 젊은 세대에 큰 교훈을 주고,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과 눈물 속에 장렬히 세상을 하직합니다.

  그래서 위인전 독후감은 늘 똑같았습니다. 간단하게 이 분들의 삶을 요약하고서는 “... 님의 정신을 본받아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러면서 “이 분들은 원래 위대한 사람이니까 그렇지 나 같은 사람이 뭐...” 라는 마음이 생기면서 포기하는 마음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자라면서 위인전이라는 것이 저 김일성 우상화에서처럼 각색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예 본받을 생각일랑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달랐습니다.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은 각색되지 않았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예외 없이 흠이 있고 결점이 나타납니다. 때로는 너무 심하다 하는 정도로 보잘 것 없고 형편없어 보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도 그렇습니다. 창 1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사라의 미모에 반해서 저를 취하려 할 때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창 20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그랄에 가서 살게 될 때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려 하자 또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자기 살겠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자기 아내를 선선히 내어줍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럴 수 있습니까? 정직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비겁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실을 발견하면서 오히려 저는 더 용기가 났습니다. “이런 사람도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으로 쓰셨는데...” “적어도 나는 이렇게 거짓말은 하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비겁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래서 “주께서 부르시기만 하면 나도 쓰임 받을 수 있겠구나...” 이런 소망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인물들은 허물과 결점이 있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쓰임 받게 되는 남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허물과 결점은 반복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장점을 본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이런 인물들 이야기가 기록된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브라함에게서 본 받을 점이 무엇일까요?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결단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창 12:1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행 7:2-4를 보면 스데반이 이 내용을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고향 땅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이주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아브라함을 본토 친척 아비 집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하셨을까요? 그 답을 수 24:2-3에서 여호수아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 원래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다른 신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저 우상의 땅에서 이끌어 내셔야만 했습니다. 새로운 믿음의 역사를 시작하려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과거를 청산케 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본토 친척 아비의 집 우상을 섬기던 과거가 서려있는 그곳을 떠나게 하신 것입니다. 과거 우상과의 관계를 철저하게 청산케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이 말씀대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창 12:4를 보면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 75세였다는 것입니다. 편히 인생을 정리해야 할 나이에 머나먼 타국으로 이민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평생 쌓아놓은 모든 것을 다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대책 없이 떠나라는 것입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포기했을 것입니다. 결단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결단했습니다. 철저하게 과거와 단절하기 위해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우리가 이 점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얼마 전 독일의 대통령의 패전 기념사를 읽어 보았습니다. 유럽에서 2차 세계 대전이 1945년 5월 8일에 끝이 났습니다. 그 40주년이 되는 날 당시 독일의 바이체커 대통령은 패전 기념사를 통해 독일이 저질렀던 만행과 치부를 민족의 이름으로 반성하고 사과를 했습니다. 이 패전 기념사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지나간 일이 수정되거나 백지화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과거에 대해서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에 대해서도 장님이 된다. … 참회와 속죄 없이는 구제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과거를 기억함은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증언이다. 그것은 속죄의 원칙이다. … 이 증거를 망각하거나 거부하는 자는 내일의 일을 상실하게 된다."

  이렇게 독일 사람들은 과거 나치시대의 수치스런 역사와 철저하게 단절했습니다. 독일에 가면 무기 장난감이 없다고 합니다. 법으로 만들 수 없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의 표시인 것입니다.

  고후 5:1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이전 것은 지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던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답지 못한 과거는 철저하게 청산되어야 합니다. 힘들더라도 우리가 결단해야 합니다.

2. 하나님과의 교제를 본받아야겠습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을 평가해 놓은 말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 또 하나가 있습니다.

  사 41:8을 보면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라고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나의 친구라고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대하 20:7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거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으로 주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영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아브라함을 주의 벗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친구라고 부르셨고, 후세 사람들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벗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본 받을 점이 또한 이것입니다. 요 15:15를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아브라함 뿐 아니라 우리도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기에 여호와의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님의 벗이 될 수 있을까요?

  우선 예배입니다.

  창 12:7-8을 보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가 머무는 곳마다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말씀입니다.

  요 4:23을 보면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배 드리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나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예배드리는 자가 없을 때 오직 아브라함만 가는 곳마다 예배를 드렸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그를 특별히 대우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 친구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루를 예배로 열어보십시오. 그 하루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일을 예배로 시작해 보십시오. 그 일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집에서의 삶을 예배로 시작해 보십시오. 그 집에서의 삶을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기도입니다.

창 18:21을 보면 아주 특별한 기도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일컬어 흥정기도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 고모라가 멸망할 때 조카 롯과 그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50명,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 하나님께 마치 물건 값을 깎듯이 끈질기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탓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그의 기도에 응해주셨습니다.

  창 19:29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하나님께서 소돔 고모라를 멸망케 하실 때 롯을 구원해 주셨는데 그 이유는 아브라함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친구인 아브라함의 간절한 청 때문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말씀해 주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기억하셔서 때가 되면 그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기도를 하시되 끈질기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친구로 받아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3. 순종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아브라함을 아브라함 되게 한 결정적인 사건은 창 22장에 기록되어있는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22:2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테스트하시는 것입니다. 아들을 바치라고 하셨는데 그 아들이 보통 아들이 아니고 아브라함이 너무도 사랑하는 아들이요 독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얼마나 귀한지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는 곳으로 가더니”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준비하고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그것도 사랑하는 독자를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러 가는데 아무런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오래 기다리던 소풍 가듯이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저명한 영성가 리차드 포스터는 [심플 라이프]라는 책에서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해 놓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가 보인 모습은 단순성 바로 그것이었다.”

  포스터는 아브라함이 긴 세월 하나님을 믿으며 많은 시행착오를 범했고 그래서 큰 고통을 당했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너무도 소중한 사실 한 가지를 배웠다는 것입니다. 바로 조건이나 구실을 달지 않고, 나름대로 긴급 대책을 세우지 않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하시면 바보처럼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너무 생각이 많아서 제대로 순종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상황을 너무 복잡하게 바라보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바보처럼 단순하게 생각하고 주님을 따를 때 철저한 순종을 이룰 수 있습니다.

  창 22:12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평하셨습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께서 이 순종을 보시고 비로소 합격 판정을 내려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그렇습니다. 순종할 때 믿음은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창 22:17을 보면 이렇게 하나님께서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철저한 순종을 보시고 본격적으로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 순종이 하나님을 감동시켜드렸고, 그로 인해 놀라운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기독 실업인으로 미국국민들의 존경 받는 아더 미다스 장로라는 분이 있습니다. 한 때 미국의 10대 재벌의 속할 정도로 거부였습니다. 이분이 신앙과 인생의 성공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답했답니다. “나는 하나님과 약속한 다섯 가지를 철저하게 지키려 했고, 이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셨습니다. 첫째가 주일 성수이고, 둘째가 온전한 십일조이고, 셋째가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는 것이고, 넷째가 가정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모시는 것이고, 그리고 다섯째가 시간과 돈을 선한 일에 쓰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분이 한 마디를 덧 붙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뜻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풍요로운 삶을 살지 못합니다. 이기적인 부자는 물질적 풍요는 있어도 정신적 영적 풍요는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철저한 순종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단순한 순종이 우리로 하여금 복된 삶을 누리게 합니다. 이런 비밀을 깨달은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적을 행하기보다는 순종하기를 원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브라함의 철저한 순종을 본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감동시켜드리고 또 큰 복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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