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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굳게 믿지 아니하면 (사 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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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관지 목사

이사야서는 66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 66권 가운데 제일 분량이 많은 것은150편으로 되어 있는 시편입니다.
그 다음이 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이사야서입니다.
신구약 성경 66권, 이사야 66장, 기억하기 좋습니다.
‘이사야서 66장은 신구약 성경 66권을 요약하고 있다.’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모두 1,292절로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제일 중요한 절, 요절을 택하라고 하면 여러분, 어떤 절을 택하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53장 가운데 한 절을 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사야서 53장은 ‘고난 받는 종의 노래’라고 해서 요즘, 사순절에 많이 읽는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사야서 53장 가운데 5절을 이사야서의 요절로 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좋지요.
그래도 이사야서의 대표적인 요절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이 오늘 본문 가운데 있습니다.
바로  9절 하반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공동번역성서 개정판」에는 이 말씀이 9절, 한 절로 독립되어 있습니다.

‘굳게 믿지 아니하면  굳게 서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구약성서의 원어인 히브리어로는 “암 로 타아미누로 테아메누” 발음이 비슷합니다.
이 점을 살리기 위해서 「개역 개정」에서는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너희” “굳게” 같은 말을 반복하고, “믿지” “서지” 이렇게 뒷 글자가 같은 말들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굳게 믿지 않으면 먼저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740년 전쯤, 기원전 735년경에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이 연합해서 남왕국 유다에 쳐들어왔습니다.
원래는 하나였다가 솔로몬이 죽은 다음에 갈라져 나간 북왕국이 다른 세력을 끌어들여 형제 나라인 남왕국을 정복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 때 선포되었습니다.

적군이 쳐들어오자 유다의 백성들은 크게 동요합니다.
본문 앞의 2절을 보면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절이 ‘왕과 그의 백성이 힘을 합해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라’ 하였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흔들리는 백성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왕이 힘썼더라’고 하였더라면 아하스는 참 훌륭한 왕이라고 칭송을 받았을 텐데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왕이 앞장서서 흔들렸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렵고 힘들 때, 위험할 때 하나님을 찾아야합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고 가까이 가게 하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역대하 29장 22절을 보면 아하스 왕은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곤고할 때 다른 데서 도움을 찾으려하지 말고,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고 하나님을 열심히 찾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하스 왕은 한편으로는 전쟁에 대비합니다.
3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사야에게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 있는 아하스 왕을 만나라고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윗못 수도 끝”은 수원지를 말합니다. 예루살렘이 포위되면 제일 큰 문제가 식수 공급입니다.  아하스 왕은 이 문제에 대비해서 수원지를 점검하러 나간 것입니다.

아하스 왕은 다른 한편으로는 외교를 펼칩니다.
아람과 북왕국 이스라엘의 연합군이 쳐들어온 일은 열왕기하 16장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 보면 아하스 왕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냅니다. 
열왕기하 16장 7절을 보면  아하스 왕은 앗수르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하건대 올라와 그 손에서 나를 구하소서(왕하 16: 7)

비굴하게 굽신거렸습니다. 저자세 외교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하스 왕은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바칩니다.

이사야는 아람과 이스라엘이 쳐들어오지만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6절을 보세요. 아람과 이스라엘의 연합군은 아하스 왕을 쫓아내고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앗수르에 대항하는 동맹을 형성하려고 하는데 아하스 왕이 말을 듣지 않으니까 자기들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사람을 왕으로 세우려고 한 것입니다.
이 다브엘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다윗의 혈통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유다는 다윗 혈통의 나라입니다.  역대 왕들의 이야기를 적은 역대상하는 다윗 혈통이 아닌 북왕국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아예 적지 않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다윗 집안이 아닌 사람이 왕이 되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전합니다.
아하스 왕에게 그들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7b)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곧 패망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서 굳게 믿지 아니하면 굳게 서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지 못한다는 것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안전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아하스 왕은 온갖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리고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한 왕’(대하 28: 19)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게 한 왕’(대하 28: 25)라는 불명예스러운 평가를 받게 됩니다.
자세한 것은 역대하 28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나라가 하나님을 굳게 믿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고 힘써야합니다.
북한 핵 문제가 위협이 되고 있는 지금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굳게 믿지 않으면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하고 그 다음에 개인적으로도 바로 서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이사야서 7장은 이사야의 두 번째 예언의 시작 부분입니다.
이사야는 1장에서. 6장까지 유다 민족에 대한 책망과 약속을 선포합니다.
이어 7장에서 12장까지 임마누엘과 메시아 왕국에 대한 예언을 선포합니다.
메시아와 관련된 중요한 예언들이 이 부분에 많이 모여 있습니다.
7장 14절에서는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와 같이 동정녀 탄생을 예언했습니다.

9장 6절에서는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1장에서는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메시아가 다스리는 세계의 평화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를 ‘임마누엘의 책’이라고도 합니다.
이와 같이 메시아에 관련된  예언이 집중적으로 선포되는 부분의 앞에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는 말씀이 있는 것은 ‘너희가 믿지 않으면 메시아의 예언이 이뤄지는 것을 체험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임마누엘의 은총,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체험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베푸시는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은혜 속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큰 위기 앞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조용함을 누리게 됩니다.
굳게 믿으면 아무리 강한 세력이 나를 괴롭혀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나를 위협하는 세력들을 연기 나는 부지깽이 그루터기로 여길 수 있게 됩니다.
연기 나는 부지깽이 그루터기들은 얼마 안 있어 꺼지게 됩니다.

스코틀랜드에  존 녹스(Johm Knox 1514~1572) 라는 종교개혁자가 있었습니다.
녹스는 매리 여왕에 맞서서 개혁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녹스의 개혁운동이 본격화되자 매리 여왕은 녹스를 소환했습니다.
이 매리 여왕은 ‘피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염려했는데 녹스는 당당하게 소환에 응합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나는 화난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지만 두렵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반대로 매리 여왕은 무엇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교회의 역사에 전해지는 유명한 말인데‘나는 만 명의 군대보다 녹스 한 사람이 두렵다.’고 했습니다.

교회도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합니다.
정치가들이, 지도층이 ‘우리는 교회가 두렵습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인들이 많아서, 재정적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강한 영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세 가지가 있다고들 말합니다.
하나는 정치가들이 국민을 염려해야 하는데 반대로 국민이 정치가들을 염려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남한이 북한 핵을 염려해야 하는데 다른 나라들이 더 염려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하나, 이것이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인데 교회가 세상을 염려해야 하는데 반대로 세상이 교회를 염려하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세 번째, 교회가 세상을 염려해야 하는데 반대로 세상이 교회를 염려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고 동시에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가리는 일입니다.

조금 전에 저는 세상이 교회가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교회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습게 여깁니다. 얕봅니다.
교회 안에 기도가 살아나고, 예언자적 기능이 살아나고, 교회가 개혁의 모범을 보일 때 세상이 교회를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굳센 믿으면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녹스의 이야기입니다.
루너와 더울어 개혁운동의 쌍벽을 이루고 있는 칼빈은 그가 살고 있는 제네바를 신정도시로 만들려고 힘썼습니다.
개혁자 녹스는 이것을 본받아서 자기의 조국 스코틀랜드를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힘썼습니다.
특히 교육을 강조해서 스코틀랜드를 교육과 대학교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아하스와 대조가 되는 왕이 있습니다.
유다의 4대 왕 여호사밧입니다.
여호사밧은 아하스보다 120년 전 쯤에 유다를 다스린 왕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잘못한 일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 왕과 손을 잡았었지요.
그러나 백성들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힘쓴 왕입니다.
그리고 선한 정치를 하기 위해서, 특히 재판관들이 공정한 판단을 하도록 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여호사밧 왕이 재판관들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 법관들과 정치가들이 꼭 기억해야 할 말입니다.

너희가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여호와를 위하여 할 것인지를 잘 살피라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심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대하 19: 6~7)

너희는 진실과 성심을 다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라(대하 19: 9)

이런 왕 밑에서 유다는 강대해졌습니다.
성경은 여호사밧 왕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왕’이라고 좋게 평가하고 있습니다.(대하 20: 32)

여호사밧 왕 때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이 쳐들어왔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이 모양으로 늘 전쟁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인사를 할 때도 ‘평화!’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히브리말로는 ‘샬롬!’이지요.
‘샬롬’ 이 인사말에는 ‘모든 좋은 일이 당신과 함께 하기 바랍니다.’ 하는 축복의 기원도 있지만 ‘제발 전쟁이 좀 없었으면!’ 하는 기원도 들어 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여호와 낯을 향하여 간구합니다.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합니다.
여호사밧 왕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역대하 20장 12절입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그 다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여러분,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오직 주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드고아 들판에서 싸움이 벌어집니다.
역대하 20장 20절의 말씀입니다.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그 다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다 같이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다시 한 번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아하스 왕과는 반대지요. 오늘 본문 다음에 이어지는 12절을 보면 아하스 왕은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합니다.
말을 돌려서 했지만 ‘나는 여호와를 신뢰하지 못하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굳게 서게 될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들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형통할 것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적을 향하여 행진하는데 역대하 20장 21절을 보세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진순서를 짭니다.
노래하는 자들을 택해서 예복을 입게 하고 앞장서게 합니다.
전투하는데 군악대가 앞장 서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까?
군악대는 아예 전투에 참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었습니다.
찬양대였습니다. 여기 찬양대 대원 여러분, 대 성전에 입당하는 일에 앞서시기 바랍니다.
예복 입은 찬양대가 앞에서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이 이상한 싸움에서 여호사밧의 군대가 이기게 해 주셨습니다.
적군은 전멸 당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찬송가 397장을 불렀는데 이 찬송의 후렴은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그야말로 믿음으로 이겼습니다.
전리품을 거두는데 어찌나 많았는지 사흘 동안 거둬들였다고 했습니다.
사흘 동안 전리품을 거둬들이고 넷째 날에 여호와를 송축했습니다.
그 송축한 곳을 브라가 골짜기라고 했습니다. ‘송축의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는 곳이 브라가 골짜기, 송축의 골짜기가 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위태로웠던 곳이 하나님을 크게 찬양하는 곳이 되게 하기 바랍니다.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분단의 현장인 휴전선이 브라가 골짜기, 송축의 골짜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돼지 치던 움막들이 있던 이 곳에 저렇게 아름다운 대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우리는 이 곳을 브라가 골짜기,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하늘에 메아리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3월 27일 입당예배는 브라가 축제, 송축의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뒤집으면 ‘너희가 굳게 믿으면 너희는 굳게 서게 된다.’는 것이 됩니다.
아하스 왕은 믿지 아니해서 서지 못한 왕이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굳게 믿어서 굳게 선 왕이었습니다. 
아하스 왕이 보여준 불신앙의 못난 모습을 따르지 않고, 여호사밧 왕이 보여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모습을 따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9절 뒷부분을 다시 봅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중요한 말은 물론 ‘믿는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굳게”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믿는데 굳게 믿어야합니다.
약하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형식적으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뜨뜻미지근하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믿는 둥 마는 둥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와서는 믿고, 세상에 나가서는 믿지 않는 척 해서는 안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보다 굳게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더 큰 어려움을 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굳게 믿지 못하는 것은 믿지 않는 것보다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일제 시대 때 일본 사람들이 교회를 심하게 박해했습니다.
이 때 굳게 믿는 사람들은 타협하지 않고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굳게 믿지 못한 사람들은 믿음을 버렸습니다. 타협했습니다. 변절했습니다. 
요즘 시작된 과거사 조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굳게 믿어야 합니다. 
‘쎄게 기도한다’는 말이 있지요. 우리는  ‘쎄게’ 믿어야합니다. 
확실하게 믿어야합니다.  뜨겁게 믿어야합니다.  한결같이 믿어야합니다.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고백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잔 주간 새벽기도회에서 모든 성경은 기록된 배경이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구체적인 삶의 정황 가운데 주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신약성경은 모두가 심한 박해를 받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신약성경을 ‘생존의 수사학’이라는 말로 요약하는 성경학자도 있습니다.
심한 박해 속에서 신앙공동체로서 생존하기 위한 기록들이라는 것입니다.
심한 박해 때문에 낙심한 성도들, 믿음을 버리는 성도들, 배교하는 성도들에게 ‘굳게 믿으시오!’ ‘굳게 믿으시오!’ 하는 것이 신약성경입니다.

아하스가 그래도 유다의 왕입니다.
왜 믿음이 없었겠습니까? 왜 하나님을 몰랐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왜 몰랐겠습니까?
다만 그에게는 굳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모양으로 흔들렸습니다.
믿음이 흔들리면 다른 것들도 흔들립니다.
건강도 흔들립니다. 사업도 흔들립니다. 가정도 흔들립니다. 나라도 흔들립니다.
아하스는 나라를 흔들리게 한 불행한 왕이 되었습니다.

예언자들은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고난의 예언자, 에스겔은 환상의 예언자, 호세아는 사랑의 예언자, 요엘은 성령의 예언자, 아모스는 정의의 예언자, 나훔은 복수의 예언자입니다.
전통적으로 확립된 이름은 아니지만 요나는 고기뱃속에 들어간 예언자, 하박국은 질문의 예언자, 학개는 성전 재건의 예언자, 이런 별명을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사야는 이와 같이 믿음을 강조했기 때문에  ‘믿음의 예언자’라는 별명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후기 문서 예언자들 가운데 제일 먼저 예언활동을 한 사람은 아닙니다.
제일 먼저 예언활동을 한 사람은 아모스입니다.
그럼에도 이사야서가 후기 예언서들 가운데 제일 앞에 있는 것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믿음이 제일 중요하다,’ ‘믿음이 기초이다,’ 이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굳게 믿어야 굳세게 살 수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지요. 선다는 것은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안전하게 지켜 주신다는 뜻입니다.
굳게 선다는 것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굳게 믿어, 뜨겁게 믿어 원하시는 것이 다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기 바랍니다.

굳게 믿어 굳게 서고, 원하는 것을 다 이루고, 그리고 믿음의 사람으로 널리 알려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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