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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장애물을 극복하는 믿음 (막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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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영무 목사

  장애를 뛰어넘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우리에게 훈훈한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근래 한국을 방문해서 많은 화상 환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청년 조엘 소넨버그(Joel Sonnenberg, 1977~) 입니다. 그는 생후 20개월 때 끔찍한 교통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문드러지고 형체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50여 차례의 엄청난 수술 끝에 겨우 얼굴에 흔적을 찾을 수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장애 앞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조엘은 고등학교 때 축구선수를 지냈고 전교 학생회장도 지냈습니다. 이제 그는 20대 젊은이로서 세계의 화상 환자들에게 용기와 도전을 주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영등포에 있는 화상전문병원을 방문해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분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우리 교회와도 관련이 있는 준이 어린이를 방문해서 사진도 찍고 개인적으로 격려하는 내용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었습니다.

  또 한 사람 장애를 딛고 승리한 인물이 있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 소개된 미국의 에어리어 공대 농구팀의 브랜든 왓킨스 입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선천성 기형아였습니다. 다리 크기가 서로 맞지 않고 제대로 발육하기에 부족한 형편이었습니다. 그는 두 살 때 양쪽 다리를 무릎위로 잘랐고 의족을 댔습니다. 그리고 손가락도 다 사용 못하고 손가락 세 개씩만 사용해서 물건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장하면서 농구선수들을 보면서 농구를 하고 싶단 바램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의족을 단 채 여덟 살 때부터 농구  드리볼을 배우고 슛을 배웠습니다. 왓킨스는 대학에 들어와서 농구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당당히 경기를 뛰고 있고, 슛을 쏘면서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만약 이들이 자신의 육체의 한계를 탓하면서 정상인과 자신을 비교해서 열등감과 좌절 속에서 살아갔다면 그들의 인생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마도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가는 의미 없는 삶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장애의 한계를 극복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더더욱 존경스러운 것은 어쩌면 육체의 장애보다 더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인 심리적인 장애를 넘어선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장애인이야! 정상인과 달라!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나는 팔이 없어 다리가 없어 코도 없어!”같은 심리적인 장애를 넘어섰습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이들이 자신을 둘러싼 정신적인, 환경적 장애 앞에서 열등감과 좌절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것이 육체적인 장애이든, 정신적 장애이든, 환경적 장애이든 그 장애를 딛고 일어서는 자들만이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떻게 장애를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장애물을 극복하는 믿음을 우리는 본문의 한 중풍병자의 친구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풍병은 무서운 병입니다. 뇌출혈, 뇌일혈로 인해 전신에 마비가 오고, 신경이 마비되어 손과 다리를 움직이지 못합니다. 때로는 언어 장애가 와서 자신의 의사를 잘 표현하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반신불수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 어려운 처지입니다. 그런 중풍병을 앓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이런 어둠의 삶, 절망의 삶을 살아갈 때 다행히 그에겐 다정한 네 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중풍병자를 포기하거나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이 네 명의 친구들에게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아들이 계시는데 그 분이 우리 동네인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분 앞에 나아가는 자들은 병자도 치유 받고, 문제를 해결 받고, 용기를 얻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소문을 들었을 때 그들 마음속에는 확신으로 가득 찼고, 그것은 곧 강한 믿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 친구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가면 치료받을 수 있을거야!”라는 믿음을 가지고 일을 곧 실행하게 됩니다. 중풍 병자 친구는 걸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네 명의 친구가 침상을 둘러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가까이 계신 집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그 집 앞에 운집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3절, 4절을 읽겠습니다.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쌔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아멘.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라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데려왔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기에 그 군중이 그들에겐 장애물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이 장애물을 뚫고 나아가야 했습니다. 사실, 그들은 여기서 돌아설 수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우린 할 만큼 다 해 보았다고! 여기까지 데려왔는데 이 이상 어떻게 하냐구”라고 변명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돌아섰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거기서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침상을 메고 지붕위로 올라가, 지붕을 뚫고 친구를 예수님 앞에 내려놓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친구들은 장애물 앞에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장애물 앞에 설 때 스스로 포기하고 좌절하곤 합니다. 그러나 네 명의 친구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장애물을 넘어서 앞을 향해 전진했고, 더 좋은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앞에 놓여진 장애물인 환경적 장애물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안!의 장애물입니다. 할 수 없다는 장애물, 불신앙의 장애물이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의심하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 부정적인 생각, 난 할 수 없다는 생각, 이 불신앙의 장애물을 우리가 깨뜨려야 합니다. 그것을 깨뜨리지 않고는 결코 내 밖에 있는 장애물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장애물에 결코 압도 당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장애물을 승리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존 록펠러(Rockefeller, John Davison, 1839~1937)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일생을 살아오면서 재난이 다가올 때마다 내게 좋은 기회가 되게 하려고 노력했었다”고 말입니다. 인생의 어려움을 오히려 인생에 축복의 기회로 만들려고 기도하고 노력했다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고난이 내게 전화위복이 될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최초의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에드먼드 힐라리라는 사람은 “우리가 진정으로 정복한 것은 에베레스트 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었다”고 말합니다. 우리 자신을 정복하지 않고서는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친구들은 지붕을 뚫고 중풍 병 들린 친구를 침상 채 예수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중풍병자와 그 친구들을 보시고 그들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5절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저들의 무엇을 보셨다고 했습니까?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에 관심이 있으셨습니까? 믿음입니다. “너희가 믿음 있는 사람이냐?” 여기에 주님의 관심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믿음이 있을 때 과연 그 믿음이 큰 믿음이냐, 작은 믿음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하여 의심하느냐, 백부장이나 가난한 여인을 향해서는 네 믿음이 크다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또 예수님 말씀 속에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는 말씀처럼 믿음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 믿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생애 생명과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보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관심은 너희에게 믿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역사를 바꿀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장애물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큰 믿음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역사를 일으키고 장애물을 극복하는 이 친구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첫째는, 주께서 선하신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이 친구들에게는 이 믿음, 즉 친구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데려가기만 하면 예수님께서 뭔가 놀라운 일을 행하실거야, 우리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이 친구를 치유해 주실 거야, 예수님 앞에 가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될 거야란 이 믿음! 이 있었습니다. 이 믿음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예배 나올 때 어떤 기대, 어떤 믿음을 가지고 나오셨습니까? 여러분들이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여러분의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어지고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들이 여러분의 심령위에 임하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전도할 때도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저 사람을 내가 참 좋아하는데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내가 도와줄 능력이 없습니다. 돈을 줄 수도 없고, 능력이 없지만 만약 저 친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면 예수님만은 도와줄 수 있을거야!란 믿음이 있을 때 우린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친구를 설득해서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나오고,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말씀 통해서 용기를 얻게 하고, 소망을 얻게 하고, 문제를 치유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이 없으면 전도할 수 없습니다. “오늘 같이 추운 날, 아이쿠! 나 하나 고생하면 되지, 친구까지 고생시킬 것 뭐 있어, 나는 성가대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가지 이런 날은 좀 안가고 싶어” “아이쿠 영신교회 건축하느라고 복잡한데 거기 괜히 데려갔다가 건축헌금 내라고 하면 내 친구 스트레스 받게 할 것 뭐 있어! 나 하나 받으면 되지!” 이런 생각이 있으면 전도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능하시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시기에 내 친구를 그 분께 인도하면 분명히 예수님은 그에게 좋은 일을 행하실거야, 그에게 희망을 주실거야란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전도하고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 나올 때 언제 나 희망을 갖고 나오셔야 합니다. 기대감과 희망을 갖고 나오셔야 합니다. 오늘 주님이 내 인생에 어떻게 역사하나 하는 믿음을 갖고 나오셔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앞에 나오면 좋은 일이 생기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생이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장애를 극복하는 믿음은 합심하는 믿음입니다.
  오늘 네 명의 친구들은 마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중풍병 들린 친구를 침상에 누여서 들고 오는데 행여라도 네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바뀌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큰 일 납니다. 네 모퉁이를 네 명이 다 들어야 하는데 한 사람이라도 생각이 바뀌면 안 됩니다. 그들은 마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힘을 모았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우리 이제 포기하자, 안되는 일을 왜 하자는거야?”하면 안됩니다. 기적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 네 명은 끝까지 하나가 되었습니다. 힘을 보탰습니다. 그랬을 때 중풍병 친구가 예수님을 만나고, 죄를 용서받고, 오히려 자기가 누워있던 침상을 들고 일어나서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며 걸어 나오는 축복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마음을 합할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에서는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쓰니 거기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랬기에 그들이 방언을 하고 놀라운 기적을 행한 것입니다.
  마음을 합하여 기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에 보니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에스더도 동족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자기 시녀들과 함께 마음을 합하여 기도했습니다. 그 지역에 살고 있던 모든 유대인들에게 요청을 해서 그들이 금식하며 마음을 합하여 기도할 때, 모든 유대인들이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합한다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우리 영신교회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고 힘을 모으니 이렇게 건축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지 않습니까? 앞으로도 뜻을 모으고, 힘을 모으며 이 건축이 완공될 때까지 하나님이 지키시고 도우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하나 되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합심기도는 바로 기적의 원인이 되기에 그렇습니다. 

  어떤 과학자가 쓴 글에서 기러기들이 날아가는데 브이자로, 떼를 지어 날아가는 이유를 밝혀 놓은 것을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이유는 그것이 바람의 저항을 가장 적게 받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브이자로 날아가다 보면 앞에 있는 기러기가 날개 짓을 하는데 뒤에 있는 기러기는 그 날개짓의 바람의 영향을 받아서 30프로의 힘만 들이면 쉽게 같이 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먼 거리 수천리 길을 겨울을 피해서 여행을 해도 전혀 피곤하지 않다고 합니다. 서로 날개짓으로 바람을 일으켜서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놀라운 원리입니다. 그리고 앞에 가기만 하면 힘드니까 서로 앞, 뒤를 바꾸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뒤에 있는 기러기는 까옥 까옥 우는데 그것은 앞에 있는 기러기를 격려하는 의미랍니다. 그들이 마음을 합해서 함께 날개짓을 하고 함께 떼를 지어 여행 할 때 그들은 쉽게 여정을 마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힘을 합할 때 그것은 간단한 일이 됩니다.

  어떤 분이 말씀하시길, 말이 수레를 끌 때, 말 한 마리가 끌 수 있는 양은 2톤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두 마리의 말이 함께 수레를 끌 때 끌 수 있는 짐의 양은 무려 20톤이라고 합니다. 혼자와 둘은 비교가 안됩니다. 두 사람이든 세 사람이든 우리가 마음과 뜻을 모으는게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합심된 네 친구의 믿음이 중풍병자에게 놀라운 치유를 선물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장애물을 극복하는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능력은 사랑의 능력입니다. 가장 위대한 능력은 사랑의 능력입니다. 사랑보다 강하고, 위대한 것, 사랑처럼 희생적인 것은 없습니다. 아가서 8장 6절에 보니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며”라고 했습니다.
  네 명의 친구들이 친구인 중풍병자를 데리고 올 때, 그들 안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참 간곡했습니다. 그 친구를 위한 수고, 그 친구를 위한 시간, 그 친구를 위해서는 어떤 것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은 아까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장 소중한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6절에 보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행동하게 만들고, 희생하게 만들고, 인내하게 만들고, 뭉치게 만들고, 소망을 가지게 만듭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참 뛰어납니다.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고, 인내하고, 참고 견디는 것을 보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영화 ‘말아톤’에서의 초원이 엄마, 그 자폐아인 아들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그것을 비판적으로는 집착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위한다면 그 엄마는 가릴 것이 없었습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든답니다. 사랑에 빠지면 사람이 물불을 안 가린답니다.

  몇 일 전의 기사를 보니 사랑하는 사람의 뇌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하고는 다르답니다. 사랑하는 삶의 뇌가 건강해지고, 활성화된답니다. 사랑하면 예뻐진다는 것이 과학적인 근거가 있답니다. 갑자기 예뻐지는 사람은 분명 부부의 사랑이 돈독해진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건강하답니다. 사랑하면 장수 한답니다. 사랑은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기적을 일으켰고 장애물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이 땅에 오셔서 그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대신 죽으시고 갖은 어려움을 당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이렇게 놀라운 것입니다. 아마 이 친구들도 사랑이 없다면, 장애물 앞에서 포기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랑이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령 속에 주님을 향한 사랑,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향한 사랑, 우리의 가족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은 귀하고, 우리 삶에 활력을 줍니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기적을 일으키고 장애물을 극복하게 했던 것입니다.

  네 번째로 장애물을 극복하는 데는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 있습니다.
  4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습니다.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아멘.
  여러분! 이런 장애 앞에서 남의 집 지붕을 뜯을 생각을 했다는 것조차도 놀라운 일입니다. 더구나 지붕을 뜯는다는 것은 얼마나 실례가 되는 일입니까? 만약에 누가 여러분 집의 지붕을 뜯고 내려온다면, 기절초풍 하지 않겠습니까? 지붕을 뜯는 수고, 지붕을 뜯는 일로 인해서 받을 비난과 비판, 물질적인 손실까지도 그들은 감수 했다는 것입니다. 이 중풍병자를 위한 그것이 바로 이 일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주님에게 가면 이 형제를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그 일을 감내하게 했던 것입니다.

  특별히 팔레스타인 지역의 지붕은 우리하고는 구조가 다릅니다. 그들은 대게 단층구조로 되어 있고, 지붕은 우리처럼 콘크리트로 된 형태가 아니고 소나무를 얽어 진흙을 바른 형태입니다. 또 지붕위에 올라갈 수 있도록 옆에 계단이 있습니다. 그들은 침상을 들어 메고 계단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어낸 것입니다. 아마도 먼지가 나고, 흙이 떨어지고 보통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그런데 그들을 그것까지라도 감내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장애 앞에서 포기했다면, 이런 기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장애 앞에 있을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국 매릴렌드주에 살고 있는 데이빗이란 농부가 있었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산에 갔다가 금빛 나는 돌을 발견했답니다. 가만히 보니까 금맥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땅을 팔고 돈을 구해서 그 산을 샀답니다. 그리고 채굴하는 기계를 사서 채굴했는데, 처음에는 꽤 많은 금이 나오기 시작했답니다. 빚도 갚고 돈을 벌겠다 했더니, 그만 금맥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금맥이 좀 내려가다가 끝나버린 것입니다. 파고 또 파도 금이 안 나와서  채굴기계와 광산을 고물상에게 다 팔고 떠났답니다. 고물상 아저씨가 사고 보니 채굴 기계가 쓸모없었답니다. ‘이왕 산 것 밑져야 본전이니까 나도 한번 채굴이나 해볼까!’해서 채굴기사를 구해서 채굴을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부터 딱 1m를 파고 들어갔더니 금맥이 터진 것입니다. 엄청난 금이 매장돼 있어 갑자기 떼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데이빗이란 사람의 마음이 편안했겠습니까? 가슴을 치며 눈물 흘리며 후회 했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의 구호가 '1m'가 됐답니다. 그 1m만 더 팠으면 팔자를 고쳤는데....  1m에 한이 맺혀서 그가 ‘1m철학’을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할일이 없어서 보험업을 하게 됐는데, 보험을 하다가 장애에 부딪히고, 잘 안 되고 어려우면 그는 늘 ‘1m’를 생각 했습니다. ‘한 번 더 도전해 보자, 한 번 더 나가보자, 한 번 더 해봐야지’ 이래서 ‘1m'를 더 나가니까 무엇이든지 되더랍니다. 그는 보험업계의 큰 인물이 되고, 연봉이 백만 달러가 넘는 보험업자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까? ‘1m'만 더 파보시길 바랍니다. 한 걸음만 더 나가 보시길 바랍니다. 그곳에 반드시 길이 있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보니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고린도후서 4장 8절을 보니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마지막 승리자가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옛날 한 나라의 왕이 전쟁에 나가서 전쟁을 했는데, 전략을 잘못 짜서 크게 패배 했습니다. 자기 혼자라도 살려고 도망치다가 피곤해서 어느 동굴에 들어가서 은신하고 숨어 있었습니다. 가만히 앉아 생각에 빠져 있는데, 거미 한 마리가 동굴 입구에 거미줄을 치는데, 이쪽에서 저쪽으로 뛰어가서 거미줄을 쳐야하는데 번번이 실패 하더랍니다. 뛰어 내리면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수십 번 수백 번 계속 도전하다가 마지막에 성공해서 거미줄을 치더랍니다. 왕이 그것을 보고 손바닥을 치며 ‘바로 이거야 이 거미에게서 배워야지! 한번의 실패 때문에 좌절하면 안 되지’하고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는 나가서 흩어진 패잔병들을 모아서 새로운 전략으로 전쟁을 치렀는데, 극적으로 승리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포기 하면 인생은 더 이상 앞을 향해 나가지 않습니다. 오늘 중풍병자의 친구들처럼 장애물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역사를 일으키고 장애물을 극복하는 믿음은 장애물너머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우리 앞에 장애물이 있어도, 사람들이 모여 있어 갈수가 없어도, 저 아래 계신 예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이 장애만 뛰어넘어 나가면 예수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축복을 준비하고 계시는데, 내가 포기하면 안 되지! 앞을 향해 나가야지!’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우리의 인생을 승리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보니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 재난이 있습니까? 고통이 있습니까? 질병이 있습니까? 그것이 육체적, 심리적, 환경적 장애이든지 합심하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앞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감으로 인생의 승리자가 되고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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