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으라 (행 13:42-52)

  • 잡초 잡초
  • 536
  • 0

첨부 1


-- 설교 : 한용근 목사

  여러분은 바람이 가득 들어 있는 풍선이나 공을 물에 밀어 넣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러면, 그 풍선이나 공은 어떻게 됩니까? 밀어 넣고 또 밀어 넣어도 또다시 물위로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풍선이나 공을 물 속에 집어넣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그 속에 들어 있는 바람을 빼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도 이와 같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분의 크신 은혜 아래 잠겨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문제는 마치 풍선이나 공  속에 들어 있는 공기와 같습니다. 공기를 불어 넣으면 넣을수록 풍선과 공은 점점 더 물 속으로 잠기는 것이 어려워지고 반발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가진 믿음의 문제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집어 넣어야할 물이 하나님의 은혜라면 공과 풍선은 우리 자신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의 온전한 은혜 아래 있기 위해서는 우리를 부풀리고 있는 우리 속에 있는 바람들을 빼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바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사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수없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인생의 길이 열리고 참된 복을 누리가 기쁨의 삶을 살게 되는지에 대해 이미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였을 때 그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분의 유일하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그가 십자가에서 그토록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성경은 이곳저곳에서 이미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는 것이 인생의 마침이 아니라 그 후에 또 다른 준비된 세계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우리들에게 인간이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대부분은 물 속에 완전히 들어가지 못하고 아직도 헛된 인생의 바람이 가득 들어 있어 물에 떠 있는 풍선과 같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생각을 풍성에 바람을 넣듯이 불어 넣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참된 생명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말씀 앞에 두면서 자신의 경험이라는 인생의 꼬리표를 계속해서 리플을 달듯이 달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진실로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답을 주지 못하는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선하신 의도에 순종하려고만 하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마음에 계속해서 빼지 못한 바람이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의문이 일어난다면 이미 믿음의 삶을 신실하게 살고 있는 믿음의 조상들을 보아야 합니다.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죄의 문제와 교만함의 문제와 인생의 가야할 길을 몰라 방황하던 인생들이었습니다. 이들 역시 똑같은 삶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삶의 문제를 가지고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새롭게 되었고, 변화되어 기쁨으로 인생을 살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제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대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사울처럼 말씀을 알면서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려는 고집과 불순종으로 계속해서 인생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있었습니다. 둘째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불신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약속을 붙들지 않고, 의심하였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40년 동안 수고했고, 땀을 흘렸고 노력했지만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광야에 머물다가 그곳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좋은 계획을 믿어야 합니다. 세 번째 사람은 예수님을 만난 젊은 청년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나와서 “내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의 질문은 인생의 궁극적인 해결책에 대해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네가 가진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내 제자가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인생의 본질적인 답을 얻었습니다. 영생의 문제를 질문했던 그 답은 바로 예수님을 좇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너무나도 가진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가진 것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 인생에서 버릴 것이 너무나도 많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와 명예에 만족하여 그가 찾아 헤매던 영생의 길을 버리고 세상을 향해 나갔던 것입니다. 인생에서 너무 가진 것이 많아도 주님을 따르기가 힘들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르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자신 속을 채우고  있는 헛된 바람을 빼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의 말씀을 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바울과 바나바 선생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자 그곳에 있는 이방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인 반응이었습니다. 바울선생의 설교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구약에 약속한 다윗의 후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을 통해 우리는 죄 사함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핵심적인 설교였습니다. 우리 38절과 3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할렐루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죄에서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누구도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저 하나님 나라에 한 발자국도 들어 놓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비시디아의 안디옥 회당 사람들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메가톤급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구약을 통해 하나님께서 제시하셨던 새로운 하나님의 약속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 약속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요 그분의 부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구약의 약속이 자신들 눈앞에서 완전히 성취되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어느 누가 큰 은혜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말씀이 마치자 회당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며 계속해서 말씀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아쉬워하며 다음 안식일에 또 와서 말씀을 전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 다음 주가 되었습니다. 44절 말씀에 보면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단 한번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온 성이 말씀을 듣고자 모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참으로 은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이 43절에서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고 권면한 말씀처럼 그들은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은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도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은혜 아래 있는 사람들이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복음의 소문을 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만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소문을 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어 보라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권면하고 전도하였던 것입니다. 마치 빌립이 예수님을 처음 만나고 기쁨이 넘침으로 그 친구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고 말한 것처럼 그들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친구들과 동료들과 친척들과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라고 전파하였던 것입니다. 이들로 인해 다음 주 안식일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던 것이니다. 생각지도 않은 수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였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사람들처럼 해야 합니다. 복음을 끊임없이 전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열심이 있었으면 그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조차 말씀을 들어 보려는 말씀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이 생겼겠습니까?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를 전혀 들어 보지 못한 사람들조차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그 안식일에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가 이 교회에도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 주는 마침 친구 초청 잔치를 여는 날입니다. 우리도 은혜 아래 있는 사람으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비시디아 안디옥의 사람들처럼 초청하고 전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가운데 그 집회를 마땅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45절 말씀에 보면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유대인들의 사명이 바로 선교적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에 전파하라고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이사야 49:6절에는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이방의 빛으로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민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받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민족적 구원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하나님을 민족적인 하나님으로 축소시켜 버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만 구원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방인들은 저주받은 족속이요 버림받은 족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전혀 선교적인 의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전혀 마음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가 성장해야할 이유는 우리 교회의 건물을 세우고 사람과 숫자가 많아지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세계적인 사람이 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세계를 위해 일하라고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어느 지역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 어떻게 일할 것인가를 생각해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목표이며, 여러분들의 인생관이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민족, 자신의 나라, 자기 가족의 구원만을 생각했지 이방인들에게는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세계를 향해 복음을 전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방해꾼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자 그들은 바울을 위협하였고, 비방하였고, 바울이 말할 때마다 반론을 제기하였습니다. 50절 말씀에 보면 심지어 경건한 귀부인들과 성에 있는 유력자들을 선동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였고, 성에서 쫓아내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한다고 해서 복음의 사역이 멈춰지는 것일까요? 이러한 핍박과 고난이 온다고 해서 우리들이 복음 저하는 것을 멈추어야 하는 것일까요?

  46절 말씀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 선생은 복음을 더욱 담대히 말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복음을 듣고 이방인들과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들은 모두 다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알 것은 어려움이 있고, 고난이 있고 여러 가지 반대가 있을지라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얻을 사람들을 보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복음을 막는 것 같고 그들이 넘지 못할 산처럼 우뚝 서 있는 것 같아도 반드시 복음은 흐르는 생명의 물줄기이기 때문에 어떤 뱀과 전갈의 세력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49절에는 분명히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핍박과 방해와 선동과 비방과 비난 속에서도 복음은 계속해서 그 지방에 더욱 넓게 크게 확산되어 갔습니다. 복음의 역사는 어떤 방훼와 비방에서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의 핍박으로 시작된 복음의 확산은 예루살렘을 시작점으로 이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고니온을 향해서 나가게 된 것입니다. 결국, 지금까지 세계의 모든 지역에 복음이 확산되어 가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것을 믿습니다. 우리들이 복음의 약속을 믿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인생을 살게 되면 반드시 인생의 물고는 열리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자신들이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으면 복음의 역사는 일어나고 우리들의 인생의 막혀 있는 모든 문들은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역사는 반드시 확장됩니다. 할렐루야! 따라서, 우리는 우리들이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도록 자신의 믿음을 붙들어야 합니다. 의심하는 영이 사라지고, 불신의 영이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그 언약을 붙들어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고난이 오고 핍박이 오고 성에서 권력자들에의 모략으로 쫓겨났지만 그들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52절에는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과 성령의 충만함을 빼앗기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항상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한 주간도 주님의 이름과 성령의 크신 권능의 손아래서 승리하기 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