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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나라는 우리 가운데 (눅 17: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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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인덕 목사

천국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분명한 대답은 “그렇습니다. 천국은 있습니다”입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는 이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애써 천국과 지옥을 부인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천국이 있음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지금 묻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느냐는 것입니다. 천국이라고 할 때 다른 말로는 하늘나라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다릅니까? 바리새인들은 하늘나라는 죽어서 가는 곳 즉 천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 반면 하나님의 나라는 메시야가 오셔서 지금 자기 나라를 점령하고 지배하고 있는 외국 세력을 다 물리치고 직접 다스리는 나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가 언제 임합니까?” 라고 묻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합니까?” 하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주님은 무어라 대답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이 말씀에 이어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예수께서 열 나병환자들을 고쳐주신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다 할지라도 감사할 줄 모르는 자는 결국 진정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며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자만이 구원의 은혜를 얻게 됨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어 오늘의 본문은 오늘 우리 가운데 펼쳐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예수님이 주신 교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의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주어졌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1장 20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노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로마가 다스리고 있으니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눈으로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말과 우리의 살아가는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지배하실 때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이 그리고 그 사람의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주님의 생각에 맞추고 나의 입에서 감사와 찬양이 흘러 넘치며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주의 은혜를 함께 나누며 사랑을 나누는 삶의 현장이 곧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먼저 주님께 묻고 주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미 앞에서 우리가 함께 살펴본 대로 넘어지게 하는 자를 용서하며 여기에 사랑을 더하고 주님 앞에 이를 위해서 부르짖어 기도하며 주님의 주시는 말씀대로 순종하되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갈 때 바로 그 삶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같은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하늘나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천국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며 오직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그 모습을 이 땅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온전히 다스리시고 주장하시어서 아름다운 사랑이 넘치고 은혜가 넘치도록 만들어 주셔서 마음에는 평안과 기쁨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바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이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감사하기는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들 가운데 그리고 향남 교회 가운데 임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야 말로 이런 용서에 사랑을 더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실천하는 교회요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교회요 연약하고 부족한 자를 붙들어주는 교회요 가난한 자를 돕는 교회요 서로 세워주는 교회요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하는 교회요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헌신하는 교회요 함께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만족하는 우리가 아니라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하십시다. 어떤 사람들의 습관처럼 우리는 모이기를 그치지 말고 그 날이 가까워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입시다”라고 하신 히브리서의 10장 24절로 25절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언제나 변함 없이 서로 마음을 써주며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하며 모이기를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러니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 이것은 곧 그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선을 행함과 가진 것을 나눠주기를 소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사를 기뻐하십니다.” 말씀하셨으니 항상 우리 입술에 찬양이 넘치게 하고 가진 것을 나눠주기에 소홀하지 않은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해 “여러분이 지도자들의 말을 곧이 듣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지키는 사람들이요 이 일을 장차 하나님께 보고드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이 일을 하게 하고 탄식하면서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들이 탄식하면서 일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말씀하셨으니 인도자들의 이끄는 대로 말씀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풍성하게 임할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들의 삶에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들의 생각과 삶을 다듬어 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을 통해 감사와 찬양이 넘치며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나날을 살아갈 수 있도록 더욱 힘서 함께 기도하며 서로 축복하기를 쉬지 않는 교회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인자는 언제 오십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만 그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이 하늘로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집니다.

문제는 그 때가 언제냐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20년 전에 마지막 날이 임한다고 온 나라가 다 떠들썩하게 떠들어대던 다미 선교회로 인해서 온 나라가 다 소란스럽던 때를 기억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언제 주님이 오시는지 정확한 날을 알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주께서는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날과 그 때는 모를지라도 그로 인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 날을 준비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언제 주님이 오실 지는 몰라도 주님이 오시는 그 날 우리가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면 됩니다.

우선은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하고, 이 세대에게 버림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대로 주님이 먼저 많은 고난을 당하고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고 120여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들려 올라가셨습니다. 그때 천사들이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다”라고 증거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다시 하늘로부터 구름 타고 세상에 오시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너희가 인자의 날들 가운데서 단 하루라도 보고 싶어 할 때가 오겠으나,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더러 말하기를 ‘보아라, 저기에 계신다.’ [또는] ‘보아라, 여기에 계신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따라 나서지도 말고, 찾아다니지도 말아라.”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마지막 때에 가짜 선지자들과 가짜 그리스도들이 많이 나타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내가 재림 예수라고 떠드는 사람이 있어도 우리는 그들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신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이요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인자의 날 가운데서 단 하루라도 보고 싶어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시 오실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인자의 날은 이미 주의 재림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저기 재림 예수가 있다고 해도 믿지 말 것이요 누가 내가 그리스도라고 떠들어대도 믿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다 가짜일 뿐이요 우리를 속이려고 덤벼드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주님이 오시는 때는 마치 노아의 시대와 같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방주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홍수가 임하기까지 자그마치 120년 동안 노아가 그렇게 하나님께서 홍수로 이 땅을 멸하실 것이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는 일상적인 생활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지 마지막 심판의 날을 생각지도 않고 노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즐기던 삶의 모든 것은 홍수가 시작되면서 다 그들의 생명과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것은 롯의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날들 동안 그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물론 이들의 삶은 단순한 일상적인 삶이 아니었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셨다”고 했으며 롯의 때에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 오는 저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 크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정상적인 삶이 아닙니다. 각자 추구하는 행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나만 잘 살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는 그러한 사회의 모습, 그리고 온갖 추악한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의 모습이 마지막 심판의 날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얼마나 어지럽습니까? 다른 사람은 조금도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 세상의 모습 속에 우리가 함께 휩쓸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들의 삶은 어떤가 한번 살펴보십시오. 세상에서 먹고사는 일에 매여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행복한 삶을 무엇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고 있습니까?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을 행복한 삶으로 여깁니까? 아니면 세상의 풍요로움을 통해서 행복한 삶을 얻으려고 하고 있습니까? 남들보다 좀 더 잘 살려고 하는데 온통 우리 마음이 쏠려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수고하며 애쓰고 있습니까? 정말 주님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잘 먹고 잘 사기 위해서입니까? 그리고 잘 먹고 잘 살고 남들 앞에 권세를 부리고 어깨에 힘 좀 주고 산다고 한들 그것이 하나님 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오직 그 모든 것들은 다 이 썩어질 몸을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물질 만능주의, 쾌락 만능주의에 함께 휩쓸리고 있지를 않습니까? 바로 노아 시대의 모습이 그러했고 롯의 때가 그러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세상의 타락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그만큼 가까이 왔음을 알 수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아주 가까워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주님이 오시는 때는 너무도 순식간이라서 어디로 피할 수도 없고 아무리 아끼던 것들이라고 해도 하나도 챙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어떻게 이룬 것들인데 제대로 먹고 마시지도 못하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일평생 모은 것들이 순식간에 다 사라지게 되었을 때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뒤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뒤를 돌아보았겠습니까? 그리고 그 결과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도 건지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자기 생명마저도 잃어버리고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지 않습니까?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잠자리에 누워 있을 터이나, 한 사람은 데려가고, 다른 한 사람은 버려 둘 것이다. 또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을 터이나, 한 사람은 데려가고, 다른 한 사람은 버려 둘 것이다.”
이 말씀은 꼭 둘 중에 한 사람밖에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이 임하시는 날에는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을 구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랑을 기다리던 열 처녀 가운데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던 다섯 처녀가 버림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아직 기회가 남아 있을 때 주를 믿고 주님을 내 삶의 주님으로 인정하고 믿고 마음에 영접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순간에는 다시 구원한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아직 함께 살며 함께 잠자며 함께 만나고 함께 일할 때 그들로 하여금 주님을 믿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오실 날이 아주 가깝습니다. 아니 주님이 오시기 전이라 해도 우리 생명의 날이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아직 생명이 남아 있을 때 아직 우리 마음으로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을 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천천히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생명의 날을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마지막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른하늘에 번개 치듯 그렇게 순식간에 주님이 오실 것입니다. 마른하늘에 번개가 칠 것을 누가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그러나 순식간에 번개가 하늘로부터 내려 땅을 사르듯 그렇게 주님이 오실 것입니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말씀에 깨어있어야 하고 기도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세상의 것에 매이는 자가 아니라 언제 주님이 오시더라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야 하고 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마치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처럼 그렇게 우리 안에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은혜로 충만해야 하고 말씀으로 충만해야 하고 사랑으로 충만해야 하고 믿음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전한 믿음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 시체를 파먹으려고 독수리가 몰려들 듯이 우리가 죽어 있는 심령이 되어 있으면 악한 마귀가 배고파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향해 달려들 것입니다.

보십시오.
“형제 자매 여러분 그 때와 시기를 두고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겠습니다.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 때에 아기를 밴 여인에게 해산의 진통이 오는 것과 같이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니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아니하므로 그 날이 여러분에게 도둑과 같이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며 정신을 차립시다. 우리는 낮에 속한 사람이므로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을 가슴 막이 갑옷으로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씁시다” 라고 바울 사도가 가르친 것 같이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깨어있어야 하고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하여야 하며 서로 격려하여 더욱 힘써 모여야 하는 것이요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확신하는 믿음을 간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도 건질 수 없는 세상에 아까운 시간을 바치며 재산을 쌓아두지 말고 하늘나라에 쌓도록 힘써야 합니다. 세상에 쌓으려고 하다가는 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지만 하늘나라에 쌓으면 그것이 우리의 큰 상급이 될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시간을 주님을 위해서 드리며 함께 모여 예배하기를 힘쓰며 우리의 가진 재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인가에 매여 있는 우리가 아니라, 지금 당장 주님이 오시면 큰 일이라고 하며 두려워 떠는 자가 아니라 당장 주님이 오늘 오신다고 하더라도 기쁨으로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그렇게 준비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이미 우리 마음을 하나님이 붙잡고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며 살아가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주님이 오시는 그 날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시는 날에는 단지 이 세상에서 주님의 나라 천국으로 옮기어질 뿐입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 매이지 마십시오. 먹고사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주님을 섬기는 일에 게으르지 마십시오. 얼마나 잘 사느냐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재물 얻을 능도 주님이 주신다고 했고 이 세상의 모든 부도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주시는 분복을 우리는 바랄 것이요 더 이상의 욕심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내게 지금 있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알 때 그리고 그 가진 것으로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크고 더 좋은 것도 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십시오.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먼저 기름을 준비하듯 우리 안에 성령으로 충만케 하십시오. 기름을 준비하는 것은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들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바라는 우리이기에 당연히 주님의 은혜로 우리 마음을 채워야 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야 하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며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제 돌아보십시다. 우리 가운데 연약한 자가 누구인지 살펴서 그들을 붙들어 주십시오. 우리 가운데 실족하는 자가 누구인지 살펴서 그들을 바르게 세워 주시되 사랑으로 감싸주십시오. 믿음에 연약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말씀으로 세워주며 격려해 주십시오. 주님 앞에 나오기를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먼저 주님 앞에 모이기를 힘쓰십시오. 나 홀로가 아니라 함께 예배할 수 있도록 서로를 격려하십시오. 그리고 주님 앞에 빈손으로 나오는 자가 아니라 주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정성스런 예물을 드리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우리 입술에 찬양과 감사가 넘치게 하십시오. 그리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며 서로를 축복하십시오. 그래서 주님이 오시는 그 날 주님 앞에 들림 받는 것으로 그치는 우리가 아니라 다 상급 받고 칭찬 받는 아름다운 백성들 되시기를 바라며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하늘의 보물창고를 여셔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넘쳐나게 복 주시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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