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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을 구할 것인가? (마 6: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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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재신 목사

  매튜헨리라는 신학자는 “기도는 아침의 열쇠요, 저녁의 자물쇠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는 그 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도 기도로서 하루의 첫 시간을 열고 시작하는 여러분에게 주님이 은총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무엇을 구할 것인지에 대하여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며 기도의 제목을 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마 6:31-32절에서 주님은 염려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문제는 인간이 해결해야할 가장 기본적인 문제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일하고 근심하며 고생하고 수고합니다. 아침 일찌기 일어나서 수고의 떡을 먹고 고생의 물을 마시며 살다가 그렇게 늙고 병들고 죽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참으로 가련한 삶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염려에서 벗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것들은 모두 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니 마6:33절에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라고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의 나라는 무엇입니까?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곳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실현되려면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내 안에 주님이 왕으로 계시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나라는 하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내게 오셔서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에서 우리의 염려하는 모든 문제는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구합니까?
  주님을 구합니까? 주님이 들고 계신 온갖 것(물질, 건강, 등등...)들을 구하십니까?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을 구하십시오. 주님 자체를 구합시다. 주님이 내 안에 주인으로, 왕으로 오셔서 다스리시기를 말입니다.

  2. 그의 의를 구하여야 합니다. 
  그의 의란 하나님의 뜻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자체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① 이 세대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롬 12:2절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즉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우리의 마음이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변화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뜻과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성도가 이 세상 따라가다가는 세상 망할 때 같이 망합니다.
  세상 심판 당할 때 같이 심판 당합니다. 이 세상 것과 구별되어질 때 비로소 “성도(聖徒)”가 되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이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문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주문처럼 이 기도문을 외울 때가 많습니다. 주기도 문은 무슨 신비한 힘을 일으키기 위한 주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을 신실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성도가 드리는 차원 높은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이 뜻은 천상에서 완벽하게 이루어집니다.
  천사들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도 남김없이 이루어졌고 또 계속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늘에서 그 뜻이 천사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 처럼 이 땅에서는 바로 내가 그 뜻을 이루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고백인 것입니다.
  어떤 고백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맞추겠다는 고백입니다.
  사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하게 사는 길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상의 행복의 길이요 사람답게 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마26:36-39 절에 보면 예수님도 예수님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서도 기도로 하나님의 뜻에 자기 뜻을 맞추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예수님 되게 만든 결정적 사건은 겟세마네 기도였습니다. 이 기도에서 실패하셨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실 수 없었습니다.
  예수는 더 이상 그리스도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습니다.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구합시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결심을 합시다.
  그의 의 즉 뜻을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쓰여지겠다는 헌신의 결심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자기 민족을 위해  “죽으면 죽으리다” 라고 결심하고 민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를 원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유다인을 구원하는 도구로 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기를 구합시다.
 
  3. 지혜를 구합시다.
  약 1:5절에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지혜란 무엇입니까?
  헬라어 소피아라는 말인데 영어 성경에서는 위스돔 (wisdom)이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슬기로움 또는 사리를 밝게 다스리는 재능” 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많은 지식을 얻게 되는 데 그 얻어진 지식을 삶에 적용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식은 후천적으로 감각 기관을 통하여 얻어지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혜는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면서 타고나든지 아니면 하나님께 받든지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지혜를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처음부터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잘 만나서 왕위에 오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제일가는 지혜를 그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10:16 절에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뱀이 왜 지혜로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최초 인간 아담과 하와를 단번에 유혹하여 넘어뜨렸기에 그를 지혜롭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뱀은 바로 마귀입니다.
  마귀는 얼마나 간사한지 알 수 없습니다.
  악한 쪽으로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악한 지혜를 이기려면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주셔서 저 마귀의 지혜를 이기게 하소서라고 지혜를 구합시다. 이 지혜가 있으면 세상에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사업을 하는데도 이 지혜가 있어야 하고, 장사를 하는 데도 하나님의 지혜가 있어야합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는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119:18)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기이한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
  하나님의 지혜를 구합시다. 하나님의 지혜, 즉 위로부터 난 지혜에 대하여 약 3:17-18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① 성결합니다.
  ② 화평합니다.
  ③ 관용합니다.
  ④ 양순합니다.
  ⑤ 긍휼이 있습니다.
  ⑥ 선한 열매가 가득합니다.
  ⑦ 편벽과 거짓이 없습니다.

4. 시험에 들지 않기를 구합시다.
  눅22:40절에 보면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셔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깨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탁을 순종치 못하고 모두 졸다가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지실 때 무서워서 모두가 다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기도해야할 때 기도하지 못하고 시험에 든 것입니다.
  왜 기도하지 않을 때 시험에 들 수 밖에 없습니까?
  그 이유는 눅21:34 절에서 “마음이 둔해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이 둔해져서 시험에 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 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둔하게 만드는 것들입니까?
  ① 방탕입니다.
  방탕이란 멋대로 살고 싶은 유혹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멋대로 살고 싶어집니까? 그것은 시험에 들 징조입니다.
  ② 술취함입니다.
  술취함의 헬라어는 “메데” 인데 수치를 모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벌거벗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영적인 부끄러움을 모르면 시험에 듭니다.
  ③ 생활의 염려입니다.
  생활의 염려는 육신 우선주의, 물질 중심 주의를 말합니다. 돈이 하나님 보다 귀하면 마음이 그것을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명예와 권세가 하나님 보다 더 우선하면 그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하나의 장식용 도구에 불과합니다.

  5. 무엇을 얻기 위하여 구하지 말고 무엇이 되기 위하여 간구합시다.
  성전 미문의 앉은 뱅이는 베드로에게 몇 푼의 돈을 구했지만 베드로는 예수 이름으로 그를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우리에게 무엇을 얼마나 주느냐가 아닙니다. 우리를 어떤 사람이 되게하느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할 때 무엇을 얻기 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까를 구해야 합니다.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구합시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도구가 되기를 위해서 구합시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를 구합시다.
  하나님의 필요에 응답하는 사람이 되기를 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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