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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흰 옷을 입으라 (계 3: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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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한용근 목사

오늘 처음 교회에 오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지난 주 화요일 새벽에 꿈을 꾸었는데 참으로 부끄러운 꿈을 꾸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의 몇 명의 성도들이 사람들이 그들을 쳐다보고 있는데 옷을 입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두 옷을 벗은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윗도리를 전혀 걸치지 않은 상태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옷을 벗었다는 것조차도 몰랐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쳐다보고 있음에도 전혀 부끄러운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목사로서 그들을 쳐다보기가 참으로 민망하였습니다. 저는 그분들을 보면서 참으로 제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실로 믿음의 옷을 입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실로 벌거벗은 인생, 멸시와 수치의 인생에서 벗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교회에 옷을 입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던 라오디아라는 도시는 로마 시대에 교통의 요충지였고, 모직 공업이 아주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교통과 모직 공업의 발달은 그 지역에 거하는 사람들을 큰 부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그들을 보면 육체적으로는 풍부한 물질을 통해 생활의 풍요함을 누리고 있었지만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모두 옷을 벗은 벌거숭이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이처럼 물질적 풍요 속에서 벌거벗은 믿음과 수치스러운 믿음을 가진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신앙의 모습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신앙은 차갑지도 않고 그렇다고 뜨겁지도 않는 신앙이었습니다. 16절에서 주님은 이런 신앙을 미지근한 신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이 자리에 나타나셔서 “너는 벌거벗은 신앙이다. 너는 미지근한 신앙이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이 미지근한 신앙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신앙의 사람들에게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거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바알과 아세라 신에게도 절을 했습니다. 얼마 전 어느 젊은이가 문어발식 연예를 하다가 붙들려 감옥에 갔다는 이야기가 매스컴에 보도 되었습니다. 유명한 방송국 PD라고 속이면서 A라는 여인과 만나면서 B라는 여인을 또 만났습니다. A 여인의 카드로 B 여인의 선물을 사주었습니다. 이 청년은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를 받아서인지 길을 가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입원해 누워 있는 이 청년에게 A여인과 B여인 말고 또 다른 세 명의 여인이 병문안을 왔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이 청년이 자신의 애인이라고 했습니다. 혹시 우리가 이 청년처럼 문어발식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처럼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미지근한 문어발식 신앙이 된 것은 자신의 벌거벗은 처지를 알지 못하고, 자신이 영적으로 아주 곤고함 속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부자입니다. 나는 부요한 사람입니다. 나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볼 때 이들의 인생은 물질의 풍요함에서 모든 것을 채워진 것 같아도 그 인생이 무엇인가 채워야 하는 곤고한 인생이었습니다. 남들을 도울 수 있고, 남들을 가련하게 그리고 불쌍히 여길 수 있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본인 스스로는 무엇인가를 채울 수 없는 가련한 인생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손에 쥐고 누리고 살고 있지만 영적으로 볼 때 그들은 끊임없이 채워야 하고 노력해야 하는 아주 가난한 인생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의 앞을 보지 못하는 눈먼 인생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화려하고 빛나는 옷을 입고 그럴듯하게 아름다운 장식품으로 자신들의 몸을 둘렀지만 영적인 눈으로 볼 때 그들은 전혀 옷을 입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벌거벗은 인생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성경에는 이런 사람 중에 아주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솔로몬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세상에서 가장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살면서 한 가지 결심을 한 것이 있었습니다. 전도서 2:1절을 통해 우리는 그이 결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자, 이제는 쾌락을 누리리라. 그래서 내 인생을 마음껏 즐기리라”(현대어 성경). 그의 결심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부와 명예와 권력을 통해 세상을 살 동안 쾌락을 즐기고, 자신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술이 인생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술을 통해 인생의 즐거움을 찾았습니다(전2:3). 둘째로 그는 사업이 자신의 인생을 기쁘게 할 것 같아서 자신의 사업을 크게 늘렸습니다(전2:4). 자신을 시중드는 노비들이 많으면 좋을 것 같아서 자신을 보호하고 돕고 자신의 몸치장을 하는 일을 위해 많은 노비들을 사들이고 집에서 양육하기도 했습니다. 물질이 많으면 기쁠 것 같고 인생이 소망이 있을 것 같아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소와 양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에게 기쁨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은과 금과 보배를 모으는 취미 생활도 했습니다. 그것 역시 그에게 기쁨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자들이 자신에게 기쁨을 줄 수 있을까 해서 왕비를 700명이나 두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300명의 첩도 두어 1000명의 여인을 통해 자신의 육체와 마음의 위로를 얻으며 기쁨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인생을 참으로 기쁘게 했을까요? 전도서 2:10절에는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인생을 통해 자신의 눈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그의 인생이 행복하고 복된 인생이었을까요? 그는 자신의 인생을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고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2:11).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헛된 인생, 바람 잡는 인생이었습니다. 바람을 어느 누가 손에 잡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의 아주 유명한 고백이 바로 “헛되고 헛되고 헛되며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라는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다윗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처럼 물질적 풍요를 누린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하고자 소원했던 일도 온전히 이루지 못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자식들이 아버지를 대항하여 죽이려고 했고,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침을 흘려야 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동굴 이곳을 저곳으로 떠돌아다니며 추위와 더위와 함께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피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왕비들이 사람들이 보는 대낮에 강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평안보다는 환난이 많았고 고난으로 점철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음이리로다”(시23:1)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의 인생 고백이 완전히 다른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의 중심에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금을 원하실까요? 은을 원하실까요? 아름다운 옷으로 치장된 우리들의 모습을 원하실까요?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은 우리들의 신앙이 벌거벗지 않고 옷을 입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인생의 곤고함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인생의 정신적인 공허와 마음의 우울함에서 벗어나 기쁨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혹시 여러분들의 인생은 곤고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 인생을 열심히 산 것 같아도 무엇인가 비워져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을 찾지 못하고 인생을 그져 앞으로 달려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인생의 가속 패달을 밟고 앞으로 앞으로 달려갔을 때 그 길이 가로 막혀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 그 목표지점이 영원한 멸망이 기다리고 있는 저 불지옥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이 보장 받지 못하는 저 절벽을 떨어지는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바른 이정표를 보고 바른 목적지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90%이상이 꿈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래가 보장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삶의 목표가 없고 삶의 방향이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인생에 바라볼 것이 없는 인생이 바로 눈이 먼 인생입니다. 이런 점에서 라오디게아 교회는 참으로 영적으로 심각한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먹고 살 수 있는 풍요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라고 자신 있게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였습니다. 그러나, 만물의 주인이시며 인생의 주관자이며 우리의 길을 열기도 하시며 닫기도 하시는 인생의 주인 되신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보자마다 “너는 벌거벗었다. 너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다. 너는 곤고한 인생이다. 너는 참으로 불쌍하고 가련한 인생이다. 너는 가난한 인생이다. 너는 인생의 정답을 알지 못하고 자기 멋에 취해서 사는 인생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은 세 가지의 물건을 사서 인생의 곤고함과 벌거벗음에서 벗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사야할 그 첫째가 불로 연단된 금을 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금은 믿음을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세상을 따라서 물질 중심 돈 중심 명예 중심으로 살지 말고 인생의 빛과 어둠과 환란과 평안을 주관하시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참된 부는 보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불로 연단된 아주 강한 믿음의 금을 사서 영적인 풍요와 부유함을 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는 흰 옷을 사라고하셨습니다. 이 흰옷은 우리의 수치를 가려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이루어진 옷입니다. 요한 계시록 22:14절에는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나이 이들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 앞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다시금 주님을 떠났던 인생은 이제 회개의 두루마리를 입어야 합니다. 이 두루마기는 모든 인생의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덮어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와 속죄의 옷입니다. 예수의 피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성도들의 바른 행실입니다(계19:8).

  마지막으로 감겨진 눈을 여는 안약을 사야 합니다. 이 안약을 감겨진 눈에 발라 보지 못하는 영의 눈이 열려 하나님의 나라를 봐야 합니다. 저 이 치료의 안약이 바로 성령님의 역사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라고 생각됩니다. 성령님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요한복음 1:9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영접하는 사람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는 벌거벗은 수치를 면해야 합니다. 인생의 곤고함과 가난함과 눈 먼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신앙의 미지근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바로 2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마음의 문을 열면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중심으로 들어오셔서 여러분들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따라합니다. “주님, 이제 제 마음의 문을 엽니다. 나는 죄인이요 망할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이제 내 죄를 예수님의 거룩한 피로 씻어내어 주시고 주님께서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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