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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3.1절] 참으로 자유하라 (요 8: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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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성철 목사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한복음 8:32, 34, 36)

오늘은 3.1절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역사가들은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해를 아시아의 위대한 자각과 독립의 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 외에도 같은 해 3월 30일 간디의 지도하에 인도가 영국을 향하여 ‘비폭력 무저항운동’을 일으켰고, 중국이 5월 4일 북경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항일시위 운동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3..1 독립만세운동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 구금되었습니다. 이들 중 감리교인이 564명, 장로교인이 2486명이었고, 이들 가운데 목사가 54명, 전도사가 127명, 장로가 67명이었습니다. 특히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가 16명, 천도교15명, 불교 2명이었는데, 기독교 지도자 16명 중 9명이 감리교 지도자였습니다. 기독교는 많은 교회가 불타며, 많은 신앙인들이 희생하면서 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며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3.1 운동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볼 때 교회의 역사적 참여 운동이었고, 교회가 자유를 수호하는 책임을 보인 운동이었고 교회가 민족을 사랑하며 민족의 고통에 참여한 운동이었습니다.
일본은 우리민족의 생존권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기본적 자유를 박탈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식민하에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한 것이 3.1운동입니다. 이 3.1운동의 의미는 한마디로 말한다면 우리민족의 생존권과 함께 자유를 누릴 권리를 선포한 운동이었습니다.

패드릭 헨리는 “나에게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인간에게는 기본적 자유가 있는 데 “언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 요구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축복 중의 하나는 자유입니다. 그러므로 토마스 제퍼슨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동시에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고 했습니다. 이 자유는 어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인간의 귀중한 권리입니다.
자유의 권리를 선포한 3.1독립만세운동의 기념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자유를 바로 누리고 있는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시대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자유하지 못하고 있음을 봅니다. 자유의 환경속에 있으면서도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자유 할 수 있습니까?

참된 자유는 죄에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자유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이 자유 한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못함을 봅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자유롭게 사는 것 같은데 오히려 탐욕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많이 알고 있지만 그 안다는 것이 자기자만과 교만의 종이 되게 합니다. 마음껏 자유롭게 즐기는 것 같지만 실제는 정욕의 종이 되어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사랑의 대상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그 대상을 향한 미움과 증오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살고 있음에도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리고 불안과 두려움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자유롭되 속으로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자유 하되 참 자유가 없기에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죄의 힘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4)고 탄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요8:34)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참된 자유는 죄에서 자유함에 있습니다. 죄의 특성은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와 반대되는 자리에 있으며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요8:42-45)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요8:47)

사람들은 죄의 영향에서 자유하지 못하면서도 자유 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속해있지 못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합니다. 때문에 예수님을 대적한 유대인들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유하지 못한 자신들에 대하여 바로 깨닫지 못하기에, 오히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요8:33)라고 따져 물었습니다.
마귀에게 속해 있는데서 나오는 모든 것은 욕심과 살인의 범죄 역사입니다. 이런 것들을 행함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에 있지 못함은 죄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참 자유는 이러한 죄에서 자유 하여야 합니다.

죄에서 자유를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참 자유란 빼앗는 것도 아니고 쟁취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자유 하게 하시기에 우리는 자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속하게 하시고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속죄물이 되셔서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이 진리를 믿는 데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되고 죄에서 자유케 됩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자유 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 안에 살게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과 사랑 안에서 우리는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비밀스러운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바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이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제자들은 믿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믿고 성령을 사모하고 기다려 성령충만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내적 충만으로 주님이 그들 안에 계시는 확신과 함께 성령께서 그들 내면에 이루어 주시는 참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자유하기에 평화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진 그들은 예루살렘 거리로 나가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바울도 이 진리를 믿고 얻은 자유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어떤 그리스도인이 목사님께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목사님 제 손가락이 하나 없는 것을 아십니까? 저는 본래 도박을 좋아했습니다. 이 도박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박 때문에 아내와 수없이 싸우고 다짐했고 노력했지만 도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밤 비참한 현실 가운데 눈물 흘리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모험과 결단을 하기로 결심하고 부엌에 들어가 칼로 도박하는 저의 손가락을 잘라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주일 또다시 도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죄의 지배아래 있는 인간인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렇게도 끊기 힘들었던 그 버릇에서 한 순간에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그리스도 만이 우리를 죄의 습성과 감정에서 자유하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되십시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심령에 계시도록 하십시오. 그분이 주시는 참 자유를 가지십시오. 그러므로 자유의 평강을 가지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참 자유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자유 하게 하셨으니 우리는 자유한 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유 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 안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더욱 깊이 깨닫는 데서 더욱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은 예수님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아는 것은, 곧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진리를 더욱 깊이 아는데서 우리는 자유를 더욱 크게 누릴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예수님의 삶을 계속해서 알고, 새롭게 그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데서 우리는 참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3장 17절에 보면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계셔야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은 한마디로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곧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제자의 삶에서 우리는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오래 전 태국여행 중 식물농장을 관광하였습니다. 그 농장에서 호랑이와 개가 우리안에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신기하게 여겨 알아보았더니 개와 호랑이는 어려서부터 한우리안에서 함께 먹고 자랐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개가 호랑이보다 나이가 많아 호랑이를 지배하며 자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장한 후에도 개가 먹이를 먼저 먹은 후에 호랑이는 기다렸다가 남은 것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동물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호랑이가 보잘 것 없는 개의 지배하에서 살면서도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위대한 존재입니다. 우리에게는 기쁨이라는 축복이 있고 경건이라는 고귀한 삶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죄의 감옥에 가두어져서 이 모든 축복과 영광을 잃어버리고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죄의 감옥에 가두어져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며 자녀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마치 호랑이가 개의 지배를 받고 사는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는 말씀대로 예수님의 말씀, 그 분의 생명, 그 분의 사랑을 알아 죄의 능력에서 자유하십시오. 그리고 그 진리를 더욱 깊이 깨달아 더 큰 자유의 세계를 경험하십시오. 기도함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을 더욱 깊이 누림으로 더 큰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자유를 전해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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