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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율법이 주는 축복 (롬 3: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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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재명 목사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아주 착한 사람이나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이렇게 표현하곤 합니다.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저 사람은 법 없이는 살 사람이야 하지만 사실 그런 사람이야 말로 법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입니다. 주변에 욕심 많고 악한 사람들에게 많은 불이익을 당할 수 없음에도 나름대로 법이 그를 보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법은 좋은 것입니다. 때론 불편하기도 하지만 국가공동체, 교회공동체, 가정공동체, 회사공동체가 든든히 서가는 기준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법은 긍정적인 느낌보다는 부정적인 느낌이 훨씬 크게 자리 잡고 성경에 율법에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도님들이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기 위해서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과 관계가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원하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나님이 거룩하시기에 우리에게 거룩을 요구하십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율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선할 것을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기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와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고 우리에게 완전 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율법은 바로 하나님의 의의 표현입니다. 우리 피조물인 인간이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율법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롬7:12에 이로 보건데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했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공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며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네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냐” 신10:12-13입니다. 어디 율법뿐이겠습니까? 성경66권 전체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주는 것이요 하나님의 원하심입니다. 그럼에도 성경 속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에 아직도 매여 있다 보면 어린아이입니다. 율법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원하심을 볼 수 있다면 그는 장선한 그리스도인 일 것입니다. 이렇게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될 때 그 마음속에는 언제인가부터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보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느냐가 중요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두 번째 목적은 죄를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법이 없으면 죄가 죄될 수 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하는 법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죄라고 생각하지 않을런지 모릅니다. 법은 무엇이 옳은 가를 선언할 뿐 아니라 무엇이 되었는가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요즘 정치권에서 최고의 이름 중 하나는 보안법폐지입니다. 한쪽에서는 보안법으로 인하여 많은 불 이익을 당했던 분들이 이 법을 폐지해 달라는 것입니다. 또 한쪽에서는 북한에 김정일이가 있고 공산주의가 있는데 보안법 폐지는 위험한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보안법이 그대로 폐지되면 남한에서는 공산주의 활동을 드러내고 해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법이 없으면 죄가 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보여 줍니다. 그래서 율법은 인간에게 죄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그래서 율법은 인간에게 죄를 깨닫게 해줍니다. 그리고 율법은 죄지은 사람에게 죄를 정죄합니다. 그리고는 죄의 울타리에 가두어 버립니다. 참으로 오묘한 것은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율법 앞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율법을 바라보면 볼수록 점점 더 큰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 율법을 알아가고 하나님의 뜻을 알면 알수록 인간이 선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무능한 인간임을 깨달을 뿐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율법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는 해 주어도 그 율법자로 하여금 선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능력을 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민합니다. 잘 믿어 보려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선하신 뜻을 알아보려고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는 미운 오리새끼 같은 자기 자신 앞에 굴복하고 마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 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제겐 주밖에 없습니다. 내안에 원치 않는 내가 있습니다. 살면서 그렇게도 싫어하는 것이 교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직장에 있는 것도 아니고 가정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안에 있습니다. 우리 정도의 사람만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나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고 로마서 7:15절에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결국 율법은 인간의 죄를 지적하며 하나님의 심판대 앞으로 가지고 옵니다. 아! 나는 죄인이구나 고백하는 순간에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하는 사형선고 앞에 우리는 서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사도바울도 이런 불안과 절망에서 몸부림치며 외치지 않습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끌어내며 줄 것인가” 말입니다.
누구도 변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인간은 자기가 저지른 죄의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은 바로 이 율법의 두 번째 목적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19,20절에 보니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합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 세 번째 목적이 연결됩니다.

셋째: 그것은 바로 오늘 본문에서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라고 표현합니다.

21,2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복음의 길을 열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 앞에서 죄인이라고 깨닫는 순간에 절망이라고 느끼는 순간 내게 선한 것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영광스러운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를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도구가 됩니다. 만일 우리가 율법 앞에서 죄를 깨닫지 못했다면 우리는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율법 앞에서 내가 얼마나 무능하고 연약한 인간인가를 깨닫지 못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 하나님이 없는 자로 살았을 것입니다.

이 땅에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나는 선한 일을 많이 했다고 상대적인 의에 빠져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요. 나는 저 사람보다는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의 법 앞에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은 은혜입니다. 예전 전도폭발을 훈련 받은 아내는 현장에서 복음을 제시하는 실습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은 죄인입니다. 예수를 믿어야 그 죄로부터 자유 할 수 있습니다.” 말해도 백이면 백 나는 죄인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죄인임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은혜이자 복입니다.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만 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이 땅에 얼마나 죄를 깨닫고 스스로 해결해 보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름대로 선을 쌓아봅니다. 공덕으로 자신의 죄 씻을려 합니다. 갚아 보겠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제가 설교할 때 언급한 성철스님의 이야기입니다. 고행을 함으로 자신의 죄악을 씻을 려 했다는 것입니다. 좌 불해서 8년을 보내고 16년 동안 솔잎가루와 쌀가루만 먹고 지내고 고행을 했지만 그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자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해방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여기 앉아 있는 성도 여러분들은 몇 명이나 구원을 받을까요? 죄책감에 갈등을 하다가 스스로 해결해 볼 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스스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자살은 마귀역사임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율법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시켜 그리스도에게로 안내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대상에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는 소망을 줍니다. 갈3:24절에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습니다. 몽학선생은 아이가 학교에 사고 없이 오갈 수 있도록 종이나 노예 중에 탁월한 자를 택하여 인도하게 하는 아이의 수행노예입니다. 즉 가이드나 가정교사라 할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오고 가는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안내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바로 율법이 이런 몽학선생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최종에는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 율법의 역할입니다. 다른 길이 없음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죄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그리스도밖에 없음을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대신에 눈을 들어 예수그리스도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대신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보게 합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얻는 의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의니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인간을 굽어 살피셨습니다. 그리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말씀합니다. 인간은 도리어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선언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율법을 행함으로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는 없다는 율법의 선언 앞에 보는 사람이 죄인이 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서보려고 했던 우리의 노력은 철저하게 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율법을 행함으로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는 없다는 율법의 선언 앞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서보려고 했던 우리의 노력은 철저하게 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살아보려 노력하면 할수록 내 안에 있는 육의 본성은 나를 절망하게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절망에 늪에 빠져가는 나를 누군가가 잡아 주었습니다. 그 손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하여 죽으신 주님의 손이었습니다. 이것을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났다고 2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바로 그것을 율법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라 말씀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가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친히 우리의 죄인 된 몸을 대신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율법의 요구를 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율법을 폐하려 함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온전케 함이로다하였습니다. 여러분들과 제가 이루지 못한 율법의 요구를 대신 지시며 십자가에 자기를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지셨습니다. 율법의 눈으로 보면 나무에 달린 자였습니다. 신21:23절에는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니 해가 지도록 나무에 두지 말며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라” 하였습니다. 갈3:13절에서는 바로 예수님의 죽음을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저주를 받은 자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은 다 이루었다 하셨습니다.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일생토록 매달려도 다 이룰 수 없었던 그 무서운 율법의 모든 요구를 주님은 다 이루었다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나를 대신해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이루어 버렸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나에게 결코 정죄함 없네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구원했네 해방 되었네 해방 되었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예수 예수 오직예수 죄와 사망에서 나를 구원했네”

율법을 없애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히 이루어 하나님의 의를 충족시켜 주며 십자가에서 저와 여러분을 대신해서 줌으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버린 것입니다.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그가 친히 우리 운명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저주받은 운명으로 쓰임을 받으면서 처절하게 처절하게 외치며 죽어 갔을 때 바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하여 일생동안 이룰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버리신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제가 해야 할 일은 하나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안 이루어도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공로를 통하여 죄를 용서받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의 소망을 이루며 살아가는 성도가 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주님은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망이 그를 잡아 둘 수 없었다고 행2:24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 하셨습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날 위해 못 박힌 그 손으로 죄악의 구덩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저와 여러분들을 잡아주신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에 매달려 죽어가는 우리를 끌어 올려 주신 것입니다. 살려주신 것입니다. 아! 그랬구나! 나를 죄와 사망의 구덩이에서 끌어 올려 준 그 손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의 손임을 확인하는 순간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에 나의 몸과 마음이 십자가에서 흐르는 뜨거운 보혈로 저와 여러분들의 모든 죄를 씻어 버립니다. 과거의 죄고 씻어 버립니다. 형제의 죄도 씻어 버립니다. 미래의 죄도 씻어 버립니다. 요일1:7절에 말씀과 같이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과 저의 가슴속에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흘러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죄인이 의인이 되었습니다. 죽었던 인간이 영생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제 율법이 내게 요구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모두 갚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이제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 하였구나 하는 감격의 소리를 외칠 수 있는 자 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나에게 결코 정죄함 없네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구원했네 해방 되었네 해방 되었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예수 예수 오직예수 죄와 사망에서 나를 구원했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믿습니까? 십자가를 믿습니까? 그렇다면 예수그리스도 안에 구원받은 자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조금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이제는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났다” 말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십자가의 의입니다. 나를 대신하여 죽어 주신 의입니다. 자신이 없으십니까? 24절을 크게 읽어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은 자 되었으니”입니다. 값없이 공짜로 주셨습니다. 우리를 자기 아들로 삼아 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주시고 의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뿌리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부를 찬송이 있습니다.
“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립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 얻은 성도의 감격입니다. 묻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율법이 여러분의 눈앞에 있습니까?

넷째: 율법은 이미 구원받은 사람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처음 율법은 애굽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고 광야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구원의 조건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에게 주어진 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지키어 가나안에 들어 갈 자격을 얻으라가 아니라 출애굽 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는 바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받은 사람들입니다. 홍해를 건넌 사람들 바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애굽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제 율법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이것을 지켜야 하나?” 무겁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율법은 세상에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있다면 율법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애굽을 나온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다울 수 있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도 내가 못 지키면 하나님이 대신 지켜주시고 이루어 주시면서입니다. 율법의 우산 안에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말씀 안에 사는 것이 큰 복이 되듯 말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도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만이 할 수 있는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혼자 지키려 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손을 잡고 율법을 향해 걸어가십시오. 혼자 힘으로 어렵거든 주님의 보혈의 손을 꼭 잡으십시오. 내가 착해지려 하지 말고 내 안에 계신 주님이 하시도록 하십시오. 율법은 오늘도 우리의 기를 죽이려 합니다. 어떤 무기를 갖고 말입니까? 하지 말라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등등 말입니다. 우리는 하지 말라는 것 신경 쓰지 말고 하라는 것만 보십시오. 두가지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며 거룩히 지키라. 내 부모를 공경하라 입니다. 율법 앞에 지킬 수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지킬 수 있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율법은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그래서 지키지 않아도 되는가? 그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축복의 조건이 됩니다. 신28:1절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면 네게 미치리니”입니다. 슥3:7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율법은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하니 무거운 것입니다. 율법은 축복의 조건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내 율례와 법도와 규례와 계명을 지키면 들어와도 나와도 복을 받을 것이라 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은 나에게 주고 싶은 것이 많으십니다. 말씀대로 살아 보십시오 오늘은 지는 것 같으나 결국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앞에 율법을 두고 말씀을 두고 행하는 자가 되라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축복하고 싶어서입니다. 내 백성에게 복을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율법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자 사랑입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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