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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 위에 감사를 더하라 (눅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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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인식 목사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문둥병환자를 고치신 기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열 명의 문둥병자를 집단적으로 고치신 본문 기사는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둥병은 불치의 병이어서 일단 감염이 되면 집을 떠나서 외딴 곳에가 문둥병자들 끼리 고통과 슬픔을 서로 나누며 지내야 합니다.
  관절이 떨어져 나가고 눈이 어두워져 결국에는 소경이 됩니다.
  문둥병에 걸리면 그것은 서서히 죽어가는 인생입니다.

  본문에 보면 열명의 문둥병자들은 예수님께서 불치의 병을 고치신다는 소문을 듣고 소망 가운데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동네를 지나가실 때 그들은 믿음을 가지고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라며 일제히 소리를 높여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까이 가셔서 안수하거나 어루만지지 아니하시고 "제사장들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제사장은 문둥병자들을 진단해서 격리시키거나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판단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기 위해서 가는 도중에 뜻밖에 문둥병이 사라지고 깨끗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만 다시 돌아와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사례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열 명이 다 고침을 받지 않았느냐 아홉은 어디 갔느냐 너 밖에는 와서 감사할 사람이 없느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예수님께 감사를 드린 사람은 육신의 질병만 고침받은 것이 아니라 마음의 평안과 영혼의 구원까지 얻는 새로운 차원의 더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예화> 어느 교회의 목사님이 하루는 '가장 무서운 죄'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가장 무서운 죄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일까?
      성경을 모독하는 죄일까?
      자살하는 죄일까?' 하고 저마다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주일 아침에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가장 무서운 죄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치 않는 죄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인간이 타락하면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도 모르고, 영광도 돌리지 못하고, 허망하고, 미련한 것에 마음이 어두워진다"고, 로마서 1:21절에 말씀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아는 덕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라고 말씀했는데,
  어느 신학자가 거기에 하나 더 보태서 '감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믿음 위에 감사를 더할 때만 온전한 구원을 성취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저는 한 사마리아인이 예수님 앞에 나와 사례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기사 가운데서 네 가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감사의 내용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예수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고침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가 부족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에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무한대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 능력을 제한하는것은 바로 우리들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적으면 하나님의 능력도 제한하고 우리의 믿음이 크면 문둥병도 고치는 기적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능력의 한계는 곧 우리들 믿음의 한계입니다.

  열 사람이 다 병 고침을 받았지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 사례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아홉 사람은 감사하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면서도 아홉 문둥이와 같이
감사를 잊어버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믿음의 눈을 뜬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신사적인 크리스챤입니다.

  한해 동안에 받은 물질적인 축복과 자녀들과 기업이 잘 되는 등, 우리는 감사할 조건이 너무 많습니다.
  설사 그렇지 못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불평과, 원망을 해서는 안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으니 감사하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나를 격려해 주니 감사하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적인 안식처 내 교회가 있으니 감사한 것입니다.

  예화> 유럽에서 두 척의 배가 떠났는데,
  하나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아메리카에 상륙했고,
또 다른 하나는 금덩어리를 캐기 위해 남아메리카에 상륙했습니다.
  북아메리카에 도착한 퓨리턴들은 인디언들에게서 옥수수 씨앗을 얻어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신앙의 자유를 주신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금덩어리를 캐러 갔던 자들은 감사할 줄도 모르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 오늘날까지도 북아메리카 사람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축복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더 큰 축복이 찾아오는 것을 알고 긍정적인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2. 감사의 대상

  병고침을 받은 열 사람 중 아홉은 그대로 돌아갔지만 오직 한 사람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감사의 대사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상숭배를 합니다.
  헛된 것에 머리를 숙입니다.

  역대하 26:16절에 이하에 보면 웃시야왕은 블레셋 군대와 싸워 승리한후, 교만해졌습니다.
  제단에서 제사드리는 일은 제사장밖에는 못하는데, 웃시아왕은 자기가 분향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기 보다는 자기의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실수를 범할 때에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앞에 감사할 줄 몰라 축복을 얻지 못하고 죄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아람 왕의 군대장관인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와 수종을 들고 있던 어린 계집이 한번은 여주인에게 이스라엘에 가서 기도를 받으면 주인의 문둥병이 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아만은 왕의 친서를 가지고 선물을 잔뜩 싸가지고 이스라엘로 갔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그를 선지자 엘리사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이 엘리사의 집앞에 당도했을때 엘리사는 나오지 아니하고 종이 나와서 요단 강에 가서 7번 몸을 씻으라고 했습니다.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기름을 바르고 축복 기도를 할 줄 알았는데 종이 나와서 말을 전하는 것을 보고 나아만은 자기가 무시당했다고 생각하여 그냥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 때 그의 신하가 말하기를 "요단 강물에 가서 목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까?  그보다 더 어려운 일도 할 수 있을텐데 가십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요단 강물에 7번 목욕했습니다. 그랬더니 문둥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내 병을 고쳐 주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니 내가 돌아가서도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경배하겠다'고 다짐하고 이스라엘 땅의 흙을 잔뜩 싣고 돌아갔습니다.
  그는 자기 나라에 돌아와서도 이스라엘의 흙을 놓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감사의 대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 대상은 절대로 인간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주관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감사의 대상을 분명히 찾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로 부터 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됩니다.

삼중고에 시달렸던 헬레 켈러는 꽃밭에서 향기를 맡으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에게 핸디캡을 주신것을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내가 봅니다.
  세상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내가 듣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불구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감사의 대상은 분명히 찾아서 감사살 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은혜를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감사의 표현

  감사의 표현을 하는 사람이 인간 관계도 좋고, 하나님 앞에서도 더 큰 축복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늘 감사한 조건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과거에 내가 얼마나 고통을 당했느데...'라고 과거를 늘 생각하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벤허라는 작품에 보면 "현재의 축복에 감사하는 자만이 지난날의 고통을 잊을 수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윌리엄 로우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성인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찬양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에 더 좋은 축복을 놓치는 때가 많은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화> 1895년 미국 알라바마 주에있는 목화밭에 벌레가 들끓어 목화가 모두 죽어버리는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 후, 알라바마 주에서는 목화대신 땅콩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커피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목화를 재배할 때보다 몇배의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때 알라바마 사람들은 벌레의 동상을 만들어 세우고 이 벌레 때문에 복을 받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감사하는 언어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내 생활이 어렵다 할지라도 '감사 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표현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언제나 불평과 불만을 얘기하는 사람은 감사의 조건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우리의 표정도 언제나 맑아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의 표현도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맵시도, 제스츄어도 언제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화>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을 지냈던 김활란 박사께서 총장직을 물러난 후 당시 감독이었던 유형기 목사님을 찾아와서 목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63살이었습니다.
63살 된 그에게 감리교 헌법상 목사 안수를 해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에게 평신도로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보잘것 없는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내가 이화여대에서 가르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감사하며 복음을 전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임종하기 직전, 수많은 후배와 제자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여러분이요, 울지 마시오.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이제 또 하나의 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내가 죽은 후에 장송곡을 부르지 말고 할렐루야를 불러주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관 앞에 카네이션을 놓으며 수많은 제자들이 할렐루야를 불렀습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씌여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주일마다 하나님 앞에 나와 감사예배를 드릴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며 그가 더 큰 은헤를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4. 감사의 결과

  한 사마리아인이 예수님 앞에 감사하게 될 때에 그는 육신의 질병만 고침 받은 것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평화가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없으면 온전한 치유가 아닙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몇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 더 큰 축복을 받습니다. 더 좋은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둘째, 성숙한 인간, 원만한 인간이 됩니다.
셋째, 더욱 깊은 관계성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사람은 소외감이나 고독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항상같이 계시는 긴밀한 관계속에서 살아갑니다.
넷째,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넘칩니다.

  하나님 앞에 늘 감사를 돌리심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신 더 큰 축복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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