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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 (엡 4: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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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강석공 목사  | 2005년3월6일 설교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삶의 목적 두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더 잘 알고 더 많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을 성경은 바르게 예배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목적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참 사랑을 배우고 또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삶의 세 번째 목적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닮아가는 것이 바로 그 계획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우리 삶의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우리의 성품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성경은 무엇을 지시하고 있습니까?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정말 귀엽습니다. 그러나 그 귀여운 아이가 전혀 자라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큰 비극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삶의 세 번째 목적은 우리가 성장하여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기를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루 밤 사이에 그리스도를 전부 닮을 수는 없습니다. 나름대로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아니 삶 전부를 바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장하게 하신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도구를 사용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십니다. 비록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도구들이지만...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그 세 가지 도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의 경우를 통해서... 예수님이 고난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이 수치와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해서 예수님이 경험한 것을 우리도 경험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세가지 도구가 우리를 자동적으로 자라게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마음에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지 않으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 첫 번째 도구는 고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기 위해서 고난이라는 도구를 종종 사용하십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편한 상태에서는 믿음이 별로 자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그 결과 우리가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도 바로 그 점을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이 세상은 우리가 편히 쉴 곳이 아닙니다. 여기는 다만 우리가 훈련하고 준비하는 곳입니다. 때문에 고난도 필요합니다. 고난은 마침내 소망을 이룬다고 하지 않습니까? 고난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고난의 목적을 분명히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목적은 우리가 바로 그 고난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아마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바로 전날 밤이었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다음 날 죽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 때 예수님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막 14:36)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면 이것을 가장 먼저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닥친 일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기 위해서 고난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십니다.

  그 두 번째 도구는 시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기 위해서 시험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십니다. 시험은 사탄이 고안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험은 분명히 우리를 해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사탄의 시험까지도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바꾸기에 충분한 능력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시험은 우리로 하여금 선택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사탄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할 것 같으면 사탄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우리는 더욱 더 성장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시험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결코 죄를 범한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면서 세례를 받은 후 40일 동안 광야로 금식하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금식이 끝난 후 시험을 당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시험을 당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시험을 당하는 것이 죄라면 죄 없는 예수님이 어떻게 시험을 당했습니까?

  또 모든 사람이 똑같이 시험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속이려고 우리가 당하는 시험이 다른 사람이 당하는 시험에 비해서 휠씬 더 심한 것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같은 시험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시험은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나이가 아주 많거나 영적으로 아주 거룩하더라도 시험은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삶을 마치는 순간까지 시험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험은 우리에게 있어서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올바른 선택을 했던 예수님의 경우를 기억해야 합니다. 시험은 그리스도를 더욱 잘 닮아가게 하는 디딤돌과도 같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험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테스트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돈 때문에 시험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돈을 놓고 어느 쪽을 더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시험입니다. 나는 과연 무엇을 더 사랑하고 있습니까? 평판과 명성입니까? 재물과 권력입니까?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피할 수 없는 그 시험을 어떻게 해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습니까? 첫 번째 해결책은 좋은 생각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시험은 항상 우리가 그 시험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를 이리저리 흔듭니다. 우리를 조종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결코 두 가지가 동시에 머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시험에 굴복하는 것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시험을 당할 때 저항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항할 것 같으면 그 시험만 생각하게 되고 그 결과 항상 사탄이 이기게 됩니다. 저항하지 말고 그냥 반대 방향으로 가면 된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 해결책은 영적인 파트너입니다. 시험을 이기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그 시험을 공개하는 것입니다. 시험을 빛 가운데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적인 파트너를 구해야 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전 4:9~10) 우리가 겪고 있는 시험에 대해서 말할 것 같으면 상대도 입을 열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도 비슷한 종류의 시험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사도 바울과 같은 위대한 인물에게도 영적인 파트너가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바나바와 마가, 아볼로와 디모데, 디도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삶과 사역에 함께 동참했고 사실 그가 그와 같이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많은 영적인 파트너들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세 번째 도구는 수치와 모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용서하는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 수치와 모욕을 당하게 하십니다. 시험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라면, 수치와 모욕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 중에 정말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좋은 것이 아니고 악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악을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조차 이것을 이겨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조차 오해를 받고, 상처를 받고, 수치와 모욕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수치와 모욕을 당하는 것에서 제외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말할 수 없는 수치와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상반절)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잘 참고 견뎠습니다. 과연 악을 선으로 이겼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면 바로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면 용서하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상처를 받지 않고서는 용서하는 것을 배울 수 없습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것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힐 때 사용할 수 있는 해결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지시하고 있습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 이상으로 누군가를 용서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신 적은 결코 없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뢰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순종하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시험도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수치와 모욕을 당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바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형제의 잘못을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으면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성경은 지금 우리에게 분명히 결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조금이라도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기로 다짐하고 결단하는 여러분 모두의 삶의 현장의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땅의 기름진 복이 항상 넘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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