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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법을 좇아 사는 사람 (롬 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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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임정석 목사

요한복음에 보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예수님 앞으로 끌려온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혔기에 정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생명도 보장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간음죄란 율법에 의하면 사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군중들 가운데서 말씀하시는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한 여인을 끌고 와서 군중들 가운데 딱 세웁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말씀을 하시다가 잠시 멈추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잠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현장에서 간음하던 여인을 붙잡아 온 사람들이 말합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요한복음 8:4-5).

사람들은 나빴습니다.

자신들이 아는 바가 확실하고 믿는 바가 확실하면 아는 대로 믿는 대로 행하면 될 것인데
그들은 율법에 명한 대로 충분히 행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예수님을 시험하고 고소할 조건을 얻기 위하여 행동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모를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리고는 몸을 굽히시고 땅 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쓰십니다.
그때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다 떠납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그 여자와 예수님, 딱 두명만 남게 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묻습니다(요한복음 8:10-11)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주여 없나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자, 이 여자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마 말로 형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이렇게 사랑하시는 자기 앞에 서 계시는 분이 누구신가 의아했을 것이며
그를 믿고 의지하고 싶었을 것이고
아마 자기의 전 생애를 바쳐 그를 따르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그녀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현장범이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율법에 의하면 이러한 간음 죄인은 돌에 맞아 죽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여자가 죽지 않고 극적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기쁨이 어떠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여자가 자기를 잡아온 사람들에게나 예수님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다시는 그런 짓 안하겠다고 서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잡힐 때도 죄인이었으며 용서받을 때에도 여전히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러한 여자를 살려 준 것입니다.

이유는 단 하나!!
이 여자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여자가 율법을 만났다면!! 정죄받아 마땅하고.. 죽어 마땅했겠지만..
이 여자가 예수님을 만났기에!! 죄 사함을 얻게 되었고.. 새 삶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두 가지 법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그리고 죄와 사망의 법..

사람들은 이 두 가지 법 중 어느 한 쪽 법을 좇아 살도록 되어 있는데
한쪽은 사는 법이요 한쪽은 죽는 법으로서.....

사는 법은 처음에도 살게 하는 법이요 삶의 과정이나 삶의 끝까지도 다 살게 하는 법이지만
죽는 법은 처음부터 죽게 하는 법이요 삶의 과정이나 삶의 끝까지도 다 죽게 하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게 하고 어떻게 죽게 하는 것입니까?

살게 하는 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과 용서와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살게 하는 것이고
죽게 하는 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죄를 통해서 죽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법을 좇아 살 것인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법을 좇아 살아가는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시작은 비슷한 것 같으나 끝은 하늘과 땅처럼 전혀 비슷하지 않기 때문이며
생명과 죽음이라는 전혀 다른 곳에 각각 도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3-4절도 우리에게 우리가 어떤 법을 좇아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본문 3-4절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설교 서두에서도 말씀드렸다 시피
심지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이라 할찌라도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그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
자기가 원해서 만나게 되었든.. 아니면.. 끌려와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든 간에!!..
일단 예수님을 한번 만나게 되기만 하면..
그 어떤 사람!! 그 어떤 죄인이든지 간에!! 죄 용서함을 얻으며!!.. 새 생명을 얻어
새 사람이 되는 은혜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집 나갔던 둘째 아들 탕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가 처음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을 챙겨 가지고 집을 나갈 땐
100점은 안되겠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순종하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집을 나가자마자 아버지와 아들 관계는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호적이 끊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관계는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말하자면 탕자가 된 것입니다!!
이 아들은 날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흥청망청 돈을 물쓰듯하며 삽니다.
아버지도 잊고 어머니도 잊고 형도 잊고.. 다 잊고 육신의 법만 좇아 삽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런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잊지를 못합니다.
언제 다시 돌아올까..
아들이 분명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이미 다 용서해놓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들이 용서를 빌지도 않았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크신 사랑으로 이미 다 용서해 놓았습니다!!

  돌아오기만 해 봐라! 넌 이제 죽었다!

이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치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에게 베풀어주신 예수님의 아가페적 사랑과 같습니다!!

집 나갔던 아들, 방탕한 아들이 어느 날 정신이 들어
집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해 보나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제와서 자기가 깨달은 것은 자기 자신은 죄인이고
자기 스스로 아버지와의 관계를 파기한 사람인 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새로운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아니다!! 그래도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한다!!
  아마도 아버지는 나를 기다리고 계실 거야..

탕자는 그동안 육신의 법을 따라 살았고.. 욕심을 따라 살았으며.. 쾌락을 따라 살았기에
분명 그 삶이 잘못된 삶이었으며 밤낮 생각하는 것이 육신 욕심 쾌락 이런 것들이었지만
그러한 삶 한 가운데서 갑자기 새로운 생각에 사로 잡히게 되었는데
그 생각이 어디서 났으며.. 누가 준 것인가 하면 성령님께서 주신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5-7절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생각이란 단어는 한자어가 아니라 순한글이지만 어떤 목사님은 재미있게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각을 주시고.. 사탄 마귀는 우리에게 사각을 준다.

여기서 생각이란 살아있는 깨달음을 의미하고
사각이란 죽은 깨달음을 의미하는 것인데
농담으로 풀이한 말이기는 하지만.. 재미있고 상당히 일리있는 풀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비추어 볼 때
죄인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서 진행된 몇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리스도의 영의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항상 자나깨나 "육신 육신" 이러면서 살았는데
이제는 그 생각이 변하여 자나깨나 "영혼 영혼" 이러면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사람, 그리스도의 영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는가 하면 생각의 변화 즉 가치관의 변화 때문이며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그 뒤에 계신 성령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5-10절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찬송가 427장에 보면 오늘의 말씀과 꼭 맞는 가사가 있습니다(1절).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계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 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문제는 주의 영이 나와 함께 하는가.. 주의 영이 내 속에 살아 계신가.. 하는 것입니다!!

주의 영이 나와 함께 하시고.. 주의 영이 내 삶을 지도하시고 지배하기만 하신다면
걱정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주의 영이 나와 함께 하시고.. 주의 영이 내 삶을 주장만 하신다면!!
그동안 그렇게 애쓰고 노력해도 고치지 못했던 여러 습관들.. 잘못된 몸의 행실들도
다 고칠 수 있게 되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11-13절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내 속에 있고 그래서 내가 그 성령의 법을 좇아 살기만 하면!!
죽을 몸도 살게 될 뿐 아니라!!
그동안 그렇게 애쓰고 노력해도 고치지 못했고 죽이지 못했던 몸의 행실도!!
하나님의 영인 성령으로 죽일 수 있게 되어!!
완전히 새로운 사람.. 완전히 새로운 존재..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서 가르치는 중요한 개념은
육신의 법을 좇아 살지 말고 성령의 법을 좇아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 말씀에서 "인도함을 받는다"는 개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인도한다는 것은 내 마음의 주관자.. 내 삶의 주관자..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고 인도하는 선장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영화 "타이타닉"을 보신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큰 배가 어떻게 움직였습니까?
그리고 그 큰 배가 나아가는 방향은 누가 잡았습니까? 다 선장이 잡은 것입니다.

이처럼!! 나의 인생이라는 배의 선장 자리를 내가 맡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에게 맡기며
그래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살아 나아갈 때... 나는 어떤 존재가 되는가?

14절에서 말하는 바처럼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은.. 이렇게 하나님의 영인..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고 살아가며
성령의 법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의 삶에 대하여... 중요한 2가지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선언입니다.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특히 이 말씀 가운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말씀은
"우리가 알거니와" 라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이젠 안다.. 이젠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알게 된 것입니까?
전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말입니다.

이들은 바로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아무 것도 몰랐던 자들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도 모르는 자들이었고
심지어 기도도 바르게 할 줄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2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전에는 이렇게 마땅히 빌 바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마땅히 빌 바를 알게 되었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선"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선"은
"모든 것이 다 잘된다.." 이런 의미의 "선"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점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이 말씀이 "모든 것이 다 잘된다"는 의미의 "선"이라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렇게 표현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다 잘될 것이니라" 이렇게 표현해야 옳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표현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였기에
이 "선"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선"이란 의미는 그 다음 29절에 나타나 있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29절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제 어느 정도 규명이 된 것 같습니다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은
"하는 것 마다 잘된다"는 육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된다"는 영적인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본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신앙의 여정에서 어떤 것을 경험하게 되든지 간에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의 형상 나의 인격이 그리스도의 형상 그리스도의 인격을 본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영인..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고 살아가며
성령의 법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의 삶에 대하여 주시는 두 번째 중요한 선언은
만일 그렇게 살아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 받게만 된다면..
결국에 가서는 영화롭게 된다.. 영화로운 존재가 된다..는 선언합니다. 29절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무나 감사하고 황홀한 말씀입니다.

얼마전 까지 우리는 의로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영화로운 존재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율법 외에 나타난 한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부름도 받게 되고 의롭다함도 받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젠 영화롭게도 된다 하시니
우리는 그저 몸둘 바를 모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지난 주일과 오늘, 두 주에 걸쳐서
육신의 법을 좇아 사는 사람과
성령의 법을 좇아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또 그 삶의 길은 어떠한가를 배웠습니다.

그 결과 당연히 육신의 법을 좇아 살지 않고 성령의 법을 좇아 살아야겠다고 생각은 들지만
문제는 이것이 생각만 가지고는 잘 안된다는데 현실적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항상 성령의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의 영이 나를 주장하셔서 내 생각을 주장하시고.. 내 입술을 주장하시며
내 눈과 귀를 주장하시고.. 내 행동을 주장하시어..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며 살아가기만 한다면.. 우리의 삶은 기쁨과 성령으로 충만한 삶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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