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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산상수훈강해15> 천국백성의 우선순위 (마 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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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하준 목사

기우

어제 눈이 정말 많이 왔습니다. 지난번 25년만의 폭설이 내리더니 이번에는 더 많이 온 것 같습니다. 어젯밤 많은 분들이 걱정하면서 제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목사님, 이러다가 예배도 못 드리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이런 염려와 걱정에도 불구하고 오늘 예배를 드리게 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이런 걱정이 다 기우(杞憂)가 되어서 오늘 이렇게 예배를 아무 탈 없이 드리게 되었습니다. 눈이 이렇게 많이 오니 저도 걱정이 많이 됩니다. 혹시 우리 성도들 중에 넘어져서 다치거나 교통사고 나면 안 되는데, 혹 농사나 사업에 문제 생기는 일은 없겠지, 목회자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걱정입니다. 하지만 이런 제 모든 걱정이 다 기우가 되어 모든 성도가 다 평안할 줄로 믿습니다.

제가 지금 이 말을 하면서 ‘기우’라는 말을 두 번이나 썼습니다. 흔히 어떤 염려나 걱정이 많은 사람에게 쓸데없이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 ‘기우’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기우’란 ‘기인지우’(杞人之憂)의 줄임말로 열자(列子)의 <천서편(天瑞篇)>에 나오는 말입니다. 기 나라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면 어디로 피할까 걱정한 나머지 침식을 전폐하였다는 것입니다. 별 사람 다 있지요? 오늘날도 세상 모든 근심걱정 혼자 다 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라걱정, 경제걱정, 자녀걱정, 건강걱정, 교회걱정 등 늘 근심과 염려에 싸여 사는 사람들 말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보니 당연히 염려하게 되어 있습니다만 너무 지나치게 염려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이 ‘기우’라는 말은 쓸데없는 걱정에 싸여 사는 사람도 뜻하지만 혹시 꼭 필요한 걱정이라도 너무 지나친 나머지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말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설교도 바로 이런 ‘기우’의 문제, 지나친 염려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25절 말씀부터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목숨은 하나밖에 없는 것이므로 가장 소중한 것인데 우리가 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즉 의식주(衣食住)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지금 다른 근심걱정은 물론이고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를 위해서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요? 바로 그 다음 말씀에 이유가 나옵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음식보다, 의복보다 중요한 것, 의식주뿐 아니라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목숨’이며 ‘몸’입니다. 여기서 목숨이란 헬라어로 ‘푸쉬케’, 즉 영혼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바로 우리의 영혼,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 이 영혼을 지켜주시는 분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천부, 하늘 아버지인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가장 소중한 생명과 영혼을 지켜주시는 분인데 우리가 그까짓 먹고 사는 것, 의식주, 세상의 작은 것들로 인해 염려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주님은 이 사실을 이해시키기 위해 당시 사람들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던(산상설교 때 특히) 두 가지를 예로 듭니다. 먼저 26절을 읽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주님 말씀대로 새들은 심지도, 거두지도,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습니다. 여기서 ‘심고,’ ‘거두고,’ ‘모아 들이는’ 것은 모두 농사의 과정을 뜻합니다. ‘심는다’는 것은 씨앗을 뿌리는 것이고, ‘거둔다’는 것은 추수를 뜻하며, ‘모아 들인다’는 것은 추수한 곡식을 창고에 보관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농사는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설명하기 위해 먹기 위한 행위인 농사를 예로 든 것인데 문제는 공중의 새는 농사도 안 짓는데 어떻게 먹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너희 천부, 즉 하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새들을 먹여 살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찮은 미물인 새도 먹여 살리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하물며 그 사랑하시는 자녀인 너희를 먹여 살리지 않으시겠느냐? 너희가 이 새보다 천 배나 만 배나 더 귀하지 않느냐? 하고 물으신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저 공중의 하찮은 새도 먹이시는 하나님이 그 자녀인 우리를 당연히 먹여 살리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먹을 것 가지고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한 마디 덧붙이십니다. 27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주님은 참 짓궂게도(?)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야! 너희가 맨날 걱정한다고 키가 한 자라도 자랄 수 있겠냐?” 여기서 ‘한 자’란 약 30센티미터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염려한들 조금도 키를 자라게 할 수 없다는 뜻인데 여기서 한 자란 또한 생명의 길이를 뜻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아무리 염려를 하고 오래 살려고 애를 써도 네 생명을 단 1분, 1초도 더 연장할 수 없다.” 왜냐? 바로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는 분은 나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시고 그 아버지가 우리 생명을 보호하시니 조금도 염려하지 말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간혹 오해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도 이 새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먹여 살려 주시겠네?” 그래서 그야말로 교회만 다니고 기도만 하고 “주여 믿습니다”만 외치면서 일도 안 하고 노력도 안 하는 분도 계십니다. 하지만 이것은 말씀을 잘못 오해한 것입니다. 하늘의 새가 정말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하나님이 먹여주시기만 기다립니까? 아닙니다. 주님은 새들이 “모아들이지도 않고”라고 하셨지만 새들은 분명히 먹이를 잡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그 먹이를 잡아 새끼를 먹이기 위해 부지런히 물어 나릅니다. 새들도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먹고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도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다만 그런 가운데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내 힘으로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만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잠시도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하심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생계를 위해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뭐 먹고 사나, 어떻게 살아갈까만 가지고 염려하는 사람은 정작 가장 중요한 생명의 문제, 영생의 문제, 영혼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생계에 아예 전혀 염려하지 말고 신경도 쓰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지나친 염려와 근심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들의 백합화를 보라

이어서 두 번째 예를 보기 위해 28절부터 30절까지 읽습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아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무슨 뜻입니까? 방금 전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시면서 공중의 새를 예로 드신 주님이 이번에는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뜻에서 들의 백합화를 예로 드십니다. 여기서 백합화란 낱말은 각종 들꽃들, 즉 들판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모든 들꽃(wild flower)을 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백합화를 29절에서는 ‘들꽃’으로, 30절에서는 ‘들풀’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들꽃이나 들풀이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방적, 즉 옷감을 짜는 일)도 아니하는데, 즉 의복을 만들기 위해 그 어떤 노력이나 수고도 안 하는데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입히지 않으시냐? 29절 표현대로라면 솔로몬의 영광, 이스라엘의 가장 부자임금이며 가장 화려한 삶을 살았던 솔로몬 임금이 입은 옷조차도 이 들꽃이나 들풀보다 못하지 않느냐? 이 백합화가 그토록 아름답고 화려한 옷을 입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입히신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30절 말씀을 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렇습니다. 오늘 잠시 피었다가 내일이면 시들고 말라 아궁이에 던져 불쏘시개로나 쓰일 저 하찮은 들꽃, 들풀조차 하나님이 이렇게 솔로몬의 영광보다 아름답게 입히셨는데 하물며 그 자녀인 우리야 입혀주지 않으시겠느냐 하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먹는 것, 입는 것, 살아가는 문제로 고민하고 지나치게 염려하는 자들을 향해 “이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따끔하게 한 마디 꾸짖으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은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라는 두 가지 예를 통해 우리 자녀들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의 생계를 책임지고, 나아가 우리의 생명과 영혼까지 책임질 것이니 이런 하찮은 것으로 인해 염려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31절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그런데 이 말씀 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재미있습니다. 32절입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여기서 ‘이방인’이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왜 주님은 염려하는 사람들을 이방인이라고 하셨을까요? 이방인들은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입니다. 즉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이 아니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들입니다. 부모가 밥 안 주면 어떻게 먹고 사나 걱정하는 자녀는 없습니다. 이런 걱정을 한다면 그 사람은 친자녀가 아니라 다른 집 자식이거나 주워온 아이입니다. 마찬가지로 뭘 먹고 뭘 입고 어떻게 사나 걱정근심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도 아니요 하나님의 백성도 아닌 이방인 같은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자녀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입고 살아야 하는지 진짜 부모라면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알아서 밥 해 먹이고, 때가 되면 알아서 옷 사서 입혀줍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또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이걸 믿지 못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며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분명히 믿으시지요? 그러면 우리는 이방인도 아니고 주워온 자식도 아닙니다. 이것을 분명히 믿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생계와 생활을 책임져 주십니다. 알아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할렐루야!

천국백성의 우선순위

이제 예수님은 이 설교의 결론이 되는 말씀으로 33절에 그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먼저’라는 낱말에 특별히 주목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과연 먹는 것, 입는 것에 대해 전혀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설교 중간에도 말씀드렸지만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통해 주님이 말씀하고자 하신 뜻은 아예 먹고 사는 것에 대해 걱정도 안 하고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직장을 가지거나 사업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합니다. 자연 걱정도 생기고 근심도 생깁니다. 관심도 많이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의로우심)를 구하라!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먹고 살 걱정, 사업 걱정, 자식 걱정을 ‘먼저’ 하지 말고 ‘먼저’ 천국에 대해 생각하고 하나님이 의롭게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집중하게 되면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까?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이 모든 것’이란 앞서 여러 차례 언급한 먹는 것, 입는 것, 우리의 생계와 생활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우선순위가 바르고 분명하면 하나님이 이런 생계에 관계된 것, 먹고 사는 문제는 다 더해주신다는 말입니다. ‘더한다’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다 부수적인 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 천국이 너무도 중요하고, 하나님의 의가 너무나 중요하기에 의식주와 생계를 포함해 나머지 모든 일은 다 부수적인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국백성이란 어떤 사람이냐? 진정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에 우선권을 두는 사람입니다. 물론 일도 열심히 하고 직장도 열심히 다니지만 어디까지나 이 모든 일은 두 번째요, 천국에 우선권을 두고 천국을 바라보며 소망하는 사람이 말 그대로 천국백성이며, 세상이 옳다고 하는 일, 사람들이 좋다는 일을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의롭다고 하시는 일을 먼저 하는 사람이 천국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천국백성들에게 나머지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 이것이 진정한 천국백성이 이 땅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내일일은 난 몰라요

마지막에 주님이 하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34절을 읽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내일 일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고 오늘은 편하게 살아라.” 그런데 이 말씀은 번역이 조금 잘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개역개정판 성경은 이렇게 바로잡아 번역했습니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내일 일까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일 일이란 장래에 일어날 일들을 뜻합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 자신이나 자녀의 장래에 대해 걱정이 아주 많습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우리 애는 커서 뭐가 될까?” 하지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왜 내일 일까지 걱정하느냐?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해 줄 것이다.” 아니, 내일이 어떻게 걱정을 합니까? 사람도 아니데 말입니다. 이 말씀은 내일 일은 우리 소관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소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텐데 너는 나중 일 걱정하지 말고 오늘을 충실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근심과 고민을 하고 계십니까? 지금 예배드리고 있는 이 순간에도 여러분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일들은 무엇입니까? 생계입니까? 가족 혹은 자녀에 대한 염려입니까? 물질이나 건강입니까? 교회 걱정입니까? 이 모든 일을 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자유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 자유롭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은 그저 기도뿐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물어 내가 할 일을 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관심을 하나님께 집중하십시오. 모든 다른 일들은 잠깐 뒤로 밀어놓고 먼저 하나님 나라, 천국에 우선권을 두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견해 하시고 우리를 천국백성으로 인정하십니다.

저는 목회자(특히)나 성도들도 자녀를 낳아 길러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를 길러봐야 부모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학교 때 결혼도 안 한 처녀 교수님이  자녀교육문제 전문가라고 가르치는 것을 보았는데 저는 조금 이해가 안 갑니다. 부모가 되어 보면 압니다. 내 자녀가 아플 때, 실패했을 때, 고민하고 몸부림칠 때 겉으로는 “네 일은 네가 책임 져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내가 대신 아프면, 내가 대신 실패하고 내가 대신 고통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바로 부모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아보지이기에 기꺼이 자녀인 우리의 문제를 책임져 주십니다. 믿으십니까?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 교회 올 때 지고 온 근심 걱정 무거운 짐 그대로 싸들고 집에 돌아가지 마시고 이 시간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고 훌훌 털고 빈손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에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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