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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 (요 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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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춘수 목사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만남을 갖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서 인생은 다릅니다.우리는 누구나 좋은 만남을 기대합니다. 자식이라면 좋은 부모를 만나기 원합니다.학생들은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 원합니다.결혼적령기의 청년들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원합니다. 인생의 최대의 복은 바로 만남의 복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많은 만남은 상처를 가져다줍니다.우리 중에도 인생의 만남의 상처를 갖고 계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청순한 처녀시절에 아름다운 꿈을 갖고 연애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들 중에도 그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받은 상처 우리 예수님을 만나면 치유됩니다. 진정으로 우리 주님을 만나면 삶이 치유되고 회복이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선물을 받게됨으로 위로와 안위를 얻게 됩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만남의 상처를 갖고 살았던 사마리아 여인이 소개됩니다. 이 여인은 남편을 과거에 5명이나 있었고 현재에 새로운 남자와 삶을 살고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어느날 낮 12시에 수가성의 우물에 물을 길러왔습니다. 아무도 물을 길러오지 않는 낮시간에 물을 길러 온 것을 보면 아무도 사람들이 오지 않는 시간을 피해서 온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을 본다면 그녀의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비난하고 정죄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피했을 것입니다. 스스로의 죄책감과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로 인해서 이 여인은 아마도 힘든 인생을 날마다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여인은 우물가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여인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여인을 만남으로 인생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 사마리아여인은 나중에 기쁨으로 마을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증인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상처받은 이 여인을 만나주시면서 3가지 중요한 은혜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도 이 주님의 은혜를 경험할 것입니다.이시간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삶으로 도전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삶에 회복과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이시간 사마리아 여인을 만남으로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우리도 이시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님을 만날 때 영혼의 갈증이 해결받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날 때 먼저 이렇게 말씀합니다. “물을 좀 달라”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서 물을 길러온 여인을 만난 예수님은 물을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한 것은  정말 목이 말라 물을 달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진정한 의도는 따로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질문을 통해서 죄많은 여인에게 관심을 표현하시면서 이 여인의 심령의 갈급함을 채워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여인은 육체의 갈급함을 쫓아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여인은 야곱의 우물을 최고의 물로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이 우물이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 이 우물을 마시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우물은 마시면 또 목마릅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다시 목마를 수 밖에 없는 것을 생수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직장이 안정된 사람은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공무원과 같이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든든한 기업을 하시는 분들은 그것이 나의 생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정을 든든히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정된 가정,든든한 직장과 기업 이런 것들 얼마나 우리를 든든하게 해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것은 생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다시 목마를 수 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마시면 또 마시고 싶습니다. 갈증이 일어나서 만족할 수 없습니다.우리는 생수를 마셔야 만족합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가 필요합니다.

성경의 이스라엘의 죄가 무엇입니까?
생수의 근원은 하나님인데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힘으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자기의 지혜로 살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는 분이 하나님인데 앗수르와 동맹을 맺고 애굽과 동맹을 맺습니다. 이스라엘의 힘은 하나님인데 말과 병과 칼에 의지하였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웅덩이를 파면서 그 속에서 힘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매우 열심히 산 것입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성을 쌓고 우물을 파고 소유하는 것이 잘못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이런 것들로 우리의 마음을 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눈에 보이는 육체대로, 마음의 욕망대로 원하는 대로 끌어들였습니다. 전도서 2장 10절 이하를 보면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10-11) 말했습니다.
왜 솔로몬은 눈에 보이는 모든 복들을 소유하면서 더 마음이 곤고하였고 만족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우물에서 우리가 아무리 물을 펴마셔도 여전히 우리는 목이 마를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을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주님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새물을 주실 것입니다. 한번 마시면 목마르지 않을 영생의 샘물을 주님이 준다고 하지 이 여인은 너무 희한하고 놀랐습니다.그러자 여인은 주님께 요구합니다. “아, 주여. 그런 생수가 있으면 나에게도 주옵소서!” 매달립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는 자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영생의 샘물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주님께로 나아오는 자마다 영생의 샘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까? 돈과 재물과 명예로 우리 영혼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런 소유물들은 우리 영혼을 더 갈증나게 할 뿐입니다.영혼에 채움을 얻으려면 우리 주님을 마음에 모시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면 시원한 생수가 넘쳐흐릅니다.
이 여자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으니까 지금까지 그를 괴롭혔던 사랑의 갈증, 고독의 고통, 자책의 두려움 등이 일시에 사라지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보면 동네로 뛰어들어가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모든 목마름이 해갈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됩니다. 예수님은 마스터 키입니다. 문제는 다양하지만 대답은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에 오면 마음 속에 질병은 여러 가지 진단이 내려지지만 깨끗히 치료됩니다. 생수가 터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오시면 생수와 같은 역할을 어떻게 하시는 것일까요? 솟아나는 역할을 하시는 것일까요?
  우리 안에 예수님이 찾아오면 우리는 우리 안에서 그분과 교제합니다.
그는 우리와 밀접한 사랑의 교제를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대화하기를 기뻐하십니다. 마음의 고통을 들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나의 모든 문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을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의미로 내 마음에서 생수가 솟는 것입니다. 매일 새롭습니다. “예수님 오시옵소서” 영접하면 예수님은 오셔서 생수, 즉 샘물 같은 역할을 하십니다. 아침마다 저녁마다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처한 모든 환경에서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내 영혼을 날마다 붙들어 주심을 세상에서 승리하도록 나를 지켜주십니다.
주님만났습니까? 날마다 생수같은 주님의 생명으로 충만하시는 복을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을 만날 때 죄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16절에 예수님은 여인에게 “네 남편을 데려와라” 요구하십니다.
그러자 여인은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네 말이 옳다. 너에게는 남편이 없다. 지금까지 다섯하고 살았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도 네 남편은 아니야.” 이때 여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 자신을 만난 예수님께서 자신의 과거를 다 아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여인은 예수님을 선지라로 알았습니다.
왜 주님이 이 여자에게 이토록 아픈 상처를 찌르시는 것일까요? 여인의 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막힌 곳이 있으면 통하지 않습니다. 인생이 막히고 삶이 꼬이는 이유는 막혀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막힌 곳을 뚫어야 합니다 .우리 집에 하수구의 배수관이 막히면 물이 통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구멍을 뚫어야 물이 통합니다. 정말 여자의 배에서 생수가 끊임없이 솟아 오르려면 막힌 곳이 없어야 합니다. 막힌 곳을 없애려면 회개하여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그래도 내놓고 “주여, 나는 그런 인간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용서해 주옵소서.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할 때에 막혔던 생수가 터집니다. 주님이 그 여자에게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남편들은 누구입니까? 교회에 오래 다니면서 기쁨이 없고, 마음의 풍성함이 없는 사람들, 그 이유는 하나 뿐입니다. 숨은 남편이 있기 때문입니다.숨의 죄 때문에 우리의 삶은 더욱 곤고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회개하여야 합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확 변해 버린 사람처 럼 여러분도 변화되기를 원하십니까? 막힌 곳이 뚫려야 합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숨은 죄를 가지고는 생수가 터져 나오지를 않습니다.
이 여인의 죄가 결국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고립되고 고독하고 비참한 인생길에서 방황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특히 이 여인은 육체의 정욕대로 세상을 사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주님은 이 여인의 과거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인 스스로에게도 자신의 과거를 보게 한 것입니다. 자신의 양심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내안에서 예수님으로 더불어 영혼의 행복과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다면 우리가 나의 죄와 직면해야 합니다. 양심이 둔하여지고 죄에 무감각한 모습으로 있으면 안됩니다. 양심을 흔들어 깨우고 죄를 일깨워서 회개해야 합니다. 나의 삶에서 주님 앞에 부끄러운 내안의 숨겨진 죄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불꽃같은 하나님의 눈 앞에서 우리는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나의 몸으로 혹시 범죄하고 살지 않습니까? 속이면서 음행의 죄를 짓거나 더러운 습관에 빠져 있지 않습니까? 버리시기 바랍니다. 혹시 물질로 범죄하고 하나님을 속이지 않습니까? 하나님보다 물질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것을 나의 것인양 그 물질을 힘으로 삼고 살지는 않습니까? 지금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바라보면서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그 회개하는 자에게 주님의 복을 경험합니다. 회개의 기회를 가져시기 바랍니다.
예화) 미국에서 서부를 개척할 당시에 텍사스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텍사스에서는 하도 살인 사건이 많이 일어나 아예 살인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한다는 법을 제정하여 놓았습니다. 어느날 한 술집에서 젊은이들이 서로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술집에서 총소리가 났습니다.한 젊은이가 술을 마시다가 옆에 앉은 친구와 다투다가 총으로 친구를 쏴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총으로 친구를 죽인 청년은 평소에 아주 착한 청년이었습니다. 그 착한 청년이 살인을 해서 사형에 처해지게 되자 그 청년을 아끼던 마을 사람들이 구명운동을 했습니다.
많은 지역 주민들의 간곡한 바람이 담긴 탄원서가 마침내 주지사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주지사는 감동을 받고 직접 그 청년을 만나서 보고 죄를 용서해주겠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죄를 짓고 난 뒤에 성격이 완전히 변해버렸습니다. 자기의 삶을 자포자기했습니다.행동도 난폭해졌습니다. 주지사가 사면장을 갖고 청년에게 찾아가서 그를 면회하려고 했지만 그 청년은 면회를 거절했습니다. 그 청년은 결국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은혜를 스스로 저버리고 결국은 사형으로 인생을 마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누가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 누가 지옥에 간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죄를 지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엄밀한 말로는 회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여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누구든지 회개하기만 용서하여 줄 것을 말씀하십니다.
요한일서1:9“만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하실 것이요”라고 약속하였습니다.
회개하기만 하면 남편을 6명을 둔 여인도 용서받습니다. 예수님을 3번씩이나 부인한 죄도 용서받습니다. 남의 물질을 훔친 죄도 용서받습니다. 믿지 않고 죄대로 살아온 모든 삶도 용서받습니다. 주님은 한 영혼이라고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회개하는 자가 주님을 만나고 죄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이시간 그 용서의 주님으로 마음의 자유함,삶의 자유함을 얻으시는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도 죄의 문제를 회개함으로 해결받으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을 예배하는 복이 경험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서 예배의 은혜를 회복하게 됩니다.
19절-20절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에게 예배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게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합니다.
여기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에대한 궁금증을 질문합니다. 그녀는 항상 의심스러운 예배를 드리면서 마음에 허무했을 것입니다. 먼저 그녀는 예배에 대해서 장소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북이스라엘인 사마리아는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고 남쪽 이스라엘인 유대나라는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과연 어디에서 드리는 예배가 진짜인가? 여인은 질문한 것입니다.
왜 이렇게 다른 장소에서 예배를 드렸는가 하면서 솔로몬 이후에 두나라가 분단국가로 나뉘었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나자 북쪽 이스라엘은 10지파가 연합하여 북이스라엘을 이루고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2지파가 연합하여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두나라로 갈라진 이스라엘은 북쪽은 그리심산에서 신당을 만들어 하나님을 예배하였고 남쪽 유다는 예루살렘성전에서 예배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각기 자기들의 예배가 정통성이 잇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북쪽이스라엘은 그리심산에서 드리는 예배가 진정하다고 주장합니다.남쪽 유다에서는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예배가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유대인들은 장소의 문제를 예배의 중요한 문제를 생각하였습니다.
과연 어디에서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입니까?
이 예배의 진정성 문제를 주님께서는 21절에 보면 "여자여 내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어떤 곳에서 어떤 장소에 매인 어떤 형식의 예배가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 아버지께 자유롭게 예배할때가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일어났던 대표적인 사건이 무엇입니까? 물론 여러 가지 일들이 잇엇지만 예배와 관련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마태복음27:51에 보면 성소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되고 “라고 합니다. 이것은 구약의 예배드리는 성소의 경우 휘장을 중심으로 성소와 지성소가 나뉘어졋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인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일년에 1번 들어갈 수 잇었고 성소에도 일반인들은 들어오지 못하고 제사장만이 들어와서 대신하여 예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성소와 지성소에서 예배드리는 제도가 폐하여지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예배할 수 잇게 되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만남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은혜가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 직접 나아가 예배할 수 잇는 은혜입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그분은 바로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예배란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요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그 하나님을 만나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합니까?
23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할 때 중요한 것은 형식보다도 어떤 장소보다도 진정한 예배를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여기 “신령”으로 예배하라는 것은 심령으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심령으로 예배하라는 것은 결국 우리 심령속에 게시는 분이 성령님이시기 때문에 성령으로 예배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성령님께서 인도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영이신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십니다.
예배할 때 우리가 모든 순간 순간마다 순서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나는 그 역사하심에 따라야 합니다.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찬송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것을 내가 느끼셔야 합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서 나를 주장하고 내가 그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드려지는 예배는 나의 감정,나의 정서가 이전에 못느낀 신령한 기쁨과 신령한 평안함으로 내 안에 감동과 감격이 있습니다. 때로 가슴 깊이 맺혀있는 마음의 상처가 씻어지고 두려움과 원망함의 마음들이 봄눈녹듯이 사라지는 은혜의 경험을 합니다.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것은 진리의 자세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형식과 외식을따라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진정으로 진리를 좇는 자세로 예배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생각하면서 그 뜻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고 그 성경을 에배시간에 설교자를 통해서 들려주기를 원하십니다. 설교자가 증거하는 성경의 진리의 말씀을 들어서 그 안에서 채우지는 순간 하나님을 대면한 것같은 분명한 확신이 생깁니다. 그 말씀으로 은혜가 될 때에는 하나님을 만난 것같은 거룩하고 기쁨의 마음이 회복됩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수님 만났습니까?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 찾아오셔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주신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마음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는 자마다 만남의 복을 주십니다. 사마리아여인에게는 직접 육체로 찾아가셔서 만났지만 지금음 말씀가운데 찾아오셔서 영으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그분을 만날 때 우리의 영혼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영생의 생수를 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모든 죄를 깨끗하게 용서하여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버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십니다. 우리 모두 이 축복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예수님 만난 자로서 우리의 생에서 만족의 삶 정결의 삶 기쁨의 예배의 삶으로 우리 모두가 풍성하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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