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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대한 초청 (사 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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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정호 목사

독일의 유명한 화가 슈테른베르크(Sternberg)가 교회의 요청에 의해 아무 뜻 없이 십자가 상의 그리스도의 성상을 그렸습니다. 그림을 다 그린 그는 그의 본업으로 돌아가 돈을 벌기 위해 처녀 나체 모델을 앞에 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그 모델 아가씨가 십자가 상의 그리스도의 성상 그림을 보며 무슨 그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민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모델 아가씨가 "그렇다면 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저씨의 죄를 위해서도 죽으셨겠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서슴없이 "암 그렇지"라고 했으나 그 대답이 너무 자기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즉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자기가 대답한 말의 참뜻을 알기 위해 골방에 들어가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의 진정한 뜻을 깨달은 그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죽음에 감격하여 다시 그린 그림이 유명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인 "에케이 호모(ECCE HOMO: 이 사람을 보라)"라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본 영국의 유명한 여류 찬송 작가 프랜시스 리들리 해버갈 양이 "내 너를 위하여"의 찬송시를 썼고, 그의 성화에 감동 받은 진젠돌프 백작은 평생 주를 위해 헌신하기로 다짐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사야는 인류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초청하고 있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는 참된 만족을 얻으며 열방 중에 축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포로 생활로 인해 지쳐 있는 백성들에게 위대한 복음을 제시하고 응답을 요구함으로서 위대한 구원 사역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선지자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구원 사역을 예고하셨습니다. 인류 최대와 최고의 초청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입니다. 이미 우리 모두는 이 초청에 아멘으로 화답한 복된 백성들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많은 초청과 초대가 있지만 구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입니다. 세상의 초청에 너무 서운해하거나 실망하지 맙시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초청을 받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교회에 오셔서 예배드리는 여러분 모두에게 최고의 은혜와 축복을 축원 드립니다.

1. 오라
  본문 1절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목마른 자들과 돈 없는 자들도 와서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을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물뿐 아니라 활기와 영양을 공급하는 포도주와 젖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구원의 복음이 주는 축복의 다양함과 풍성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은 바리새인들이나 불교인들과 같이 인간들의 노력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구원을 얻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것은 그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성품에 동참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방종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는 오늘날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싸구려 은혜(cheap grace)로 바꾸고 있다고 탄식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얻으신 최고의 은혜입니다. 너무 귀하고 비싸기 때문에 거져 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도 값을 지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받고 간직해야 합니다.

  한국 속담에 나타난 선인들의 돈 관념을 살펴봅시다.
  1) 돈 버는 법
    소같이 일하고 쥐같이 먹어라
      →수입은 극대화하고 지출은 최소화하라
    돈 한 푼 쥐면 손에서 땀이 난다
      →절약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라
    삼십 전에 자식이요, 사십 전에 재물이라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라
    돈이 돈을 번다
      →종자돈을 마련하라
  2) 돈 쓰는 법
    아끼는 것이 찌(똥의 사투리)로 간다
      →아끼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기와 한 장 아끼다가 대들보 썩힌다
      →작은 것에 집착하다 큰 것을 잃는 우를 범하지 말라
    중의 망건값 안 모인다
      →지출을 안 하면 따로 돈이 모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3) 돈의 위력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돈이 많으면 못할 일이 없다
  4) 돈과 행복
    돈 앞에는 웃음이 한 말/자식 촌수보다 돈 촌수가 가깝다
      →돈은 행복의 중요한 조건
  5) 돈과 신용
    빚 보증하는 자식은 낳지도 마라/오뉴월 품앗이도 먼저 갚으랬다
      →신용 관리의 중요성

  누구에게나 돈이 필요하고 귀합니다. 돈 때문에 웃고 웁니다. 때로는 살고 죽습니다. 살리고 죽입니다. 돈 때문에 아내와 자식을 죽여 달라고 하는 인면수심의 사람도 있습니다. 돈으로 인해서 수많은 상처와 고통과 가정의 해체가 늘고 있습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으로 인하여 이러한 아픔과 범죄는 더욱 극에 달할 것입니다. 누가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국가와 정부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살벌하고 무서운 생존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돈 없는 자도 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가 돈보다 더 귀한 최고의 사랑의 존재입니다. 무엇도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을 방해하거나 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런 조건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를 '오라'고 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초청에 날마다 아멘으로 화답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즐거움을 얻으라
  본문 2절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인간은 행복을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실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빵은 생명을 지탱케 하는 수단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빵을 얻기 위해 돈을 버는데, 어리석은 인간은 빵 아닌 것을 사기 위해 헛되이 돈을 낭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들으면 좋은 것을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먹는다는 것은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깨닫고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서 육의 생명이 아닌 영의 생명을 얻게 됨을 의미합니다.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에 기름진 것이란 성경에서 최고의 음식을 암시할 때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구속을 경험한 자가 누리게 되는 부와 풍성한 축복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면 즐거움을 얻게 되지만 하나님을 청종하지 아니하면 즐거움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살면 즐거움 대신에 괴로움만 있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믿고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만 청종할 때 놀랍고 영원한 즐거움을 맛보게 됩니다.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혀있을지라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영원한 즐거움이 솟아났기에 옥에서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에 청종하는 성도들에게 즐거움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공동묘지 관리인에게 수년 동안 한 주도 거르지 않고 편지와 우편환이 동봉되어 왔습니다. 죽은 자기 아들의 무덤에 신선한 꽃다발을 갖다 놓아 달라는 한 여인의 부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병색이 완연한 늙은 부인이 커다란 꽃다발을 안고 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직접 아들의 무덤에 꽃다발을 놓아 주려고 왔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제가 앞으로 몇 주밖에 더 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해서 말입니다."
  관리인은 말없이 그 여인을 쳐다보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이 말했습니다.
  "부인, 저는 꽃을 사라고 보내주신 부인의 돈을 받을 때마다 유감으로 생각했습니다."
  "유감이라니요?"
  "유감이지요. 이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 꽃을 보거나 향내를 맡을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병원 같은 곳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꽃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꽃을 볼 수도 있고, 향내를 맡을 수도 있지만 이 무덤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부인은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 되돌아갔습니다. 몇 달이 지난 뒤 그 부인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당신 말이 맞았어요. 나는 직접 꽃다발을 사람들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몹시 기뻐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기뻐졌습니다. 의사는 어떻게 내가 다시 건강해졌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지만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삶의 목표를 다시 찾았습니다."

  즐거움이 메마른 세상입니다. 점점 더 아픔과 슬픔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섬길 때 즐거움이 충만합니다. 믿음과 즐거움은 정비례합니다. 즐거움을 이웃과 나눌 때 즐거움은 더욱 커집니다. 섬기고 나눌 때에 즐거움은 충만해집니다. 우리를 초청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즐거움이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영화롭게 하리라
  본문 5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면 영혼이 살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받았던 약속은 메시야가 고난 당하여 죽임을 당하실 것이지만 끝내는 부활하여 영원히 통치하실 것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그것은 결코 변경될 수 없는 약속이었습니다. 다윗 통치 하에서 이스라엘의 영토는 역사상 가장 넓게 확장되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도 다윗은 왕으로 오실 메시야의 예표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메시야의 의해 통치될 영적 이스라엘의 영역은 다윗 왕국조차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계적 차원에 이를 것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겼던 다윗을 축복하신 것처럼 다윗과 그의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축복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높여 주시면 가장 높고 영화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현세와 내세에서도 성도들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믿음과 순종은 우리의 영역이지만 축복과 영화는 하나님의 영역이고 주권인 것입니다.

  6.25 사변 당시 충남에서 강경침례교회를 담임하셨던 이종덕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조용하던 강경지방에 어느 날 공산당이 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모두들 공산주의자들처럼 행동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숨겼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목사님은 후배 목사님에게 두껍고 큰 종이를 가지고 갔습니다.
  "목사님, 이 두꺼운 종이에 무엇을 하려고 그러십니까?"
  "내 명함을 만들려고 하네."
  "명함이요? 생전 명함 한 장 안 지니시다가 갑자기 무슨 명함입니까?"
  목사님은 말없이 종이를 자르시고 거기에 '강경침례교회 목사 이종덕'이라고 쓰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이 명함을 어디에 쓰시려고 하십니까?"
  "경찰이고 공산당원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나눠주려고 하네."
  "아이고 목사님, 큰일이라도 당하면 어떡 하시려고요."
  "아니, 이 사람아! 자네도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운가? 내가 복음을 전하는 목사라는 사실을 숨겨야 할 이유가 어디 있나?" 이종덕 목사님은 그 명함을 뿌리고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 공산당의 총탄에 맞아 순교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합니다. 부활과 영생과 천국을 믿지 못한다면 누가 순교를 하겠습니까? 거짓과 부인을 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의 두 기둥입니다. 영원한 진리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성도들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상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화롭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고 충성하고 순교하는 것입니다. 불속과 같은, 사자굴과 같은 십자가의 길이라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반드시 승리하기에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영화로운 최후 승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를 영화롭게 하신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에 아멘으로 응답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사순절이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오라, 즐거움을 얻으리라, 영화롭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초청에 아멘으로 화답합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최고의 즐거움과 영화가 여러분과 삶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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