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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시 119: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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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성권 목사

오늘 본문의 말씀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4번째 자음 달렏[d]에 해당합니다.

시편 119편은 신명기의 명령을 좇아(신6:1-9)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시로 성경 중에서 가장 긴 장입니다. 176절입니다. 그것은 히브리어 알파벳 22자를 좇아 22부로 나누고, 그 알파벳을 각 머리글자로 하여 8절씩 1부를 구성했습니다. 그래서 22×8 = 176절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의 4번째 자음 달렏[d] 부에서는,

환난에서 구원하는 말씀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고난에 처한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이 비록 진토에 붙었으나 소성케 하시고, 내 영혼이 비록 괴로움에 짓눌려 녹사오나 주의 말씀대로 다시 일으켜 세워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따르리니 나로 수치를 당치 말게 하소서 하는 호소입니다. 그리고 내가 마음을 크게 하여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라는 다짐입니다.

오늘이 벌써 새해의 셋째 주일입니다.

하루 하루의 날자가 참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욥은 빠른 세월을 가리켜, 나의 날이 체부보다 빨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욥9:25). 더욱이 고난 중에 있는 자신에게는, 나의 날이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소망 없이 보낸다고 했습니다(욥7:6). 빠른 세월 속에 소망 없는 날을 보내다 보면 곧 곤고한 날이 이른다고 했습니다(전12:1). 다시 말해서 빠른 세월 속에 창조주 하나님을 찾는 소망을 심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1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우리 앞에 당한 경주가 무엇일까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입니다. 왜 우리 성도들이 예수를 바라보고 경주하듯 달려가야 합니까? 그것은 세월이 참 빨리도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욥처럼 나의 날이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소망 없이 보냈다고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참으로 욥의 말처럼 나의 날이 베틀의 북보다 더 빨리 지나갑니다. 더욱이 힘들고 험난한 세상입니다. 지치고 스러지는 몸을 추스르며 오늘 본문의 시인과 같이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하는 기도로,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어(사40:31)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힘차게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주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참으로 세월이 베틀의 북보다 더 빨리 지나갑니다. 빠른 세월이기에 우리 성도들의 삶은 그 세월보다 더 빨리 달려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를 바라보고 가는 길은 좁고 험합니다. 지치고 힘들다고 주저앉지 마세요. 주저앉으면 뒤로 물러가지 않아도 세월이 빨리 흘러감으로 그만큼 뒤로 처집니다.

그래서 시인은 부르짖습니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새 힘을 달라는 기도입니다.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더욱 힘차게 달려가려는 호소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처럼 주의 계명의 길로 2005년을 달려가야 할 우리 성도들입니다. 이미 2005년의 경주는 시작되어졌고, 벌써 셋째 주일의 구간에 접어들었습니다. 새 힘을 얻어 끝까지 달려갑시다. 달리며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사40:9), 달려갈 길을 마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딤후4:7).

1.내 영혼을 소성(蘇醒)케 하소서

본문 25절/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여기의 "진토[아파르(rp;[)]"는.... "흙, 먼지, 땅, 티끌"을 뜻합니다. 이 진토/흙으로 사람이 창조되었고(창2:7), 또한 사람이 죽으면 진토/흙으로 돌아갑니다(창3:19). 그래서 진토/흙이 무덤을 뜻하기도 합니다(사26:19). 그리고 여기의 "붙었사오니[다바크(qb`D:)]"는.... "착 달라붙다, 결합하다, 접근하다"를 뜻합니다. 이를 종합하면 지치고 곤하여 죽은 사람과 같이 땅에 착 달라붙었다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내 몸/육신이 진토에 붙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육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임을 말해줍니다. 영적으로 진토는 세상의 모든 무가치한 것들을 가리킵니다. 이 무가치한 것들 곧 진토/흙에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넣어질 때 생령 곧 사람이 되었습니다(창2:7).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여기의 "소성케[하야(hy:j;)]"는.... "살다, 살아 있다, 재생시키다, 회복시키다"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되살아나는 것 같은 새 힘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이 새 힘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렇게나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주의 말씀대로 얻어집니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했습니다(암5:4). 또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생명을 얻게 하신다고 했습니다(신30:6).

본문 28절/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오니"....

여기의 "눌림[투가(hg:WT)]"은.... "억압, 고통, 슬픔, 근심"을 뜻합니다. 곧 환난과 곤고로 인하여 영혼이 고통당하는 것으로 가슴이 짓눌린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녹사오니[다라프(#l`D)]"는.... "똑똑 떨어지다, 눈물을 흘리다, 새다"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한꺼번에 쏟아 붓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오랜 시간에 걸쳐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을 인하여 오랜 세월동안 눈물을 흘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여기의 "세우소서[쿰(!Wq)]"는.... "일으키다, 일어나다, 강하게 하다, 세우다, 확정하다"를 뜻하며, 그밖에도 다른 많은 뜻을 가지고 사용되어지는 단어입니다. 곧 "나를 세우소서"는 나를 다시 힘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나를 소성케 하소서"하는 말과 같은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주의 길은 좁고 험난합니다. 더욱이 어둡고 죄악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의 길을 달려가기란 참으로 힘듭니다. 때로 지치고 곤하여 스러질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주저앉아 있을 수 없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입니다.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정신으로 다시 일어나 주의 길로 달려가야 하는 우리 성도들입니다. 그러기에 내 영혼을 소성케 하소서! 주의 말씀을 붙잡고 부르짖게 됩니다.

『주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내 힘으로 달려갈 수 없는 길입니다. 새 힘 받아 달려야 할 길입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하고, 새 힘 주시기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하고, 새 힘 주시기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주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내 힘으로 달려갈 수 없는 길입니다. 새 힘 받아야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 새 힘은 주의 말씀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의 약속하신 말씀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의 능력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을 바라보세요. 비록 자신의 영혼이 죽은 자와 같이 진토에 붙었어도 말씀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욘2:9).

『주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이 다짐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여호와께서 주십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는다고 했습니다(사40:31). 주의 길로 달려가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지치고 힘들어 넘어질 때 주저앉지 마세요.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시고, 일으켜 세우주시고, 새 힘 주소서! 우리 모두 새 힘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힘차게 달려가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2.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본문 27절/ 나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사를 묵상하리이다/

"나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여기의 "법도[피쿠ㅡ드(dWQP)]"는.... "교훈, 계율"을 뜻합니다. 이 단어는 24회 사용되어졌습니다만, 특이하게도 시편에서만 사용되어졌고, 그것도 3회를 제외하고는 모드 시편 119편에 사용되어졌습니다. 시편 19:9절에서 "교훈"으로 번역되었고, 모두 "법도"로 번역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다른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다른 표현....

시편 119편에는 말씀의 다른 표현이 8 가지나 -(단어)- 됩니다. 그래서, 매 절마다 골고루 사용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법(1절), 증거(2절), 도(3절), 법도(4절), 율례(5절), 계명(6절), 판단/규례(7절), 말씀(9절)입니다.

"나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주의 법도의 길은 바로 "주의 길"입니다. 이 "주의 길"을 오늘 본문의 시인은 여러 가지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주의 법도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주의 계명의 길이라고 했습니다(32절). 주의 도라고 했습니다(3절). 주의 증거의 도라고 했습니다(14절). 주의 율례의 도라고 했습니다(33절). 모두가 다 주의 말씀을 따르는 길입니다. 이 길을 깨닫는 것이 바로 새 힘을 얻는 첩경입니다.

"나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주의 법도 곧 주의 말씀을 깨달아야 새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하고 호소합니다. 나의 행위 곧 자신의 연약과 부족을 다 고하며 부르짖고 있습니다. 지난날 응답해 주신 주님을 기억하며 그 주님께 주의 율례를 가르쳐 주소서, 주의 법도를 깨닫게 하소서, 새 힘을 주소서....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사를 묵상하리이다"....

주께서 주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오면 주의 행하신 크고 놀라운 일을(시92:5) 묵상하리라는 고백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은 주의 말씀을 묵상하리라는 고백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한다고 했습니다(15절). 방백들도 앉아 나를 훼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를 묵상하였다고 했습니다(23절).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에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를 묵상하리라고 했습니다(48절). 교만한 자가 무고히 나를 엎드러뜨렸으니 저희로 수치를 당케 하소서 나는 주의 법도를 묵상하리라고 했습니다(78절).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고 했습니다(148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주의 길은 좁고도 험한 길입니다.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새 힘을 얻어야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 새 힘을 얻기 위해 시인은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쳐 주소서, 나로 주의 법도를 깨닫게 하소서, 새 힘을 주소서.... 호소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의 말씀을 묵상하리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주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주의 길을 달려야 하겠는데, 내 영혼이 진토에 붙어버렸습니다. 내 영혼이 환난과 고통 속에 짓눌려버렸습니다. 이 고통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능하신 손길뿐입니다. 여호와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 네가 목도한 바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신10:21). 그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말씀으로 돌아가 그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나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새 힘을 받아 이 고통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이 바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는 것입니다. 시인은 문제의 해결책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고 있습니다. 말씀을 깨닫고 은혜를 받아야 새 힘을 얻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덧입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었노라고 고백했습니다(빌4:13). 우리 성도들도 주님 주시는 능력에 힘입어 주의 길을 힘차게 달려가야 합니다.

3.내 마음을 넓히소서

본문 32절/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마음을 넓혀 달라고 호소합니다. 영혼이 진토에 착 달라붙고, 환난과 고통에 짓눌려 나약해진 마음입니다.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마음입니다. 달려가야 할 푯대인 주님보다는 근심과 걱정이 앞섭니다. 이렇게 근심과 걱정으로 좁아진 마음을 넓혀 주시기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통의 짓눌림에서 벗어나 기쁨과 즐거움과 평안과 소망이 넘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넓은 마음을 하나님이 큰 일을 할 사람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셨다」고 했습니다(왕상4:29). 곧 넓은 마음은 크고 광활한 마음으로 셀 수 없이 많고 많은 것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바닷가의 모래 같다고 했습니다. 바닷가의 모래는 성경에서 측량할 수 없도록 많고 풍성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창32:12; 신33:19).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주의 계명의 길은 곧 주의 길로, 주의 계명/명령/율법이 명하는 길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의 말씀을 따르는 길입니다. 환난과 고통에 짓눌린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과 평안과 소망을 주시면 주의 길로 달려가리라는 고백입니다. 주의 길로 행한다, 주의 말씀을 따른다, 등의 "걷는다"는 표현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환난과 고통의 짓눌림에서 건짐을 받은 자는 그 기쁨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그만큼 주의 계명/명령/율법을 잘 지키겠다는 고백입니다.

본문 30절/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내 앞에 주어져 있는 길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게서 나오는 "성실한 길"이 아닙니다.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여호와께서 가르쳐 주시는 길입니다(시25:12). 이 길을 오늘 본문의 시인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주의 법도의 길, 주의 계명의 길, 주의 도, 주의 증거의 도, 주의 율례의 도라고 했습니다.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나의 영혼을 고난의 짓눌림에서 건져 기쁨과 평안을 주시니 주께서 가르쳐 주신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나아가 「내가 주의 증거에 밀접하였다」고 했습니다(본문31). 여기 "밀접하다"는 말이 바로 본문 25절의 진토에 "붙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내가 주의 증거에 밀접하였사오니(본문31)....

바로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하고 부르짖던 시인의 구원받은 모습입니다. 내 영혼이 짓눌려 녹아 내리고(본문28절), 죽은 자처럼 진토에 착 달라붙었던 시인이 이제 소성케 되어 진토에서 벌떡 일어나 주의 증거에 착 달라붙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를 사랑하며 주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주의 길은 좁고도 험한 길입니다.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새 힘을 얻어야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주의 말씀을 깨달아 내 영혼이 소성케 되고 새 힘을 얻어야 주의 길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나의 날은 욥의 말처럼 베틀의 북보다 더 빨리 지나갑니다(욥7:6). 그러기에 시인은 주의 길로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바로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과 같습니다(엡5:16).

『주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2005년의 경주장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이미 출발하여 셋째 주의 구간에 접어들었습니다. 주의 기사를 묵상하여(본문27절), 주의 말씀대로 소성케 하는 새 힘을 얻어(본문25절)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힘차게 달려야 합니다(히12:1). 상 얻는 자는 하나라고 했습니다(고전9:24). 진토가 아닌(본문25절) 주의 말씀에 착 달라붙어(본문31절), 주 여호와를 앙망하여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는 새 힘을 얻어(사40:31) 2005년을 끝까지 힘차게 달려,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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