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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믿음으로 삽시다.(삼상 13: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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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빅재신 목사
 
  어느 회사의 입사 시험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났습니다.
  "거센 폭풍이 몰아치는 밤 길에 당신은 버스를 운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거장에 도착해보니  세 사람이 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첫째는 한시 바삐 병원에 가야 살 수 있는 위급 환자인 할머니, 둘째는 언젠가 당신의 생명을 구해준 적이 있는 고마운 의사. 셋째는 평생 꿈에 그리며 만나기를 소원했던 이상형의 사람, 그런데 차에는 단 한 명만 태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태우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이런 저런 답을 써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태우겠습니까? 생각하기에 따라서 정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200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채용된 사람이 써낸 답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고 합니다.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셔다 드리도록 의사 선생님께 차 열쇠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상형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요”
  이 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틀을 깨고 생각할 때’ 기대 이상의 결과들이 나타납니다. 나를 버리고 크게 생각하면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 입니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옆을 보니 영어로 "POISON“라고 써 있는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이 말의 뜻은 독약입니다.
  그 표지판을 본 순간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병원으로 달려가면서 이제 곧 창자가 녹아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병원에서 의사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껄껄 웃으며"POISON"은 영어로는 독약이지만 불어로는 낚시 금지라는 말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독약이 그를 아프게 하였다가 치료가 그를 안 아프게 한 것이 아니고, 그를 아프게 하였던 것도, 안 아프게 하였던 것도 모두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생각을 크게하고 생각의 틀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실 때 먼저 사람의 생각부터 바꾸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아주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습니다.
  조현삼 목사님이 쓴 코카콜라와 캔커피라는 책에 글 하나를 소개합니다. 힘겹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글입니다.
  살림을 하고 계신가요?
  해도 해도 표도 안나는 집안 일이 날마다 반복 되구요.
  애들이 말이라도 잘 들어주었으면 좋겠는데...
  남편의 따듯한 말이라도 한마디 기대해 보지만 그 역시.
  사업을 하고 계신가요?
  요즘 기업을 운영하시기가 많이 힘드시지요.
  자금 난에 인력난에 거기다 갈수록 치열해 지는 경쟁...
  월급날이나 결재일만 돌아오면 어디 숨어버리고 싶으실 때도 있으시지요.
  직장을 다니고 계신가요?
  매일 아침 출근전쟁(?)으로 부터 시작되는 하루. 퇴짜 맞은 결재 서류를 들고 돌아서야하는 초라한 내 모습. 승진하고 간 동기의 빈 자리를 지켜야하는 때도 있으시지요.
  힘드시지요?

  그렇습니다.
  집에서 살림을 하는 주부나 사업을 하는 기업가나 매일 출근하는 셀러리맨이나 힘들고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낙심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결론적으로 어려울수록 더욱 믿음으로 삽시다.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 된 사울에게 큰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왕이 된지 2년쯤 되었을 때 블레셋 군대가 침공해 들어온 것입니다.
  삼상 13:5절을 보면 블레셋 군대는 병거가 3만이요 마병이 6천이며 보병은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았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여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더라”
  반면에 그에 대항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수는 군사 3천에 나머지는 제대로 훈련도 받지도 못하고 모여든 백성들 뿐이었습니다. 특히 13:22절에 보면 이스라엘 군대에게는 제대로 된 무기라고는 사울왕과 왕자 요나단이 들고 있는 칼이 전부였습니다. 13:2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으니라”

  이스라엘 군대는 맨주먹 쥐고 3만 병거와 6천의 마병과 싸워야 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사울왕의 마음이 불안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사무엘 선지자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의 종 사무엘 선지자를 찾았습니다. 전령을 보내어 사무엘 선지자를 청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의 기별을 받고 7일 후에 오겠다는 회신을 보냈습니다.
  언제 총공세로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는 것이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도 사무엘 선지자가 약속한 날이 오기까지 기대를 갖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약속한 일주일이 지나도 사무엘 선지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더욱 두려움이 생기게 되었고 군사들은 요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3천 명이던 군사들이 다 도망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삼상 13: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그래서 삼상 13:15절을 보면 6백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자기와 함께한 백성을 계수하니 육백 명 가량이라”
  상황이 이렇게 되니 사울왕의 마음이 조급해 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왕은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냈습니다.
  그것은 오지 않는 사무엘 대신 자신이 제사를 집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불안해 하는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자신이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가 끝나자 마자 사무엘 선지자가 도착하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와보니 이미 제사가 드려졌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어찌 된 것인지 물었습니다. 
  13:11-12절을 보면 사울왕이 변명합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불레셋 군대는 눈앞에 있고 군사들은 흩어져서 6백명 밖에 남지 않고 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주겠다고 약속한 당신은 오지 않고... 이것이 사울왕의 변명입니다. 사울은 “부득이 하여....” 라고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상황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 상황이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했을 까요?
  사울왕의 설명을 충분히 들은 다음 충분히 이해할만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13:13절에 보면 사무엘 선지자는 책망을 합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무엇을 말합니까?
  사울 왕은 최악의 위기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무엇인가 잘못생각하고 행동한 것입니다. 사울은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본문을 중심해서 하나님이 오늘 위기를 만나고 어려움을 만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 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어려운 환경보다 먼저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사울은 하나님 보다 어려운 상황과 환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삼상 13: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환경을 먼저 바라보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믿는 성도들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두려우면 두려울수록 그 상황이나 환경보다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사울이 바라보았던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그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그것만 보고 앉아있으면 절대로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만을 바라보았을 때는 물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파도치는 물결을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물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어려울수록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만을 보면 그 상황이 나를 정복하여 낙심과 절망 구렁텅이 빠뜨려 버립니다.

  대둔산에 가면 구름다리가 있습니다. 구름다리 아래는 몇십 길 되는 깊은 골짜기입니다. 그 위로 흔들거리는 구름다리가 놓여있습니다. 고공 공포증이나 담력이 약한 사람들은 건너갈 때 간이 콩알만 해지기 시작합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립니다.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어집니다.
  그때 그런 다리를 무사히 건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래를 보지 않고 위를 보는 것입니다. 위를 보며 걸으면 무섭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려운 상황이 올수록 우리는 사람이나 환경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야아 합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 우리의 바라보는 초점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은 바라보는 것에 따라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뀜에 따라 대처하는 행동이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면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될것입니다. 어려움을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가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둘째 어려울 때 인간의 수단을 강구하지 말고 믿음의 기본으로 돌아갑시다.

  어려움을 만날 때 인간의 얄팍한 지혜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울은 두려웠습니다. 병사들은 흩어지고 사무엘 선지자는 오지 않고 ....  이때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사무엘 선지자를 대신하여 제사를 드리면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삼상 13:9절을 보면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이것이 어려운 상황을 풀 수 있는 기막힌 묘안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사울이 드린 그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오히려 제사가 끝난 다음에 도착한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을 엄하게 책망하였습니다.
  상황은 이해가 됩니다. 다급하고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수단이나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절대로 문제해결의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신앙적인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을 책망한 말씀가운데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삼상 13:1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입니까?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삼상 10:8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을 기다리라”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이미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어렵고도 힘든 상황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사울은 하나님을 크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번제를 드리지 않아도 언제든지 도와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헌신적이고 진심어린 순종입니다.  아무리 인간의 생각에 묘수 같고 또한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범죄입니다. 성도 여러분!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인간적으로 얄팍한 묘수 찾지 말고 신앙적인 기본으로 돌아갑시다.

  셋째 변명이나 핑계보다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잘못된 일에 대하여 변명을 잘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울수록 잘못 됐으면 잘못된 만큼 그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에 대한 변명이나 핑계를 대지 말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사울을 책망했습니다. 잘못에 대하여 지적을 받았습니다. 엄청난 경고와 책망을 받았습니다. 나라를 뺏길 것이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사울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저라면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었을 것입니다. 무조건 죄송합니다. 엎드려 용서를 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상황에 밀려 제가 실수했습니다. 제가 잘 못 생각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울며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의 모습을 보십시오. 회개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사울은 변명합니다.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부득이 하여 어쩔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상황 설명만 늘어놓다가 결국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받고 맙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서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회개를 통한 새 출발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제 2의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상황일수록 더욱 믿음으로 삽시다.
  환경보다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인간의 수단을 강구하지 말고 믿음의 기본으로 돌아갑시다.
  변명이나 핑계보다 회개하고 돌이킵시다.
 
  그러면 우리의 어려운 상황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극복될 수 있습니다. 어렵다고 낙심하고 인간의 수단 방법을 찾고 변명이나 핑계거리만 찾으면 안 됩니다. 다시 한번 따라 합시다.
  환경보다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인간의 수단이 방법이 아닌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의 기본을 실천합시다. .
  잘못에 대하여 변명이나 핑계하지 말고 회개하고 돌이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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