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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롬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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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오재현 목사

1.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동시에 두 세계를 살아갑니다. 이 땅과 천국 시민의 삶입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과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아버지가 계십니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와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이렇게 두 세계에 속한 우리는 전자보다 후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땅과 나를 낳아준 부모님은 언젠가 이별합니다. 그러나, 천국과 하나님의 가족은 영원합니다.

오늘 주제는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있습니다.
벧전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여기의 “기업” 은 현대어로 “유산” 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얻는 축복은 유산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유산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산,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보관해놓은 것입니다. 그 유산은 크게 다섯 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히 변화되어 예수님처럼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아픔, 죽음,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상급받고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은 가장 큰 영광이요 특권입니다.

2. 하나님의 가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 입니다.
메리 앤 버그(Mary Ann Burg)라는 여류작가가 쓴 <속삭임 테스트>란 글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경험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나는 언청이로 태어났습니다. 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학교 친구들은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입술이 찢어지고 코가 비뚤어졌으며 치열이 고르지 못하고 발음도 정확하게 하지 못하는 어린 소녀였습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도록 배웠습니다. 친구들이 ”입술이 왜 그렇게 된 거냐?“ 라고 물으면, 나는 넘어져서 유리조각에 다쳤다고 대답했습니다. 남과는 다르게 태어났다는 것보다는 사고가 났었다고 하는 편이 더 견디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족들 외에는 누구도 나를 사랑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내가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레너드란 여선생님이셨습니다. 다들 그분을 좋아했습니다. 그녀는 키가 작고 통통하며 행복하고 활기가 넘치는 부인이었습니다. 매년 우리는 듣기 평가를 받았습니다. 레너드 선생님은 학급의 모든 학생들을 불러 시험을 치렀고,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문을 등지고 서서 한쪽 귀를 막고 서 있으면 선생님이 자기 자리에 앉은채 어떤 문장을 작은 소리로 속삭여주었고 우리는 그것을 따라 말해야 했습니다. 이를테면, ‘하늘은 푸르다’ 혹은 ‘너는 새 신을 가지고 있니?’ 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나도 역시 그곳에 서서 선생님의 속삭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짧은 문장은 하나님께서 그녀의 입에 넣어주신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것은 내 인생 전체를 변화시켰습니다. 레너드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내 딸이었으면 좋겠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지식이 아니고 프로그램도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레너드 부인처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자그마한 속삭임 “네가 내 딸이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네가 내 딸이었으면 참 좋겠다.” “네가 내 아들이었으면 참 좋겠다” 라는 속삭임을 들었습니다. 영적인 언청이와 같은 우리에게 우리 주님은 진심으로 사랑에 겨워 속삭이셨습니다. 그 사랑의 속삭임에 우리 인생은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8) 하나님은 사랑 자체, 사랑 덩어리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15:34)
하나님이 사랑이시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그분의 성품을 본받아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되, 특별히 하나님의 가족인 믿는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라고(벧전2:17)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유명한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을 보면, 아무리 방언을 하고 천사의 말을 하고, 예언을 하고, 모든 지식이 있고, 믿음이 있고, 구제하고, 남을 위하여 내 목숨을 내어준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인생-사랑= 0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두 가지 사랑으로 압축하여 표현하셨습니다.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마더 테레사 수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을 쏟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으로 얼마나 성숙한 그리스도인인가 하는 평가 기준은 얼마나 사랑을 많이 베풀며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평가 기준도 교인이 얼마나 출석하느냐, 재정이 얼마나 되느냐, 프로그램이나 사역이 아니라, 그 교회 안에 사랑이 얼마나 풍성하냐 입니다. 
사랑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 다섯 가지 비전 중 하나가 “사랑의 돌봄이 있는 교회”입니다.

사랑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까?
선물로 사랑을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좋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시간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시간은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귀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간은 곧 내 삶이요 내 목숨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를 위하여 시간을 내는 분이 진정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분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시간을 낼 수 있는 분이 진정 교회를 사랑하는 분입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시간에는 내일이 없습니다. 지금 시간을 내셔야 합니다.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까? 지금 하십시오.

지금 하십시오.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른지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 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말하십시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안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곁에 있지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거든 지금 웃어 주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는 피고 가슴이 설레일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에는 너무나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부르십시오.

3. 필립 얀시는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이란 책에서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 드보라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드보라의 남편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녀에게는 부양할 네 아이와 초라한 방 한 칸만이 짐처럼 남았다. 남편은 새 여자를 찾아 떠난 것이었고 드보라는 버림받았다는 통한의 감정을 다스리기까지 여러 달 동안 교인들의 어깨에 머리 기대 울며 지냈다. 그러한 감정적 추스름 말고도 드보라에게는 당장에 해결해야 할 실제적인 문제들 또한 있었다. 천장에서는 빗물이 떨어졌고, 막힌 하수구에서는 구정물이 올라 왔으며, 고물차는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지경이었다. 드보라는 누군가 장기간 돌보아 주어야 했다.
작은 교회에서 약 스무 명이 팔 걷어 부치고 나섰다. 그들은 돌아가며 드보라의 아기들을 돌보았고 칠을 다시 했으며, 지붕과 차를 수리했다. 한 사람은 그녀를 고용해 새로운 일을 가르쳤다. 형편이 넉넉한 부인 한 사람은 아이들의 교육비를 대겠다고 제안했다. 드보라는 적어도 오 년간을 교인들이 마련해 준 ‘목발’에 의지해 걸어다녔다.

우리는 모두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절뚝거리는 우리 인생에 목발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서로에게 목발이 되어 주는 것, 이것이 성도들 간의 교제, 사랑의 교제입니다.
이런 사랑의 교제를 위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은 매일 만났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2:46)
진정한 교제를 위해서는 시간을 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족에 속한 형제 자매들을 만날 시간, 그들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시간, 그들과 함께 기도하며 말씀을 나눌 시간을 내어야 합니다.
히브리서10:24-25 “서로 돌아보고 사랑을 베풀며 선한 행동을 하도록 격려합시다. 어떤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교회의 모임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그 날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볼수록 함께 만나며 서로를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쉬운 성경)

교인 전체가 모이는 예배에서는 우리의 삶을 공개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소그룹이 필요합니다. 앞의 부인 드보라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교회에서 모이는 소그룹은 계모임 혹은 동창회나 동호회와 다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모이는 소그룹의 9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소그룹에서는 서로 진실되고 솔직한 감정을 나눕니다. 남편이 집을 나간 고통을, 이에 따른 경제적 고통, 자녀 양육의 문제를 솔직하게 나누는 것입니다.

소그룹에서는 서로 격려해줍니다.
힘들 때, 공감해주며 서로 도와줍니다. 감정적으로 슬픔을 함께 당하며 일어서도록 도와주고, 경제적으로도 필요를 공급해줍니다.
갈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소그룹에서는 서로의 잘못을 용서해줍니다.
교회는 은혜의 장소요 자비의 장소입니다. 실수를 드러내지 않고 덮어주는 곳이 교회요 소그룹입니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다 실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소그룹에서는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합니다.
형제자매를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것을 보고 그냥 방치해두지 않습니다. 그를 사랑하기에 진리를 말해주어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해줍니다.

소그룹에서는 서로의 약점을 인정하는 겸손이 있습니다.
교만, 독선, 고집은 성도간의 사랑의 교제를 파괴합니다. 자신도 약점이 많음을 인정하는 겸손은 사람들 사이의 벽을 허물고 다리를 놓습니다.

소그룹에서는 나와 다른 성도들은 서로 다르다는 차이점을 존중하고 서로의 감정을 배려합니다. 때로는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인내로 기다려줍니다.

소그룹에서는 험담하지 않고 비밀을 지켜줍니다.
소그룹 구성원들은 서로를 잘 이해하고 도와주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자주 만납니다. 

4. C.S 루이스는 그의 저서 <네 개의 사랑>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사랑해보라. 당신의 마음은 분명 아프게 될 것이며 아마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마음을 다치지 않기를 원한다면, 아무에게도 당신의 마음을 주어서는 안된다. 동물에게조차도 주지 말아야 한다. 취미와 작은 사치로 조심스레 마음을 감싸고 어떠한 대상에게도 연루됨을 피하라. 이기심의 관 속에 마음을 넣고 안전하게 잠가버려라. 그러나 그 관에서도 당신의 마음은 변할 것이다. 천국 외에 당신이 사랑의 모든 위험에서 완전히 안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지옥 밖에 없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위험한 것입니다. 다칠 수도 있고 상처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서로 사랑하지 않고는 참된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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