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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떻게 살 것인가? (사 40:6-7, 약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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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덕휴 목사

하나님께서는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 있는 교훈을 주십니다. 다 함께 봉독합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우리의 생명을 여기서 안개에 비유해서 말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깊은 진리를 말씀하여 주는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사 40:6-7).

여기서 인간을 풀에 비유하였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누리는 영광을 풀의 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풀과 같은 존재입니다.

시편 102편 3절에 대게 나의 날이 연기와 같이 소멸하도다 하였고, 시편 114:3절에도 사람은 헛된 것 같으며 그 날은 그림자같이 지나간다고 하였습니다.

약 4:14절 본문에서 말하는 안개는 물론 인생의 무상함을 말합니다. 실재로 우리 인간을 살펴 볼 때 이 말씀이 진리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인생은 잠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육체는 사라지고 만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 직면하게 될 때, 우리가 이 인생을 한번 밖에 못사는 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하는 것은 중대한 인생의 과제입니다.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라고 하였습니다. 인생무상 함을 말하는 것이지요.

지혜의 왕 솔로몬도 그의 만년에 쓴 전도서에서는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고 하였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을 보면 개정판이라는 것이 있지만, 인생의 개정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단 1회에 불과합니다. 그리스도의 시간, 즉 카이로스는 단선으로 항진하기 때문에 인간이 두 번 살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도 말하기를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이 초상집에 있고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이 잔치 집에 있다"(전 7:4)고 하였습니다.

누구나 한번은 예외 없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삽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못됩니다. 인생에게는 이러한 때가 한번은 꼭 오고 맙니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 연장을 보장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아니 한 시간 후 일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


1. 무상한 이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않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보면 어떤 곳에 한 부자이야기가 나옵니다. 풍년이 되어 곡식을 많이 거두게 되었는데 그것을 다 간직하려면 있던 창고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이렇게 소출을 많은 데 그 곡식을 다 간직 할 곳이 없으니 이것을 어떻게 할까? 생각 하다가 내가 이 창고를 헐어버리고 굉장히 큰 새 창고를 짓고 여기에 가득히 저장해 두어야지 이렇게 해서, 내 영혼아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 네 창고에 먹을 것이 넉넉하다 하였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 저녁 네 영혼을 부르시면 그 모든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 12:16-21).

화산 폭발로 폐허가 된 폼페이 시는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일시에 폐허가 되었습니다. 첫 번째  지진이 내습하자 많은 사람들이 곧 도망쳤습니다. 왜냐하면 지진은 화산의 폭발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폼페이를 탈출하려다 빠져나오지 못하고 모두 화산재에 뒤덮여서 생매장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인구 2만 중에서 2000명이 죽었으니 10명 중 한 명이 죽은 셈이지요.

2천년 가까이 지하에 매몰되어 있던 그 도시가 발굴되어짐에 따라 당시의 문화가 얼마나 화려하고 또한 성적으로 문란한 사회였던가를 짐작하게 합니다. 그런데 발굴된 그 도시를 보면 누구나 무엇인가를 끌어안은 채 죽어 있습니다. 마치 자기가 귀하게 여기던 보물을 마지막 순간까지 안고 뛰다가 그만 시간을  놓쳐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소유했던 모든 것들은 지금 화석이 되어 인간의 소유욕에 대한 미련함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슬기와 지식과 기쁨을 주시고, 눈 밖에 난 죄인에게는 모아서 쌓는 수고를 시켜서, 그 모은 재산을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주시니, 죄인의 수고도 헛되어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전 2:26)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무상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으면 이 어리석은 부자처럼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줄 생각하는 그런 태도는 버리겠고 이 세상의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에 대한 분에 넘친 생각을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주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위해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기쁨으로 그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의 무상을 깨달은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 세상을 사랑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정욕과 향락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가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1 2:15-17).

이 세상의 향락과 육신의 정욕도 아침 안개와 같습니다. 교만한 욕심을 버리고 겸손한 자는 유익함이 있습니다.  일만 악의 근원은 욕심이요 욕심의 본질은 교만함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 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 된 것이니라"(잠 19:9)고 하였습니다.


2. 이세상의 무상을 깨달은 사람은 이웃을 위하여 간구하는 사람입니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6).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 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창 18:32). 의인을 구하지 못한 소돔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고 지구상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 세상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이나 내 사람됨에 대해 큰 기대를 할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를 표현한대로 어쩌면 우리는 티끌보다도 못한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체념 속에 주저앉아 불평만을 일삼을 수 없는 것은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유일한 의인이라는 것과 그 분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몸이라고 하고 우리를 그의 지체라고 했습니다. 내 자신이 의인일 수는 없더라도 의인의 한 작은 지체일 수만 있다면 우리는 무너진 성을 쌓아 보려는, 그리고 뚫어진 구멍을 내 스스로 막아 보려는 노력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앞서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이 바로 그의 지체된 자들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제자의 길을 걷는 것은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것이 가능할 것이냐 불가능할 것이냐를 저울질 해  보고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지레 돌아서는 행위는 결코 크리스찬의 신념은 아닙니다. 혼자라도 주님의 제자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 크리스찬의 삶의 자세입니다.

요즘은 세상이 너무도 이상해져서 뭔가 정직하게 살아 보려는 사람이나 뜻을 가지고 좀 바르게 살아 보려는 사람은 아예 바보로 통합니다. 우리는 진실하고 참되게 살아 보려고 애쓰는 자들을 비웃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 스스로도 소박하게나마 가정에서나 이 사회에서나, 대인관계 혹은 교회에서 늘 참을 추구하려 하고 진실을 좇으면서 편법이나 거짓이나 사욕을 떠나려는 노력을 해야지, 악한 의지와 타협이나 일삼고, 부조리한 현실에 무조건 적응하는 것만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 외면해버린 허물어진 성을 홀로나마 쌓고 있는 자, 뚫어진 구멍을 자기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자가 바로 하나님이 찾는 의인이요, 그러한 의인의 간구만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시간 한 사람의 의인이 없어 고뇌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탄식을 들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지금 위기에 빠진 이 나라 이 민족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의인 하나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의인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간구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하심이 신성그리스도의 교회와 교회공동체의 축복과 은혜의 강이 흐르는 줄로 믿으시기를 기원합니다.


3. 인생의 무상함을 깨달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

첫째;
죄를 회개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사는 날이 지나면 주님을 만날 터인데 주님 앞에 가기 전에 모든 죄를 청산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죄를 온전히 회개하지 않고 놔두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마치 영원히 내가 살 것 같아서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임종할 때에 자신을 돌아봅니다. 우리 신앙인의 자세는 회개하는 자세입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자 입니까? 깨끗하고 거룩한 몸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갑자기 죽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깊이 자신을 생각하면 죄를 회개하고 믿음의 자리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
우리가 진리를 분명히 깨달으면 자연히 이 세상은 잠깐이니 우리가 일할 날이 얼마 많지 않으니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주의 일을 더욱 부지런히 하고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도 봉사하게 될 것입니다.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옵니다. 주님께서는 도적같이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내 발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에 한 집이라도 심방하고 전도하며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내 발로 걸어 다니지 못할 때가 옵니다.

삼중고의 몸을 가지고도 평생을 남을 위해 봉사한 헬렌 켈러 여사를 생각합니다. 그가 3일만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가 소원한 내용을 생각합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때가 속히 옵니다. 내 음성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때 힘껏 찬송도 부르고 봉사합시다. 내가 맡은 직분이 무엇입니까? 열심히 봉사하십시오. 다른 사람을 보시지 마시고 주님이 나에게 주신 이 귀한 사명을 위해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교훈을 줍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 되도다 모든 것이 헛 되도다(전 12:7-8).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바빠도 주님을 찾게 될 것입니다. 천국에 가려면 예배의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처지에 있다 해도 자기의 임무를 다한다고 하면 언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다 하여도 준비되어 있을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일하는 것은 영원히 사는 것처럼 일하고 사는 것은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생활입니다.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20-30대의 젊음과 신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는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입니다. 일본 명치유신의 元勳 사이고 다까모리(西鄕降成)는 말하기를 "신념이 없는 자는 救國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고 있으나 속 사람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음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보는 것은 7, 80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 풀의 꽃과 같은 인생 바로 지혜 있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나는 교회공동체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이 순간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신 있는가?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이 시간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귀한 믿음의 자녀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신다고 하신 하나님 아버지!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나 한 사람 정도야 괜찮겠지 라고 하는 생각을 버리게 하옵시고 제가 아니면 아니됩니다. 저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한 희생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간구하는 의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오늘 우리가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남은 고난을 채울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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