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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요 4: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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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춘수 목사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무엇을 보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우리는 세계관이라고 합니다.사람은 무엇을 보는가대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내가 본대로 준비합니다. 내가 본대로 생각합니다.내가 본대로 말을 하고 본대로 투자하면서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이 주로 보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 어떻게 하면 성공할까? 어떻게 하면 노년을 행복하게 보낼까? 대부분의 관심이 세상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관심이 세상 나라에서 더 행복해지는 것에 있습니다.
과연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보면서 살아가야 합니까? 지금 여러분들의 눈에 가장 보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시간 이땅에 오셔서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았던 주님은 보는 것이 달랐습니다. 주님은 하나나님 나라의 비젼을 갖고 살았습니다. 주님은 3년여동안 제자들과 함께 오직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사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이땅에서 더 확장하실까? 그래서 주님은 항상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시간과 모든 정성을 투자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좀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관심이 세상나라에 있었습니다. 솔직히 제자들은 아직도 이땅에서 출세에 더 관심이 많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에 더 관심을 갖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제자들이 자기가 갖았던 꿈 자기가 갖았던 생각 자기가 갖았던 안목을 갖기극 기대하셨습니다. 그래서 매사의 사건을 통해서 일들을 통해서 주님의 비젼과 주님의 안목을 가르쳐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문의 배경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사마리아땅을 지나는 가운데 벌어졌습니다. 정오가 되어서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시각에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서 있었습니다. 바로 다른 생각과 비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거기에 물을 길러온 남편을 6명둔 여인을 만나서 그 여인을 전도하는 것이 우선순위였습니다.
제자들이 보기에는 그 여인은 죄인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여인은 구원받아야 할 한 귀한 영혼으로 보았습니다.제자들이 보기에는 그 여인은 가난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보시기에는 그 여인은 하늘나라에 필요한 여인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보기에는 그 여인은 상대할 가치가 없는 형편없는 삶을 사는 여인이었지만 주님보시기에는 영적인 갈급함이 있는 여인이었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님의 이런 전도가 그대로 적중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상식을 깨고 전도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전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두고 주님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하십니다.이시간 저와 여러분들을 향해 주님을 눈을 들어 보라고 하십니다. 지금 우리들의 삶은 무엇을 보고 사십니까? 이땅에 오셨던 주님은 오직 눈을 들어 희어져 추수할 곡식같은 영혼들을 바라보면서 사셨습니다. 그들을 향한 간절한 눈길을 갖고 우리 주님을 사셨습니다. 이시간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비젼을 갖기를 주님은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누가 하나님 나라의 비젼을 볼 수 있습니까?

첫째  누가 눈을 들어 밭을 볼 수 있습니까?

바로 하늘양식을 갖고 있을때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제자들과 다른 안목을 갖았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에게 다른 양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사마리아지역을 지나가면서 먹을 것 마실 물 육체의 양식을 찾기 위해서 마을로 갔습니다. 그리고 먹을 양식을 구하여서 주님께 왔습니다.‘선생님 잡수세요“하면서 그들은 기쁘게 먹을 것들을 주님께 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32절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고 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습니까?" 말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합니다.
여기 주님은 다른 양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먹는 양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늘나라의 양식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지금까지 힘을 다하여 먹을 양식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죄로부터 구원하는 그 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여기 제자들과 우리 주님의 관심이 다른 것을 봅니다.
여기 제자들은 머리 속에 일단 우리는 이땅의 인간으로서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먹을 양식입니다. 전도도 하나님 나라도 일단 우리가 현실 속에서 먹고 난 뒤에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제자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우리는 육체의 현실을 무시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에서 먹을 양식을 먼저 구합니다. 현실에서 사람의 일을 먼저 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달랐습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이었습니다. 비록 현실적으로는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픕니다. 그러나 주님은 현실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보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너무 현실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 속에서 믿음 생활하면서 공공연하게 현실에서 돈이 제일이라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현실주의에 빠지게 되면 우리의 믿음의 초점은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안경을 쓰기 때문에 잘 아는데 눈의 초점이 흐려지기 시작하면 당장 감각이 상실되어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족구하다가 안경이 부러져서 한번 안경을 벗고 운동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감각이 떨어지면서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할때에 어쩔 수 없이 안경을 씁니다. 집중하기 위함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5전 영국 해협을 헤엄쳐서 왕복한 수영선수 플로렌스 채드윅이라고 하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후 1952년 7월 4일 36세의 플로렌스는 로스엔젤레스에서 가까운 카타리나 섬에서부터 캘리포니아 해변까지 수영해서 가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그 선언은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미국 전 지역에서는 그 도전 광경을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은 도착지점인 해변가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16시간 계속 수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짙은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안개를 헤치고 사력을 다해 나아갔지만 자기의 힘이 점점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결국 그녀는 안따깝게도 기권하고 자기를 따라오던 구조선에 승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배로 해변에 도달하고 보니까 안개 때문에 안보였던 도착지점이 포기한 지점에서 불과 500미터도 안되는 거리였습니다. 이 실패 후에 그녀는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매우 흥미로운 대답을 했습니다.
“ 제가 실패한 이유는 추위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피곤하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안개로 인해 목표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목표 지점을 볼 수 있었다면 저는 어떻게 해서든지 도착해었을 것입니다” 그녀에게 최고의 방해물은 바로 목표를 볼 수 없게 반든 안개였습니다.

지금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서 안개와 같은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너무 땅의 일 세상의 일에 너무 우선순위를 두면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쓸까 세상적인 성공에 매달리면서 살라고 우리의 삶을 허락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존재이유가 이 세상의 것을 보라고 허락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삼아주신 것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라고 우리를 구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지난 한주간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좇아서 살았습니까? 오늘 예배를 드리러 오실 때 지난 한주간의 세상에서 삶이 너무 힘들고 지쳐있다면 과연 내가 무엇을 위해서 지쳐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동분서주하면서 고심하셨습니까? 세상의 주님은 우리와 달랐습니다. 우리는 먹고 쓸 si양식을 구했지만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양식을 구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현실에서 멀저 하늘의 양식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신령한 주님의 뜻인 말씀으로 내 안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이시간 우리의 관심이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갖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한 한 영혼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해야 돈을 벌까 어떻게 해야 세상에서 성공할까? 이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여야 한 영혼을 구원할까 ? 어떻게하여야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까? 여기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눈을 들어 밭을 보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영혼의 추수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35절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라고 합니다. 왜 눈을들어 밭을 보라고 하십니까? 밭에 무엇이 보입니까? 지금 사마리아라고 하는 밭에서 우리 주님은 추수할 영혼을 보았습니다. 여기 추수란 바로 영혼의 추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함께 사마리아를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마리아에서 추수할 영혼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때의 중요성을 잘 압니다. 농사를 지을때 심을때 심어야 합니다. 거둘 때 거두어야 합니다. 만약에 심을때 심지 않고 거둘때 거두지 않으면 소출과 열매에 지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심을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거둘때가 더 중요합니다. 심는 것은 다시 심으면 되지만 거두는 것은 모든 한해의 결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둘때는 더 열심히 정성을 다해서 거두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곡식이 익어서 추수 할때를 기다리는 농부의 급한 심정으로 세상을 보았습니다. 사마리아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그 일을 감당하셨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서 그 일을 감당할 때 좀 배가 고파도 육신의 고통이 있어도 괴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영혼이 추수하는 일은 얼마다 즐겁고 기쁜 일입니까? 그래서 주님은 그 기쁨을 그 감격을 함께 제자들이 누리기를 소망하십니다.오늘 우리들이 그 안목을 갖고 함께 기쁨을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36절 “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여러분 밥한끼 잘 먹고 세상에서 좋은 집에서 잘 자고 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기뻐하시는 기쁨으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인정하시는 즐거움으로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추수할 때이므로 낫을 들고 희어져 추수할 곡식을 베러 가는 농부처럼 우리가 영혼의 추수를 해야 할 때입니다. 복음은 환경을 이깁니다.복음은 지역을 이깁니다.

오늘 사마리아 지역을 보십시오.그곳의 환경은 제자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증거할 때 추수의 열매가 어떻게 되어집니까?
29절-30절에 보면 전도의 결실의 때가 되었을때에 너무나 쉽게 전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나의 행한 일을 모든 일을 내가 말한 이 사람을 와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여기 이 여자가 전도할 때 보십시오. 내가 만한 예수님을 그냥 전했습니다. 내가 체험한 예수님을 와보라고 그냥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남편이 6명을 둔 이여자가 이런 말을 했는데 사람들이 나와서 예수님께로 오더라는 것입니다. 전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지역에 나를 통해서 내가 만난 예수님을 증거할 때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기 바랍니다.지금은 구원받을때요 지금은 은혜받을 때입니다. 우리가 증거하는 복음을 통해서 희어져 추수할 영혼이 분명히 우리 주변에 있을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항상 갖아야 할 마음 자세가 무엇입니까?
예비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논에 벼가 무르익어서 추수할 때가 되어진 것같이 영혼의 추수할 때가 된 영혼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구원받을만한 때요 지금은 은혜의 날이로다라고 합니다.
요즘 교회들마다 고민은 전도가 안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회 속에서 보는 것은 전도는 된다입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되어집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교회 속에서 감사하는 것은 불신자들이 주님 앞으로 나오는 역사를 보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되고 지금도 되고 앞으로도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번 두 번 전도하시다가 상처를 받으시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다시 눈을 들어 희어져 추수할 밭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먼저는 우리의 지역을 바라보시고 또 대한민국을 바라보시고 더 넓게는 세상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난해에 저는 성지순례를 다녀오면서 거쳤던 나라인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같은 나라에 성지를 다니면서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의 모리아산 정상에 금으로 도금을 한 커다란 둠 형태의 대형 신전이 있었는데 바로 이슬람신전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교도들이었습니다. 교회당은 있는데 너무나 작고 초라하였고 기독교의 세는 너무도 약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성지순례를 다니면서 내내 성지가 보인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실 성지순례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이 강릉에 살면서 무엇을 보면서 사십니까?
영적인 눈으로 강릉을 보면 사실 마음이 아픕니다. 얼마전에 시청사 앞에서 올 한해 안년을 비는 무슨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해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마귀를 기쁘게 하는 의식과 행사를 위해 돈을 투자하고 정성을 쏱는 것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안따깝습니까?
추수할 영혼들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 지역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우리 다함께 추수할 영혼을 향한 비젼을 갖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눈을 들어 밭을 보고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보았다면 “일어나 증거”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희어져 추수한 대표적인 일꾼이 한명 소개됩니다. 바로 사마리아 여인입니다.사마리아여인은 예수님을 보았습니다.예수님을 본 사마리아 여인은 즉시로 사마리아를 보았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보고 나면 내가 보입니다. 또 이 세상이 보입니다.여러분 세상은 결코 변해지지 않습니다. 정치로 교육으로 제도로 안됩니다. 물을 길러왔던 이 사마리아 여인은 지금 사마리아에 필요한 것은 먹을 양식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사마리아 자신의 조국에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떤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사마리아에 필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합니까? 28절을 보십시오.“일어나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절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합니다.
여기 물동이를 버렸습니다.그리고 증거했습니다. “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남편을 6명이나 둔 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증거하자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여러분 사마리아 사람이 증거하자 영혼들이 열매를 맺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합니까?
성경은 전적으로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오직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사람들이 전도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작정된 사람들은 성령님을 통해서 구원받게 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누가 구원받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모릅니다. 오직 성령님이 역사하게 될 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전도할 때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의지하면서 하는 것입니다. 나는 비록 부족하고 나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찾아오셔서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도록 철저하게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따라 전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전도가 되어지는 모습을 우리가 봅니다. 그런데 철저하게 성령님이 역사하심으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서 전도에 대한 2가지 잘못된 편견을 극복해야 한다고 봅니다. 첫째는 전도는 성경지식이 많아야 한다는 편견이도 두 번째는 삶으로 전도해야 한다는 편견입니다.
왜 전도를 못합니까? 지식의 문제입니까? 그렇다면 사마리아여인은 얼마나 지식이 있어서 전도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는 정말 주님을 보았는가? 정말 주님을 만났는가 ? 정말 주님을 체험했는가?의 문제입니다. 정말 주님을 보아고 정말 주님을 만났고 정말 주님을 체험했다면 여러분 증거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분명합니다. 때로 우리의 신앙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신앙을 사용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계도 사용하지 않으면 녹이 슬어서 가치가 없고 결국는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복음은 사용해야 능력이 나타납니다. 복음도 사용하지 않으면 더 이상 복된 소식이 될 수없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내가 믿고 있는 범위 내에서 자꾸 증거하고 전해야 하는 것이 주님께서 복음을 주신 이유입니다.

다음에 우리가 전도를 할때 우리 스스로가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제한하는 나쁜 습성이 있습니다.그중에 하나가 바로 “나의 삶으로 전도하자”는 것입니다. “나의 인격으로 전도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삶과 인격으로 주님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할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삶이 완전하면 얼마나 완전하고 우리가 인격적으로 온전하면 얼마나 온전합니까? 우리의 삶과 우리의 인격으로 전도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가 다시 율법주의에 우리를 묶어두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일어나 증거할때에 믿음으로 전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우리가 다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일하는 자에게 그 주권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버릴 자를 버리시고 택할 자를 택하십니다. 같은 시간에 말씀을 들을때 구원받는 자가 있고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 하나님의 놀라우신 주권은 우리의 이성과 모든 상식을 초월하여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희어져 추수할 영혼을 바라보시기 원합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만난 예수님 내가 체험한 은혜를 증거하시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전도는 항상 우리가 거룩한 부담으로 해야 할 사명이지만 이제 새봄을 맞이하여 더욱 복음의 씨를 뿌리시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세상 나라는 다른 소망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일어나는 하나님의 나라만이 이 세상의 대안입니다. 소망입니다.
그 일에 나 한 사람부터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그 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기회를 지금 만드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곳에서 그 기회를 만드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한사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을 증거할 때 이 강릉이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증거하는 삶을 살 때 세계는 소망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지금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다 같이 영혼의 추수때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다같이 일어나 복음의 일꾼되어서 영혼의 추수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기에서 내 한사람부터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의 귀한 일꾼되어 하나님나라를 이루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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