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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밤중 (행 16: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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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손영삼 선교사 
 
  한국에 들어온지 5-6개월 지난 지금 저의 주관적인 감정입니다만 지금 정치가 도대체 어디로 백성을 끌고 가고 있는지, 극단적인 대립과 갈등 속에서 국민들은 불안해 하고 국론은 분열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우리 목사님이 “제가 잘못했습니다.”이런 모임을 가지고 회개하고 화합과 연합일치 운동을 이룬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경제적으로 볼때도 사실 희망이 없습니다. 노사대립과 불황과 실업, 경기 침체 공황, 고물가 에다가 사회적으로도 높은 이혼율, 자살율, 저출산, 고령화 사회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거기다가 교육은 수능부정에 토플 성적 위조,조작 문화는 웰빙문화라고 해서 얼짱, 몸짱. 저는 키짱, ..

  누가 복음15장에 잃었다 찾은 행복에 관한 메시지가 3가지 나오는데, 그 가운데 탕자의 비유가 세번째 나옵니다. 탕자가 돌아 왔을 때 보는 사람의 시각이 세가지 형태로 달라집니다. 누가 복음15장을 읽어보면 몸종은 기껏 보는 수준이 몸을 보는 것이므로 건장한 몸이라 표현했고, 형은 돈을 다 허비한 동생에 불만을 가져 물질을 바라 보는 시각이고, 아버지는 죽었다가 살아온 생명을 봅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고 신앙 생활 하는데 어디에 인생의 가치를 두고 있습니까? 육신적인 것에 두고 있습니까? 물질적인 것에 두고 있습니까? 영적인 것에 두고 있습니까?

  어떤 교회에서 교인이 말썽을 일으키고 교회를 떠나 이교회 저교회를 떠돌다가 다시 본교회로 돌아오고자 했으나 당회의 거부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감히 우리 가운데 어느 누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까? 저는 겁이 나기도 했습니다. 진정 그 교회 안에 주님이 머무실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아버지의 마음을 알면 이 형처럼 말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 형은 동생이 돌아 오는 것이 못 마땅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면 버려진 자, 잊혀진 자, 소외당한 자, 병든 자, 갖힌 자를 돌아보는 마음에 저절로 긍휼과 자비가 생길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이 아버지의 풍성한 사랑의 마음이 여러분과 저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현세상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무엇엔가에 미쳐야만 살아갈 수 있는 어지러운, 불확실한 상황 속에 살아갑니다. 여러가지 역경과 환란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정치는 개혁을 한다하는데, 사실 개혁이란 창세가 3장 21절 타락한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짐승의 희생을 통해서 가죽 옷을 지어 입혔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개혁이란 허물을 덮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천년 역사에서 정권이 바뀔 때 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습니까? 이것은 고대로부터 현대 까지 인간이 가진 개혁의지, 정신이었습니다. 한번도 개혁의 역사가 바로 선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개혁은 어떤 방법의 개혁입니까? 묻지 아니하시고 그냥 가죽 옷을 지어 덮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God is love라고 말씀 하시며 그것은 바로 희생이라고,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진정한 개혁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 방법은 성공적 개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며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컴퓨터에 아이콘이 뜨면 그것을 클릭하면 창은 작지만 어마머마한 양이 그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기 때문에 겉으로는 잘 모르지만 건드리면, 환란이 있고 역경, 핍박이 있고 그 사람의 인격적인 것을 건드리면 그때 그 사람의 참된 인격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어떤 모습으로 나오기를 원하십니까? 사랑과 희락 화평 자비 양선 오래 참음, 온유, 절제와 같은 모습으로 클릭되어 나오시겠습니까 아니면 외형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지만 실재 두들겨 보니까 미움 시기 원망 질투 분노 이런 것들로 가득찬 삶을 사시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가 전도 하는 상황 현장 속에서 여러 가지 혼란을 겪지만 그 고난 속에서 고난을 은혜라는 단어로 바꾸어 사용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게 되면 그가 주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마게도니아의 환상을 보고 건너 가서 더러운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쳤습니다. 그  귀신이 바울에게 “이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 너희에게 구원의 길을 예비하는자”라고 했을 때 틀린 말이 아니지만 바울을 심히 괴로와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말은 맞는 말이지만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 나온 말이 아니라 마귀의 말장난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성도 간에 갈등하고 부딪치는 부분 가운데 말은 윤리적 도덕적 상식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주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라 세속적인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17년 전 성지 순례를 다니며 빌립보 감옥 앞에서 많이 울었습니다.  바울은 많은 이적을 행하면서도 매 맞고, 착고 채워서 깊은 감옥, 습기 찬 곳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곳에서 원망하기는커녕 찬송을 부른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perfect한 방법으로 해결해 주시더라는 겁니다. 이 완벽한 해결의 은혜를 여러분들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고독을 쉽게 느끼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셔서 돕는 배필을 지으셨다고 했습니다. 마릴린 몬로는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외롭고 공허해서 자살했고 파스칼은 “인간은 다 채워도 영원히 만족하지 않는 빈 공간이 하나 있다. 그 공간은 오직 예수님 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축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참된 예배자를 발견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 성공이고, 예배에 실패하면 인생 실패라는 말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예배자, 참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서 누구든지 예배는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배자를 발견하지 못해서 우상에게 절하고 우상을 제사하는 겁니다. 참된 예배자를 알고 예배하는 여러분은 얼마나 복된자 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참 행복자입니다. 여러분 쓰레기가 있는데 이 쓰레기를 보석함에 넣어 가지고 실크 보자기로 쌓아 놓으면 이것이 보석이 됩니까? 다이야 몬드를 쓰레기 더미 속에 쳐 박아 놓으면 그렇다고 다이아가 빛을 잃어 버립니까? 외적인 상황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아무 상관이 없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똑 같이 이 세상을 걸어가도 신자와 비신자는 다른 인생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은 여떤 상황과 역경 속에서도 승리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이 이깁니다. 사도 바울이 밤중에 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밤중이 있습니다. 가정적인 밤중, 신앙의 밤중, 건강의 밤중 여러 가지 환란과 역경, 개인적인 십자가들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밤중을 만나도 염려하지 말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거룩한 힘있는 신앙입니까? 딤후 4:5에서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너희가 거룩하여지기를 바라느냐?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느니라" 말씀을 쫓는 것에 진정한 거룩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왜 믿음의 조상이 되었나요? 말씀을 쫓아 본토를 떠났습니다. 순종의 극치는 창세기 22장에서 이삭을 바치는 기록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나는 귀절은 그 믿음의 자세가 아주 감명 깊었습니다. 또 3일 길을 갔다는 귀절도 변치 않는 신앙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사환에게 “여기서 기다리라, 우리가 돌아오리라”대답함으로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환난과 역경 가운데 고통할 때 나보다 더 큰 고통을 느끼시고 계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그 주님의 진한 사랑이 여러분 앞에 열려있습니다.

  바울이 염려하지 않고 기도 할 때 빌립보 감옥의 문제가 해결되었던 것 처럼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방법에 맡기고 기도하고 찬송하면 하나님께서 완벽한 방법으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인생을 사시기를 원하십니까? 긍정적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창조적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십니다. 빌립보교회가 어떻게 세워질 수 있었습니까? 최초의 유럽, 그리스 빌립보교회는 바로 바울의 감옥 사건을 통해서 그의 간수, 권속, 죄수가 다 믿고 크게 기뻐하고 세례 받고 간수의 가정 중심, 루디아의 가정 중심 그의 권속 일가 친척들이 믿고 최초의 유럽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바울의 이 고난이 없었다면 유럽의 이 교회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에서 베드로는 기도하지 못한 밤 주님을 세번씩 부인했고 요한 복음 13장 에서 가룟 유다는 조각을 받고 나가니 곧 밤이러라. 그 밤에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밤을 잘 통과한 사람은 밤이 주는 유익을 알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밤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를 통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노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인간은 때때로 잃어버리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는 미련함이 있습니다. 밤은 자신의 본래적 모습과 사명을 되찾아 주기도 합니다. 잃은 믿음, 소망, 사랑을 회복시켜 주시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C.S.루이스는 “고난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확성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인고의 세월을 잘 통과해서 축복을 받았고, 요셉은 철저한 신본주의자로 창세기 50장 15절에서 형들이 아버지 야곱이 죽을 때 까지도 거짓 유언을 말하며 죄의 종노릇하는 것을 보고 방성대곡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일가족이 아직도 지옥의 불못에 빠지기 위해 가고 있는데, 그들을 사랑한다면 그 영혼을 끌어안고 전도하십시요. 여러분들이 무엇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요셉의 눈물이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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