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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돋아나는 햇빛처럼 (잠 4: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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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세종 목사

할렐루야!
이미 읽으신 말씀 중에서 18-19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의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오늘은 잠 4:10-19을 본문으로 "돋아나는 햇빛처럼"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시고 또 우리를 돋아나는 햇빛처럼 사용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빛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옵니다.
마 4:16에서는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과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습니다.

사도요한은 요한일서 2:8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취심이라"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신앙인의 모습을 빛에 비유하였습니다.
"너희가 다 빛의 아들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마음 속에 받아들이면 우리의 마음 속엔 놀라운 변화가 오게 됩니다.
신앙의 기초가 올바르게 됩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죄를 회개하며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초적인 신앙에 자리에 계속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죄 용서함을 받았다는 기쁨이 넘치는 내 가슴속엔 돋아나는 햇살처럼 점점점점 더 밝아져야 합니다.
새벽을 보세요!
어둡습니다.
춥습니다.
몸을 움츠리게 합니다.
그러나 점점 다가오는 아침 햇살을 맞으면 어두운 것이 밝아집니다.
우리를 손 넣게 하고 우리의 목을 움츠리게 했던 것들이 사라집니다. 사물들이 너무나도 밝히 드러나 보입니다.
어두워서 우리를 휘청거리게 하던 우리의 걸음걸이에 새로운 힘을 주며 똑바로 걸을 수 있게 합니다.

햇빛은 우리를 자라게 합니다.
그러므로 그 자라는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덕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형제 사랑을 더하고 형제 사랑에 하나님의 사랑을 공급하라" "더하라" 하였습니다.

살면서 겪어내야 하는 욕망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더 거지고 싶은 욕심!
어 잘나고 싶은 교만!
더 많이 알고 싶은 지적인 욕망!
더 높아지고 싶은 사회적인 욕심!
다 써보지도 못한 채 1평도 안 되는 땅에 묻힐 육체를 위해 명품들은 왜 그리고 많이 있습니까? 욕망만이 어렵게 합니까?

신앙 생활을 하면서 당하는 어려움도 많이 있습니다.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그저 만사가 다 형통했으면 얼마나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그런 세상이 아니에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너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둔다" 하였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선을 행하기도 어려운 일인데
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는 걸가요? 피곤한 것일까요?
그런 선을 행하지만 알아주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지만 그 성과가 과시할 정도로 나타나질 않는다는 거예요.
낙심하게 되고 맥빠지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자꾸 쓰러지는지 아십니까?
그건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물질과 예수님이 함께 계실 때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았습니까?
멋있는 집과 사회복지·교육센터 택하라면 무엇을 먼저 선택하시렵니까?
세상에서 칭찬 받는 지위와 예수님이 계실 때 여러분은 누구 편에 서실 수 있습니까?
너무 괴로워하지는 마십시오.
오죽 했으면 바울 같으신 분이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

또 로마서 3장에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겠습니까?
그 누가 빛의 자녀처럼 돋아나는 아침해처럼 밝게 빛나게 살자는 것을 싫다고 하겠습니까?
가장 깨끗하고
가장 경건하고
가장 거룩하게 살고 있다는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요 바리새파 사람이었던 사울이 어떻게 살아 있는 스데반을 돌로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

오른손을 들어서 분명하게 자기 의사를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짐승처럼 사시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복된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이번에도 오른손으로 표해주시기 바랍니다.
난 짐승처럼 살고 있다!
아니다 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삶을 살고 있다!
이것도 저것도 손을 안 드신 분들은 그저! 그까지 것 뭐! 하게 살고 계십니까?
아침에 돋아나는 햇살처럼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햇살처럼 사는 것일까요?

첫 번째로>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세례요한을 보세요.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 곁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오지마는 제일 먼저 예수님 기록에 나오는 사람이 세례요한입니다.
얼마나 군중들이 세례요한을 지지했던지 왕도 세례요한을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왕이 시찰을 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는데 세례요한이 얼마나 강력하게 잘못을 질타했는지 시찰하려다가 꽁지 빠진 새처럼 다시 성안으로 도망칠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까지도 세례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셨을 정도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유대인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세례요한이여!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그러나 세례요한이 대답을 합니다.
"나는 작은 빛에 불과합니다. 내 뒤에 오실 그리스도는 참 빛이요 큰 빛입니다. 나는 그분의 신들께 풀기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자살율이 48분만에 1명씩 자살을 한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30대에서 60대에 많이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자기의 교만이 충족되질 않기 때문이라는 군요.
다른 사람보다 더 높아져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예뻐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어 큰집에서 살아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소유해야만 하고
누가 나에게 싫은 소리하면 잠을 못 이루면서 괴롭고 그리곤 3가지의 맛을 상실하게 된답니다.
밥맛이 없어집니다.
살맛이 사라지고
아예 자고 싶은 마음도 잘 맛도 사라져서는 새벽에 우는 새소리에도 잠이 오질 않고 괴롭습니다.
그러다가 우울증이 생기고 우울증의 결말이 자살로 끝나는 것입니다.
겸손해 보세요.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인정합니다.
칼을 대서 얼굴을 고치지도 않습니다.
긴장하면서 어깨에 힘을 주지도 않습니다.
나의 한계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주님 앞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와 함께라면 가난해도 좋아
참된 부요함이 내 맘에 가득하니까
주와 함께라면 병들어도 좋아
참된 강건함이 내 맘에 가득하니까
가난해도 병이 들어도 시련의 밤 어둡고 깊어도
나는 결코 떠날 수 없어 아름다운 주의 나라를 주의 나라를!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신앙의 교만입니다.
사람은 약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교만해지기가 쉽습니다.
웬만한 것은 다 아는 것 같습니다.
성경 본문만 척 봐도 "야! 오늘 설교는 이러겠네"
이야기 한 마디만 들어도 "야. 오늘 말하려는 게 이런 거겠지 뭘"
경비모자를 쓰고 옆구리에 손을 떡 하니 올리고선 뭐 그까지 것 뭐!
이런 사람에게는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질 않습니다.

두 번째로는> 영적으로 민감해야 합니다.
우리 중에는 뭐 무슨 법적으로 제재 당해야 하는 죄는 좀처럼 저지르지 않을 것입니다.
지나간 설날에는 가족들이 모이셔서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심심풀이로 600을 치셨다 거나 Go Stop을 하셨거나 7에 뽕 바가지 하셨다면 이거 가슴이 아파 와야 합니다.
가슴이 콱콱 찔려야 합니다. 한 사람을 미워했거나 한 푼의 돈도 속였다면 마음이 저려야 합니다.
한 알의 씨앗을 보세요.
소리 없이 옥토 위에 떨어집니다.
그런데 가을이 되면 거기서 30배 60배 100배로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내 모습에 예민하게 민감해야 합니다.
요즘은 식사를 하면서 맥주들은 한잔씩 한다는군요.
너도 마셔
응 난 안 마셔
어머머 너 많이 달라졌다.
어머 얘 마셔봐 맥주가 어디 술이니 맥주는 음료수야 얜 교회 다닌다. 집사인데 집사들도 모이면 다 마셔!
아니에요. 우리가 아무리 주를 좋아해도 그 주가 아니에요.

민감해야 합니다.
뿌리지도 않는 가라지는 알곡보다 더 잘 자랍니다.
가라지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아십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아예! 뽑지 말라 잘못 뽑으면 가라지만 뽑히는 게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알곡도 뽑힌다. 나중에 추수할 때에 가라지를 모아서 불에 던지자꾸나 하셨습니다.
무엇이 가라지 입니까?
주일 성수를 한번 거르는 것이 가라지 일 수 있습니다.
어제의 미움을 오늘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이 가라지입니다.
떠오르고 있는 잘못된 생각을 쓸데없는 공상으로 이어가고 있다면 그것이 가라지입니다.
매일 성경 읽기를 하루 이틀 거른다면  어떨까요.

사무엘은 "난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 하시면서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에 본을 보이라"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어떠합니까?
신앙의 민감함 피부를 가지셔서 조금만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도 그 증상을 느끼고 발견하면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면서 아침에 돋아나는 햇살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라" 하였습니다.
동쪽에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은 더 많은 것을 더 넓게 더 환하게 보여줍니다.!
진짜!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더 새로운 세계가 점점 더 아침같이 밝아오게 됩니다.
더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더 큰 평안을 얻게 됩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천국의 소망이 나를 감싸게 됩니다.
상급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 다 가고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도다" 죄에서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죄사함 받은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겸손하면서 예민하면서 갈구하면서 새로운 세계가 활짝 열리는 아침 햇살 같은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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