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 3:1-6)

  • 잡초 잡초
  • 511
  • 0

첨부 1


- 설교 : 유관지 목사

오늘은 3월 첫째 주일입니다. 3월은 새 봄이 시작되는 때입니다.
새 봄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성도 여러분에게,  성도 여러분의 가정에, 일터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3월을 맞이하면서 1월과 2월의 주일 낮예배에서 선포된  말씀들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1월 첫째 주일, 신년결단예배에서는 “은택의 한 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 년 내내 은택을 베풀어주시며 큰 복을 내려 우리의 한 해를 영광스럽게 꾸며주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시편 65편을 중심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찬송을 좋아하고, 기도에 힘쓰고, 사죄의 확신을 갖고, 성전 중심의 삶을 살고, 구원의 하나님을 전하는 일에 힘쓰고, 창조신앙을 새롭게 하고, 감사드릴 때 2005년은 은택의 한 해가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1월 둘째 주일, 임원 임명예배에서는“두기고와 아킵보”라는 제목으로 임원들은 두기고와 같이 신실해야 하며 고난을 같이 받아야 한며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수고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골로새서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다 다 이와 같이 하여 칭찬을 받는데 아킵보는 그 직분을 신실하게 감당하지 못해 아쉬운 소리를 듣고 있음을 말씀드리면서 두기고와 같은 임원이 되고 아킵보와 같이 되지 말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1월 셋째 주일, 찬양대 임명예배에서는 “찬양이 앞에 서다”라는 제목으로 느헤미야가 성벽재건 공사를 끝내고 성벽을 봉헌할 때의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성벽을 봉헌할 때 느헤미야는 찬양대를 앞세웠습니다. 우리는 찬양이 얼마나 소중한지, 찬양대의 직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아야하며 찬양에 힘쓰고 찬양을 앞세우는 생활을 하여 감사할 일들이 더욱 많아지고, 하나님이 더 큰 일, 위대한 일을 하고, 즐거움이 더욱 넘치고, 하나님이 더욱 널리 알려지도록 힘써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1월 넷째 주일에는 “남자답게 강건하라”는 제목으로 우리는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다운 강건함을 가지고,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며, 어려운 일이 많은 이 시대를 이기며 앞으로 나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남자답게 강건한 분의 모범이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1월 다섯째 주일, 권사취임예배에서는 “여선지자 훌다가 한 일”이라는 제목으로 여선지자 훌다가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을 잘 도운 것처럼 우리는 훌륭한 일을 잘 돕는 사람들이 되어야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약에서, 또 남자로서 권사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사람이 바나바라면, 구약에서, 또 여자로서 권사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사람은 훌다라고 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 우리는 어려운 문제, 중요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의논하기 위해 찾아오는 존재들이 되어야한다는 말씀을 드렸고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어야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2월 첫째 주일에서는 “아름다운 것을 드립니까?”라는 제목으로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것이 아름다운 것을 드리는 것이며, 내게 있는 것을 모두 드리는 것이 아름다운 것을 드리는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물질의 아름다운 것, 시간의 아름다운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2월 둘째 주일에는 “폐하러가 아니라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우리는 예수님이 구약의 완성자이심을 알아야하며 사랑의 위대함을 알아야하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을 가져야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2월 셋째 주일에는 “굳게 믿지 아니하면”이라는 제목으로 이사야서 9절 하반절,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는 이사야서의 요절로 하나님을 굳게 믿지 않으면 국가적으로도 바로 서지 못하고  개인적으로도 바로 서지 못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굳게 믿으면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베푸시는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은혜 속에 거할 수 있고 큰 위기 앞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조용함을 누리게 되고 아무리 강한 세력이 나를 괴롭혀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교회가 굳게 믿으면 세상이 교회를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2월 넷째 주일, 지난 주일에는 “순종의 계승자”라는 제목으로  이삭이 순종하기 어려운 차지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아들을 얻었고. 창대해지는 복을 받은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성서의 인물들, 신앙의 선배들이 보여준 순종을 이어 받는 순종의 계승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순종이 믿는 사람들의 유전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와 같이 올해 지금까지 한 설교를 점검하고 나서 저는 ‘아차!’ 했습니다.
제가 왜 ‘아차!’ 했을까요? 한 번 알아 마치어 보시기 바랍니다.
힌트 하나 드릴까요?
오늘 설교 제목을 살피면 알아 마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제재로 한 설교가 없었기 때문에 ‘아차’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히브리서 3장의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게 된 동기입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히브리서는 공동서신 가운데 하나인데 그 내용이 특색이 있고 아주 다양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아벨에서 시작해서 에녹, 노아, 아브라함, 죽 내려오면서 사무엘, 선지자들이 믿음으로 한 일을 말하고 있는데 구약 전체를 요약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를 누가 기록했느냐 하는 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바울이 기록했을 것이다, 바나바가 기록했을 것이다, 누가가 기록했을 것이다. 실라가 기록했을 것이다, 브리스가나 아굴라가 기록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아볼로가 기록했을 것이다.’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24절은 아볼로에 대해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한 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히브리서를 기록하려면 이 정도의 인물은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뒤를 이어 교회를 지도한 사람들을 교부라고 하는데 교부 가운데 클레멘트라고 아주 깊이 있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히브리서를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가 내용이 깊고 다양하기 때문에 이런 주장들이 나옵니다.

이와 같은 히브리서이지만 그 내용을 세 글자로 요약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세 글자로 요약할 수 있을까요?
‘기독론’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시다’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다시 보세요.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서 8장 1절과 2절 앞부분에서는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2절에서 6절까지에서는 ‘예수님은 모세보다 뛰어난 분이다. 하나님의 집에서 모세는 종이었고 예수님은 그 집의 아들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영웅시대라는 드라마를 보면 우리나라 양대 기업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둘 다 아들들이 중요한 일을 하고 이어 받습니다.
한쪽의 경우 탤런트 유동근씨가 역을 맡은  박대철인가 하는 사람이 아들이 아닌 사람으로서 두드러지게 돋보이기는 하지만 아들과 아들 아닌 사람(월급쟁이)의 차이가 분명합니다.

이것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대단히 충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모세라고 하면 민족해방의 영웅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율법을 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사나 종교사의 기초를 놓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은 모세보다 뛰어난 분이라고 놀라운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히브리서의 요절을 들라고 하면 어떤 말씀을 들으시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히브리서 11장 1절과 2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이 말씀을 들 것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서의 요절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히브리서에서 제일 익숙한 말씀이니까요.
히브리서의 요절은 12장 2절 앞부분입니다. 여러분 다 같이 소리 내어 읽어보겠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12장 2절에 나오는 “예수를 바라보자” 이것이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두 말을 우리에게 하고 싶어서 히브리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는 그 당시 믿음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기록된 성경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서 그 고난을 이겨라,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의 길에서 떠나지 말아라, 이것이 히브리서 기자가 간절하게 하고 있는 권면입니다.

여러분, 어려운 처지와 형편 가운데 있습니까?
믿음이 흔들리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 어려움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을 굳게 지키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사순절 넷째 주일입니다. 이제 사순절이 후반부로 접어들었습니다.
사순절이, 특히 사순절 후반부가 예수님을 더 깊이 생각하는 절기, 예수님을 더 열심히 바라보는 절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예수님을 “믿음의 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라는 말이 나오는데 같은 맥락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의 주로 삼지 않고, 다른 존재를 믿음의 주로 섬기는 것을 우리는 이단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도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여기 하나뿐입니다.
사도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보내신 사람입니다.
화살표로 표시하면 위에서 아래로 (↓)입니다.
제사장은 사람 편에 서서 하나님을 향해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화살표로 표시하면 아래에서 위로(↑)입니다.
예수님은 일방통행의 예수님이 아니고 쌍방통행의 예수님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2절부터 6절 사이에 집이라는 말이 일곱 번 나옵니다.
한 번 같이 찾아볼까요?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으신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특별히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하나님의 집은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 몸도 하나님의 집입니다.
6절 끝을 보세요.

  우리는 그의 집이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남선교회 월례조찬기도회에서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내 안에 성령이 거하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성전입니다.
이것을 알면서도 술이나 담배 같은 것으로 성전인 우리 몸을 더럽힐 수 없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 교회 비전의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경건의 모범을 보이는 교회’입니다.
경건이라는 말은 그 뜻이 아주 넓고 다양합니다. 때로는 애매하게 느껴질 정도로 넓습니다.
그와 같은 것들을 정리해서 경건의 의미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제가 내린 두 가지 정의가 있습니다.
하나는 ‘경건은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사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경건은 교회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모든 것을 요약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예배, 성경을 열심히 읽는 것, 기도 많이 하는 것, 전도 많이 하는 것, 섬김과 나눔에 힘쓰는 것, 이 모든 것을 다 안고 있는 말이 경건입니다.
목양교회가 ‘경건의 모범을 보이는 교회’라고 할 때 그 경건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교회가 기본적으로, 또 전통적으로 해야 할 것은 모범적으로 다하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저는 오늘 남선교회 월례조찬기도회에서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을 아는 것이 경건의 출발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남선교회 월례조찬기도회에서는 고린도전서 3장 16절과 17절,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를 본문으로 해서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월례조찬기도회에 참석했었던 남선교회 회원들은 ‘히브리서에도 같은 뜻을 가진 말씀이 있구나!’ 하면서 자기 몸을 성전으로 알고 더욱 귀하게 여기고, 성전에 부적절한 것으로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더럽히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선교회 회원이 아닌 분들은 히브리서의 “우리는 그의 집이라”와 같은 뜻을 가진 말씀이 바울 서신인 고린도전서에도 있구나!‘ 하는 것을 아시고 이 하나님의 집인 몸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잘 가꾸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도 하나님의 집, 우리 몸도 하나님의 집, 그래도 대표적인 하나님의 집을 들라고 하면 성전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 가운데 집입니다.
저희가 다음 주일부터는 주일낮예배를 대성전에서 드릴 것입니다. 입당예배는 3월 마지막 주일인 27일, 부활절 오후 네 시에 드리지만 사전에 대성전에 익숙해지기 위해 예배는 다음 주일부터 그 곳에서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대성전 입당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에게 오늘 본문에 집, 특히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이 집중적으로 나오는 것은 새로운 은혜를 줍니다. 

작은 성전인 내 몸을 거룩하게 여길 때 우리는 새 성전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들어와서 하나님 집안의 식구로서 같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다음에 우리의 육신의 호흡이 끊어졌을 때에도 하나님의 집에서의 생활은 계속됩니다.
바울 사도는 이 점에 대해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그리고 저 세상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집에 살 수 있게 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남은 시간에 저는 1절 앞부분,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라는 말씀에 대해 집중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이 말에서 우리를 강하게 찌르고 들어오는 말은 “거룩한”이라는 말입니다.
‘아니 나같이 부족한 사람을 거룩한 형제라고 불러주다니!’ 당황하게 됩니다.
황당하게 여겨집니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거룩한 형제들입니다. 성도들입니다.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고 이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장 2절에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문제가 많은 교인들이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파쟁을 일으키고, 윤리적으로 타락했고, 사사건건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들에게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이름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절을 다시 생각해 보세요. 그냥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라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라는 그릇에 담겼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라는 집에 들어와 살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를 생각하십시오.
이것이 신앙생활의 A입니다.

예수를 생각하는데 건성건성 생각하지 말고 깊이 생각하십시오.
표면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심층적으로 생각하십시오.
수박 겉핥기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구석구석 생각하십시오.
대강대강 생각하지 말고 깊이 생각하십시오.
이것이 A에서 한 걸음 더 나간 신앙생활의 B입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무엇이 되는가?’ 생각하십시오.
‘나의 구주!’라고 고백하기에 이르기 바랍니다.

여러분, 소설 「벤허」가 어떻게 해서 지어졌는지 아시지요?
「벤허」는 1880 미국의 루이스 윌리스라는 사람이 지었습니다. 이 사람은 변호사였는데 원래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성경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성경을 세밀하게 살폈습니다. 그 결과 깨닫게 된 것은 성경은 모두 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무릎을 꿇고  ‘오 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그 회심을 기념하여 소설을 썼는데 그것이 바로 「벤허」입니다. 부제는 「그리스도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1959년 와일러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하여 11개 부문의 상을 석권했습니다.
1962년 우리나라에서 상연되었는데 그 때는 70mm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극장이 대한극장 하나밖에 없었는데 오랫동안 장사진을 이뤘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여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했으면 A, B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신앙생활의 C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의 ABC를 마스터했으면  믿음의 기초가 튼튼해졌습니다.
이제 DEF… 계속해서 잘 나갈 수 있습니다.
믿음의 진보, 믿음의 성숙을 빠른 속도로 이룩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전서 4장 15절에서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보이게 하라

라고 하고 있는데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 94장을 힘 있게 부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시며
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 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 자의 강함과 눈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 생명 되시네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 자의 정함과 죽은 자의 생명이며
죄인들의 중보와 멸망자의  구원되고 우리 평화 되시네
예수님은 누구신가 온 교회의 머리와 만국인의 구주시며
모든 왕의 왕이요 심판하실 주님 되고 우리 영광 되시네

여기 우는 자, 없는 자, 천한 자, 잡힌 자, 약한 자, 병든 자, 추한 자 모두 우리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는 가운데 예수님이 위로가 되고 풍성이 되고 기쁨이 되고 생명이 되고 평화가 되시고 영광이 되십니다.

오늘 새벽기도회에서 찬송가 462장을 부르는데 이 찬송이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저 등대의 불빛도 희미한데
이 풍랑에 배 저어 항해하는 주 예수님이 이 배의 사공이라

나 두렴 없네 두렴 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리라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예수님이 우리 가정이라는 배의 사공이 되고 우리 교회라는 배의 사공이 되고 대한민국이라는 배의 사공이 됩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 집의 손님이 아니라 식구로 살 수 있습니다.
아까 아들과 종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식구와 손님의 차이도 큽니다.
손님은 방문한 집에서 아무리 잘 해 주어도 아무래도 불편하지요.
여러분, 교회에서, 속회에서, 선교회에서 손님이 되지 마세요. 식구가 되기시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여 믿음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계속해서 진보를 이뤄나가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