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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의 굳은 결심 (눅 9:5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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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병의 목사

눅 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추운 겨울이 다 지나가고 따듯한 봄볕이 대지를 녹일 때면 목동들은 양들을 끌고 나가 겨울 동안 길게 자란 양털을 깎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 마리 한 마리 양털을 깎고 있는 도중에 그만 꽃샘 추위라도 불어닥치면 눈보라가 날리기도 합니다. 털을 깎던 목동은 당황하여 양들을 우리로 다시 들여 넣습니다. 어떤 양은 털을 다 깎아 벌거숭이가 되고, 어떤 양은 하나도 깎지를 않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양은 반쪽만 깎인 채 우리에 구별해서 넣는다고 합니다. 눈보라가 다 지나고 따스한 봄볕이 다시 내리 쬐면 양들을 끌어냅니다. 그럴 때 이상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털을 다 깎은 양은 앙상한 채로 살아있는데 오히려 절반정도 깎다 만 양은 모두 감기에 걸려 절반 이상이 죽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결단이 부족하여 일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뒤로 물러갈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하는데 오도가도 않고 중간에 서서 방황하며 머뭇거리다 시간만 허비하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란 계속적인 결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역 초기에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는  결단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는 머뭇거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역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오늘날 너희 섬길 자를 택하라!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야고보 선생도 외쳤습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무엇을 얻기를 바라지 말라!"

오늘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시려고 결심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며칠 후면 유월절 명절입니다. 이 유월절이 되면 12세 이상의 모든 남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예수님도 어려서부터 일년에 세 번씩 오르던 그 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새삼스럽게 예루살렘을 올라가실 것을 결심하셔야 했을까요? 그것도 굳게 결심을 하셔야 했을까요? '굳게'란 얼굴을 굳게 하였다 심각한 얼굴을 했다는 것입니다. 비상한 결심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결심은 물론 여기서 처음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사십일 금식을 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심각하게 받았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들로 떡을 만들어 먹어라. 세상을 구원하실 뜻을 가지신 주님께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우러러 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마술적인 기적의 방법으로 백성을 구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심각하게 비상한 결심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유월절이 다가오는데 그는 굳은 결심을 하십니다. 백성의 장로들 서기관 바리새인 모두 단합을 하여 예수를 죽이려고 작당을 합니다. 그것을 잘 알면서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자 굳게 결심합니다. 그 길은 죽음의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선택한 길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 죽음의 길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십자가를 지시기로 굳게 결심하셨습니다. 죽는 길밖에 없을 때 죽음을 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살길도 있는데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한번 결심한 것으로 부족하여 주님은 다시 한번 굳게 결심합니다.
우리도 사순절 기간에 결심을 새롭게 해야 되겠습니다.
1.  결심에는 세 가지 선택이 있어야 합니다.
1) 죽을 시기를 선택하셨습니다(51절).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시기를 선택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아무 때나 죽는 것은 생명의 낭비입니다. 희생도 함부로 하면 헛수고일 수 있습니다. 희생할 때 희생하고 죽을 때 죽어야합니다. 주님은 때가 차매 오셨습니다.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때가 가까운 줄 아시고  때가 이르매… 죽을 시기를 선택하셨습니다. 주님은 유월절에 어린양으로 만백성의 죄를 위하여 대속 제물로 화목제물로 죽으시려고 그 유월절에 죽는 시기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냥 죽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림자로 보여준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일어날 때 일어나고, 잘 때 자고, 공부할 때 공부하고, 일할 때 일해야 합니다.
사람이 죽을 때 죽지 못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주님은 적절한 때를 선택하셨습니다.
2) 죽을 장소를 선택하셨습니다(51절).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주님은 갈릴리 한 구석에서 죽을 날을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예루살렘까지 가셔서 원수들이 음모를 꾸미고 죽이려고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죽으시기로 지역을 선택하셨습니다. 신자는 변명과 비굴함과 처절함으로 생을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한국이 불안하다고 미국으로 이민가 서 장사를 하다가 실패를 하고 청소부 노릇을 하다 결국 교통사고로 죽었답니다. 슬픈 일입니다. 목사는 설교하다가 죽는 것이 가장 영광스럽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죽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어떻게 죽을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백성들의 기대와는 달리 주님은 십자가에 죽기로 결심합니다. 이 얼마나 중대한 결단입니까? 할 수 없어 이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선택한 십자가입니다. 진퇴양란에서 어쩔 수 없이 짊어진 십자가가 아닙니다. 인기 절정에 이를 때 그가 선택한  십자가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듣고, 주님은 십자가에 고난을 받고 죽으신다는 사실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지시기로 이미 결심하셨습니다.
2. 결심에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57-62절).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로 통과하여 예루살렘을 올라가시고자 하니 저들이 거절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유대나라의 왕이 되려고 올라가신다는 이유입니다. 이에 제자들 중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하늘의 불을 내려 저들을 멸해 버리기를 청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을 꾸짖고 다른 길로 올라가셨습니다. 아주 귀중한 말씀입니다. 다른 촌으로 올라가실 때 세 사람을 만납니다.
1) 어디로 가시든지 따르겠다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내가 부친을 장사하고 주를 따르겠다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그에게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넌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3)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인사하고 온 후에 따르겠다고 합니다. 주님은 그에게 "쟁기를 잡은 자는 뒤를 돌아봄이 마땅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주를 따를 자의 각오와 결심을 보여줍니다.

결심한 뒤에는 뒤를 보거나 인사할 겨를도 없으며 오해를 해명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향하여 가는 사람, 옛정을 찾아 울고불고 할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의 결심과 각오입니다. 주님은 이미 거듭 결심하셨지만 잡히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또 다시 밤새워 기도하셨습니다. 땀이 핏방울 같이 떨어지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 "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결심을 하였더라도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그 결심은 이룰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정말 멋지고 폼나는 결심을 하였지만 처참하게 그 결심이 깨어지고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통곡하고 맙니다. 그 원인은 어디 있습니까? 기도하라 하셨지만 기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계속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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