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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임원헌신예배]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 (막 12:4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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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명석 목사

2005년도 임원 헌신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에게 주님을 위해 충성을 다 한 자에게 주시는 면류관이 예비 되기를 축원합니다.

AD 79년 폼베이시를 지키는 군인이 있었습니다. 베스비우스 화산이 폭발할 때 18km 떨어진 폼베이시 까지 자갈과 모래가 날아와 덮었습니다. 이때 보초를 섰던 군인은 도망가면 살수 있었는데 윗사람의 명령이 없어서 그 곳에서 자기의 본분을 다 하다가 돌무더기에 깔려 죽었습니다. 그것이 화석이 되어 지금 루브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맡겨진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끝까지 충실함이 충성입니다.

한국 초대교회의 훌륭한 부흥사였던 이용도 목사님은 폐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분이 인도하는 부흥회에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와 신유의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지금의 평양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집회가 다 끝나는 날 마지막으로 안수 기도를 하고 집회를 마치려 하는데 교인들이 이틀간만 더 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환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니 도저히 안수 기도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몸도 약하신 분이 온 몸의 땀을 흘리며 안수를 계속하시는 목사님을 본 담임목사님께서 하도 안타까와서 “이제 그만 하시죠”라고 했더니 “아닙니다. 주님이 그만 하라고 하실 때까지 이 사명을 다 할 것입니다” 라고 하시면서 끝까지 안수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임원여러분! 이것이 사명입니다. 어렵고 힘이 들어도 끝까지 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오늘 저는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예수님은 지금 성전에 들어가는 입구에 놓여있는 연보궤 앞에 앉아 계시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들어오는 입구에 헌금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교회마다 헌금함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데 밤손님 때문일 것입니다. 얼마 전 친구 목사님 교회에 갔더니 아예 헌금함을 열쇠로 열어 놓았습니다.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얼마 전 어느 집사님이 저녁 예배에 오셔다가 만 원짜리 한 장을 헌금함에 넣고 가셨는데 도 선생이 오셨다가 열쇠를 열지 못하자 헌금함을 통째로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함을 지키려고 열쇠를 열어 놓았다고 합니다. 서울 강남에 있는 어느 교회는 주일날 낚시꾼들 때문에 고민거리라고 합니다. 절에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요즘 교회에는 낚시꾼들이 월척을 잡으려고 몰려들고 있다고 합니다. 잘만하면 수표도 걸려나오곤 한답니다.

제가 몇 해 전 이스라엘에 갔다가 예수님 당시에 쓰던 성전 안에 있는 연보궤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다 세겔 동전을 몇 개 집어넣었더니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그러나 돈 없는 사람이 1원짜리 동전하나를 집어넣으면 아마 땡그렁 하고 허전한 소리가 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렇게 헌금이 떨어지는 소리로써 헌금을 많이 드리는지 또는 적게 드리는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많이 드렸느냐 적게 드렸느냐에 관심이 있으신 것이 아니라 드리는 사람의 자세에 관심을 기울이셨습니다.

첫 째, 공의를 행치 않은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 하셨습니다.

본문을 잘못 이해하면 한쪽으로만 치우치기 쉽습니다. 부자들이 전 재산을 드리지 않았기에 책망을 하고 계시며 가난한 과부는 정성을 다해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에 칭찬하셨다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오늘 본문에 앞서서 39-40절 말씀을 보면 “회당의 상좌와 잔치에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저희는 과부의 가난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제 삼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읍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여인은 동전 두 닢이 전부였습니다. 구차한 것 중에 넣었다고 하는 것은 구차한 이란 “절대결핍”으로 이것을 드리고 나면 당장 오늘 저녁부터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는 과부의 재산을 착취한 종교지도자들의 대한 탄식이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본문 말씀 속에는 상황을 여기까지 몰고 온 서기관들에게 초점이 맞추어 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문제는 이뿐이 아니었습니다.

유대 역사를 기록한 요세푸스가 쓴 <유대 역사>와 <미두낫>이라고 하는 두 문헌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과부가 나오는데 이 과부는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드릴 것이라고는 밀가루 밖에 없었습니다. 이걸 들고 와서 드리니까 그 옆에 있던 제사장 하나가 쫓아와서 그 과부에게 “이걸 지금 하나님 앞에 예물이라고 드렸소?” 하고 야단을 치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뛰어나오셔서 제사장을 질책하며 야단을 하셨는데, “그것은 과부가 한 움큼의 밀가루를 드린 것이 아니라 자기 생명을 드린 것인데 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하고 호통을 치셨는데 제사장이 그제야 잠에서 벌떡 깨게 되었습니다. 꿈에서 겪었던 내용입니다. 작은 예물이라고 무시하던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잘못된 버릇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물질은 의와 선이 포함된 물질이어야 합니다. 부자가 아무리 많이 드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공의를 향한 물질일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참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여자 성도에게 교회에 다니는 남편이 평소에 입버릇처럼 하던 얘기가 있었는데 “나는 죽으면 내 재산을 다 하나님 앞에 다 바칠거야”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던 남편이 일찍 죽었습니다. 그 남편이 남기고 간 재산은 가게등기권리증 7천만 원 이었습니다. 남편이 죽은 후에 부인은 어린 애들을 데리고 살면서 갈등을 한 것입니다. 남편이 재산을 다 하나님께 바친다고 하였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갈등하다가 그 부인이 결단을 해서 재산을 다 털어가지고 모두 정리해서 교회에 헌금을 했습니다. 이걸 바치면 아이들 데리고 살길이 막막한데도 남편이 한 말 때문에 헌금으로 다 바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그 헌금을 받았을까요? 안 받았을까요?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정을 아는 목사님께서 고심을 하다가 임시 당회를 열었습니다. 사연을 얘기하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라고 했더니 장로님들은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계시고들 있었습니다. 이때 목사님께서 이런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헌금을 일단 받고 오늘을 넘기지 말고 그 금액 모두들 구제항목으로 넘깁시다. 그래서 자녀들과 그 부인이 살아가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고 합니다. 목사님도 장로님들도 모두 흡족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것이 바로 상식입니다. 상식이 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과부의 두 렙돈 드리는 것을 보시면서 과부를 칭찬하시므로 다른 사람을 기죽이시는 것이 아니라 공의를 행치 않음으로 상황을 이렇게 몰고 간 서기관들의 잘못을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둘 째, 헌금의 철학은 감사와 은혜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는 방이 많이 있습니다. 찜질방, 노래방, 채팅방, 별별 방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모실 마음의 방이 필요합니다. 영국 버밍햄의 우드부록이라는 곳에 퀘이커 교도들이 묵는 방이 있습니다. 그곳은 오래 전에 간디가 묵었던 곳이라 유명합니다. 그 방에는 간디의 그림도 있고 ‘간디의 기념방’ 이라고 써 있습니다. 어떤 여인이 이 방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방에는 두개의 침대가 있는데 간디가 어느 침대에서 잤을까 생각하다가 궁리 끝에 침대 둘을 붙여놓고 불편하지만 가로로 누어 잤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관리인에게 물어봤습니다. “간디가 어느 침대에서 잤습니까?” 그랬더니 관리인은 “간디는 침대에서 자지 않았습니다. 바닥에서 잤습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자기 생각에만 치우쳐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9장 1절에 보면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여기에서 심는 자를 헌금하는 자라고 할 때 심을 수 있는 씨를 주시고 그 다음에 열매를 주시고 먹을 양식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 수 있는데 헌금을 드린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적극적인 하나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선교를 하고, 구제를 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에 우리를 동참시키기 위해 파트너로 부르신 것입니다.

50대가 된 어느 집사님께서 30대부터 큰 돈을 벌었습니다. 20년 전 그 당시 이 분은 돈을 벌 수 있는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었습니다. 돈이 돈을 번다는 말처럼 이 분의 형제들의 재력이 탄탄해서 쉽게 자본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또 이 분 주위에는 좋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가까운 선배 중에는 큰 기업체를 가진 분들이 있었고 친지 중에서도 유력한 공직에 있는 분들이 꽤나 있었습니다. 이 분이 건축자재나 산업용 재료를 납품하는 일을 하셨는데 별 어렵지 않게 돈을 벌었고, 여기 저기 땅도 사고 별장도 마련했습니다.

그러다가 IMF를 만나고 큰 사업에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해서 결국에는 재산이 다 없어지고 나중에는 집 한 채도 남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고 힘이 들었겠습니까? 절망과 좌절이 깊어서 죽을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난이 계속되는 가운데 천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 분의 시각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전부터 다녔지만 지금 내 삶의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 분이 이런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이 분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당하는 일들이 그저 힘들고 괴로움으로만 알았는데 이제는 여러 가지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분을 부르시고 계셨습니다. 이 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분 곁에 계셨는데 이 분이 사업의 재미와 돈버는 맛이 비늘이 되어 이 분의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 분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가족의 소중함도 알았고,  자녀들도 어려움 가운데서 올바른 신앙으로 성숙한 인격으로 잘 자랐습니다. 그리고 다시 재기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물질보다 그 사람의 외형보다 마음 중심을 보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깨달음과 감사는 많은 물질보다 더 중요합니다.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며 섬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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