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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고난주일] 가상칠언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랑 (눅 23:3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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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명혁 목사 

  지난 주일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사랑은 접촉이고 사랑은 목소리이고 사랑은 떠남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일방적이 아니고 쌍방적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요한처럼 내가 주님과 얼마나 가까이 있으며 주님을 접촉하고 있는가가 문제이고, 요한처럼 내가 얼마나 주님과 목소리를 주고 받으며 속삭이고 있는가가 문제이며, 요한처럼 내가 얼마나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가가 문제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마디 목소리 속에 나타난 주님의 사랑에 대해서 설교를 하겠습니다. 사랑은 목소리인데 주님은 마지막까지 목소리를 들려주시면서 사랑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그 목소리 속에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향한 사랑과 자기를 죽이는 원수들에 대한 사랑과 우리 모든 죄인들을 향한 사랑이 진하게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나타나 있었습니다.   

  제가 3년 전인 2002년 3월 24일 주일 "나를 위한 가상칠언" 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한 일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꼭 같은 내용의 설교를 다시 합니다. 사실 우리는 같은 설교를 하고 또 해도 부족하고, 같은 설교를 듣고 또 들어도 부족합니다. 주님이 남긴 마지막 일곱 마디 사랑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들어도 우리는 그 사랑의 깊이와 내용을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음악가 파블로 카잘르는 파리에서 처음 <마태 수난곡>을 듣고 십자가의 죽음을 느끼면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두 달 동안 아팠다고 합니다. 너무 슬퍼서 당장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 상태에 따라서 "나를 위한 가상칠언"에 대한 반응이 각각 다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일곱 마디 목소리를 들으면서 통곡을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아무런 느낌도 아무런 감정도 지니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들을 위해서 하신 일곱 마디 목소리를 한 마디씩 들으며 가슴에 새겨보겠습니다. 그 일곱 마디 목소리들은 우리들을 위해서 하신 목소리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들은 그 목소리들 때문에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를 받았고 지금 이곳에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여러분들과 저를 위한 주님의 일곱 마디 목소리들을 바로 듣고 바로 마음 속에 받아 드릴 때 강도에게 임했던 죄 사함과 구원의 은혜가 임할 것이고 사도 요한과 막달라 마리아에게 임했던 뜨거운 사랑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마지막 일곱 마디 목소리를 한 마디 한 마디씩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마음에 깊이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

  "Father, forgive them."  이 말씀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로마 군인들을 위해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배반한 베드로를 위한 말씀이었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사울을 위한 말씀이었고, 한 평생 주님을 무시하고 거역하고 불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여러분들과 저를 위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 때문에 이 기도 때문에 지금 여러분들과 제가 죄 사함과 구원의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Father, forgive them." 이 말씀은 또한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여 아무 아무개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미워하는 아무 아무개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2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  이 말씀은 예수님 곁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를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를 위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저주한 베드로를 위한 말씀이었고, 예수님을 반항한 사울을 위한 말씀이었고, 한 평생 거짓과 탐욕과 죄악 가운데서 살아가는 여러분들과 저를 위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과 기도 때문에 세상을 떠나는 순간 여러분들과 제가 지옥 불에 떨어지는 대신 낙원 곧 천국에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 이 말씀은 또한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여 아무 아무개도 낙원에 이르게 하옵소서. 내가 미워하는 아무 아무개도 낙원에 이르게 하옵소서."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27).

  "Woman, behold, your son."  이 말씀은 십자가 아래서 슬피 우는 어머니 마리아를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를 위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이별의 슬픔과 죽음의 아픔 가운데서 슬피 우는 수 많은 사람들을 위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슬픔과 아픔을 당하는 외로운 자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가족과 성도들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 때문에 슬픔 가운데서 위로를 주고 받으며 외로움 가운데서도 효와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Woman, behold, your son." 이 말씀은 또한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슬픔과 아픔을 당한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며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 아무개여 보소서 그대는 나의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대는 나의 부모요 나의 자녀입니다."

  4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마27:46).

  이 말씀의 뜻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인데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게 된 비극을 절규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를 위한 절규였습니다. 우리 대신 부르짖은 절규였습니다. 내가 버림을 받아 비명을 질러야 하는 나의 비명을 대신 지르신 비명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짐을 당해야 하는데 주님이 나대신 끊어짐을 당한 것입니다. 주님이 버리심을 받음으로 우리가 찾음이 되었고 주님이 끊어지심을 당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그가 버림을 받았습니다. He was rejected.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이 기도때문에 이 부르짖음 때문에 우리는 찾음이 되었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또한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대신하여 버림을 받는 비극을 감수하며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여 아무 아무개 때문에 나를 버리셨나이까."

  5 "내가 목마르다"(요19:28).

  "I thirst."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의 목마름을 토로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의 목마름을 토로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목말라서 소리지르는 나의 소리를 대신 지르신 것입니다. 내가 목말라야 하는데 주님이 나 대신 목마르신 것입니다. 수가성 여인 대신, 십자가에 달린 강도 대신, 천 장사하던 루디아 대신, 그리고 우리 모두 대신 목마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나 대신 물과 피를 쏟으시고 목마르시므로 내가 생수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마름을 대신 당하셨고 그 대신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부어 주셨습니다. "내가 목마르다." "I thirst." 이 말씀은 또한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대신해서 목마른 삶을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여 내가 목 마릅니다. 여기 아프리카의 형제들과 함께 여기 아프카니스탄의 형제들과 함께 내가 목 마릅니다."

  6 "다 이루었다"(요19:30).

  "It is finished."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므로 자기의 사역을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를 위한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이루어야 할 믿음과 순종과 헌신과 사랑의 모든 일들을 다 이루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믿음도 이룰 수 없고 순종도 이룰 수 없고 헌신도 이룰 수 없고 사랑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것을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다 이루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우리들의 모든 사역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도 이루시고 우리의 봉사도 이루시고 우리의 사랑도 이루시고 우리의 영광도 이루십니다.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 이 말씀은 또한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도 우리 자신의 목적과 뜻을 이루며 살지 말고 오직 주님의 목적과 뜻을 이루며 살아가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이루어야 할 일들을 대신 이루며 살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여 나는 부족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7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Father, into your hands I commit my spirit." 이 말씀은 예수님이 자기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들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 드리는 말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데반을 대신해서 드린 말씀이었고 야고보를 대신해서 드린 말씀이었고 베드로를 대신해서 드린 말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미리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떠날 때 우리의 영혼이 아버지 손에 들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또한 우리도 세상을 떠날 때 주님이 하신 말씀을 하면서 떠나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 때문에 세상을 떠날 때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손양원 목사님도 박윤선 목사님도 세상을 떠날 때 이 말씀을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Father, into your hands I commit my spirit."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아침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나를 위한 가상칠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지막에 하신 일곱 마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오는 한 주간 동안 주님의 일곱 마디 말씀들을 마음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시고 부어주신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새롭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죄 사함의 은혜와 구원의 은혜가 새롭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용서의 은혜와 위로와 사랑의 은혜가 새롭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영혼이 아버지의 손에 안기는 낙원의 은혜가 새롭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가 여러분들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상 칠언이 여러분들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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