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 내 삶속에 나타나는 부활 (요 5:28-29)

  • 잡초 잡초
  • 357
  • 0

첨부 1


- 설교 전원준 목사

(요 5:28-30) 『[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1960년대 배경의 미국 영화 ‘리멤버 타이탄’에서 흑인 미식축구 감독은 백인들로만 구성된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먼저 인종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날 감독은 새벽에 선수들을 기상시켜 지칠 때까지 뛰게 하고 동틀녘에 게티스버그에 이르렀습니다.(남북전쟁 중심지 링컨 케디스버그 연설)
힘에 겨운 선수들은 구토를 하며 숨을 몰아쉽니다.
이때 감독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묻힌 이들은 서로가 증오했기 때문에 죽었다.
우리 팀은 서로 사랑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여기 묻힌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완벽한 것을 원한다.
우리가 완벽한 인간이 될 수는 없지만 분명 우리는 완벽한 팀이 될 수는 있다.”  그 결과 그들은 한 게임도 패하지 않고 승리합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 때문입니다
이 사랑이 있을 때 우리의 삶속에 진정한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성도들에게 새 생명을 가져다 줍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부활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 생활속에 참된 부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부활은 고난의 열매입니다.

주님께서 두 제자를 데리고 어떤 길로 들어서셨다.
거기서 주님은 각자에게 무게가 똑같은 십자가 하나씩을 건네주시며,
당신은 이 길이 끝나는 곳에 가 있을 테니 그곳까지 십자가를 지고 오라고 지시한 다음 자취를 감추셨다.

첫 번째 제자는 가볍게 십자가를 매고 가는데 반해,
두 번째 제자는 지독히 힘들어하면서 뒤쳐져 따라왔다.
십자가를 걸머진 지 하루만에 첫 번째 제자는 길 끝에 당도하여 십자가를 스승에게 넘겨드렸다.

주님은 첫 번째 제자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시며 말씀하셨다.
"아들아, 아주 잘 했다."

두 번째 제자는 이튿날 저녁이 되어서야 길 끝에 도착했다.
도착한 제자는 십자가를 주님의 발 밑에 내동댕이치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저한테는 다른 제자보다 훨씬 더 무거운 십자가를 내주시다니요! 제가 이제사 온 것도 그 때문이라구요!"

주님은 마음이 상한 채 슬픈 얼굴로 두 번째 제자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십자가는 둘 다 똑같은 무게였느니라."

"그런데도 앞사람은 아주 쉽게 십자가를 옮겼는데, 유독 저만 십자가를 옮기느라 쩔쩔 맸다 이 말씀입니까?"
        2
주님이 그에게 타이르셨다. "십자가를 탓하지 말아라.
그 까닭은 십자가를 지고 오는 동안 줄곧 불평을 늘어놓은 너에게 있느니라. 네가 불평할 때마다 십자가의 무게는 늘어났던 거야. 앞에 온 제자는 십자가를 지고 있는 동안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에 그 사랑이 십자가의 무게를 덜어준 거야. 그래서 힘들이지 않고 옮길 수 있었던 거지."
===================================

'세도우 랜드’는 C. S. 루이스의 삶을 다룬 영화입니다.
영화의 내용 중에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노 신사 루이스가 이혼녀와 결혼해서 때늦은 사랑을 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의 기쁨은 아내의 골수암으로 끝을 맺는데, 그가 고통 속에서 외치는 한마디가 중요하게 들립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쁠 때에는 속삭이시고, 기분이 안 좋을 때에는 양심에 조용히 말씀하시지만, 고통 중에 있을 때에는 고함을 치신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메가폰이다.”

(눅 24: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눅 24: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행 26: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의 삶에 진정한 부활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부활의 영광으로 변화시키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대 진정한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3
2, 부활은 희생의 열매입니다.

네쉬는 1947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하여 수학을 공부합니다.
괴팍하지만 창조적이었던 그는 모든 현상을 규정할 수 있는 새로운 진리의 법칙을 발견하고 싶어했고, 마침내 그가 생각해낸 독특한 법칙을 인정받아 국방부 산하의 한 연구소 책임자로 발탁이 됩니다.

당시는 미국과 소련이 힘을 겨루던 냉전시대, 암호 해독기와 컴퓨터로도 풀지 못하는 소련의 암호를 네쉬는 풀어내지만, 결국 네쉬는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심각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무엇이 현실인지, 무엇이 환상인지를 구별하지 못하며 허상에 쫓기던 네쉬는 결국 정신병 치료를 받으며 점점 폐인이 되어갑니다.
시대가 그에게 남긴 상처는 그렇게 깊고도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네쉬 옆에서 가장 힘들어했던 사람은 그의 부인이었습니다.
더 이상 네쉬와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을 수없이 확인하면서도 그는 끝내 네쉬를 떠나지 않습니다. 아내의 인내와 배려 속에 네쉬는 자신의 병을 인정하며 사회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1994년 노벨상을 타게 됩니다. 
네쉬는 노벨상을 받으며 다음과 같이 수상 소감을 밝힙니다.

"전 항상 숫자를 믿었죠. 공식, 논리, 그리고 증명하는 것들.
그러나 평생을 몸바친 결과 제 자신에게 정말 논리가 무엇인지,
누가 증명하는 것을 결정하는지 묻게 됩니다.
제 여행은 저를 육체적인 것과 환상적인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학업에서 정말 중요한 발견을 했습니다.
제 인생에서는 가장 중요한 발견을요.
모든 논리와 증명은 사랑이라는 신비스러운 공식이란 것에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네쉬는 아내를 향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고, 모든 이유는 당신입니다."
(삼하 23:15) 『다윗이 사모하여 가로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하매』

(삼하 23: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우리 주님의 사랑의 희생은 돈으로 계산 할 수 없습니다.
숫자로 사는 우리 인생에서 희생이란 말은 현대인에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참된 희생이 없이는 부활의 영광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살아있는 신앙 =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희생과 봉사입니다.

무덤에 값진 향유를 들고 찾아온 신앙인들 그들에게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희생과 봉사를 통하여 살아있는 부활의 신앙을 체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부활은 죽음 후에 오는 열매입니다.

목사님 취임예배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가 김해공항에  다 왔습니다. 착륙준비를 합니다. 라는  아나운서 방송을 들었습니다.
짐을 정리하고 자리에 바로 앉았는데, 밑으로 내려가던 비행기가  갑자기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면서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까?
순간 마음이 이상한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다시 공중에 선회하고 난 후 바로 착륙을 하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주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요즘 지진이 자주납니다. 부산에도,,,죽음을 느낍니다.
          5
이 세상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번은 다 죽는 것입니다.
그 죽음이 진실로 값진 죽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예수 안에서 죽은 자들입니다.

독일의 쇼펜하우어라는 유명한 철학자가 있었다.
그의 철학은 그가 살아있을 때보다 죽은 후에 더욱 빛을 발하였다.
그가 건강하고, 학생들에세 명성을 떨치고 있을 때에는 오히려 그 학문은 별로 알려지지 아니하였다. 그는 은퇴할 무렵, 늙고 육체가 쇠하여 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였다. 자기와 함께 지내던 친구들도, 강의실에 자주 찾아오던 학생들도 다 떨어져 나가고 외로움에 빠져 있게 되었을 때,

하루는 베를린 대학 구내에 있는 어떤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
공원벤취에 앉아 깊은 사색에 잠겼다. 저녁 무렵이 되니 공원을 지키고 있던 공원지기가 쇼펜하우어를 찾아와 말했다.
"여보 당신 어디서 온 사람이요? 당신 무엇하는 사람이요?"
그래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그는 "당신 어디로 가야 할 사람이요?"하고 물었다.
그 말에 비로소 정신이 든 쇼펜하우어는 머리를 흔들면서 이렇게 말했다."내가 그것을 알았다면 내 말년에 이토록 시름하지 않았을 것이요.
지금까지 인생이 무엇인지  또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라는 문제를 가지고 평생를 살아왔지만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했소. 그러나 단 한 가지 아는 것이 있다면 인생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오." 

주님의 무덤에 찾아온 여인들,,,저들은 주님의  부활을 보게된 것입니다.

하루살이와 메두기와 개구리 가 같이 놀다가 해가 졌습니다.
메뚜기가 "우리 내일 만나서 놀자."
하루살이는 메뚜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내일이 무어냐?" 메뚜가가 내일을 설명하였습니다.
          6
어둠이 겉히고 밝은 태양이  동쪽에 떠오르면 내일이다.
하루살이는 내일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얼마 후 겨울이 다가왔습니다.
곁에 있던  개구리가 메뚜기를 보고 내년에 봄에 다시 만나자.
메뚜기는 내년을 몰랐습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더니)
개구리가 설명을 합니다. 얼음이 녹고, 새삯이 돋아나면 그것이 내년이란다. 그래도 메뚜기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메뚜기는 혼자서 중얼거립니다.
"하루살이는 내일을 모르고  나는 왜 내년을 왜 모를까 ?"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오늘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저 오늘에 급급하는 사람입니다.
메뚜기 같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저 이 세상에서  잘 살아야지.
세상에 눈이 어두워 천국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무엇입니까?
저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자들입니다.
죽음 저편에 우리 주님이 거하시는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자들입니다.
메두기나 개구리 같은 삶이 아니라, 항상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성도들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찬송= 홈찬양 ; 371 하늘 그리고,,,

(요 5:28-30) 『[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