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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의 주님을 만나라 (눅 24: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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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설교자인 아이언 사이드 박사가 길을 지나다가 항상 열려 있던 상점의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창문에는 커튼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하고 자세히 보았더니 창문 밖에다 다음과 같이 써 놓았더랍니다. ‘내부 수리 중’. 그 후 여러 날 동안 그 가게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내부 수리 중’ 이라는 팻말만 붙어 있었습니다. 드디어 어느 날인가 가게문이 활짝 열려있어 들어가 보았더니 가게 안이 멋지게 장식이 되어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들어가는 손님들마다 아주 기분 좋게 물건을 사들고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본 아이언 사이드 박사는 깨달았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내부 수리중인 것과 같구나”. 성도들의 삶은 주님이 재림하심으로 우리 몸이 영화롭게 변화되는 부활의 날까지 ‘내부 수리 중’ 의 팻말을 걸어 놓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더 좋아지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이 희망만 있다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망은 삶을 포기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절망은 산 사람도 죽음으로 재촉하며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달려 돌아가셨을 때, 절망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애를 예수께 맡기면 출세하리라 생각하였는데 모든 희망이 산산이 부서져버렸습니다. 그렇게 믿었던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무기력하게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슬픔과 함께 깊은 절망 속에 빠졌습니다. 삶의 의욕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나오는 두 제자 역시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이상 예수를 찾을 이유가 없어 예루살렘에 머무를 까닭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포기해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을 만나 주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은혜입니다. 금번 부활절에 여러분의 삶의 여정 속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변화된 것처럼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누구나 변화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첫째로 마음이 변화됩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이 올더스게이트 거리를 방황할 때 그의 마음은 어두운 그림자가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처럼 부활에 대해 확신이 없었으며, 예수님이 자신의 구세주이심을 확신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뜨거움을 체험하였을 때 그는 “믿음이란 머리 속에서만 맴도는 생명 없는 차디찬 동의이거나 어떤 이론과 같은 사변적이고 합리적인 것이 아니고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그리스도의 보혈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의 공로에 대한 신뢰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세상에 오셨고 우리 가운데 살아 계셔서 우리의 구속이 되시고 생명이 되시는 분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라고 설교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절망하고 실의에 빠져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식어버린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심령이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32절을 보니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냐 하고”. 즉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두 제자의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서로 고백합니다. 부활의 주님이 식어버린 열정을 다시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진 것입니다. 우리들의 식은 마음에도 이러한 불이 붙는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미지근한 심령을 싫어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미지근한 상태를 싫어하십니다. 우리의 심령은 어떻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 부활의 기쁨도 없이, 부활의 감동도 없이 냉냉한 마음을 가지고 앉아 있는 분이 있습니까?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진 제자들처럼 변화됨으로 뜨거워지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 식어진 가슴에 불이 붙기 바랍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심령에 불이 붙기를 바랍니다. 식어버린 열정이 다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음이 변화되어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언어가 바뀌어집니다

영국에 훌륭한 설교가인 ‘샘스터’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지면서 전신 마비가 생겨 항상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활 주일이 되던 날 아침, 목사님은 딸에게 귓속말로 말씀하기를 “사랑하는 딸아, 오늘은 부활주일이구나. 부활절 아침에 일어나서 ‘예수 다시 사셨다’ 고 크게 소리 치고 싶다. 그런데 아무리 소리 질러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구나. 그래서 아빠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보다 더 기가 막힌 사실이 있구나. 그것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만 ‘예수 다시 사셨다’고 소리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란다.”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의 말을 예수님께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 뜨거워짐을 체험한 뒤에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말이 달라졌습니다. 바울도 사울이었을 적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사명인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정죄하는 말을 하고, 욕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말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정죄 하던 말들이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라고 자랑하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말이 변합니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괴롭다, 슬프다, 믿을 수 없다” 는 말들이 변해서 “된다, 할 수 있다, 즐겁다, 기쁘다, 믿지 않을 수 없다는 말” 로 변합니다.

엠마오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두 제자도 35절에 보니,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고 하였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못한 채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다는 말은 하였습니다. 절망적인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 희망의 입이 열렸습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불평이나 실망에 입이 열린 사람이 아니라 소망과 축복에 입이 열린 사람입니다. 모름지기 신앙인은 입이 열려야 합니다. 그리고 언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두 제자처럼 슬픈 빛을 띠고 내뱉던 깊은 한숨소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기쁨으로 외치며 증거 하는 언어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후에 언어가 바뀌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 20절에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며 자신들이 체험한 것들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입만 열면 예수 자랑이요, 입만 열면 성령의 역사 하심을 선포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절망적인 언어에서 희망적인 언어로 바뀌어지는 삶이 되어지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감리교 선교사 스탠리 존스가 아프리카 정글에 가서 선교를 하였습니다. 어느 골짜기에 큰 부족이 살고 있었는데, 그곳에 망나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망나니는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거칠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으며,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못되게 굴던 망나니에게 스탠리 존스가 복음을 전함으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 망나니는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말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고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선한 일에도 앞장을 섰습니다. 완전히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망나니에게 스탠리 존스가 별명을 붙여 주었다고 합니다. ‘뒤에’ 혹은 ‘후에’ '라는 뜻을 지닌 애프터(After)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즉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은 후에 변화되었다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누구나 삶이 변화됩니다.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은 발걸음을 어디로 돌이켰습니까? 32절에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원래 그들은 실망과 절망에 빠져 예루살렘으로부터 이십오리 떨어진 엠마오로 가던 길이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다시 방향을 돌렸습니다. 32절 상반절에 언급되고 있는 ‘곧’ 이란 단어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주저할 것도 없이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날이 새기를 기다리지 않고 즉시 밤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열한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에게로 외쳤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달라진 것입니다. 그들의 인생의 방향이 바뀌어진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변한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누구나 인생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생명의 길, 영생의 길을 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인생이 달라질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시기 바랍니다. 실망과 좌절로부터 희망과 기쁨의 방향으로,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자리에서 힘있고 능력 있는 삶의 자리로 반드시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망 권세 깨트리시고 승리하신 부활절에 부활의 주님을 꼭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처럼 식어진 가슴에 뜨거운 성령의 불이 붙기를 바랍니다. 식어버린 열정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무기력한 자리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나는 부활하신 주님을 믿습니다.” 라고 선포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시어 부활의 주님을 전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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