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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이 없다면 (고전 1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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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하준 목사

부활은 당연한 사실이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분명히 믿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두 개의 기둥이 바로 십자가신앙과 부활신앙이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당연히 믿고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부활하셨다는 사실도 당연히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기독교를 안 믿는 사람들, 성경을 도저히 못 믿겠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성경 내용 중에 제일 믿기 힘든 것이 바로 이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느냐? 그것도 무덤에 들어간 지 사흘이나 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이스라엘처럼 더운 지역에서 사흘이라면 이미 시체가 썩어가기 시작했을 텐데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도 믿을 수 없을뿐더러 게다가 그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난 후 하늘로 승천까지 했다고 하니 얼마나 믿기가 힘들겠습니까? 그러니 이 분들 마음도 이해를 해야 합니다. 우리야 부활이 당연하다고 여겨지겠지만 안 믿는 분들 입장에서는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믿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부활인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 입장에서는 또 반박을 하겠지요. “그렇다면 성경에 분명히 증거된 부활은 도대체 뭐냐? 다 거짓말이라는 말이냐? 또 성경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다고 나와 있는데 그러면 이 사람들이 다 거짓말쟁이란 말이냐?” 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반박한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의 반박을 한 번 보도록 합시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고린도전서 15장 3~8절입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무슨 뜻입니까? 바울은 먼저 3절과 4절에서 ‘성경대로’라는 말을 두 번이나 씁니다. 바로 부활은 성경이 증거한 분명한 사실이라는 뜻입니다. 나아가 4절부터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일 먼저 게바(베드로)에게 보이신 후에 열두 제자와 그 다음에는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는데 그 중에 아직도 태반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 야고보와 모든 사도에게, 맨 마지막으로는 바울 자신에게도 보이셨다고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성경이 증거한 사건이며 또한 자신을 비롯해 수백 명 이상의 증인이 있으므로 분명한 사실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을 비롯해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의 반박에 대해 비 그리스도인들과 기독교를 반대하는 입장에 선 사람들은 여러 가지 과학적 이성적 방법을 동원해 부활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정말 대단히 이성적이고 과학적입니다. 간단하게 소개해 볼 테니 한 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부활은 사실이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부활을 설명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체도적설, 재매장설, 가사소생설, 대리처형설, 환상설, 신화설, 영적부활설 등이 그것입니다. 참 설도 많지요? 이 많은 설들을 다 설명할 시간은 없고 이 중에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설명하겠습니다.

‘시체도적설’은 말 그대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무덤에서 훔쳐간 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거짓으로 선전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무덤을 지키던 군인들은 부활 후에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는 사실을 유포하라며 제사장들에게 매수당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마 27:64, 28:13). 그러니까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는 말이 제사장들의 조작이 아니라 진짜 사실이라는 뜻입니다.

‘가사소생설’은 ‘졸도설’ 혹은 ‘기절설’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설은 예수님께서 죽은 것이 아니라 단지 상처와 심한 출혈 등으로 탈진해서 기절한 것뿐이라는 설입니다. 즉 실신상태에 있다가 무덤 안의 찬 기운과 또 세마포와 함께 둘러싼 향품에서 나오는 자극적인 냄새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금 정신을 차리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신을 차리시고, 둘렀던 세마포를 손수 벗기셨습니다. 때마침 큰 지진이 일어나서 무덤의 입구를 막고 있던 동굴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틈으로 빠져 나오실 수가 있으셨다는 것입니다.

‘환상설’은 예수께서 진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환상에 의한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음 후 흥분된 상태에서 부활에 대한 갈망이 너무도 강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았다고 생각했다는 설입니다. 그래서 ‘환각설’이라고도 부릅니다.

‘재매장설’은 ‘요셉 이거설’이라고도 부르는데 아리마대 요셉이 처음에는 예수님을 자기 묘에 안장할 생각이 있어 이를 허락했으나 나중에 십자가에 달려 죽은 자의 시체를 아끼던 자기 묘에 두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안식일이 지난 후 그 시체를 은밀히 다른 곳에 옮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설들을 들으니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이 설들을 듣고 정말 가지가지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 정도 생각을 짜낼 머리면 그 머리로 예수님 믿으면 잘 믿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저와 같은 생각이시지요? 물론 이런 다양한 설들에 대해 우리도 다 나름대로 설명하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 굳이 하나하나 변명하지 않는 이유는 이런 주장들이 대답할만한 가치가 별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설들을 보면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세상에는 부활을 못 믿겠다는 사람이 정말 많고 나아가 이 부활을 적극적으로 부정하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실제 위의 설들을 가장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인터넷에 나오는 ‘한국 반종교 클럽’이라는 이름의 카페입니다. 이들은 반 기독교적인 사상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부활을 부인하면서 위와 같은 주장들을 통해 왜 부활이 거짓말인지 열심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오늘 본문 말씀 또한 이런 주장들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부활을 못 믿겠다며 부인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주장을 편 사람들이 비 기독교인도 아니요, 다른 종교 신자도 아닌 바로 기독교인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12절에 나오는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이라는 말은 바로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 부활을 부인한 교인들이 있었음을 뜻합니다. 아마도 이들은 ‘영지주의’라고 부르는 이단사상에 젖은 사람들이거나 지나친 이성주의자들이었기 때문에 부활을 부인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은 어떤 말을 하고 있습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이 말을 볼 때 우리는 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 자체를 부인했다기보다 죽은 자의 부활을 부인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란 우리가 죽은 후에 예수님 재림하실 때 다시 부활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부활할 수 있느냐고 반박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주장을 예수님의 부활과 연결해서 설명합니다. “만일 너희가 주장하는 대로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부활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절부터 19절까지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순서대로 설명을 드립니다. 만약 너희 주장대로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도 부활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이렇게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느냐?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고 너희 믿음도 헛것이고 우리의 증거도 거짓말이 된다. 즉 사도 바울 일행이 그토록 간절하게 열심히 전했던 복음의 핵심이 십자가와 부활인데 이 부활이 없다면 사도 바울 일행은 다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고, 그 복음을 듣고 믿은 너희의 믿음도 다 헛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또 어떤 일이 생깁니까? 17절을 보세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 믿음도 헛되니 믿음이 헛되면 우리의 죄 문제도 해결될 수 없으므로 당연히 우리가 아직도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 또 더욱 슬픈 것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죽은 사람들, 즉 죽으면서도 언젠가 예수님 재림하실 때 다시 부활할 줄 믿고 죽은 사람들은 부활은커녕 영원히 죽은 것이니 이 얼마나 불쌍하냐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지만 저는 특히 장례식 때 부활을 강조합니다. 내 사랑하는 부모 형제, 내 남편과 아내가 비록 지금 육신의 죽음으로 이 땅에서 헤어지지만 이것이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죽음이 영원한 끝이요 영원한 이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장례식을 ‘영결식’(永訣式) 혹은 ‘영별식’(永別式)이라고 부르며 죽음을 슬퍼해 땅을 치며 통곡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뭐가 다르냐? 우리는 천국과 부활을 믿기 때문에 죽은 이는 이미 천국에 간 줄 믿고 우리 또한 언젠가 부활한 몸으로 천국에서 기쁨으로 다시 만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설교를 한 후에 부르는 찬송이 바로 293장 ‘천국에서 만나보자 그날 아침 거기서’ 아닙니까? 아마 우리 교회에서 장례식에 한번이라도 참석해본 분들은 모두 이 설교를 듣고 이 찬송을 불렀을 것입니다. 이 부활 설교와 찬송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픔에 잠긴 유족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습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입니다, 정말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부활도 없고, 죽은 자의 부활도 없다면 얼마나 허무하냐는 말입니다. 제가 부활에 대해 설교한 것도 거짓말이 되고 그 설교 듣고 은혜 받고 위로 받은 것도 다 가짜고 우리 믿음도 헛된 것이 되니 말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죽은 사람은 정말 끝입니다. 다시는 못 만납니다. 죽은 사람이나 살아있는 우리나 다 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19절에 결정적으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렇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허락된 것이 이생뿐이면, 그래서 천국도 없고 영생도 없고 부활도 없다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목사들의 달콤한 설교에 속고, 부활이 있는 줄 알고 천국이 있는 줄 알고, 그래서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행복한 줄 알고 신나게 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속고 살았으니 얼마나 한심합니까? 바로 그런 뜻입니다.




부활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 우리는 다시 한 번 부활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정말 부활은 없을까요? 정말 예수님의 부활도 없고 죽은 자의 부활도 없을까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에 따르면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부활도 없다는 것인데 거꾸로 말하자면 예수님의 부활이 분명한 사실이라면 또한 죽은 자의 부활도 사실이고 천국과 영생도 사실이 될 것입니다.

우리 이제 왜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인지 부활의 증거들을 살펴봅시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부활의 첫 번째 증거는 바로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을 장사지냈던 무덤이 부활절 아침에 비어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여인들과 제자들이 무덤을 찾았을 때 시체가 뉘어있어야 할 무덤은 텅 비어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가 놓여 있고,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별도로 다른 곳에 곱게 개어져 있었습니다(요 20:5~7). 누가 이 세마포와 수건을 이렇게 개두었을까요? 또한 무덤의 입구를 막고 있던 엄청나게 무거운 돌문이 굴려져 열려 있었습니다(막 16:4). 누가 이 무거운 돌문을 옮겨 놓았을까요? 조금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어떻게든지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이 기절했다가 깨어나 직접 세마포와 수건을 갰다든지, 때마침 지진이 나서 무거운 돌문이 열렸느니 하는 식으로 설명합니다.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면서 세마포와 수건을 개고 돌문을 열었다거나 무덤이 뒤바뀐 것이라고도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 모두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지진이 났지만 주의 천사가 직접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냈다고 증거합니다(마 28:2). 세마포와 수건은 누가 개놓았을까요? 예수님이 부활하면서 직접 하셨을까요? 아니면 천사들이 뒷정리를 한 것일까요? 성경은 누가 한 것인지 분명히 기록하지 않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옮겨진 돌문과 남겨진 세마포, 수건이 바로 빈 무덤과 더불어 예수님의 부활이 분명한 사실임을 증거해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증거는 ‘천사의 나타남’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음서는 한결같이 이 천사의 나타남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마 28:2~7, 막 16:5~7, 눅 24:4~7, 요 20:12~13). 복음서 중 한두 개에 공통으로 나온 내용은 많지만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내용은 그리 많지 않은데 사복음서가 모두 예수님의 부활 때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이 부활했음을 직접 증거한 사실을 기록한 것을 볼 때 이 천사의 나타남과 증언은 부활의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부활 당시뿐만 아니라 바로 지금도 하나님은 교회의 설교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부활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활에 대한 세 번째 증거는 오늘 본문에 나온 것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이 500명도 넘는 사람들에게 직접 나타나셨기에 ‘직접 부활을 목격한 증인’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 야고보, 사도들을 포함해 500명도 더 넘는 사람들이 다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이들이 그 거짓말을 위하여, 있지도 않았던 부활신앙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려 순교하면서까지 십자가와 부활을 전한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부활에 대한 최고의 증거는 ‘제자들의 변화’입니다. 겁쟁이요 십자가 처형 후 두려워 각기 제 갈 길로 도망한 제자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 같은 제자들이 부활 후 용감한 순교자로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변화시킨 것일까요? 바로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후 부활이 분명한 사실이라는 확신이 그들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부활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는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입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모든 증거는 다 남의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부활하셔서 내 마음속에 살아계시는 예수님이 직접 증거하고 계시니 이 증거 외에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은 분명히 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지만 반대로 부활이 분명히 있기에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부활은 분명히 있기에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을 믿고 또한 보장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일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부활절은 가장 행복한 절기입니다. 부활절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제일 행복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절기입니다.

다 한 번 외쳐봅시다. “예수 부활하셨다!” 믿으십니까? 아무쪼록 분명한 부활신앙 속에서 여러분도 예수님을 통해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 바라며 나아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정말 별 볼일 없고 믿음도 없던 제자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던 무기력한 제자들이 부활신앙을 통해 변화되어 생명을 주님 위해 바친 것처럼 여러분의 삶이 변화되고 인생이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이 부활절에 일어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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