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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주일] 여자여 보소서 (요 19: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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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삼환 목사

  대체로 국경일이나 공휴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은 쉬고 또 가족과 함께 휴가를 가서 즐겁게 보내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절기는 쉬는 것으로 모두 생각합니다. 그래서 너무 쉬는 날이 많은 것은 좋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휴일이 너무 많아서 식목일과 제헌절은 공휴일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로마가 멸망한 것은 공휴일이 너무 많았다고 합니다. 일년에 백 칠십 며칠을 놀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법이 너무 까다롭고 많아서 로마가 망했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도덕적으로 너무 타락해서 로마가 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노는 것, 이것은 일을 하기 위해서 잠깐 휴식이 필요합니다. 너무 노는 것이 지나치게 되면 나태하게 되고 또 타락하게 되고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절기는 노는 절기가 아닙니다. 쉬는 절기가 아닙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는 절기입니다. 기독교의 절기는 육적인 쾌락을 위해서, 육적인 안식을 위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적인 충전과 우리에게 새로운 새 생명으로, 능력으로 무장하는 것이 기독교의 절기인 것입니다.

  기독교의 절기 가운데 가장 큰 절기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부활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살아나신 이 고난주간과 함께 있는 이 부활절은 우리에게 생명줄 과도 같은 것입니다. 고난주간과 부활절에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에 참여하고 부활의 영광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감상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명상의 종교가 아닙니다. 지식의 종교가 아닙니다. 지식으로 아무리 기독교에 대한 교리를 다 이해했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한 경험이 없으면 그것은 생명이 없는 성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을 내 뼛속 깊이깊이 이해하고 주의 피가 내 안에, 주의 살이 내 생명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방주사를 맞은 사람은 모든 전염병이나 모든 병에서 자유함을 받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고난에 대한 생명을 얻은 사람은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저주와 불행이 그를 넘어뜨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이 고난주간과 부활절에 주님을 만나는 경험, 십자가에 대한 이 새로운 경험만이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하고 삶의 새로운 능력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사건 하나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우리 교회의 자랑이며 우리의 힘이며 우리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기독교의 탄생을 성탄절 12월 25일이라고 하는데 그 말도 어렴풋이 맞기는 맞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기독교의 생일은 부활절입니다. 고난주간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새 생명을 낳은 것처럼 주님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교회가 탄생되고 성도가 탄생된 것입니다. 그래서 12월 25일은 예수님의 탄생일을 정한 것이지 그 날이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활절은 확실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33년 동안 계시다가 이 부활절에 이르는 이 모든 하루하루 시간 시간에 대한 것은 성경이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내일 월요일은 주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깨끗하게 청소하시는 사건이 나옵니다. 화요일은 많은 바리새인들과 성전에서 질문을 받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요일에는 가룟 유다가 배반합니다. 목요일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제자들과 성만찬을 베풀고 붙들려 가셔서 금요일에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고 제사장에게 재판을 받아서 아홉시에 십자가를 지시고 오후 네 시에 운명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무덤에 묻히셨다가 주일날 아침에 부활하신 것 이것은 정확하게 역사요, 놀라운 하나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살
아나셨습니다. 주님이 죽으심으로 우리가 살게 되고 주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 용서함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용서함을 받아서 인간관계의 죄악이 화해가 되고 감옥에서 자기가 지은 죄의 대가를 다 받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씻어 주신 보혈의 은총이 아니면 그 죄악은 내 몸 안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것입니다. 그 흔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 죄는 영원히 내 것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해결함을 받아야 죄악의 완전한 자유와 정결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 인간의 모든 저주와 질고를 주님은 다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치료하는, 우리를 바로 세우는, 우리를 모두 살려 주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저희가 몇 년 전에 필리핀에 선교여행을 간 일이 있습니다. 갔다가 해수욕장에서 우리 모든 장로님들과 집사님들, 안수집사님들과 함께 수영을 하는데 옆에 신혼여행 온 한국사람 부부가 부인을 안고 그 신랑 되는 분이 당황하면서 의사를 찾고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노를 젓다가 잘못 무리를 해서 신부 팔이 빠져나간 거예요. 그래서 팔이 허수아비처럼 흔들리면서 안았는데 흔들흔들 하면서 고통스럽게 소리를 지르고 사람을 찾았어요. 마침 우리 교회에 김철수 산부인과 원장이 같이 갔습니다. 나는 산부인과가 이럴 때 뭐 할 수 있겠냐? 했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집사님께서 딱 안더니만 팔을 가지고 틀면서 딱 집어넣으니까 제 자리에 들어가는 거예요. 뼈가 떨꺼덕 하면서 들어가더니 돌려보라고 하니까 그냥 한 순간에 회복이 되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명상이 아닙니다. 주님을 직접 만나는 것입니다. 내 모든 못쓰게 된 내 몸과 마음을 십자가에 피 흘리신 주님의 손으로 우리를 제 자리에 넣어주시고 치료하여 주시고 용서하여 주시고 회복하여 주시고 탕감하여 주시고 살려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모든 부끄러움과 죽음과 저주와 멸망에서 우리를 건져주시는 손이 십자가의 손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손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하나는 잘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는 잘 사는 것입니다. 출세해서 성공하여 잘 사는 것입니다. 하나는 잘 죽는 것입니다. 세 가지가 다 소중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 가지가 다 모두 보통 우리들의 삶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정말 불쌍한 삶을 사셨습니다. 태어나신 것은 마구간에 태어나셨고 사신 것은 목수로 사셨고 마지막은 십자가에 가지가지의 욕을 얻어먹고 침 뱉음을 받고 옷이 다 벗겨져서 엄청난 부끄러움으로 양 손, 양발에 못이 박히고 옆구리에 창이 찔려서 모든 피를 흘리시면서 주님은 마지막 운명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오늘 우리는 주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주님을 처참하게 못 박았던 그 로마의 황제가, 로마의 총독이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죄인으로 하나의 비참한 사람으로 짓밟았던 하나의 생명을 로마는 기독교국이 되어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오늘까지 증거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오늘 온 세계에 있는 가장 능력 있는 왕들이 가장 지성인들이 가장 최고의 문화인들이 최고로 잘 사는 분들이 2천년 동안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수많은 왕의 왕들이 그의 십자가의 보혈의 은총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우리를 위하여 마구간에 오셨고 우리를 위하여 낮아지시면서 가난하게 사셨고 그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비참하게 피 흘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었습니다.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오신 그 모든 삶과 걸어가신 삶과 마지막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죽음의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이 없습니다. 우리는 천국으로 갈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두려워하거나 불안하거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는 자가 이 세상에서도 잘 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고 살아야 사는 것도 잘 삽니다. 오늘 많은 사람은 사는 데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행복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할 수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잘 살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십자가를 지신 주
님을 바라보고 살기 때문에 사는 것에 맞추지 않고 죽음에 맞추기 때문에 우리는 사는 것도 잘 살 수 있고 죽음도 잘 죽을 수 있고 우리는 이 모든 일에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온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자 만이, 죽음을 이긴 자 만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걱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가 되어서 그의 보혈로 씻음 받은 자 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항상 우리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늘 바라보면서 우리는 최후 승리의 죽음도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갈 줄로 믿고 우리는 하루하루 한 발걸음 한 발걸음을 걸어가신 골고다의 길로
걸어가는 것이 성도들의 삶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사는 데에 맞추면 못삽니다. 실패의 삶이 됩니다. 항상 잘 죽으려고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고 살아야 이 세상에서 부끄러움 당하지 않습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힘이 없고 능력이 없는 것은 교인은 그전보다 엄청나게 많아졌는데도 모두 사는 데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죽음 앞에 벌벌 떨고 안 죽으려고 하기 때문에 비겁하게 죽고 불행하게 죽고 우리의 사는 삶도 부끄럽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삼일 독립운동이 일어났을 때에 우리 한국 교회는 교인이 겨우 3%, 5%로 안 되었는데 일본이 두려워서 쩔쩔매었습니다. 이겨 낼 수 없었습니다. 교인이 30%가 되어도 오늘 한국교회가 힘이 없는 것은 모두 죽음에 대한, 고난에 대한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없는 교인은 두렵지 않습니다. 마귀가 갖고 노는 것입니다. 죽으면 사는 것 이 확실한 진리 위에 우리가 바로 서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너무 고난에 대해서 의미를 모른다고 합니다. 오늘 젊은 사람들 큰 소리 치는 사람들도 고난에 대해서 너무 모릅니다. 한국교회가 십자가를 모르면 죽은 것처럼 사람은 고난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요사이 386세대를 우리 교회 오신 어떤 분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386은 ‘3’ 삼일절을 모르고, ‘8’ 팔 일 오 모르고, ‘6’ 6.25 모르고 그러니까 이거 우리가 세상에 어떻게 지나왔는지 이 나라의 뿌리인 3.1절, 6.25 이 공산주의의 이 엄청난 처참한 고통당한 이 나라 슬픔과 이 불행을 모르는 거예요. 우리는 과거를 모르면 안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절기는 행사하는 절기가 아닙니다. 참여하는 절기입니다. 십자가에 대해서 정확하게 경험하는 절기가 성도들의 삶이 되어야 성도는 살아나는 것입니다. 삼일절, 노래 부르고 끝납니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그러고 다 끝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경험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능력이 지난날에 얼마나 순교자가 많았습니까? 얼마나 감옥에서 고문당하고 돌아가신 분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어떤 어려움도 이 분들은 천국 생각하고 예수님 십자가 바라보고 이겨냈습니다. 제일 어려운 분들이 가족들이 아기들 밖에 와서 엉엉 울고 부인과 부모들이 엉엉 울 때 거꾸로 매 달려 매 맞으면서 너 예수를 한 마디만 여기서 안 믿는다고 그러고 나가서 믿으라고 그래도 그렇게 못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안 사셨는데 그럴 수 없습니다. 하고 기꺼이 순교한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죽음, 그 분들은 살았습니다. 그 자손들도 살았습니다. 영원히 영원히 삽니다. 오늘 모두 고난을 피해 살다보니 자살 해 죽습니다. 값어치 없는 죽음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고난당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날의 우리 고난을 잊으면 안 됩니다. 눈물 젖은 빵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개떡을 먹었던 지난날을 잊으면 안 됩니다. 나뭇잎 가져다가 곡식을 먹지 못하고 온 몸이 퉁퉁 붓고 학교 가면 애들 배가 아이 밴 것같이 다 튀어나왔었습니다. 다 90%가 영양실조였습니다. 저도 소나무 껍질을 얼마나 먹었는지 모릅니다. 6.25사변이 나고 막 망치로 두들겨서 밀가루를 조금 넣어 가지고 소나무 껍질만 계속 먹으면 화장실에 가서 이게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손으로 껍질을 잡아 당겨서 꺼낸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고난을 우리가 너무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러니까 일본이 우리를 우습게 알고 고난을 잊어버린 민족을 다시 삼키려고 하고 있고 중국도 우리를 우습게 알고 다시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제 일인데, 우리가 어찌 잊을 수 있습니까? 우리 모든 사랑하는 성도들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한 순간도 긴장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오직 십자가입니다. 오늘 많은 교회들이 십자가가 없다보니 신학을 지원하는 신학생들도 아 목사가 되면 좋은 에쿠스 타고 다니는구나, 야 당회장실이 장관실보다 낫구나, 야 당회장 되니까 온갖 대접받고 야 저렇게 영광스럽게 사는 길이 없구나. 그래서 모두 다른 길 가다가도 목사로 들어오는 길이 너무 많습니다. 목사는 그런 것 아닙니다. 목사의 길은 고난의 길이에요. 눈물의 길이에요. 십자가 지는 길이에요. 마지막에 어려운 일을 당하면 순교하는 길이에요. 앞장서서 교회 살리고 양떼 살리고 십자가의 죽음의 길로 가는 게 목사의 길이에요. 오늘 한국교회가 이런 각오가 없고 희생이 없고 헌신이 없고 십자가가 없는 이러한 주의 종들이 너무 한국교회를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 따라가면 승리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듯이 십자가 짊어지고 가는 자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영광이 주어질 줄로 믿습니다.

  톨스토이의 ‘왕과 청소부’라는 그런 책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 보면 왕이 잔치를 베풀어서 많은 사람을 초청을 했는데 이 우편에 왕이 있는 자리에 누구를 앉게 하느냐?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손이 제일 험한 분을 내 옆으로 데려오너라. 그래서 모두 손을 만져 인사하고 악수 해 보면 전부 손이 반들반들 핸드크림 발라 가지고 전부 반들반들했습니다. 다 안되었어요. 나중에 보니까 한 분이 들어오는데 손이 짐승의 손 같아요. 발과 같아요. 얼마나 거치른지 아 누구십니까 어디서 오셨습니까? 얘, 저는 청소부입니다. 청소하다가 늘 흙 만지고 돌 만지고 쓸다가 손이 얼마나 거칠어졌는지 이리 따라오세요. 폐하가 부르십니다. 그래서 왕의 옆에 앉았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두 개의 십자가가 있다고 하잖아요. 땅에 오셔서는 열심히 목수 일을 하신 한 편에 못 박힌 목수의 못, 또 한편으로는 우리 인류를 위해서 흘리신 보혈의 못이 박힌 이 양 손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거예요.

오늘 교회에 사랑하는 성도들 예수 믿어서 이 세상 살 때에 예수님 십자가 생각하고 험한 일 하시고 고난을 피하지 말고 담대하게 주님 십자가 생각하고 참고 나아갈 때 주님 보좌 우편에 앉는 축복이 주어질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를 보시고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저를 보시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나를 향하여 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김 목사 나를 바라보라. 김 집사 나를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진 이 십자가, 내가 너를 위하여 흘리는 피, 내가 너를 위하여 흘리는 이 고난과 이 부끄러움과 고통을 보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골고다의 주님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신 주님을 이렇게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경험을 하지 아니하면 천국 시민이 될 수 없습니다.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도 9년 동안 시베리아 유배생활에서 십자가 지신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이후에 그는 ‘죄와 벌’이라고 하는 세계적인 작품이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헨델은 반신불수가 되어서 감옥에 갇힌 후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명곡 헨델의 ‘메시아’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렘브란트라고 하는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화가가 있습니다. 잘 살고 행복할 때는 주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 없는 삶, 주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가난해졌습니다. 실패했습니다. 부인도 죽었습니다. 한없는 외로움과 허전함과 죽고 싶을 때 그도 주님을 만나서 그 이후에 작품은 영혼을 그리는 대표적인 작품이 ‘야경’이라는 작품이 아닙니까? 새로운 그림을 그렸습니다. 새로운 작품이 나왔습니다. 새로운 음악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정치인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도 방탕의 길로 가다가 십자가 지신 주님을 만나서 새 사람 되지 않았습니까? 제가 이번에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을 했는데 상원의원이 말했습니다. 설교를 상원의원이 하더라고요. 여러분, 저는 예수 믿지 않았습니다. 나는 하나님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 열 여섯 살 된 아들이 교통사고로 생명을 잃고 나는 이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이 아들 때문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저도 청년 때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내가 잘난 줄 알았더니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알고 나는 그 이후로 통곡하며 주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당신이 나 위하여 죽으셨군요. 당신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군요. 나는 이 세상에 가장 큰 죄인입니다. 주님 앞에 울며불며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있고 이 세상에 고난이 있어도 저는 오늘날까지 주님을 따라간 이유가 주님이, 십자가 지신 주님이 나를 보라 내가 너를 위하여 피 흘렸다고 하는 주님을 만나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만나야 할 예수를 만나지 않고 너무 헛된 세속문화 온갖 음란과 퇴폐와 불의와 우상숭배와 물질문화와 만나서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방황하고 타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지신 주님을 만나야 새로워집니다. 담대해집니다. 깨끗해집니다. 세상을 이깁니다. 가족과 민족을 구원해 낼 줄로 믿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길이 인간을 창조하신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만이 우리 안에 새 생명이, 새로운 삶이, 그 안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이제 우리는 주님과 함께 남을 위해서 헌신하는 삶도 살아야 합니다. 예수 잘 믿으면, 우리교회 부흥하고 큰 교회 되면 뭐하지요? 왕이 될까요? 용이 될까요? 하늘에 올라갈까요? 아닙니다. 예수 잘 믿으면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거예요. 헌신하는 거예요. 이 십자가는 우리에게 희생과 헌신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자리입니다. 잘 믿으십니까? 축복 받으셨어요? 모두 집에서나 밖에서나 교회에서나 남을 잘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자녀만 사랑하지 마십시오. 소년 소녀 가장 불쌍하지 않습니까? 부모 없는 자녀들 불쌍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 이렇게 상처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데 여러분, 뭐하십니까? 우리 모두 그들을 사랑하며 섬겨야 할 줄로 믿습니다. 신앙생활도 꼭 큰 교회, 큰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도 사치입니다. 성가대 장엄하고 말씀이 여러분을 만족하게 하는 것 같은데 이것은 교만입니다. 약한 교회, 작은 교회 도와주어야 합니다. 적은 목사님들 개척교회 목사님들 도와드려야 합니다. 선물도 큰 교회 목사에게 선물하지 마세요. 저한테 선물하지 말아요. 나는 먹을 것 많아요. 그리고 또 어지간한 것 갖다 주어봐야 좋지도 않아요. 이미 나는 타락했어요. 적은 교회 목사님은 고등어 한 손도 커요. 쌀 한 톨, 밥 한 수저도 그 분들은 귀한 거예요. 큰 교회 목사 대접해 봐요. 돈 많이 들어요. 적은 교회 목사는 냉면 한 그릇도 얼마나 귀한지 알아요? 주변에 개척
교회 있으면 외면하지 말고 도와드려요. 가서 기도해 드리고 위로해 드려요. 그래야 하늘나라에 가서 상이 큰 거예요. 땅에 맞추지 말고 하늘에 맞추고 살아요. 죽음에 맞추고 살아요. 죽으면 다 끝나는데 살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이 다 사라지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예요? 얼마 안 있으면 다 가는 건데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예요? 모두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 멸시하지 마십시오. 적은 교회 목사가 적은 목사인줄 아십니까? 큰 목사예요. 20명, 30명 데리고 50명 데리고 20년, 30년 목회 하는 것 그것 큰 일군들이에요. 천국에 큰 자들이에요. 우리 모두 사랑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너무 모두 세상 사람이나 한국교회나 너무 내 만족, 이기주의 나 하나만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얼마나 큰 위기가 오는지 지금 1년에 아이들이 우리 인구가 이대로 유지되려면 85만 명이 태어나야 된대요. 해마다 85만 명이 태어나야 이 인원이 유지가 된대요. 그런데 49만 명밖에 안 태어난대요. 시골에 한 면에 애 울음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고 어떤 마을에는 7년 만에 첫 울음소리가 들렸대요. 이래가지고 되겠어요?

앞으로 초, 중, 고등학교가 1/3이 다 없어져요. 얼마 안 있으면 2/3가 다 없어져요. 우리나라 노인들만 남게 되는 거예요. 일할 사람이 없어져요. 아이들이 없으니까요. 둘이 한 명을 낳아도 반으로 줄어드는데 또 한 명도 안 낳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 어떻게 될 거예요? 도대체 뭐하세요? 애 안 낳고 뭐 하냐 말이에요? 저는 앞으로 우리 교회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이들 세 명 안 낳으면 권사 시키지도 않아요. 아예 금년부터 결혼하는 사람은 권사가 되려면 아이 셋, 장로님들은 아이 다섯 안 낳으면 장로 안 시켜요. 이제는 아예 정해 놓으려고 해요. 안수집사? 애들 셋 안 낳으면 안수집사 안 돼요. 하나님이 주신, 성경에 첫째가 뭐예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건데 어디에 초점을 맞추는 거예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십자가 짊어지고 가면 자녀들도 다 사랑스러워지는 거예요. 귀한 거예요. 자녀 없이 둘이 먹고 가만히 깊은 밤에 둘 이만 있어 봐요. 귀신 나와요. 집안에 애가 북적북적 그래야죠 노인들만 둘이 있어 봐요. 곧 데려갈 귀신들이 찾아온다고요. 되겠어요? 안 되는 거예요. 이기적인 것 버려야 합니다. 희생해야 합니다. 그러면 축복이 옵니다. 열매가 옵니다. 우리 인류를 위해 다 주신 주님 앞에 온 인류가 다 모여서 경배하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남은 생애를 하나님의 나라 위하여, 주님 위하여, 이웃 위하여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하며 나누어주며 욕심 부리지 말고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안 되느냐? 잘된다는 거예요. 예수님을 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축복해 주실 줄로 믿
습니다.

  한 가지만 이야기를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옛날 초나라에 장왕 이라고 하는 아주 어진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이 임금님은 얼마나 어진지요. 하루는 신하들과 저녁에 잔치를 베풀어서 식사를 하는데 아 불이 꺼졌어요. 바람 때문에. 그런데 왕비가, 중전이 얼마나 예쁜지 사모하던 한 신하가 불이 꺼진 틈에 와 가지고 그 얼굴에 입을 맞추고 탁 바디터치를 하고 가는 거예요. 그런데 이 왕비는 아주 덕이 없었어요. 그래 가지고 그 신하의 갓 끈을 딱 잡아 당겼어요. 어디 이런 놈이 있냐 해서 갓 끈을 딱 잡았어요. 폐하, 불 꺼진 사이에 어떤 놈이 내 볼에다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런 놈이 어디 있습니까? 갓 끈을 내가 잡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장왕이 아 그러냐고, 이 좋은 자리가 큰일이 나겠거든요. 여봐 이 안에 있는 신하들은 모두 갓 끈을 잡아 당겨서 앞에다 갖다 놓아라. 그래서 다 갖다 놓았어요. 그러니까 갓 끈이 다 없어졌어요. 범인이 누구인지 몰라요. 그래서 잔치를 잘 마쳤어요. 2년 후에 진나라와 초나라와 싸움이 일어났어요. 이것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큰 전쟁이 일어났는데 이 전쟁에 초나라가 질 수밖에 없었는데 한 장군이 전체 참모총장이 진두지휘를 해서 진 나라와 싸워 승리를 해서 돌아온 거예요. 큰 잔치를 베풀고 물었어요. 어떻게 해서 이 용맹을 가지고 진 나라와 싸워 이길 수 있었냐? 이 참모총장이 이렇게 말했어요. 2년 전에 잔치를 베풀 때 갓 끈을 뜯은 것을 기억하십니까? 제가 그 때 중전인 국모 님을 너무너무 흠모해서 내가 잠깐만 이렇게 얼굴을 댄 것입니다. 그 때 그대로 두었더라면 저는 죽었을 텐데 저를 임금님이 살려 주셨어요. 나는 이미 2년 전에 죽을 몸인데 그래서 생명을 바쳐서 전쟁에 참여하여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저를 죽여주십시오. 기독교는 바로 이거예요. 주님이 아니면 나는 벌써 죽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아닌데. 예수님이 아니면 저는 30년 전에 폐병 걸려 가지고 죽었어야 하는데. 피 흘리고 내가 죽었어야 하는데 주님의 은혜로 나를 살려주신 거예요. 그래서 항상 속상해도 잘 참는 거예요. 힘들어도 잘 참는 거예요. 어려워도 왜? 그때 저는 죽었어야 됐는데 모두 감사, 그 때 제가 죽었어야 하는데 주님 은혜를 생각하면 너무 감사한 거예요.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하지요? 주님이 아니면 나는 벌써 죄인이 되어서 벌써 나는 나쁜 놈이 되고 망했어야 하는데 주님의 은혜로 내가 이렇게 살았습니다. 나를 구원해 주신 십자가 지신 주님을 사랑하며 남은 여생 십자가 증거하고 이웃을 위하여 헌신하다가 천국 가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겠습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고난주간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과 함께 고난주간에 골고다 걸어가신 주님, 십자가 지시고 여자여 나를 보라 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 주님 만나게 하여 주옵소서. 주의 음성 들어서 이 완악하고 거짓되고 불의하고 강팍하고 잘못된 우리의 삶이 돌아서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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