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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의 영광 (빌 3:17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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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정필도 목사

17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18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죽은 사람들이 모두 다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믿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것만을 믿으려하는 이 세상에서, 이 문제는 과학적으로 볼때 거의 100%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확실히 믿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과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아직 기독교인이 되지 않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의 부활을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부활을 증거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이 세상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수 백 여명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 아무리 로마의 군대가 강력하고, 유대의 지배계급인 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세력이 드높다 해도 이미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도저히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한 바 되었기 때문에 이 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전세계에 걸쳐 기독교가 증거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0:9을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뿐만 아니라 모든 죽은 사람들의 부활을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나 모든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이 한 번 태어나 이 세상에 얼마동안 살다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도 죽으면 오늘로서 끝나고, 아무리 유명한 박사라 할지라도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인생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혹시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인데 오늘 살아있을 때 실컷 먹고 마시고 즐기며 내가 하고 싶은 일 다 하자.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인생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고전 15:32). 그러므로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방탕하게 살다가 절망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수립하여 공산주의 이론의 기초를 만든 독일의 칼 마르크스는 1883년 3월 14일에 죽었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그의 하인이 “저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시면 제가 기록해두겠습니다”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그는 “시끄럽다 나가라”라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 죽었습니다.
또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는 “내 인생이 불쌍했다”라고 말하고 초라하게 죽었습니다. 또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는 죽음의 공포와 불안으로 사람들에게 마구 소리를 지르다가 결국 정신병자가 되어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은 사람들은 이 사람들과 전혀 다릅니다. 우리의 삶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땅에 사는 동안 바르게 살려고 애를 쓰다가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에 죽는 모습도 매우 아름답습니다.
미국의 D. L. 무디 목사는 죽을 때 “나는 죽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곳으로 옮겨간다.”라고 하면서 평안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영국의 웨슬레 목사는 88세에 “모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하면서 평안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존 칼빈도 “주님 나는 더 할 수 없이 만족합니다.”라고 하면서 행복한 모습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우리나라의 초대 이화여대 총장을 지냈던 김활란 박사도 “내가 죽었다고 장송곡을 부르지 말고 승리의 행진곡을 불러달라”는 유언을 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이와같이 부활신앙을 가진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가 다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의 모습을 보면 가지각색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는 동안죽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숨을 거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이 사람이 천국에 갔는지 그렇지 않은지 대강 짐작하게 됩니다. 사람들 중에는 죽기 싫어서 몸부림치다가 죽는 사람도 있고, 죽음이 두려워 공포에 사로잡혀 새파랗게 질려서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이를 뽀드득 갈다가 죽어가는 사람도 있고, 또 무슨 한이 그렇게 많은지 눈을 부릅뜨고 죽는 사람도 있으며,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져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신앙생활 잘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평소보다 더 평안하고 더 아름다운 얼굴로 마치 아기가 잠자는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의 할머니의 경우 돌아가실 때, 그 얼굴이 마치 천사와 같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깨끗하게 가셨습니다. 이와같이 “부활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내세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죽는 모습이 전혀 다릅니다.

미국의 러셀 코넬 대령은 시민전쟁이 일어났을 때, 지휘관으로 있으면서 급히 후퇴하면서 그만 자신이 평소에 사용하고 아끼던 지휘도를 그곳에 두고 오는 큰 실수를 했습니다. 이 일로 몹시 속을 태우던 그는 링이라는 용감하고 날렵한 소년을 시켜서 그 칼을 가져오도록 명했습니다. 이 소년은 목숨을 걸고 적진에 들어가 칼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적군의 총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 소년은 있는 힘을 다해 그 칼을 코넬 대령에게 바치고 눈을 감으면서 마지막으로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친구이시기 때문에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평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이 모습을 홀로 지켜보던 무신론자요 회의론자였던 코넬은 그 소년 앞에 무릎을 꿇고 “오! 주여, 이 소년 앞에서 나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주여, 이 소년이 찾는 하나님을 위해서 저도 제 몸을 바치겠습니다.”라고 결단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신학을 공부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 신학원을 세웠습니다. 이 학교가 바로 미국 보스톤 교외에 있는 골든 코넬 신학대학원입니다. 그후 템플 대학교를 세워 많은 지도자를 양성했습니다.
한 소년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부활신앙이 한 사람을 살리고 위대한 일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만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죽은 후에 모두 다 부활한다는 사실입니다.

부활에는 두 가지 부활이 있습니다.
1. 생명의 부활
2. 심판의 부활
요한복음 5:28~29을 보면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자는 생명의 부활을 하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하고 마귀의 종노릇하던 사람들은 심판을 받은 후 지옥의 고통을 당하게 되는 심판의 부활을 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0:6을 보면, 사도 요한은 생명의 부활을 가리켜 첫째부활이라고 말씀하면서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리라』고 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15:51~54을 보면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4~17을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예수님께서 강림하시면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 믿고 구원받고 죽은 사람들이 먼저 부활하여 주님을 만나게 되고, 살아있는 사람들도 변화되어 공중에 올라가 주님을 만나게 되며, 그 시각 이후로부터는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주님과 만나는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빌립보서 3:21을 보면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지금의 저와 여러분의 몸은 낮은 몸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해서 모든 인류가 저주받은 몸이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늙고 쇠하고 병들고 아프고 고통 당하고 죽는 연약한 몸을 입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면 우리의 이 낮은 몸을 예수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부활의 형체로 변하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부활의 몸은 죽지 않고 썩지 않고 아프지 않고 병들지 않고 늙지 않고 쇠하지 않고 영원히 영생하는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15:42~45을 보면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첫 사람 아담은 인류의 조상 아담을, 마지막 아담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이어서 46~49절을 보면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천국을 사모하며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강림하실 예수님을 날마다 기다리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다시 오실 예수님을 사모하며 기다리지 않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관심은 없고 먹고사는 일로 이 세상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마치 내세를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입고 잘살까 하는 육신의 일만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본문 19절에서 사도 바울은 [저희의 신은 배요]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배가 신이라는 뜻으로, 결국 그들의 종말은 멸망이라는 말씀입니다.
불행하게도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깨닫고 회개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매우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너무 작아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제멋대로 살다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각 사람의 믿음에 따라 영광이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해와 달의 빛이 다르고 달과 별의 빛이 다르며 별과 별의 빛이 다르듯이, 열심히 믿음생활을 한 사람과 미지근하게 믿음생활을 한 사람과 장차 천국에 가서 받을 영광이 다 다릅니다.
다같이 열심히 믿음생활을 한다 해도 덕을 세우며 교회부흥을 가져오고 많은 사람을 기쁘게하며 산 사람이 있는 반면에, 열심은 있으나 성격이 변덕스러워 기분에 따라 충성하다보니 자연히 교회와 성도들 간에 덕을 세우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분들도 장차 천국에 가서 받을 영광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목숨걸고 죽도록 충성하며 순교를 각오하고 열심으로 믿음생활을 한 사람은 부활의 영광이 확실히 다를 것입니다.

마태복음 19:27~28을 보면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했습니다.
또 누가복음 22:38~30을 보면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고 시험을 당하고 수난을 겪으며 끝까지 주님을 위해 충성하며 순교한 사도들에게, 예수님께서 장차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고 죽도록 충성하다가 순교한 자들에게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계 20:4).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평생 전도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고, 십일조 한번 온전히 한적이 없으며, 주님을 위해 조금도 수고한 일이 없는 사람은 똑똑하게 산 것같아도 실은 헛 똑똑이로 산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 땅에서 주를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천국에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남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어리석은  것같아도 실상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좋은 길이 다 있지만 다 버리고 오직 일생을 주님 뜻대로 주님을 위해 살고 싶어서, 출세할 기회가 그렇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주를 위해 충성할 때, 우리 주님께서 어찌 면류관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예수 믿는 것은 각 사람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각각 행한 대로 천국에서 받을 상급이 다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음을 믿습니까?
예수님은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하셨음을 믿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만에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머지 않은 장래에 다시 오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나 죽었던 사람들이 영광의 몸으로 다시 부활한다는 것을 믿습니까? 이때 살아있던 성도들도 이들을 이어서 영광의 몸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믿음으로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 앞에 서서 각 사람의 행위대로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때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사람도 있고,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두 고을을 다스릴 사람, 다섯 고을을 다스릴 사람, 열 고을을 다스릴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모든 사실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지금가지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이 시간이 새로운 결단의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부활의 신앙을 다시 한번 다짐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면 영원한 세계가 시작되는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는다면 아무렇게나 살수 없는 줄 믿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살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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