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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은 능력이다 (요 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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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이용호 목사

개구장이 세 놈이 모여서 아빠 자랑을 합니다. 한 아이는 변호사 아이이고, 한 아이는 사업가 아이이고, 한 아이는 목사의 아이입니다. 변호사의 아이가 말하기를 "우리 아빠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만 해도 돈을 많이 벌어"라고 했습니다. 이에 사업가의 아이가 "우리 아빠는 한 건만 하면 큰 돈을 벌어"라고 했습니다. 이에 옆에 있던 목사의 아이가 말하길 "우리 아빠는 설교만 하면 모든 교인들이 돈을 다 내." 이 세 아이의 아빠 자랑은 아빠에 대하여 알기는 아는데 정확하게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한 부분만 아는 것입니다.

  부활이 아닌 것들

  기독교 부활에 대하여 많은 신학자들이 이야기를 하고, 철학자들이 이야기를 합니다. 문학가들이 이야기를 합니다. 심지어는 과학자들도 이야기를 합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 '하나님이 있다'라는 증거가 나타나기 전에는 나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평생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접근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믿으라고 말합니다. 믿으면 증거가 나타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믿으라 그러면 그 하나님이 네가 경험되는 하나님을 나타나리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부활은 심오한 진리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논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부활을 믿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부활에 대한 오해가 많이 있습니다.

  "영혼불멸설"은 부활이 아닙니다. 한 번 태어난 인간은 그 영혼이 불멸한다는 철학이론입니다. 이것은 부활이 아닙니다. 진화의 과정도 부활이 아닙니다. 고행이나 극기나 공로로 영생에 이른다는 이교의 교리도 부활과 다릅니다. 환생도 부활이 아닙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회생도 부활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살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활이 아니고 회생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지 부활이 아닙니다. 나사로는 다시 죽었습니다. 부활이란 생명의 완성이고, 생명의 영원을 보증하는 확실한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이해하려면 성경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논증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3일만에 살아나셨다고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성경으로 와서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부활을 이렇게 접근합니다. 인간의 죄의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두고 부활을 논증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들의 죄의 문제에 대한 확실한 답입니다. 죄는 몇 가지 관계를 가집니다.

  부활은 죄 문제의 해답이다

  죄와 관계 있는 첫번째는 죽음입니다. 죄는 죽음을 가져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은 죽어야 합니다. 이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죽음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심으로서 인간의 죽음의 문제까지도 해결하셨습니다.
  두번째로 죄와 관계있는 것은 사단입니다. 악령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악령에게 매여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죄의 문제의 해결은 악령을 이기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지옥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인간은 지옥으로 가야 합니다.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죄의 문제에 대한 완전한 해답이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는 우리의 죄 값을 갚아 주는 사역이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제 죄가 사해졌음을 확증하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부활의 능력을 입어서 사는 보증이 부활입니다.

  우리가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사면 값을 지불합니다. 그것이 거래입니다. 값을 지불하고 물건을 받음으로서 거래가 성립합니다. 그러나 내가 물건을 산 것은 사는 재미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샀다는 그것이 물건을 사는 목적이 아닙니다. 산 물건은 집에서 유용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건을 진열장에 놓던지, 산 것으로 목적을 이루었다고 해서 남이 가져가던지 말던지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경우는 옳지 않은 것입니다. 물건은 사서 활용하고 내 생을 윤택하게 해야 합니다.

  부활은 약속이다

  예수님의 속죄는 우리의 죄 값에 대한 지불이고 부활은 죄 사함을 입고 구원받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살아간다는 보증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나 부활의 은혜를 입습니다. 그 약속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땅 위의 인간의 약속은 완전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일례로 정확하다고 하는 전보도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전보도 오보가 더러 있습니다. 웨스트 유니온이라는 통신회사가 전보를 한 번 잘못 쳐서 2만불의 배상금을 물어준 적이 있습니다. 시골에 사는 부모님이 도시에서 공부하는 아들에게 전보를 쳤습니다. “아들아 오늘 네 생일이지. 우리는 너를 사랑한단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mother and dad'(엄마와 아빠가)라고 전보를 쳤는데 그만 이것을 잘못 친 것입니다. 'mother is dead'(엄마가 죽었다)라고 말입니다. 아들이 전보를 받고는 큰 충격을 받고 첫 차로 어머니가 계신 고향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고향에 와보니까 어머니가 멀쩡하게 살아 계십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죽음과 생명을 동시에 경험했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것 그대로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드리면서 울었고,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그 기쁨으로 어머니의 생명을 맛보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은 모두 확률입니다. 사람이 서로 믿는다는 것은 확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확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확률이 아닙니다. 완성품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약속, 부활의 약속은 확률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확률로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완성품으로 대합니다. 이것이 부활의 의미입니다.

  부활의 첫 증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아침에 그 무덤을 찾아간 사람은 여럿이 있습니다만 가장 먼저 부활의 주님을 목격하고 그 주님을 만났던 첫 증인은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이 여인은 창기 출신입니다. 일곱 귀신이 들린 여자였습니다. 아주 천한 여자입니다. 천대와 멸시를 받고 살던 여자입니다. 이 여자가 주님을 만나서 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주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 여인이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울고 있는 여자에게 천사가 말합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때 부활하신 주님이 마리아 옆에 서 계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 보면 "주신 줄 알지 못하더라"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마리아가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여기 있느냐"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러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그 때 주님이 마리아를 불러 주십니다. "마리아여, 마리아여" "랍오니여" 이 장면을 극화해 보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마리아를 향하여 "마리아여"라고 불러줄 때 마리아는 주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리아의 영의 눈이 열렸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영의 사람입니다. 그 영체로 오시는 주님의 모습을 마리아가 보지 못하다가 "마리아여"라는 이름을 불러 주시는 주의 음성을 듣는 순간에 마리아는 눈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지려고 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마리아여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느니라. 너는 네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라" "내 아버지 곧 너의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 이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 곧 너의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께로 올라가리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서 일러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주님이 부활하신 그날 아침에 무덤에서 나눈 이 대화는 우리에게 두 가지 큰 의미를 줍니다.

  불러 주시는 주님

  첫째는 "마리아야"라고 크게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예배는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신앙고백하고 기도하고 찬양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배 가운데는 주님께서 영으로 우리에게 불러주시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 음성은 귀로 못 듣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육신의 눈으로는 보지 못합니다. 영이 열려야 봅니다. 영으로 듣는 음성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는 일방적으로 우리만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듣는 순간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내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했으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내 마음을 움직여 주시는 느낌을 느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으로 우리 마음에 말씀해 주십니다. 그 음성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인격으로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기도하고 나서 하나님의 응답을 느껴야 됩니다. "마리아여"라고 마리아를 불러주신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각자를 불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내 아버지 곧 너의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 나를 죽음에서 살리신 그 아버지가 너의 아버지다, 그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다 라는 이 위대한 관계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은 의미나 혹은 관념이나 이론이나 철학이 아닙니다. 부활은 곧 생명이요 살아있는 능력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명상용의 진리가 아닙니다. 주님이 살아나신 것은 죽음을 이기고, 사단을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지옥의 형벌을 이기고 승리하신 그 능력이 오늘 우리의 손발을 움직이시며, 우리의 삶을 인도해 가시는 능력입니다.

  부활은 삶의 능력이다

  본 훼퍼 목사는 나치 하에서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순간에 동료들 앞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오늘이 마지막이야. 그러나 나는 예수 안에서 새로운 새 생명의 시작이 있는 날이야." 그렇습니다. 부활의 믿음이 본 훼퍼는 죽음을 앞두고도 그리스도의 부활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이 부활은 우리의 삶을 풍요하게 합니다.
  어느 기독교 여성의 간증입니다. 이 여성은 신앙 가문에서 곱게 자랐습니다. 그녀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나니까 그 가문은 완고한 이교도의 가문이었고 이 남편은 자기에게 환심을 살려고 교회에 다녔지 사실은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결혼한 이후에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시부모들은 처음에는 예수를 믿지 말라고 말만 하더니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교회를 다니지 못하도록 물리적으로 막습니다. 이 여자는 괴로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부모님의 말 한마디, 남편이 구박하는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되고 온 종일 서러움에 울기도 하고 자기를 주체할 수 없는 망가진 모습으로 절망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평소에 친분이 있는 목사님을 찾아가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통을 다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은 그녀에게 이런 권면을 했습니다. "당신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십자가를 몰랐던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십자가를 지는 골고다의 길을 통과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길을 통과하여 부활에 이르렀듯이 지금 당신은 오늘의 고난을 이겨야 합니다. 도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댁을 피하지 말고 시댁을 정면 돌파하십시오. 그것이 당신에게 주어진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당신 혼자서는 감당을 못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모시고 골고다를 통과하시기 바랍니다."

  이 여인이 그 목사님의 권면을 듣는 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가 성가대를 하면서 그렇게 부활의 주님을 많이 찬양하며 신앙생활을 했지만 막상 고난의 골짜기에서는 부활하신 주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는 부활의 주님을 붙잡았습니다. '십자가를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처럼 나도 내 십자가를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처럼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 신비스러운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니까 시어머니가 하는 잔소리나 남편의 구박도 전에는 자신을 상하게 했는데 이제는 전혀 마음에 상처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구박을 해도 귓전으로 흘러가고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용기가 있고 시부모들의 잔소리는 모두 귓가로 흘러가는 바람소리처럼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여인을 붙잡고 그 가정의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가정은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복음화 되었습니다.

  맺는 말

  부활은 새 생명의 원천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는 것이나 전파하는 것도 헛된 것입니다. 부활은 승리의 원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기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께서 이긴 것을 보장받고 싸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은 능력입니다. 부활은 삶입니다. 부활은 감상하고 진열하고 묵상하는 주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오늘의 나를 이기게 합니다. 나를 일어서게 합니다. 나를 치유하십니다. 나를 나되게 하십니다. 이 부활의 은총을 믿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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