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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마음이 뜨거워질 때 (눅 24: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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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서정호 목사

부활절은 희망의 절기

2005년 부활의 새 아침입니다. 죽음의 어두운 장막이 걷히고 영광스럽고 감격에 찬 생명의 새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되새기는 감격의 새아침! 부활 생명의 은총이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태양 앞에 어둠이 존재할 수 없듯이, 예수님의 눈앞에 어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권세 앞에서도 생명의 부활을 보여주신 주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활의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국어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한 청년이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여인은 사랑을 증명해 보라고 하면서 청년에게 별을 따다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청년은 별을 따다 주었습니다. 다시 여인은 청년에게 달을 따다 달라고 하자 청년은 달을 따다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인이 청년에게 어머니의 심장을 꺼내달라고 하니까 청년은 고민하다가 어머니의 가슴속에서 심장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여인과 행복하게 살 생각을 하며 어머니의 심장을 들고뛰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심장이 저만치 굴러 떨어졌는데 언덕 밑에서 심장을 다시 주웠을 때 흙투성이가 된 어머니의 심장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얘야. 많이 다치지 않았니?"

이것이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이면서 또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인간은 참 이기적입니다. 기회만 있으면 "달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장까지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갈보리 십자가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여전히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고, 길이 있습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신 날입니다. 인생이 아무리 어두워져도, 아무리 짙은 먹구름이 끼어도, 아무리 험난한 골짜기를 만나도 상관없습니다. 어딘가에 희망이 있다는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그런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절은 희망의 절기입니다. 우리는 이 날을 우리의 영혼이 부활하고, 우리의 가정이 부활하고, 우리의 양심이 부활하는 날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있어야 할 자리

본문의 주인공은 부활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예루살렘을 떠나는 두 제자입니다. 그래도 많은 다른 제자들은 아직 그곳에 남아 있었지만 두 제자는 그곳을 떠납니다. 그처럼 분노가 치밀 때 성격적으로 참지 못하고 무작정 길을 떠나는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인도가 있기 전에는 복된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것이 은혜 받는 비결입니다.

사람에게 있어 성공의 제일 요소 중에 하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그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자기 자리를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작은 약속입니다. 작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큰 약속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을 줍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신뢰해준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자산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조그만 책임이라도 힘써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구하십시오.

부드럽게 사랑으로 감싸 안으세요 

14절을 보면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쓸쓸한 모습이 느껴집니다. 그 모습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찾아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눅 24:17) 사명을 망각한 제자들에게 찾아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보며 무엇을 느끼게 됩니까? 두 제자처럼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때가 많은 우리에게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우리 모습을 보면 주님 앞에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이 많이 있습니까? 누가 와서 "네가 정말 신앙인이냐?"라고 말한다면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도 너무 낙심하지 말아야 하고 너무 양심적이어서 믿음을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계속 만들어져 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를 찾아와서 "왜 그 모양이냐!"고 윽박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너무 다그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부족한 사람들끼리 서로 다그치면 남는 것은 갈등과 상처와 아픔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와 같은 모습으로 부족한 제자들을 다그치며 끌고 가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그 모습 그대로 용납하시고 한 단계 한 단계 제자를 만들어 가셨습니다. 그러한 겸손한 사랑과 용서의 기초 위에 오늘날 우리 교회가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날 무엇보다 배워야 할 것이 이 사랑입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는 비결

결국 두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깨달음을 얻고 엠마오 근처에서 여관을 잡으면서 주님께 자기들과 함께 계셔달라고 부탁을 했고 주님은 그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여관에서 식사하실 때 주님은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저희에게 주었습니다. 그 떡을 먹자 제자들의 눈이 밝아졌고 그들은 그때서야 주님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영적인 눈이 열리는 몇 가지 비결을 얻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감사할 때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된다.

30절에서 축사한다는 말은 감사한다는 말인데 감사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으면 눈이 가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신비하게 주님을 보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또한 서로 감사의 말을 할 때 그 공동체에 하나님의 은혜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는 신앙인의 최고 인격이고,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행복한 삶을 원하신다면 감사하는 삶이 없이는 행복이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사람이 진정 공동체에 희망을 주고, 세상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좌절과 욕구불만과 시기와 질투를 가지면 절대 창조적 작품이 나올 수 없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십시오. 진정 아름다운 것이 많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떡을 뗄 때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된다.

제자들은 아직 주님을 모르고 있었고 그저 낯선 좋은 분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낯선 분과 사랑의 떡을 떼는 순간 그들은 눈이 밝아져 주님을 보았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줍니까? 낯선 분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의 떡을 함께 뗄 때 우리의 눈은 밝아지고 우리는 그 사랑 속에서 주님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진정 나눔 속에서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볼 것이며 그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떡을 떼어야 하고 이웃의 필요에 민감해야 합니다. 그것이 없이 어떻게 우리가 성도임을 내세우고 주님의 축복을 기대한다는 말입니까?

우리 공동체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마음이 뜨겁고 영이 밝아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주신 이웃의 형편과 신앙과 사정을 살펴주는 모습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없이는 우리 삶에 있어서 큰 의미의 행복과 축복이 없게 될 것입니다.

부자란 누구일까요? 돈이 있고, 차가 있고, 집이 있는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남과 나눌 것이 있고, 나눌 마음이 있는 자가 진짜 부자입니다. 그러면 가난한 자는 누구일까요? 판자집에 살고, 돈이 없는 자가 아닙니다. 남과 나눌 것이 있어도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이 사실상 가난한 자일 것입니다.

물은 계속 퍼내야 샘 근원이 튼튼해지고 맑은 물이 더욱 생겨나듯이 우리도 소중한 일을 위해서 우리의 것을 내어줄 줄 알아야 영혼이 튼튼해집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진정으로 삶과 사물을 보는 변화된 눈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이 떠질 때 우리의 눈이 변화되면 이웃도 달리 보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우리에게 시야의 변화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축복입니다.

말씀을 듣고 뜨거워질 때 영적인 눈이 열리게 된다.

떡을 뗀 후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자 그 순간에 주님은 신비하게 사라졌습니다. 그런 일을 겪은 후 제자들은 서로 말했습니다. 32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주님을 만나는 순간 그들은 순식간에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변화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주님은 말씀 속에서 현존하신 주님이었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말씀을 진지하게 붙들고 있으면 우리의 마음이 뜨겁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 속에서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고 뜨거워졌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진지하게 성경 말씀 앞에 서서 말씀을 받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자기 생각으로 재단하지 말고, 자기 취향에 따라 변질시키지도 말고, 말씀 앞에 정직해지시고, 말씀으로 수술 받을 각오를 해 보십시오. 어떤 다른 희한한 신앙행위를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신앙은 선전이 아닙니다. 다만 진솔하고 겸허하게, 들으려는 심정을 가지고 말씀 앞에 서 보십시오. 그러면 진정으로 말씀 안에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이 있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뜨거워 졌다는 것은 진리에 접촉된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다시 만나고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의 마음은 뜨거워 졌습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 하더냐?"(32) 뒤늦게나마 깨달은 두 사람의 고백은 진실이었습니다. 죽음을 상상할 때 인간의 마음은 싸늘해집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그의 음성을 듣는 순간 식어진 인간의 마음은 다시 뜨거워지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식어졌다면 말씀의 깊은 세계로 다시 들어가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쉬임  없이 말씀해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받아드릴 때 가을볕에 잘 익은 열매처럼 속사람이 영글어 갈 것입니다. 마음도 가슴도 뜨거운 신자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마음의 뜨거워지자 예수님을 노상(路上)에서 숙소로 모시는 아름다운 인간미가 되살아났습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뜨거워지면 사람이 사람다워집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뜨거워지지 않을 때 매사가 억지가 되고 억지로 하는 모든 일은 피곤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져서 기도하면 지치지 않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져서 봉사하면 오히려 기쁩니다. 마음이 뜨거워져서 성경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마음이 뜨거워져서 교회 오면 기뻐서 날을 것 같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져서 전도하면 욕먹어도 기쁩니다.

뜨거워진 마음은 사랑의 동력이 된다

찬바람 부는 인간의 싸늘한 마음에서 사랑을 기대한다는 것은 마치 눈 속에서 할미꽃을 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마음이 뜨거운 자만이 우정과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자, 친절하자"고 아무리 결의 대회를 열어도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지면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사랑하고 마음에 열이 오르면 친절하지 말라고 해도 친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마음이 뜨거워지자 예수님을 길가에 혼자 남겨두지 않고 숙소로 모셨고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사람은 미워하지 않습니다. 성경말씀으로 감화 받은 사람은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합니다. 성령에 감동된 뜨거운 마음은 남의 처지를 그대로 보고만 넘기지 않습니다. 뜨거워진 인간의 마음은 밤길을 홀로 가는 외로운 나그네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은 항상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동행하는 복된 신자입니다. 오늘도 예수님 만나시고 주님의 말씀으로 뜨거워지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음이 뜨거워질 때 영의 눈이 열립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진 두 제자는 마침내 영에 눈이 열려서 부활의 주님을 발견했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질 때 영의 눈이 열립니다. 마음이 뜨거워질 때 비젼이 생깁니다. 마음이 뜨거워질 때 용기가 생깁니다.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을 때 십자가에 죽어 장사되어버린 절망의 예수가 아니라 무덤을 헤쳐 버리고 다시 사신 부활의 예수님을 그들은 발견했던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주님의 말씀으로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부활의 확신과 소망이 넘쳐야 합니다. 자기 한 목숨 살기 위하여 도망가던 제자들이 그 밤에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감격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하여 뜨거워진 마음은 그들은 한시도 지체할 수 없게 했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비극은 그들의 발걸음을 석양에 지는 낙조를 향하게 했지만 부활의 주님을 만난 그들은 더 이상해지는 서산을 향해 내려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해 뜨는 동쪽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기독교의 행진은 해 지는 쪽을 향한 석양의 행진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벽의 여명을 찾아가는 새 아침의 행진인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을 때 떠나왔던 예루살렘은 더 이상 공포의 도시가 아니라 영광의 새 아침이 밝아오는 희망의 동산이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시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까? 이제 해 뜨는 동쪽으로 여명의 아침을 향하여 힘차게 행군합시다.

마음이 뜨거워지면 전진형의 인간이 된다

마음이 뜨거워진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불태웠고 그들이 외쳤던 부활의 소식을 싸늘한 대지에 훈훈한 열기를 일으켰습니다. 다시 사신 주님을 증거하는 그들의 행진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뜨거워진 마음이 주님의 부활을 외치고 전진할 때 인류는 소생의 길을 되찾았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말씀의 진리로 뜨거워진 기독신자의 발전과 전진을 가로 막을 자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그 무엇도 우리의 행진을 중단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의 행진은 언제나 해 뜨는 쪽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마음이 뜨거워진 하나님의 백성은 밤을 향하여 돌아가지 않습니다. 일이 좀 힘들고 고달프다고 해서 낙조를 향하여 엠마오로 가는 사람은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가 식어버린 사람입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우리의 발걸음은 이제 새벽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어둠을 뚫고 나가는 사람만이 새벽을 맞이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으로 마음이 뜨거워져서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능성이 끝난 자리에서 하나님의 희망은 시작 된다

결국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주님의 사랑으로 뜨거운 마음을 회복했습니다. 그래서 곧 엠마오를 거의 다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극적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돌아가니까 정말 부활하신 주님께서 시몬에게 나타났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이 두 제자도 자기들에게 있었던 일을 주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우리의 가능성이 끝난 자리에서 하나님의 희망은 시작됩니다. 신앙이란 세상에 가득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느끼면 하나님은 커지고 문제는 작아져 보입니다. 사람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느낍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동안 잠들었던 마음이 깨어나고 게을렀던 마음들이 분발하는 계기가 되고, 하나님의 인도와 사랑을 마음 깊은 곳에서 새롭게 깨우쳐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것의 자랑스러움을 떨칠 수 있는 존재로 부활하시길 바랍니다.

슬픔의 터널을 잘 통과하고 나면, 이제 사랑의 존재로 거듭나게 됩니다. 욕망으로 슬퍼하며 살던 존재에서 사랑으로 기뻐하며 사는 존재로 말입니다. 그렇게 거듭남, 그렇게 다시 태어남, 그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이제 잠들었던 마음을 깨웁시다. 슬픔과 절망, 불확실한 자기의 미래와 불신앙의 터널을 통과하여 사랑의 존재로 거듭나서 당당하게 기쁨으로 살아가는 부활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경건의 삶을 사신 여러분, 이제 부활의 영광도 함께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 부활로 연합된 기쁨이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부활절 기도(최효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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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여 당신은 오늘 나의 마음속에서 다시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당신은 오늘 나의 관을 깨뜨리고
나에게 다시 생명을 주셨습니다.
무덤 속에 가득 찬 광명과 향기,
그것은 오늘 나의 영혼에 차는 소망의 기쁨입니다.

주여, 이 새봄에 나의 마음 밭에 오소서.
당신이 오시면 사람이 살고 당신이 오시면 어제의 슬픔이 가고
당신이 오시면 저 밝은 하늘 열리고
당신이 오시면 미움도 사라지고
당신이 오시면 마음과 마음 다시 만나고
당신이 오셔야 사람다운 사람,
남편다운 남편, 아내다운 아내, 자식다운 자식이 되겠습니다.

다시 사신 그리스도여
넘어져도 얼른 일어나게 하시고
먼지가 묻어도 빨리 털어 내게 하시고
미움을 품고 잠자리에 들지 않게 하소서.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 나도 부활하게 하소서.
굼벵이가 매미가 되듯 나도 부활하게 하소서.
말랐던 뿌리에서 백합의 미소가 피듯 나도 부활하게 하소서.
어두운 태에서 생명의 울음이 터지듯 나도 부활하게 하소서.

사나운 소리가 들려도 너무 겁내지 말게 하시며
꾸지람을 들어도 너무 낙심하지 않게 하시며
바람이 분다고 아무데로나 끌려 다니지 않게 하시며
햇볕이 뜨겁다고 그늘만 찾지 않게 하소서.

갈 길이 멀다고 걱정만 하지 말게 하시며
지나온 길 되돌아보지 않게 하시고
어둠이 와도 외로워하지 않게 하소서.

몽치가 다가올 때도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던 주님,
배반하는 제자에게도 위로의 시선을 던지시던 주님,
침 뱉는 자들도 용서하시던 주님,
십자가위에서도 어머니를 생각하시던 주님,

오 주님! 나도 부활하게 하소서.
내 가슴이 푸른 하늘이 되게 하시고
내 생각이 넓은 하늘 되게 하시며
내 영혼을 봄 동산으로 만들어 주소서.

다시 사신 그리스도시여,
나의 무덤을 헤치고 새롭게 태어날 힘을 주소서.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맞이하게 하시고
미래를 설레는 흥분으로 기다리게 하시며
보이지 않아도 믿음으로 꿈꾸게 하시며
알지 못해도 소망으로 전진하게 하소서.

다시 사신 그리스도시여,
이 봄, 이 부활절에 나도 새 출발하게 하소서.
'두려워 말라’(마 14:27) ‘염려하지 말라'(마 6:34)하신 주님을
온전히 믿고 오늘 새 출발하게 하소서.

주님은 나의 선장이시오 진정한 후원자,
주님은 나의 모든 문제의 해답자 시오니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 품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최후까지 나를 사랑해 주시는 주님,
나도 오늘 부활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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