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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살아나셨고,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눅 24: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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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문수 목사 (신반포교회)

오늘은 우리 기독교의 최대 명절 부활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부활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아예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조차 무의미했을 겁니다. 아니, 예수님의 성탄부터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았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의 모든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에 기초합니다. 원수 마귀는 이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기독교 2천년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해 보려고 기를 썼습니다. 예수님이 완전히 죽지 않고
기절했다 깨어났다는 둥,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가서 헛소문을 퍼뜨렸다는 둥, 허깨비를 보았다는 둥, 무덤을 오인했다는 둥, ... 별의 별 소리를 다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부활의 진실성을 증거해 주는 부동의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변화와 기독교 교회의 존재입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어떻게 도망갔던 제자들이 돌아올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담대하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순교하면서 기쁨으로 죽어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교회가 세워지고, 오늘날까지 교회가 존속하며 부흥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분명히 믿습니다. 그런데 이것만 믿으면 곤란합니다. 그렇다면 부활절이 문자 그대로 기념식에 불과할 겁니다. 우리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오늘도 여전히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만, 오늘도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동행해 주시는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불완전한 신앙입니다. 우리는 살아나셨고,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이것이 온전한 신앙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예루살렘 근교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사건의 기록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살아나셨고, 또 살아계신 분임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살아나셨고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 : 부활의 역사성

예수님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증명되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본래부터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죽고 그냥 끝났다면 아무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을 수 없었을 겁니다. 유일무이하게 죽음에 살아나셨기에 예수님이 평소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롬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② 십자가 죽음이 대속의 죽음이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끝났다면 십자가 대속을 믿을 수 없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일하게 부활하심으로써 당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일 뿐 아니라, 십자가 죽음이 모든 인간의 죄를 담당한 대속의 죽음이었음을 증거합니다.

요19:30 보면,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다 이루었다!” 이 말은 원문 상으로는 한 단어(테텔레스타이)인데, 완불(完拂)했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으로 죽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육신적으로 죽을 뿐 아니라 죽은 이후에는 영원한 사망, 지옥의 형벌을 당하게 됩니다. 그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짓눌려 살아가는 인간들을 위해 예수님이 그 죄값을 대신 치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고 의인이 됩니다. 영생과 천국을 얻게 됩니다. 롬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어느 목사님이 부활절 아침 녹슨 새장을 들고 설교단에 올랐습니다. 성도들이 의아스러운 표정을 짓자 그 새장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며칠 전 골목길에서 불량 청소년을 만났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 새장을 들고 있는데 그 안에 참새 몇 마리가 짹짹거리며 퍼득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그 새들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더니, 갖고 놀다가 싫증나면 고양이 밥으로 던져주겠다는 겁니다. 목사님은 새들이 너무 불쌍해 보여서 그 아이에게 돌을 줄테니 팔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 아이는 얼씨구나 하고 돈을 받고 새장을 넘겨주었습니다. 그 새들을 산 목사님은 새장 문을 열고 다 놓아주었습니다. 새들은 창공으로 훨훨 날아갔습니다. 목사님은 빈 새장을 보여 주면서 성도들에게 구원은 바로 이와 같은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죠. 우리는 예수님이 보혈로 죄값을 지불해주심으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어 참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장차 천국으로 훨훨 날아 올라갈 것입니다. 그리고 썩을 육체도 영광스런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빌3:20~2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2]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 부활의 현재성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막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그런데 승천하시면서 예수님이 약속하신 게 있습니다. 마28:20 “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 이 말씀은 얼른 보면 좀 이상합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남기신 말씀인데 어떻게 우리와 항상 함께 있겠다는 말인지 ... 더구나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데 말입니다. 정말 그렇죠? 이 말씀은 육신적으로 이해하면 정말 이상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요14:16~18 말씀을 보면 의문이 풀립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live) 너희도 살겠음이라”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령에 관해 언급하시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세상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지만 제자들은 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은 재림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재림의 때에는 불신자들도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이 이뤄질 겁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 다시 오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으로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성령으로 통해 이 땅에 임하여 활동하고 계십니다. 우리 마음 속에, 우리 삶의 현장에 항상 임재해 계십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아직 승천하시기 전에 있었단 사건 기록입니다. 글로바라는 사람과 또 한 명의 제자가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모르고 실망한 모습으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맨 처음에는 예수님을 몰라 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은 그 이전과 달리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집 안에 들어가서 예수님이 말씀을 풀어 주시고, 떡을 떼어 주시자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기쁨이 충만해져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른 제자들을 만나 부활을 증거합니다.

오늘날 에수님은 영으로 와 계시기 때문에 육신의 눈으로는 알아볼 수 없습니다. 부활의 몸으로 변화된 것도 알아보지 못하는데, 당연한 겁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성찬을 통해 성령의 은혜를 받게 되면 영안이 환하게 열립니다. 그러면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그분과 동행하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① 예수님과 동행하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세상 살 동안 얼마나 많은 슬픔이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하면 신령한 기쁨을 얻게 됩니다. 요16:22에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② 예수님과 동행하면 두려움이 변하여 평안이 됩니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인고로 늘 두려움 가운데 살게 마련입니다. 돈이 있어도, 권력이 있어도 매한가지입니다. 오히려 많은 소유를 가질수록 더 큰 근심과 걱정,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함께 해 주시면 신령한 평안을 얻게 됩니다. 그 평안은 세상에서 주는 일시적인 편리함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환경을 초월하는 평안입니다. 요4:27에서 예수님이 약속하신 평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래서 우리는 초막이나 궁궐이나 주님만 모시면 천국을 경험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찬송가 495장)

③ 예수님과 동행하면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됩니다.

인간은 환란이나 역경을 만나면 쉬이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절망은 없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신 그분이 함께 계시는데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16:33 “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 심지어는 죽음이 닥쳐와도 절망할 수 없습니다. 죽어도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잠14:32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사전(辭典)에는 ‘절망’ ‘낙심’ 등의 단어는 없습니다.

얼마 전 일간 신문 해외 면에 보도된 이야기입니다.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란타에 살고 있는 애쉬리 스미스라는 여인의 아름다운 신앙 이야기입니다. 성폭행과 마약 소지, 납치 등으로 재판받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법정에서 여성 보안관 총을 빼앗아 판사, 속기사 등 4명 사살하고 도주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애쉬리의 아파트 주차장에 들이닥쳤습니다. 그 범인은 그녀의 옆구리에 권총을 들이대고 집으로 끌고간 후 의자에 묶어 꽁꽁 놓고 인질을 삼았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시종 침착하게 대처했습니다. 밤새 달래며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마음이 열린 범인은 몇 시간 후 그녀를 풀어주었습니다. 대화는 무르익었고, 그녀는 범인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도전했습니다. “당신은 체포되어 감옥에 가겠지만 수감자들에게 복음 전할 사명 받은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 말을 들은 범인은 감동을 받았고 마침내 그녀에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나에게 보낸 천사이군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경찰에 순순히 자수를 했다고 합니다. 일간 신문이라 신앙에 관한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저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눈에 선하게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애쉬리 스미스는 분명히 살아계신 주님을 믿는 사람일 것입니다. 아니, 그녀는 살아계신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극한 상황에서 그렇게 담대할 수 없었을 것이고, 더욱이 범인을 감화시켜 자수하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육안에 보이지 않지만 항상 임재해 계시는 분입니다. 살아계신 그분과 동행하는 믿음이 참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만 갖고 있다면 세상에 그 무엇이 아쉽고, 세상에 그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오늘 부활절 아침에 부디 저와 여러분은 2천년 전 죽음에서 살아나신 예수님뿐만 아니라 살아게셔서 오늘 나와 함께 동행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신앙으로 이 세상 살 동안 승리하시고, 이 세상 떠날 때 영원한 천국에 담대히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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