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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 (마 2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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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익로 목사

인류가 남겨놓은 역사가운데에는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그렇고, 바늘 끝조차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쌓은 석축의 마야문명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에밀레종을 밭쳐주는 고리가 그렇고, 석굴암도 그렇고, 무령왕릉을 축조한 벽돌이 그렇습니다. 이 모두는 현대과학의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하여 그 역사를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있는 역사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 하여 역사를 부정한다면 그 사람은 무지 사람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역사적 유적으로 남아 있는 빈 무덤역시 부인할 수 없는 역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역사적 사건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1.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의 증거입니다.

“참호 속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갖게 되는 때는 죽음 직전이라고 합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참호 속에서는 모두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은 그때의 마음이 가장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평소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일까요? 이는 사람의 마음이 그만큼 순수하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복음 5:8)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가장 명확한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이 땅위의 모든 종교가 주장하는 교리 가운데에는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윤리를 강조하는 것, 선한 일에는 상이 있고, 악한 일에는 벌이 임한다는 것, 내세를 말한다는 것, 정성을 다할 때 바라는 소망이 성취된다는 것 등입니다. 그러나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독교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입니다. 빈 무덤입니다. 만일 무덤에서 다시 나신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윤리도덕을 말한다면 유교로도 족합니다. 병 낫는 것을 기독교의 특색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불공을 드려 병 나은 사람이 있습니다. 힌두교에서는 물로서 병을 고칩니다. 무당도 주술로 병 고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의 의술로도 병을 고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유가 기독교의 특색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 가운데 물질의 윤택함과 가정의 융성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독교의 전부는 아닙니다. 기독교의 자랑은 오직 부활입니다. 빈 무덤입니다. 타종교는 그들 교주의 웅장한 무덤을 자랑하지만 기독교의 자랑은 빈 무덤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죽음을 이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죽음은 모두가 무서워하며 싫어합니다. 인간 최대의 난제가 죽음입니다. 이 난제를 해결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므로 유일한 구주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난 갈릴리 바다의 풍랑을 잔잔케 하시므로 자연을 다스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각색 병자를 고치시며 귀신들린 자를 완전케 하시므로 병마를 다스리셨습니다. 죄 없는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고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므로 죄악을 다스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시므로 사망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이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을 이기신 승리의 증거입니다.

로마 군병들과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장사 지냈습니다. 그 무덤 입구에는 큰 돌로 막았습니다. 아무도 손대지 못하도록 인봉을 했습니다. 누구도 접근할 수 없도록 창칼을 든 군인들이 보초를 섰습니다. 그들의 완전한 승리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 편에서는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시므로 모든 상황은 삽시간에 번전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부활의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세상을 이기는 힘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실패한 사람 같으나 실패하지 않습니다. 망할 것 같으나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말하기를“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린도후서 4:8-9)하셨습니다.

시카고의 어느 작은 교회에서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세 살짜리 아기였습니다. 이 아기의 주검을 놓고 장례식을 합니다. 목사님이 기도할 때 모두 눈을 감고 있는데 초라하게 더러운 옷을 입은 거지 몰골의 남자가 들어왔습니다. 그는 죽은 아기의 신발을 몰래 벗겨 가지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것을 35센트에 팔아 술을 마셨습니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로 죽은 아기의 아버지였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살짜리 어린 딸이 죽었는데, 그 장례식에 서 그 아기의 신발을 벗겨다가 팔아서 술을 마시는 인간, 이런 인간을 누가 인가이라고 하겠습니까? 짐승만도 못하지요. 다 끝난 인간 아닙니까? 그러나 끝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고, 예수 믿어 구원받게 되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를 상대로 전도하여 수천 명의 알코올 중독자를 주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그가 바로 “메트라이더”라고 하는 유명한 목사이자 부흥사가 되어 시카고 역사에 기록되는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무엇이 이 쓸데없는 쓰레기 같은 인간을 고귀하게 만들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사람은 그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귀하게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세상을 이기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시므로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험한 세파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시기를“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하셨습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은 내세가 있음의 확증입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간 세상에 더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하시는 모습을 500여 무리들이 지켜보았습니다. 사도행전 1:9-11에 기록하기를“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하셨습니다.

그곳은 우리의 본향입니다. 이곳으로 우리들을 인도하시고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들의 부활의 증거로 무덤에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셨습니다. 이곳에는 슬픔도, 가난도, 이별도, 질병도, 미움도, 탐욕도, 죽음도 없는 곳입니다. 다니는 길은 황금이며, 거하는 집은 진귀한 보석들로 되어 있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하늘나라를 직접보고 온 바울 사도는 다짐하기를“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립보서 3:11-14)고 했습니다.

그는 또 말하기를“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린도전서 15:19-20)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이 땅의 것은 모두가 잠간입니다. 다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영원합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시고자 기록된 책이 성경입니다. 성경의 핵심은 우리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하시고자 죽으시고 살아나신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부활의 영광은 언제 왔습니까? 십자가를 진 뒤에 있었습니다. 십자가 고난 뒤에 부활의 영광이 있음을 깨달은 바울사도는 이렇게 다짐을 했습니다.“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 8:17-18)

순교자 주기절 목사는 마지막 설교를 하면서 이렇게 다짐을 했습니다.
주님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뵈오리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옥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다음에 너는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은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주님을 위해 오는 십자가를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다음 주님이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고난의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증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신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내세(來世)가 있음을 확증합니다.

이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공경하므로 금세와 내세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힘입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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