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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앞에 나오면! (히 10: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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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기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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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히10: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히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나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히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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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성도가 푸념을 하며 말하기를 "나는 교회에 20년간 다니면서 많은 설교를 들었지만 하나도 기억나는 것이 없네!..." 그러면서 불평을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옆에 다른 성도가 "나는 지금까지 40년이 넘도록 음식을 먹었어도 지금까지 기억되는 것은 하나도 없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살아서 존재하는 것은 그 음식들을 먹었기 때문이지!" 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많은 설교 말씀들을 듣습니다만, 별로 그렇게 기억되는 게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이렇게 신앙 생활을 하고,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날로 날로 성숙한 신앙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은 역시... 때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각자의 심령 심령마다... 성령께서 은혜의 말씀으로 우리를 먹여 주시고 덧입혀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 앞에 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그랬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예수 앞에 나와야 하며, 왜 다른 사람까지 예수 앞으로 나오기를 전해야만 되는 것일까?....
우리는 나와도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와야 할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이것을 전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앞에 나오면 어떻게 됩니까?...

1. 예수 앞에 나오면 죄를 용서 받습니다.
성경은 모든 인간을 가리켜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인간은 사망 아래 놓여 있는 존재입니다(롬6:23). 그러므로 사망을 벗어나려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것 입니다.
사람들에게 "당신은 죄인입니다!" 하고 말하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죄인이라고 합니까?" 하고 반문할 것입니다.

죄가 무엇을까요? 여러분....
'죄'라고 하는 원어는 '하말티아'라고 하는데, 과녁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즉, 어떤 목표를 향해서 화살을 쏘았는데 그 목표... 과녁에서 벗어난 것을 말합니다.
좀더 쉽게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시하신 말씀, 그 목표대로 행하고자 하는데... 그 목표, 과녁에서 벗어난 것을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전에... 세 가지 관점에서 죄가 있다고 그랬죠. ①먼저, 세상법으로서... 국가가 정해 놓은 법을 지키지 못하고 벗어나는 경우... 이것이 죄가 되는 겁니다.
②두번째는 도덕법이 있는데, 인간 양심의 기준에 맞지 않을 때... 그때 죄가 되는 것입니다.
③세번째는 하나님의 법이죠.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 그게 죄인 것입니다.
이 세 가지의 기준에서 하나도 어긋남이 없이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롬3: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인류의 시조가 에덴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으로 범죄하고 만 것입니다. 범죄한 아담의 죄는 오늘 우리에게도 흐르고 있으므로 우리 인간은 자범죄 이전에 벌써 죄인으로써의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5:12절에서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근성에 죄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앞에 죄와 의를 두면, 죄를 선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웨슬레는 비유하기를 "언덕에서 흐르는 물이 위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지연스레... 인간은 죄를 짓고 마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 죄는 인간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죄는 결국에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①먼저는 자기의 양심 앞에서 다 드러납니다. 감추려고 해도... 자신의 양심이 괴로워 못 견딥니다.
②두 번째는... 사람들 앞에서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③세 번째로, 모든 사람들에게 다 감추어 진다고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 앞에서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죄는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①죄의 사실들이 알려 질까봐 두려워 하게 되고
②심판을 받을까봐 두려워 하게 되고
③마음의 평안을 상실하므로 두려움에 떨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하여 쫓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먼저는 ①자기의 양심에 쫓깁니다.
②법에 쫓기게 되고
③결국은 하나님께 쫓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쫓겨남으로 ①하나님의 축복과 생명에서 쫓겨나고 ②천국에서 쫓겨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①죄로 말미암아 고통이 왔습니다.
②죄로 말미암아 슬픔과 탄식이 왔습니다.
③죄로 말미암아 눈물이 왔고
④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냥 두면 사망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많은 말이 필요치 않습니다.
단 한가지 방법이 있으니,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흘려주신 피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는 방법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1:18-19절에서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인한 것이니라"고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인조 14년(1636년)에 청나라 태종이 쳐 들어왔습니다. 그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 피하여 있다가 다음 해 삼전도에서 항복한 치욕의 사건이 바로 병자호란입니다.
이 때 한양에 거주하던 많은 부녀자들이 적군에게 정조를 잃게 되었고, 그래서 가정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잘못을 하지 않은 부인들에게도.. 남편들은 의심을 하고, 많은 가정에 파탄이 생기고 사회가 매우 어지러워 졌습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한 가지 묘안을 마련했습니다. 바로 홍제동에 큰 연못이 있는데, 모든 부녀자들은 이 못에 가서 몸을 씻도록 어명을 내린 것입니다.
그 못에 가서 몸을 씻으면 그 후부터는 죄를 씻은 것으로 인정하고 정조에 대하여서는 다시 재론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그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자는 중형에 처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부녀자들은 어명을 따라 목욕을 하였고... 그 이후로 가정에 사랑이 회복되고 평안을 되찾았다는 얘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홍제동 연못의 물이 죄의 문제를 해결했다면... 하물며 예수님의 보혈이 어찌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없겠습니까....
홍제동의 연못은 일시적으로 문제를 해결했을지는 몰라도 죄를 근본적으로 사유함 받을 수는 없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그의 피 공로를 믿음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히브리서 10:19절에서 밝히 말씀하시기를,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전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피를 믿고 그 앞에 나아오는 자에게는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사44:22).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를 사함 받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예수 앞에 나오면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저수지에 가야 물을 얻고, 탄광에 가야 연탄을 캘 수 있듯이...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께 나와야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온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니라" 약속하시고, 그 약속하신대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해변의 모래같이 그 자손을 번창케 하셨고, 믿음이 조상이 되는 신령한 축복을 주셨습니다.

야곱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경배함으로 축복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란으로 피신해 갈 때 벧엘에서 그는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은 응답하시기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약속셨습니다(창28:15). 정말 약속하신 대로 야곱은 20년 후에, 큰 복을 받아 거부가 되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우리 모든 인간이 복 받기를 진실로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전도하실 때에도 그 앞에 나온 자마다 다 축복을 받았습니다.
(1) 귀신 들린자와 병든 자가 주님 앞에 나오면 건강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2) 죄인이 주님 앞에 나오면 사죄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3) 슬픔과 번민에 쌓인 자가 주님 앞에 나오면 기쁨을 얻었습니다.
(4) 배고픈 자들이 예수 앞에 나오면 배부른 축복을 받았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오면.... 그 문제가 해결되고 복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나라가 평안할 때에는 국가의 중요성을 몰랐지만, 이렇게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니까 많은 국민들이 어려움에 빠지게 되고 나라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보다 더 열심을 내고, 과거보다 일도 더 많이 하는데도 불구하고, 더 어렵고 더 힘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라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33절에 보면, 인간이 고생하고 근심하게 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본 마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참으로 우리가 복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주의 자리에서 벗어나 축복의 자리로 올라서야 하겠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매는 자들을 광명의 언덕으로 올라서게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 길은 오직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야할 일은 예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아가면 문제의 해결을 받고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눠 주신 주님은 마지막 하늘로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고"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마26:26, 눅24:50).
저주의 종교를 믿는자들이 많은데, 천만다행으로 우리는 축복의 주님을 믿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모이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열심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힘과 정성을 모두어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항상 주님께 속하여 있게 되고 놀라운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면 좌우지간 복이 임합니다.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런 얘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김윤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어릴 적에 신발을 훔치기 위해서 교회에 갔다가 목사가 된 사람입니다.
그가 유년 시절에 자기의 떨어진 신발을 가지고 교회에 가서 바꿔 신으려고 신발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일학교 선생님이 나오더니 "오! 너 윤기가 아니냐? 이렇게 교회에 나와 주어서 참 고맙구나 얼른 들어가자!" 그러면서 반갑게 맞아주고 손을 잡고 학생들 앞에 소개하며, 환영의 노래를 불러주고, 이름을 적고, 훌륭한 착한 아이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자연스레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나중에는 열심히 신앙생활하게 되고 학생이 되고 청년이 되고.. 그가 나중에는 신학교에 입학해서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발을 훔치러 왔는데... 그 자리가 은혜의 자리였던 것입니다. 그 자리가 복된 자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복을 받았습니다.
하다 못해 졸아도 교회에 와서 조는 것이 복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우리 모든 권속들은 은혜와 축복의 제단 앞에 모이기를 힘써서...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예수 앞에 나오면 영생을 받습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죽은 종교가 아니라 산 종교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끝난 종교가 아니라, 부활하셔서 삶이 계속되는 종교입니다. 시간의 종교가 아니라 영원의 종교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혼자만이 부활하시고 끝난 종교도 아닙니다. 주님 앞에 나오는 자, 누구든지 주님을 믿는 자들은 주님과 함께 부활하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3:36절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했습니다.
영생에 대하여 성경만큼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내세에 대하여 기독교 만큼 분명한 종교는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우리 인간들의 생명이 죽었다고 말씀합니다.
창세기 2: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의혹을 품게 되는 이유는 지금의 나를 보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뭐가 죽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이미 죽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생의 근본이신 하나님으로 부터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내게 보여주면 믿겠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영이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생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서 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했습니다.
지금은 살아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영생이신 예수님을 소유하지 못한 자는 죽은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꽃꽂이를 할 때,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봉우리를 잘라서 병에 넣고 꽂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활짝 피어납니다. 그러나 뿌리가 잘렸기 때문에 그게 오래 가지는 못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금방 시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이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씨감자를 심을 때 감자를 여러번 자릅니다. 어떤 것은 아주 작게 잘라서 심습니다. 그러면 "과연 싹이 날까?" 하고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심어 놓으면 신비하게 싹이 나고 나중에는 감자가 주렁주렁 달리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기엔 생명의 씨눈이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영생의 씨 눈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면 다시 사는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요11:25-26).
그러므로 예수 앞에 나아오는 자마다 모두 다 영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영생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영생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앞에 나오면 어떻게 됩니까?
1. 예수 앞에 나오면 죄를 용서 받습니다.
2. 예수 앞에 나오면 축복을 받습니다.
3. 예수 앞에 나오면 영생을 받습니다.

우리가 주의 사명을 잘 감당하리라 다짐합니다만, 사명 감당이 별 다른 게 없습니다.
본인도 예수님께 나아오고, 다른 모든 사람도 에수님께 나아 오도록 하는 것이 주님 앞에 가장 큰 사명이요 헌신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나오고, 가족도 나오고, 친척도 나오고, 이 민족과 온 세계가 하나님 앞으로 나오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에 인생의 최대 목표로 삼는 산본성광의 모든 권속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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