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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장 25-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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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열린교회 고동현 목사

요한복음 16장 25-33절                            2005/ 3/ 27 부활주일예배
16:25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16: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16: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16:28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16: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사도 하지 아니하시니
16: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서 나오심을 우리가 믿삽나이다
16: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16: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곧 중간고사가 다가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이번 중간고사에서 1등 그것도 전교 1등을 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속성 중에 승부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겨야 한다는 것 1등을 해야 한다는 것 초일류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특히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어찌 되었든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독일 월드컵 예선전이 어제 새벽 사우디하고 있었습니다.
사우디에게 완패했으니까 이정도지 요즘 같은 분위기에 일본한데 그것도 어제처럼 힘 한번 써 보지도 못하고 완패했다면 모르기는 몰라도 축구대표팀 감독은 경질이 되고 선수들은 귀국하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다행이 같은 날 일본도 졌기 때문에 졸전을 하고도 그냥 이 정도로 넘어가고 다음기회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승부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고는 못사는 것이 우리입니다.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반드시 이겨야하고 할 수만 있으면 1등을 해야 합니다.
며칠 전 건우가 교회 오는 차 안에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아빠! 아빠 차는 엔진이 몇 개야?”
“응 1개. 자동차에는 엔진이 1개만 있는 거야”
그랬더니 건우가 뭐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아니야. 아빠 차는 엔진이 100개야. 아빠! 아빠 차는 엔진이 이제부터는 100개야? 내가 친구들한테 그렇게 얘기 했어. 우리 아빠 차는 엔진이 100개라고. 그러니까 지금부터 아빠 차는 엔진은 100개야”
여러분 왜 건우가 아빠 차는 엔진이 100라고 우기는 줄 아십니까?
요즘은 건우가 선교원에서 좀 규모가 있는 사립유치원으로 옮겼습니다.
아마 자기들끼리 아빠 차에 대해서 서로 자랑을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보통들은 다 자가용인데  건우가 ‘우리 아빠 차는 프레지오’하니까?
아이들이 놀린 모양입니다.
그러니 질 수 없잖아요? 그래서 차 크기로 미는 것입니다.
‘우리 아빠 차는 엔진이 100개야? 까불지 마!’

이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이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사람의 관심은 늘 육체주도적인 곧 보여 지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우선적으로 읽기는 책이 위인 전집입니다.
나폴레옹, 징기스칸, 한니발, 불멸의 이순신, 해신 장보고, 석유의 왕 록펠러, 강철 왕 카네기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빌 게이츠 등 이 세상에서 힘과 사업과 돈으로 세계를 제패한 수많은 인생의 승리자들의 전기나 자서전을 읽게 함으로 어려서부터 세상을 이기는 사람으로 꿈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 이순신 신드롬이 한창 뜨는 것도 같은 맹략입니다.
독도 문제로 이순신 신드롬은 더욱 상업화 될 전망입니다.

이러한 승부욕은 세상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3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단어가 있는데 ‘이기었노라’라는 헬라어 ‘니카오’입니다.
이 원어의 뜻은 ‘지배하다. 정복하다’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기었노라’라고 하는 이‘니카오’라는 단어는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에서 가장  자의적으로 잘못 해석된 단어 중에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래서 마치 자신의 이기고 승리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승리로 착가하거나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분명히 무엇이라고 합니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무슨 말입니까?
세상에서는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환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상을 염려하지 아니하고 두려워 아니하고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이 세상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어둠이 정복되고 이 세상의 사망이 지배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는 주님을 믿는 담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최후 승리를 바라는 것입니다.
찬송가 135장 4절처럼 말입니다.

4. 주가 예비하신 나의 본향집에 나를 부르실 그날까지
  험한 십자가를 항상 달게 지고 내가 죽도록 총성하리
  최후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최후 승리 얻기 까지 험한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예수님은 분명 예수님 자신이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지배하는, 사망권세로부터 승리하는 것을 말하는데 오늘 우리는 어떠한 승리를 생각하냐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내가 이기는 것입니다.
무조건 이겨놓고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의 한 일이든 하나님의 뜻이 아니든 상관없이 무조건 이겨놓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교인들과 말싸움을 꺼리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싸움에 절대로 지지 않는 것이 교인이요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상관없이 무조건 내가 이기고 내가 승리하는 것이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승리인양 착각하고 동일시하는데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오늘 본문에서 이기는 승리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이기고 승리하기를 누구보다도 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가 반드시 분별해야할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이김과 승리가 내 것이 될 수는 있어도 세상에서의 나의 이김과 나의 승리가 곧 하나님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승리를 우리가 담대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의 이김과 최후 승리는 될 수 있어도 이 땅에서 당장 이기고 승리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영광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서울대 합격이 하나님의 영광입니까? 아닙니까?
아닙니다.
자신의 영광은 될 수 있고 가문의 영광은 될 수 있고 세상의 영광은 될 수 있어도 하나님의 영광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서울대 합격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면 지방대는 지옥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승리하는 믿음, 이기는 믿음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부활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실체로 믿는 것입니다.
이것뿐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이것을 대체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입니다.

이것에 대해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17장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늘 우리교회가 분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난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에서 교회가 엉뚱한 일을 하고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떠들어 대는 것입니다.
1000년 전에 있었던 십자군 전쟁이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무고한 생명을 학살 하고도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영광을 떠들어 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꼭 1000년이 지난 지금 하나님의 영광을 걸고 전쟁하는 나라가 있습니다.바로 미국입니다. 제 2의 십자군 전쟁이 미국을 중심으로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것을 연일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목사님들이 지지한다는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여러분이 이 부활절 아침에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부활하신 주님의 승리가 곧 교회의 승리요 나의 승리가 될 수는 있어도 나의 승리, 교회의 승리가 곧 하나님의 승리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복음성가 중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승리는 내 것 일세 승리는 내 것일세 구세주의 보혈로서 승리는 내 것일세
내 것 일세 승리만이 구세주의 보혈로서 승리는 내 것일세

무슨 말입니까?
구세주의 보혈로써, 구세주의 부활로써 승리는 내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노래는 승리를 위한 응원가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결국 믿음의 문제인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세상을 이기는 최후 승리의 믿음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담대한 믿음입니까?
폭풍우처럼 다가오는 세상의 환난과 고난으로부터 이길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욥의 믿음을 보면 우리가 이러한 믿음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욥기를 읽거나 이야기를 들어서 잘 아시는 대로 욥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 재산 뿐만 아니라 모든 자식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거기다가 한평생 믿고 의지했던 아내도 떠나고 절친한 친구들마저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세상에서의 환난과 고난을 이기는 줄 아십니까?
욥이 가지고 있는 담대한 믿음의 실체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욥기 1장 20-22절입니다.
1: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赤身)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1: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 하지 아니하니라

바로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담대한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가 누구 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하늘에 속한 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소망을 두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이 땅의 것으로 원망하고 그것을 핑계 삼아 범죄 한다면 더 이상 그는 믿음의 사람 하늘의 속한 자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 하지 아니하고 그 마음에서 하나님을 빼앗을 수 없는 사람. 그 사람이 담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고 그 믿음의 사람만이 세상의 환난과 고난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히브리서 11장 38절에서는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 그것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요 부활의 믿음인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감추어진 값진 진주 하나를 사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실체로 소유하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세상을 이긴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세상이 주는 환란 속에서도 담대하게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39절입니다.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8: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오늘 말씀을 마칠려고 합니다.
한국기독교 선교 올해로 120년이 되는 해입니다.
더불어 오늘은 120번째 맞이하는 부활절입니다.
이 아침에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신신 당부 합니다.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바라기는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담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최후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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